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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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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를 샀다.
10,000원에 판매를 한다. 계산대의 여직원이 나에게 묻는다.
- 포인트 1,000원을 사용하시겠어요.
- 예.
결국 나는 김영하를 9,000원에 구매한다. 김영하는 나에게 9,000원에 팔려 갈기 갈기 난도질 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껏 김영하를 사지 않았는데 그의 팟캐스트를 듣고 김영하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기름기없는 무덤덤한 목소리를 가진 그가 글은 어떻게 쓰는지 궁금했다. 팟캐스트를 통하여 그의 미발표작(그때는 그랬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이었던 <악어>를 그의 목소리로 들었다. 눈으로 보지않고 귀로 전문(김영하의 말을 빌리면 시간이 정해진 방송도 아니니 자기맘대로 다 읽어 보자고 말했다)을 들으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왜 악어일까?
굳이 악어를 선택한 이유가 무얼까? 내 생각으로는 박제가 된 모습이 보기좋은 것이 악어가 아닐까? 또한 악어가죽이 비싸니까.



처음 그의 글을 들었고(저자의 마른 목소리로 팟캐스트를 통하여) 활자로 된 글을 이제 처음 보게 되었다.

책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김영하라는 작가가 이렇게(최소한 나에게는) 유명한 작가인줄 몰랐다. 한국 문학의 차세대주자(이런말은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평론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소위 문화기자 나부랭이들이 지어낸 말일 것이다. 아니면 출판사의 마케팅의 일환이던가)라고 불리웠다. 차세대주자라면 (지금)세대주자는 누구인가? 다 아무런 의미없는 헛소리다.

김영하의 마른 목소리가 좋다.
마치 감정이 없는 듯 말한다. 사진에서 본 얼굴과는 연결이 안된다. 한데 고양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때 내가 듣던 마른 목소리의 주인공과 일치했다.

이것이 내가 김영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이며 책을 읽기전 그에 대한 느낌의 전부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소설집이다.
소설집이란 여려편이 묶여있다. 다른 소설집과 다르게 책 제목과 같은 소설은 없다. (제목은 <밀회>의 한 구절로 사용되었다 혹은 <밀회>의 한 구절을 차용하여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신선했다.

소설의 묶음을 단순하게 엮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목아래 묶여있다는 느낌이다. 마치 프로그래시브 앨범을 듣는 듯한 느낌이다. 단편중에서 소설집 제목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책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을 정했다.

(김영하가 그랬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락으로 책이 흐르고 있다. 물론 순서는 없다. 아니 순서가 있으되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청탁 없이 내킬 때 쓴 소설들이 대부분이어서일까. 모아 읽는 호흡이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었다."는 저자의 말이 내 생각이 맞다는 증거로 삼고싶다.

*

그동안 소설이 안 읽히고(안 읽은 것이 아니다) 있었다. 왠지 모르게 활자가 헛도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소설을 등한시 하였는데 금새 다 읽었다. 이렇게 느낀 것은 참으로 오랫만이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나는 단편이 좋다. 단편을 잘 쓰는 작가는 장편도 좋다. 문장이 지겹지 않다.
박완서, 이청준, 이문열 그리고 (예전) 이외수 정도가 내가 아마 거의 다 읽은 단편의 작가라 생각된다. 이제 여기에 김영하를 추가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나이가 많이 먹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이가 많음이 아니라 취향이 남달라서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 모르는 척 한다. 하지만 김영하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예지(적어도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작가는 예지 능력을 가진 전지전능한 신과 같다)하고 있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무지한 우리에게)자상하게 되물어 준다.

소설집에 묶여진 단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무슨일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냥 일상처럼 일어나는 일들이다. 혹자는 대단한 일로 여길지 모르지만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그러 그러한 일들이다. 삶이 그다지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로봇>에서는 자신이 로봇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로봇의 3원칙을 빗대어 여자를 떠나간다. 남자를 파렴치한이라고 말할 수 있나? 남자는 정말 로봇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자신을 이해 못하는 여자와 우리(독자)가 이상해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의 떠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없다.

단지 '무슨일 일어난 것이다.'

<여행>은 어떠한가 옛 애인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남자가 여자에게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연락이 되지않자 납치(물론 남자는 아니라고 부정한다. 여자도 약간은 수긍한다.)와 유사하게 동해로 떠난다. 바닷가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 여자는 콜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온다. 여자는 눈을 감는다.

또한 '그날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책에 수록된 단편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위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처럼 느껴진다. 아마 작가의 의도도 그러하리라. 너무나 쉽게 (물론 일어난 내용들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하거나 공감한다는 것은 아니다.) 주위를 처다보게 한다.

만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전지전능한) 김영하의 의도대로 움직였을까?
여기서 다시 고민에 들게 한다. 너무나 쉽게 우리 주위에 있을 수 있는 일들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좀체로 일어나기 힘든 상황들이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과 인터넷 또는 주위 사람들로 부터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겪었다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마치 매주 10여명의 로또 1등 담청자가 나오지만 자신 또는 주위 사람들 중에 그들을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무슨일 있었고 그 일은 일상속에 파 묻혀 버린다.
"식욕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계속 먹고 마셨다. 그야말로 꾸역꾸역이었다."(<아이스크림>)
마치 이런 착각 속에서 쌓인 것처럼...

그리고
"그런저런 잡념 끝에 잠이 들었고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퀴즈쇼>)

*

그의 마른 목소리와 글의 냄새는 말라있다. 묘(묘는 고양이가 아니다)하게 일치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덧_
구매한 책에는 김영하의 사인이 있다. 참 건조한 사인이다. 이름뿐이다.
다른 작가는 최소한 몇년 몇 월 또는 여름 이라 적혀있다.
김영하는 딱 세글자. 김 영 하

무미건조한 느낌이 좋다.
(김영하는 많은 사인을 하여야 하니 한 글자라도 줄이고자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는 생각은 맘 한 켠에 있다.)


덧붙임_
문학동네, 2010년 8월 초판 2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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