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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대체 이 세계란 무엇인가? : 써 먹는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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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철학哲學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이라고 불리어 거의 '학문'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철학의 영어 명칭 'Philosophy'는 고대 그리스어 필레인(Φιλειν, 사랑하다)와 소피아(σοφία, 지혜)가 합쳐서 된 말로서, 직역을 한다면 "지혜를 사랑한다"이다.

그리고 지금 동양에서 쓰이는 철학(哲學)이라는 표현은 19세기 말 일본의 니시 아마네(西周)가 처음으로 'Philosophy'를 '희철학(希哲學)'으로 번역해서 사용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줄어서 '철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간혹 'Philosophy'를 사학(思學) 혹은 다른 낱말로 풀이하자는 제안이 있긴 하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체 이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젠장, 답도 없는 것을 끊임없이 구하고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이 기록을 시작한 이래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철학적 질문을 던져왔다.

하이데거는 "사유를 요구하는 이 시대에 가장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건 우리가 아직도 사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사유'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염려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버트렌트 러셀은 "철학이란 아직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은 영역을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고찰하려고 과학과 신학에 한 발씩 걸치고 서 있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지식이 계속 늘어나는 대도 철학적 질문들은 여전히 답이 없이 질문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앎, 즉 배움과 깨달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지식과 지혜를 사랑하는 삶의 태도로 철학을 정의한다면, 철학은 하나의 특정한 학문이라기보다는 학문 일반에서 요구되는 기본 자세인 동시에 실천 방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철학'이라는 말은 일상 어법에서 '세계관', '사고방식' 등으로 약간 포괄적인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서양철학자 55명이 시대별로 나열되어 있다. 사람별로 몇 권의 책과 그에 대한 해설서를 읽어도 그를 잘 모르는데 몇 장 안되는 나열로 알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이 세계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 철학이지만 그것도 답은 없다. 우리가 철학자의 내면을 알 수는 없다. 또한 알 필요도 없다. 그들은 '사유'를 도와주는 인물일 뿐이다.

이 인물들에 대해 읽고 좀 더 알고 싶은 인물들이 생길 것이다. 인도하는 것이 이 책의 근원적인 역할이다. 즉 철학으로 남어가는 가교를 한다. 우리는 그 가교에 올라가 저쪽 너머의 다른 세계로 발을 들이면 된다. 그 다음은 알고자하는 욕구가 해결해 줄 것이다. 몸을 바람에 맡기고 철학에 빠져보자. 모두가 철헉자가 되자. 자신의 망상에 대해 고민하면 된다. 답을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거나 염려할 필요도 없다. 원래 답은 없다. 끊임없이 그쪽으로 가는 길이 바로 철학이다.


모든 사람이 광인이지만,
자신의 망상을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라고 불린다.
- 앰브로즈 비어스



덧_
현대철학에서 레닌이 빠져있다. 혁명가 이전에 그는 뛰어난 이론가이자 철학자이다. 아마 이론가 레닌으로만 기억되었나 보다. 아직 레닌의 말(철학)이 유효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가.




써먹는 서양 철학
레슬리 레벤 지음, 이시은 옮김, 윤형식 감수/진선북스(진선출판사)


덧붙임_
진선북스, 2011년 10월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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