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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완장차고 싶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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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신문기사에서 김인숙을 보았다. 한국일보에 연재를 하고 있나보다. 김인숙이라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칼럼의 제목이 <완장>(

[김인숙 칼럼/8월 25일] 완장

) 이다. 윤흥길의 <완장>을 빗대어 지금의 청문회를 말한다. <완장>은 팔에 (허접한) 완장을 찬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완장의 위력이 세월이 30년이 넘은 이 시점에도 유효하다. 아마도 계속 유효하리라.

소설가 김인숙 이라고 하면 뭐가 떠오를까?
나는 <79-80 겨울에서 봄 사이>가 떠오른다. 그 이후는 그(그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아직 선생이라 부르기도 어정쩡하니 '그'라 부르겠다.)의 소설을 접해본 적이 없다. (참, 얼마전 그의 북경 여행기를 구매했다. 절반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지금 책을 검색해보니 품절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품절과 절판의 차이가 뭘까? 사전적 의미는 알지만 온라인 서점에서는 둘 다 책을 팔 수 없다는 것인데.)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아마도 80년대 중후반에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부마항쟁을 다룬 책이다. 광주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부마를 다룬 것은 (내 기억에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책의 내용은 잘 기억에 없지만 한가지만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부마항쟁이라 말하는 것을 부마가 아니라 마부항쟁이라 말한다. (지금 마산이 역사의 뒤안길로 갔으니 뭐라 불러야 하나. 부창항쟁, 창부항쟁이라 해야하나.) 내가 마산에서 태어나서 (본적이 부산이지만) 그 말이 기억이 남아있다. 20년이 넘게 기억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10.26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부마항쟁과 YH는 깊은 관계가 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검증이 소홀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다.

각설하고 왜 이리 완장을 차고 싶어하는 걸까? 총리, 장관 등을 그리 하고 싶은가? 차라리 청문회를 하지않는 선출직을 하는게 낫겠다. 물론 선출직 자리를 역임한 사람들이 많다.


윤흥길의 한 마디

(...) 나는 <완장>을 집필하면서 많이 행복해 했다. 권력이 나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내가 권력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착각이 내가 느끼는 행복감의 원천이었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아 마구 꼬집고 할퀴고 옆구리와 발바닥을 간질임으로써 우스꽝스런 꼬락서니로 짓뭉개놓았노라고 생각했을 때의 그 쾌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완장이란 대부분이 자신이 아닌 다른이가 채워주는 것이다. 완장의 의미는 높은 놈(?)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표시하고 알려주는 표식이다. 권위의 상징이 아니다. 한데 그 완장을 차고 싶을까? 그리고 그 완장을 차고 군림하고 (사실 군림이 아니라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싶은 것이 걸어다니는 원숭이의 공통된 욕망인가 보다. 학창시절, 군대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 사돈에 팔촌까지 들추어낸다. 이 땅에 기득권들이 먼지(먼지라고 하니 너무 작게 느껴진다.)가 안 날 수가 있겠는가?

한데 너무들 당당하다. 자식이 미국 국적을 취득해도 위장전입을 해도 논문을 표절하여도 당당하다. 착오라고 말한다. 모두들 그러한데 왜 나보고만 그렇게 엄한 잣대를 대냐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청문회에서 질의하는 국회의원들도 강하게 밀어부치지 못하는 연유가 이에 기인할 것이다. (물론 전부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대부분의 국회의원에 행당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라면 정말 고무적이지만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청문회를 하지않는다.)

다른 것은 이해하기 힘들어도 미국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자녀의 모친되는 분이 하신 말씀이다. "(국적을 포기한 뒤 국내 취업한 것은) 취업이 어려워 1년 정도 일했으나 내년에 다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국적을 취득했으면 미국에서 밥벌이를 해야지 이 땅에 와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는가.

혹자는 말한다. '이 땅에서 장관이나 고위 공무원을 하려면 요람에서부터 관리를 해야한다'고 비아냥 거린다. 난 이 말에 '헐'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김인숙의 완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때마다 그에 관한 무수한 것들이 밝혀진다. 본인으로서는 절대로 밝히고 싶지 않았을 것들도 이래저래 알려진다. 무엇이 밝혀지고 무엇을 끝까지 숨길 수 있을지는 아마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범칙금을 끊은 적이 있는 나는, 그때 교통경찰 앞에서 얼굴이 새빨개져 본 적이 있는 나는, 자기 발로 청문회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들이 놀랍다. 창피한 것의 수준이 다른 그들이, 잘못한 것의 기준이 다른 그들이, 그러고도 완장을 차고 그 완장을 권력이 아니라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키겠다고 하는 그들이 놀랍다.

