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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지나간 미래상' 안중근 평전 : 책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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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왠 안중근? 이렇듯 안중근은 이름만 잘 알고 있는 지나간 사람이다. 김삼웅의 전하는 말이 나에게 더욱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이가 얼마나 될까? 스스로에게 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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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학생이 "안중근 의사가 안과의사냐?"고 물었다는 얘기가 있고, 안중근과 안창호를 잘 분별하지 못하는 고등학생도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사람도 드물고 안 의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문 실정이다. 안중근은 몰라도 체 게바라는 훤히 꿰는 사람이 적지 않는 우리 실정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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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바라에 대해서는 평전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것도 두 편씩이나 보았다. 또한 그가 볼리비아에서 죽기 전까지 쓴 일기도 보고 블로그에도 적고 있다.(체 게바라의 일기) 한데 정작 안중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사람,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다.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 그가 저적한 이토 히로부미가 죽지 않고 아직도 일본 치하라는 소설이 그의 이름이 들어간 전부이다.

김삼웅은 블로그에서 안중근 평전을 연재할때 안중근은 성인이 아니며 그의 한계에 대해서도 조명할 것이라 말했다. 그의 공을 잘 모르니 과나 한계를 어찌 알겠는가? 다시 게바라의 이야기이지만 게바라가 쿠바혁명이후 볼리비아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한데 안중근은 그저 저격자일뿐, 다시 한번 부끄럽다.


안중근 의사의 장인掌印)과 얼굴 사진을 합성한 그림. 출처:중앙일보,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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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로서 위대성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선각적인 지도자이다. 그래서 안중근은 우리에게 '지나간 미래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안중근이 성인일 수는 없다. 그가 생명을 내놓고 벌인 의병전쟁과 이토 처단의 국권회복운동이 왕정회복이냐, 공화정의 추구냐에 대한 연구, 이토를 처단하면서 그 위에 있었던 일왕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했던 한계 등에 대해서도 조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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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은 이 책들의 서평에서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 가운데도 이토의 동양평화론과 안중근의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 같을 수 없는 두 개의 동양평화론이 가진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브러리 & 리브로 7월호) 장정일의 서평을 보고 이 책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나 또한 한국인이면서 두 개의 동양평화론이 가진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한데 내가 지금까지 기억한바로는 이토는 '대동아공영론'이다. 장정일의 말꼬리를 잡자는 것이 아니다. 대동아공영론도 동북아의 평화를 주창한다. 하지만 그 주체는 일본이다.

장정일의 말처럼 이 책들을 읽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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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평전
황재문 지음/한겨레출판


안중근의 중심 사상, 동양평화론. 지금 우리는 그의 사상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안중근은 세상을 떠나기 전 형장에서 “동양평화 만세”를 외칠 것을 요청했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또한 역시 미완성의 「동양평화론」이었다. 죽음을 앞둔 그가 몰두했을 만큼 ‘동양의 평화’는 그에게 ‘조국의 독립’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당대를 인종 경쟁의 시대로 인식하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같은 인종인 조선인을 억압하고 배신했기 때문에 동양이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종 중심의 사고는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위험한 생각이지만, 이는 안중근 특유의 것이라기보다는 당대의 지식인들이 상당 부분 공유하던 것이었다. 오히려 평화회의의 설립과 운영, 공동의 군항ㆍ군대ㆍ은행 설립 및 공용 화폐의 발행 등 그가 평화를 위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던 점이 더욱 주목된다. 인종 경쟁이라는 문제 설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오늘날에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일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든 이론이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길을 기획했던 안중근처럼, 그의 동양평화론을 어떻게 계승할지의 문제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안중근이 [동양 평화를 위해] 제시했던 방안 하나하나를 오늘날의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사람은 물론 없겠지만, 그의 말과 글을 존중하다 보면 변화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계승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없지 않을 듯하다. 그것은 안중근 또는 안중근 정신의 계승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안중근은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현실’에 대한 성찰을 통해 평화를 얻기 위한 자기 나름의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했던 인물이며, 따라서 안중근의 말과 글을 ‘그대로’ 실천하려는 행위는 그가 보여준 모습이나 정신과는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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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평전
김삼웅 지음/시대의창

안중근 의사는 "지나간 미래상"이다

올해(2009년)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토살한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다. 그리고 내년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적 1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기상을 천하에 떨친 그의 행적이 그동안 너무 쉽게 간과되어온 탓이다. 안중근 의사가 안과 의사냐고 묻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의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인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다시 안중근일까.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세계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하얼빈 의거 말고도 국채보상운동, 교육사업, 의병전쟁 등 수많은 구국 운동에 참여했고,《동양평화론》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동양 평화에 대한 지론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것이었다. 그는 한?중?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하고, 국제적 분쟁지인 여순을 중립화해 그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설치할 것과 3국 공동의 개발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유럽공동체 EU와 같은 기구를 100년 전에 구상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혜안은 21세기의 동아시아 정세에 그대로 대입해도 될 정도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중근 의사를 ‘지나간 미래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덧붙임_
김삼웅의 평전 블로그에 연재된 것으로 '지나간 미래상' 안중근 평전을 쓰면서에서 볼 수 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로쟈의 안중근과 동양평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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