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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밥 먹여주는 경제경영

크리에이티브는 뇌로 하는 섹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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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는 이거다."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해두지 않는 이상, 더는 진도를 나갈 수 없다. "크리에이티브는 당신입니다."라고 말하면 감동을 하하 것 같았지만, 그렇게 추상적인 말장난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딱 부러진 정의가 필요했다.

크리에이티브는?

첫째, 사람들이 해봤거나, 하고 있거나, 하려 하거나, 하고 싶어한다.
둘째, 그러나 경험해본 사람들조차 스스로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궁금해한다.
셋째, 끊임없이 변화하며, 논쟁의 대상이며, 사회 전반의 트렌드를 끌어간다.
넷째, 세상을 발전시켜온 원동력이다.

'딱 부러진 정의'는 아니지만 크리에이티브를 섹스와 연상하게 한 것은 호기심을 유발하고 눈을 가게 한다는 점에서 크리에이티브하다.

최고의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여기서 저자가 말한 '도'는 삭제한다.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있는 일, 그러나 그래서 (앞에 '도'를 삭제했기에 '그러나' 를 '그래서' 로 바뀌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위해 행복을 만들어 내는 일. 그것이 '뇌로 하는 섹스', 크리에이티브다.

크리에이티브가 섹스인 이유는 자위와 섹스를 비교함으로써 더 극명하게 나타내어진다. 섹스는 자위와 다르게 상대가 있고 교감이 있다. 그래서 (물론 전부다는 아니지만) 아름답다. 몸뿐이 아닌 마음으로도 소통하고 배려해야 아름다운 섹스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는 뇌로 하는 섹스"라 말한다.

"식욕과 성욕은 근친"이라는 말과 통한다. 우리가 밥을 먹지않고 살 수 없듯이 섹스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야 한다. (식욕과 성욕은 근친이다 :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

형태상으로 입으로 먹고 핥는 행위는 섹스행위와 유사하다. 두 욕망은 중독된 욕망이다. 속된 말로 여자를 '먹는다'고 말한다. 영어에서도 'suck'와 'fuck'는 유사함이 있다.
두 욕망의 결합은 근친상간이다. 그렇기에 더욱 짜릿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밥을 먹듯이 섹스를 하고 섹스하듯이 크리에이티브한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밥만 잘 먹으면 크리에이티브가 될 것 같다는 부질없는 상상도 해본다. 그러면 섹스만 잘해도 크리에이티브 해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섹스하든지 호기심을 발휘하든지 모든 것에 충실하자.

크리에이티브하게 세상을 살려면 먼저 자신을 휘감고 있는 위선을 떨쳐버려야 한다. 관습,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금기시하는 섹스에 대해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덤으로 마광수 교수의 섹스에 관한 말을 보자. "섹스는 만날 소외되어 있을 때만 하나? 즐거울 때도 하지. 나는 다만 섹스는 즐겁다 이거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아?" 크리에이티브와는 직접 연관은 없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아?"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마광수의 뇌구조>에 나와 있는 그의 섹스에 관한 생각을 보자.

이 세상은 섹스로 이루어져 있다 “섹스 없이는 먹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동식물이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여 생산해놓은 씨앗, 열매,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식욕 이전에 성욕이고 성에 고프지 않을 때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섹스를 상상하듯 입가에 미소 짓게 만드는 크리에이티브한 것을 만든다면 그 기쁨은 내가 섹스를 한 것과 같을 것이다. 그 상황을 상상하는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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