그의 말처럼 참으로 "완장을 차고 그 완장을 권력이 아니라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키겠다고 하는 그들이 놀랍다".

그의 바램이 나를 비롯한 대부분 이 땅에 사는 민초들이 바라는 것이다.
"너무나 깨끗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임_
완장 이미지를 검색하다보니 완장에 대하여 잘 기술한 글이 있다.

https://qq9447.tistory.com/1071

덧_

가끔 궁금해지곤 한다. 사람들은 왜 정치를 하려고 할까. 왜 자꾸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할까. 혹시라도 정치를 하고자 하는 욕망에 숭고한 이상 같은 것이 있다면, 그러니까 국민에 대한 봉사와 헌신, 뭐 그런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많을 텐데. 아름다운 봉사와 헌신이란 사실 알려지지 않은 자리에서 하는 것이 훨씬 더 숭고한 것일 터이니.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은 더욱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정치가 돈과 무관해서가 아니라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미 아주 부자인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부자들의 돈을 더 많이 불려주기는 하겠다. 더 많이 벌고 더 안전하게 지키고 싶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권력이 필요한 거라고 믿는다면.

권력 향한 욕망과 몰염치

권력에 대해서라면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니 그 달콤하고 뜨거운 맛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작가 윤흥길은 소설 <완장>에서 저수지의 관리인이 휘두르는 완장의 권력을 해학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고작 저수지를 지키는 관리인에 불과하지만 완장의 권력이 무섭다. 완장은 그들과 그들 아닌 사람을 가르고, 무엇이든 휘두르게 만들고, 모든 몰염치와 욕망과 횡포를 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 완장 하나가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던 보통사람마저도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 완장이 그토록 달콤한 것일까.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한 의혹이 무성한 모양이다. 매번 그러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런 기사를 접하는 보통사람들 입장에서는 매번 그러하고, 매번 기가 막히다. 매번 그러하니 새삼스레 그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래도 이건 너무 궁금하다 싶어 결국 글을 쓰게 만든다.

도지사였던 그분의 1년 현금영수증 사용액이 0원, 신용카드 사용액도 0원이란다.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4인 가족의 총 지출액이 그렇단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신용카드 한번 그을 때마다 다음 달이 걱정되고, 현금영수증 한 장 끊을 때는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다른 모든 의혹들보다도 이게 더 어리둥절하다가 놀랍다가 기가 막힌다.

절약해서 쓸 수 있는 연봉이 있었고, 부자인 장모님이 있단다. 이쯤 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어지지가 않는다. 절약해 쓸 수 있는 연봉도 없고 내 가족을 공으로 먹여 살려줄 수 있는 부자인 삼촌, 당숙, 사돈의 팔촌도 없는 나로서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때마다 그에 관한 무수한 것들이 밝혀진다. 본인으로서는 절대로 밝히고 싶지 않았을 것들도 이래저래 알려진다. 무엇이 밝혀지고 무엇을 끝까지 숨길 수 있을지는 아마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범칙금을 끊은 적이 있는 나는, 그때 교통경찰 앞에서 얼굴이 새빨개져 본 적이 있는 나는, 자기 발로 청문회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들이 놀랍다. 창피한 것의 수준이 다른 그들이, 잘못한 것의 기준이 다른 그들이, 그러고도 완장을 차고 그 완장을 권력이 아니라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키겠다고 하는 그들이 놀랍다.

상식 벗어나지 않은 인물을

오직 청백한 것만으로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다. 무작스러운 싸움판에서는 소심하고 착하고 약한 것은 흠이 되기도 하겠다. 강하고 결단력 있는 정치인을 원하는 것은 누구나가 마찬가지다. 다만 바라건대, 너무나 깨끗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더라도, 아무리 정치인이더라도, 그 완장, 내가 만들어줬고 우리의 돈으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현금영수증과 내 신용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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