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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만약에 한국사 - 책 권하는 心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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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라는 가정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길을 알면 헤맬 필요가 없다. 타락의 길을 꼭 가봐야 아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독자들이 한반도의 현대사를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 지난 백 년 동안 다른 길도 있었음을, 그래서 더 나은 미래가 가능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백 년을 성찰함으로써 우리가 살아야 할 앞으로의 백 년을 그려보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역사는 숙명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반성은 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백 년을 성찰함으로써 우리가 살아야 할 앞으로의 백 년을 그려보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역사는 숙명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만약에라는 허무맹랑한 한국사를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한겨레에 연재된 1910~2010년 가상역사 ‘만약에’을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엮어냈다.

가지 않은 길을 가보면 무엇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100년을 성찰해서 우리가 살아야 할 앞으로의 100년을 그려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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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한반도가 분할됐다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 5.16군사쿠데타가 불발되었다면? 전태일이 분신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납치된 김대중이 암살됐다면?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YS.DJ 후보 단일화가 됐다면? 금강산 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처럼 개방했다면?

'만약에'로 뒤집어 본 한국사 깊이 읽기. 이 책은 지난 백 년 동안 한국사의 흐름을 바꾼 순간들에 도발적인 '만약에'를 대입한다. 34개의 흥미진진한 가정을 통해 한국사의 결정적인 기로에 섰던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탐험한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갔던 길'의 역사적 의미를 진지하게 되묻는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선택을 위한 신선한 교훈들을 던져준다.


머리말
역사를 가정하면 오늘 갈 길이 보인다!

20세기 초 한반도가 분할됐다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
고종이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신간회’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반탁운동, ‘동아일보’ 오보가 없었다면
여운형이 미군정의 민정장관이 됐다면
김구·김규식의 남북협상이 성공했다면
해방 뒤 토지개혁이 실패했다면
북한군이 사흘간 서울에 머물지 않았다면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했다면
제네바 회담이 타결됐다면
‘사사오입 개헌’ 실패했다면
조봉암이 사형되지 않았다면
5.16군사쿠데타가 불발되었다면
베트남에 파병하지 않았다면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 도발 없었다면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늦춰졌다면
전태일이 분신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납치된 김대중이 암살됐다면
임시행정수도 계획 실현됐다면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대원외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박종철 죽음이 은폐됐다면
YS·DJ 후보 단일화가 됐다면
서울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다면
문익환 목사가 방북하지 않았다면
김일성 조문 슬기롭게 대처했다면
작전통제권 온전히 환수했다면
IMF 구제금융 대신 모라토리엄 선언했다면
금강산 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
대북 쌀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처럼 개방했다면



만약에 한국사
김연철.함규진.최용범.최성진 지음/페이퍼로드



출판사 책소개

『만약에 한국사』는 지난 백 년 동안 한국사의 흐름을 바꾼 순간들에 도발적인 ‘만약에’를 대입한다. 34개의 흥미진진한 가정을 통해 한국사의 결정적인 기로에 섰던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탐험한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갔던 길’의 역사적 의미를 진지하게 되묻는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선택을 위한 신선한 교훈들을 던져준다.

‘만약에’로 뒤집어 본 한국사 깊이 읽기
역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만약에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쏘지 않았다면?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분,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한반도의 현대사를 요동치게 만든 총탄들 가운데 그 충격과 울림이 가장 컸던 운명의 한 발이었다. 만약에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향했던 그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면, 과연 유신체제는 박정희가 자연사할 때까지 존속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박정희는 여전히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만약에 한국사』는 이런 가정에 대한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사건의 전후와 경과를 면밀히 분석한다. 10.26은 충성경쟁에서 밀려난 김재규가 차지철에 대해 품었던 앙심이나 개인적인 권력욕 때문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역사를 복기하다

