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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침묵의 뿌리 - 조세희 : 가난한 자의 벗이 되고 슬퍼하는 자의 새 소망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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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도 넘은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지금의 사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너무도 쉽게 모든 것을 잊고 살고 있다.

내가 사북을 찾았을 때 한 주민은 그 읍이 20년 남짓한 시기에 세워졌다고 설명해 주었다. 해방을 맞고 어느덧 40년이 다된 때였다. 그러니까 우리 암울한 시기의 역사의 압박자, 수탈자로 기록되는 일본 사람들도 그곳 그시기에는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39쪽)




사북

내가 처음 사북에 왔을 때는 시커먼 것만 보였다. 사북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도 생각을 해 보았다. 사북에 처음 왔을 때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에 이곳에 살다 보니 이곳 사람들이 마음이 곱고 인정많은 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고장은 나와 정이 무척 많이 들었다. - 6학년 김진아 (41쪽)



조세희가 아직도 이 땅에서 유효하다는 점이 서글프다. 아직도 몇만부 이상은 팔리고 있다는 그의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가 유효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70년대를 넘긴 저자가 80년대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써낸 책이 <침묵의 뿌리>이다. 더욱 더 서글프게 하는 것은 이 책도 아직 유효하다는 점이다. '슬프고도 겁에 질린 시대에 적합한' 책이 슬프다.

지난 70년대에 나는 어떤이의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 한권을 써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 책이다. 그때 나는 긴급하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80년대에 들어와 바로 10년 전에 그 생각에 사로잡혀 또 한 권의 책을 묶어낸다.

이번 책에는 사진이 들어 있다. '슬프고도 겁에 질린 시대에 적합한' 것이 사진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지만, 인화를 끝내 공장으로 넘긴 다음에 접한 이 말에 나의 서툰 작업을 연결지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 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참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저자의 서문)




가난은 누구에게나 '지겨운'것 이다.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자나 이제 가난이라는 것에서 막 벗어난 자들 모두에게 지겨운 것이다. 가난이란 놈은 언제 발목을 잡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80년대도 2010년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진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무심히 '과거'와 '미래'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들은 미래학자들인데, 그들 식으로 말하면 과거는 이미 결정된 세계이며, 미래는 아직 결정이 안 된 세계이다. 가능성의 세계가 미래이고, 이 미래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희망이다. 미래가 웃음을 띤 얼굴로 다가올 때 인간은 희망을 갖게된다.

이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집단에 파고들어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종교이다. 웃음 띤 얼굴로 다가오는 미래가 없어서 "가난한 우리는 죽어 좋은 세상에 가게 된다"는 믿음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는 수없이 들어왔다. 역사 이래 계속 문제가 되어온 이런 종류의 가난은 가난한 당사자들은 물론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생활을 즐기게 된 계층에게도 언제나 '지겨운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경게학자의 책에서 읽었다. "그들은 선조들의 생활에 비해 거의 개선되지 않은 비참한 상태 속에서 짧은 생애를 마친다"는 경제학자의 표현에 대하여 우리 아시아 어느 국민의 생활 단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38쪽)
 
저자가 교훈을 빌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가난한 자의 벗이 되고
슬퍼하는 자의 새 소망이 되어라.

우리는 이러한 교훈에 떳떳한 어른으로 죽어가고 있는 지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덧_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표지가 주는 힘이다.
소녀는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이 책을 펼쳐보지 않으면 소녀에게 죄를 지을 것만 같다.
이 책의 북디자인을 <지식인의 서재>의 정병규님이 하셨다.





침묵의 뿌리
조세희 지음/열화당


덧붙임_
열화당, 1985년 9월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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