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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돈 안되는 정치

Working Class Hero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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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재미있다. 세상에서 제일 (제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흥미롭다) 재미있는 것이 불구경, 싸움구경이라고 했지만 사이버논쟁은 더 재미있고 흥미롭다.

얼마전 김규항과 진중권의 논쟁이 벌어졌다. (진중권 vs. 김규항이 아니고 김규항 vs. 진중권이다.)
내가 생각한 1차 라운드는 김규항의 판정승 내지 진중권의 타임을 요청한 형국이다.

김규항과 진중권의 논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규항이 자신의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 01이다. 작정을 한 모양이다.
진중권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운 여름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

아마 결론은 없을 것이다. 각자 자기 길을 갈 터이니...

이 논쟁에서 김규항의 이번 글을 보면서 (차마 말은 못하지만) 김문수와 이재오를 연상케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김규항 씨에게 물어 본 내용은 아니고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원래 글이란 글쓴이를 떠나면 그 다음 상상은 읽은이의 몫이다. 국어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정답이 있을리 없을 것이고 정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강요하거나 내가 강요받을 필요는 없다.)

알다시피 한국 사회는 반세기 동안 극우반공주의 세력이 사회를 장악하며 좌파를 말살해왔다. 극우반공주의 세력의 반공주의적 선전은 좌파를 ‘뿔 달린 괴물’로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고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반공주의는 그 양태가 바뀐다. 조갑제 류의 반공주의는 여전히 추악하게 느껴지지만 더 이상 새로운 효력을 갖지 않는다. 이제 좌파는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쓸모없는 사람들’로 선전된다. 진중권 씨가 늘 말하듯 좌파는 ‘80년 운동권의 화석’이며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계급에 매달리는 사람들’이며 급진적인 사유와 상상력은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등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극우인사가 하는 것보다는 젊을 때 좌파 이력을 가진 자유주의자가 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현재 좌파를 자처하는 인사가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좌파는 문제가 있어도 서로 비판하고 토론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비판과 토론이 없으면 썩게 되어 있다. 당연히 비판하고 토론하되 그런 비판과 토론이 행여 반공주의에 악용되지 않도록 신중하고 사려깊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 모든 좌파들은 노선을 막론하고 적어도 그 정도의 분별력은 갖고 행동하고 있다. 아마도 단 한 사람을 빼곤 말이다.

"젊을 때 좌파 이력을 가진 자유주의자"가 된 두 사람. (물론 두 사람이외에 수 많은 얼치기 좌파들이 전향을 선언하였다.) 나는 김문수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행보과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증명해 보인다. (물론 좋은 의미의 극과 극은 아니다.) 가장 왼쪽과 (맞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오른쪽에 있는 지금의 그들의 모습이 왜 김규항의 글에서 떠오르는 것일까?

또 다시 삼천포로 가는지 모르지만 존 레논의 "Working Class Hero"가 떠오른다.
그는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라 노래했다.

진중권 씨가 자신보다 급진적인 좌파의 존재 가치를 부인하면서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낡고 비현실적이라는 것. ‘지금은 디지털 시대인데 한국의 좌파들은 농경 시대나 중공업 시대의 사고를 고수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노동자 계급과 이미 폐기처분된 사회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진중권 씨가 기회만 되면 반복하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한국의 좌파들이 낡고 비현실적인 경향을 갖는다는 데 일부 동의한다.

....

좌파에게 중요한 건 농경시대인가 중공업 시대인가 디지털 시대인가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존재하는가, 소외된 노동이 존재하는가, 이다. 농경시대든 중공업 시대든 디지털 시대든 디지털 할애비 시대든 계급적 억압과 착취가 존재하는 한 좌파의 임무는 그것과 싸우며 그런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가장 세련된 좌파는 ‘디지털 시대엔 계급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계급적 억압과 착취의 양상을 꿰뚫어보며 그것에 현혹되지 않고 싸우는 사람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노동자 계급'의 존재 유무를 말하기전에 억압과 착취가 존재함을 간과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라고 노덩자 계급이 없겠는가? 어떤 근거로 말하는지 궁금하다. 옆에 있으면 묻고 싶다.

논쟁은 재미있다.
진중권의 재반박이 나올 것이다. 조소섞인 약간(아니 약간 많이) 무시하는 말투로 반박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논쟁이 유쾌하지만 않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존 레논이 말하는 "Working Class Hero"다.
우리에겐 영웅에 대하여 너무 인색하다.
누군가 "Working Class Hero"가 나온다면 아니 된다면 좀 더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덧붙임_
진보정당을 생각하면서를 보면 1차라운드를 볼 수 있다.

덧붙임_둘
김규항의 블로그에는 댓글이 없다. 혼잡 또는  번거로움을 막으려는 그의 의도는 이해하나 댓글도 소통임을 그가 알았으면 한다.

덧붙임_셋
김규항이 효자 책이라 표현한 <에수전>이 6쇄에 들어 갔다고 한다.
읽어 보려고 했는데 아직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책의 내용은 차치하고 6쇄라니 반갑다.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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