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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저문 강물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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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의 강은 사람의 앞에 펼쳐진 시간들은 끝끝내 새로운 것이라는 인식과 결부되어 있다. 앞으로 닥쳐올 시간들은 이 미립자 한알한알 모두가 인간에게 경험된 적이 없는 낯선 것들이며, 그 낯선 시간의가루들은 사금파리처럼 흩어져멸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 속에서 일련의 지속적인 흐름=강을 이루어 흘러간다. 사람에게 창조와 사랑이 가능한 것은 시간의 강이 새롭기 때문이라고, 많은 시들은 노래하거나 또는 운다.

강이 흐른다.
땅거미 밀며 저녁 불빛 하나 둘
메마른 가슴 흔들어주고
밤이 와도 이제는 어둡지 않다.
어둡지 않다고 누가
어깨를 두드려 준다.

(.....)

쓰러져 뒤채이던 낮과 밤의 터널,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다림의 끝에
돋아나는 꿈, 꿈꾸는 별들.
안으로 불 붙던 내 가슴의 말들은
강물을 따라간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상처 지우며 일어선다.

- 이태수 "강이 흐른다" 중에서. <우울한 비상의 꿈> 문학과 지성사

김옥영의 강은 가금파리의 시간들은 받아들여 지속을 이루어내는 생명의 비밀을 아르답게 드러내 보이고 있지만, 그 강은 세상을 모두 버리고 생명의 내부로만 흘러가는 강이고 그 흘러감과 끝은 아마도 죽음일 것이다.

이제 보아라 소리없이 흐르는
강은 빛나지 않고 빛나는 것들 위를 지나
다만 빛나지 않고
이곳에 이르며
이르며 이미 이곳을 버린다

(.....)

떠나가리
(.....)

헛되이 목쉰 모든 물음의 무덤을 지나
풀꽃 하나 웃고 있는 그
웃음 뒤의 웃음
뒤에 올 웃음까지 지나

- 김옥영 "흐르는 강물을 노래함" 중에서 <어둠에 갇힌 불빛은 뜨겁다> 문학동네

김옥영이 보여주는 시간의 강은, 때로는 인간이 그 흘러감에 따라 동참할 수 없는 낯선 강이다. 그 속수무책의 운명을 성찰하는 시들은 그의 시집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페이지이다.

바람에 지상의 그림자들이 불려가고
말言들도 소등하고
완전히 어두워지기 위하여
저녁은 서둘러 서산을 넘지만

시간의 발을 따르지 못하고
당신은
산의 이쪽에
아직 남는다.

(.....)

무엇인가
황혼 속에오늘의 마지막 하루살이 떼들은 춤추며
모이지만
허방 깊이 깊이 추락하는 저것은, 저 이름은.
당신의 노래의 회색 공간 안
똑바로 이마를 마주 보며
넘지 못한 산이
아직 남는다.

- 김옥영 "완전히 어두워지지 못하여" 중에서 <어둠에 갇힌 불빛은 뜨겁다> 문학동네

강은 산맥의 후미진 구석구석을 쓰다듬고 온 들판을 적시는 국토의 동맥이다. 시 속의 강은 역사와 현실의 모든 무게를 싣고 흐른다. 시 곳의 강은 역사와 현실의 모든 무게를 싣고 흐른다. 상류에서 휘몰이로 흐르던 강은 하구에 이르러 진양조로 바뀐다. 강에 실린 살아가기의 고난은 바다에서 모두 모여 마침내 역사를 이룬다. 시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시들은 예를 들자면 신동엽의 "긍강"이고 김용택의 "섬진강"이며 나해철의 영산강 포구이고 정희성의 날 저문 샛강이다. 이 국토의 강들이 헤르만 헤세의 강(싯달타, 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강)처럼 화해롭지 못한 것은 그 강이 역사와 현실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강이기 때문이다. 김용택의 장시 "섬진강"을 짧은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강은 그 주변의 삶의 모습을 물 위에 비추는 강일 뿐 아이라, 그것들은 모두 싣고 흘려가고 있는 강이다.

저렇게도 불빛들은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산자락에
몇 가옥 집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
산을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릅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 김용택 "섬진강2" 중에서 <선진강> 창비

나해철의 어떤 시들은 윤동주의 세계와 인접해 있는 것 같다. 그의 "영산포" 연작은 강가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불행을 이야기하면서 끝끝내 말의 아름더움을 잃지 않는다.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다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우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

- 나해철 "영산포1" 중에서 <무등에 올라> 창비

울면서 강가의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갔던 이 누님이 십 년만에 강가의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버려진 선창을 바라보며
누님은
남자와 살다가 그만 멀어졌다고
말했지.
갈꽃이 쓰러진 얼굴로
영산강을 걷더거 누님은
어둠에 그냥 강물이 되었지,
강물이 되어 호남선을 오르며
파도처럼 산불처럼
흐느끼며 울었지.

- 나해철 "영산포1" 중에서 <무등에 올라> 창비

나해철의 영산강은 누님의 슬픔을 씻어 바다로 가져가는 강이지만 정희성의 날 저문 셋강은 노동의 고난을 싣고 흐른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중에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비

시 속의 강은 새로운 시간 속을 흐르는 생명의 강이고, 역사를 관통하는 현실의 강이다. 그 두 강의 같은 점은 그것이 끊임없이 쌓인 것을 실어 나르고 새 것을 옯겨와, 비우고 채움을 잇대면서 현재를 이루고 있다는, 강의 그 영원한 흐름이다.강은 현재성 안에 미래를 포함하고 있다. 강은 그렇게 흘러서, 이 세상의 저너머로 흘러간다.

저문 강물을 보아라
한 동안 즈믄 동안으로 보아라.
강물 위에 절을 지어서
그곳에 피아골 벽소령 죽은 이들도 다 모여서
함께 이룬 이 세상의 강물을 보아라

(.....)

이제 살아 있는 것과 죽은 이가 하나로 되어
강물은 구례 곡성 누이들의 계면조 소리를 내는구나.
(.....)
살아 있는 사람 앞에서 강물은 이렇게 저무는구나.
보아라 만겁 번뇌 있거든 저문  강물을 보아라

- 고은 "섬진강에서" <문의  마을에 가서> 민음사

<내가 읽은 책과 세상 : 김훈의 시이야기>은 김훈의 시詩이야기입니다. "여름과 시"에 나오는 문장은 배껴쓰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중에서 강江에 대한 글입니다. 저는 이 강에 다른 강 하나를 추가합니다. 조용필의 한강입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듣고 김지하를 떠 올렸습니다. (김지하와 조용필) 아직도 지하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필이 좋습니다.


한 굽이 돌아 흐르는 설움
두 굽이 돌아 넘치는 사랑

한아름 햇살 받아 물그림 그려놓고
밤이면 달빛받아 설움을 지웠다오

억년에 숨소리로 휘감기는 세월
억년에 물결은 여민 가슴에
출렁이는 소리 한강은 흘러간다

고운님 가시는 길 노저어 보내놓고
그리운 마음이야 빈배로 흔들리네

억년에 숨소리로 휘감기는 세월
억년에 물결은 여민 가슴에
출렁이는 사랑 한강은 흘러간다

- 작사 :김순곤, 작곡 : 조용필

덧붙임_
김훈은 창작과비평은 창비로 표기하고 문학과지성사는 문지가 아니고 그대로 표기를 하였을까? 무슨 이유가 있나? 창비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정희성의 것은 창비시절이 아닌데... 괜한 의구심이 생기는 가을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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