바둑기사들은 치열한 대국이 끝나도 복기에 공을 들인다. 승패와 상관없이 서로가 두었던 수백의 착점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악수나 패착을 찾아내고, 그 대목에서 최선의 수는 무엇이었을까를 탐구하는 일이다. 그들은 이런 복기를 통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될 뿐더러 실력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때로는 대국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만약에’와 ‘그렇다면’을 반복하며 ‘그게 최선입니까?’를 묻는 것이다. 『만약에 한국사』의 저자들이 가진 문제의식도 이 언저리에 있다.
‘만약에’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본 현대사의 파노라마
『만약에 한국사』에는 대중들이 잘 모르는 ‘새로운’ 사실에서 출발한 가정들도 있다. 이를테면, 20세기 초 러시아와 일본이 39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사실이다. 1945년의 분단보다 거의 반세기나 앞서 우리의 운명이 남의 손에 의해 분단될 뻔했다는 것이다. 상당히 성사 가능성이 높았던 이 방안은 결국 일본의 과욕 때문에 결렬되었고 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만약에 한국사』는 1903년 당시 이 논의가 실제 현실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으로 책의 서두를 연다. 결론을 말하자면,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이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미국과 맞서기보다 협력하여 소련을 견제했으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미군과 일본 황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39도선을 넘어 소련군을 몰아내고,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압록강변에 휘날렸을지도 모른다는 드라마틱한 장면까지 상상한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 바로 옆에 다른 길도 있었다!
한반도는 격동의 백 년을 살아왔다. 빛나는 성취만큼이나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 굴곡이 깊고 그늘도 짙다. 그러므로 그 역사의 행간에는 가정하고 싶은 사건이나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해방정국에서 좌우가 연대해서 분단을 피했다면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우리가 겪은 냉전은 그렇게 가혹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7년 양김이 단일화했다면, 최소한 민주화 인사들의 야합과 변절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라는 가정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길을 알면 헤맬 필요가 없다. 타락의 길을 꼭 가봐야 아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독자들이 한반도의 현대사를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 지난 백 년 동안 다른 길도 있었음을, 그래서 더 나은 미래가 가능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백 년을 성찰함으로써 우리가 살아야 할 앞으로의 백 년을 그려보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역사는 숙명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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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이 단기적으로는 일진회의 병합청원운동이나 일본 내 병합 분위기를 고조시킨 면은 있다. 이토의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메이지 원훈이 살해됐다며 격분하는 목소리가 일본열도를 뒤덮었다. 복수를 부르짖는가 하면, ‘즉시 병합’을 외치는 과격한 주장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토 사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내 민심은 환희에 달아올랐으며, 그것이 민중에게 독립 의지를 고취한 정도는 일본에서보다 100배 이상 컸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 31쪽) - 알라딘
   
고종이 밖으로 나와 망명정부를 선포했다면 상하이 임시정부는 비교도 안 될 만한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제국은 이미 세계 각국의 승인을 얻었고, 그 주권자였던 고종이 한일병합이 무효임을 밝히고 망명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다면 이에 호응하는 국가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힘이 우선인 국제관계에서 당장 광복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이 확실히 일본의 적으로 돌아선 다음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고종이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40쪽) - 알라딘
   
물론 원자폭탄은 끝내 투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만약 투하되었다면, 맥아더 신봉자들의 생각처럼 한국전쟁의 조기 승리로 이어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동북아 정세,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원자폭탄은 중국의 전쟁 의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마오쩌둥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한다면 수류탄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인도 총리 네루를 만났을 때는 “중국 인구가 얼만데”라며 미국의 원자폭탄을 ‘종이호랑이’에 비유했다.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 109쪽) - 알라딘
   
조봉암은 시대를 앞서 살았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진보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조봉암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승만 체제도 그렇게 한 방에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이없는 사법살인으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했다. 광기가 무덤을 팠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불렀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는 결국 1956년 선거에서 놀란 이승만 체제의 과잉 대응이었다. 그런 점에서 죽은 조봉암이 살아 있는 이승만에게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조봉암이 사형되지 않았다면, 147쪽) - 알라딘
   
10·26은 당시 더 큰 파국을 막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10월 26일 울린 총성은 죽음 이전과 이후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극명히 엇갈리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주장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그때 박 전 대통령이 죽었기 때문에 업적10·26은 당시 더 큰 파국을 막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10월 26일 울린 총성은 죽음 이전과 이후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극명히 엇갈리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주장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그때 박 전 대통령이 죽었기 때문에 업적이 살아서 지금도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지, 만약 10·26이 나지 않아 부마사태가 서울까지 확산되기라도 했다면 박 전 대통령의 말로도 좋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인기가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222쪽)이 살아서 지금도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지, 만약 10·26이 나지 않아 부마사태가 서울까지 확산되기라도 했다면 박 전 대통령의 말로도 좋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인기가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222쪽) - 알라딘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1997년의 외환위기가 심각했다지만, IMF가 한국 사회에 남긴 깊은 상처를 돌이켜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IMF의 굴욕적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실제로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 가운데 우리와 다른 길을 선택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대신 모라토리엄 선언했다면, 303쪽)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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