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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자기개발

인간관계가 깊을수록 더 행복하게 산다 : 소셜 애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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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는 다시 뒤로 물러나서 자기 자신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자기가 살았던 인생을 평가하는 질문이다. 해럴드의 질문에 지금 현재 나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이 던지는 4가지 질문"에 답해보자. "행복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깊이 있는 존재로 만들었는가? 피상적으로만 살기 쉬운 즉각적인 의사소통 문화에서, 나의 가장 본질적인 재능을 개발하면서 중요한 일에 시간을 썼는가?

이 질문에는 기분좋게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선지자나 성인이 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책을 읽었고, 진지한 질문을 끌어안고 사색을 했으며, 내면 세계를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나는 기분 좋게 답할 수 없다. 해럴드처럼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책을 읽었고 진지한 질문에 대한 사색을 했고 내면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수박을 초록색 과일이라 말하며 내면의 빨간색이 있음을 아직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아직 인생이 남아있으므로 좀 더 내면 세계를 풍성하게 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지식의 강물에 보탬이 되었는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어떤 유산을 남겼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썩 기분 좋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글도 쓰고 강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 선 배우라기보다는 관찰자였다.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표류하면서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마구 뛰어다니기만 했다. 또 어떤 떄는 위험을 무릅쓰기 싫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받는게 싫어서 뒤로 물러나 있기도 했다. 그는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하지 않았다.

해럴드 처럼 썩 기분 좋게가 아니라 나쁜 기분으로 말해야 한다. 늘 책을 보고 노력하며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거리지만 늘 주변이었다. 최인훈의 회색인이었다. 겉으로는 아니라 말하지만 나에게 답하는 솔직한 심정은 늘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후대에 남겨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도 부족했다.

나는 이 세속적인 세상을 초월했는가? 아니다, 그는 늘 과학이 이해하듯이 인생 너머에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해왔는가?

아니다. 그는 늘 과학이 이해하듯 이 인생 너머에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신을 어떤 식으로든 이미 믿고 있었다. 하지만 종교에 빠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온전하게 세속적인 삶을 살았다. 아쉽게도 초월적인 신성함을 한번도 맛보지 못했다.

절대 아니다. 세속적인 삶에 늘 연연하며 세상을 원망하곤 했다. 사실 (나를 취한적이 없기에) 세상이 날 버린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속적인 삶을 초월해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세상속에서 세상 사람들고 사람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는 사랑했는가?

그랬다. 성인이 된 뒤로 아내라는 훌륭한 여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베푸는 만큼 에리카가 자기에게 정성과 헌신을 베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앞으로 남은 시간이 점점 짧아짐에 따라서 에리카를 향한 헤럴드의 사랑은 점점 커져만 갔다.

늘 그랬다. 늘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 사랑이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사랑에 대한 원망이나 후회는 없다. 눈을 감는 그 날까지 사랑할 것이다. 온 세상은 사랑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일찍이 비틀즈가 말하지 않았던가.

4가지 질문에 각자 답변해 보기를 바란다. 해럴드의 삶처럼 살 수 없기에 그와 같은 답을 할 수는 없다. 결코 그와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나의 삶이 있고 해럴드는 해럴드의 삶이 있다.


저자는 서문의 마지막을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며 마치고 있다. 무의식에 관한 것은 곱씹어 볼 내용이다. 우리는 무의식을 감, 촉이라는 말로 느끼고 있다.

무의식은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예측할 수가 없다. 물론 무의식은 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감독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무의식은 재기를 발휘할 수 있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처리할 수 있고, 매혹적이고 창조적으로 도약할 수 있다. 특히 놀라울 만큼 사교적이다. 당신의 무의식, 즉 내면의 외향성은 당신이 바깥으로 멀리 나가서 타인과 연결되기를 바란다. 당신이 일과 가족과 국가의 대의명분과 역이기를 바란다. 단신의 무의식은 성공의 핵심인 거미줄 같은 굵고 촘촘한 인간관계속으로 당신이 섞여 들어가길 바란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릴 수 있는 축복 가운데 가장 경이로운 선물이 무의식이다. (13쪽)

네델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 아프 데익스테르후이스 교수와 로한 노르드그렌 교수의 실험으로 무의식적 사고가 사물을 판단하는데 (다른 것보다) 더 현명하게 판담함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일반인들에게 아파트 네 채에 대해 48개의 복잡한 정보를 줬다. 한 아파트는 다른 세 아파트보다 편리하고 매력적이었다.(이 아파트는 긍정적으로 묘사되었고, 다른 세 아파트는 부정적이거나 긍정과 부정이 반반씩 섞여서 묘사되었다.)  첫 번째 집단은 당장 선택하고, 두 번째 집단은 몇 분간 생각한 뒤 선택하게 했고, 세 번째 집단은 몇 분 동안 생각한 다음에 선택하라고 해놓고, 그 시간 동안 다른 과제를 주어 아파트 선택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무의식적으로 판단해야 했던 세 번째 집단의 59%가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아파트를 선택했다. 판단하기전 의식적으로 생각한 두 번쨰 집단은 47%, 즉각 선택한 첫 전째 집단은 36%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 산만한 상황에 놓여 있던 세 번쨰 집단 사람들에게는 1차적 인식 과정이 작동했다.

 이 사람들은 1차적 인식에 의존했기 때문에 모든 변수를 충분히 고려해서 전체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몇 가지 특성만 찍어내는 경향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364쪽)

저자가 말하는 무의식에 대한 것은 동의하지만 이 실험을 무의식적 판단이 우수하다는 근거로 내세우기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먼저 객관적 판단의 오류이다. 객관적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좋다 또는 옳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한다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집단 이기주의의 한 단면이라 말 힐 수 있다.

다른 하나는 59%가 선택했기에 맞는 조건에 맞는 집단이고 47%이기에 아니라는 것이다. 표본집단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12%차이는 오차를 감안한다면 5%내외의 차이라 생각된다. 그 차이로 그 집단이 올바른 것을 선택했다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예가 전부는 아니다. 무의식을 설명하는 과정 중에 나온 예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는 무의식에 대한 생각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의 인생의 목표는 "행복하는 사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판단하는 데는 무척 서툴다"는 것에 있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무엇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지 판단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예를 들면 1년 동안 한 사람과 섹스를 하는 사람은 같은 기간 동안에 여러명과 번갈아가며 섹스를 하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낮으며 더 오래 산다.

우리는 일과 돈, 부동산이 행복에 기여하는 정도를 지나치게 높게한다. 반면 친밀한 유대감과 힘들게 노력하는 과정은 과소평가한다. 친밀함에 대한 갈망은 인간 존재의 핵심이다. 우리의 행복과 가장 연관이 많은 일상 활동은 섹스, 퇴근 후 사람들들과 어울리기, 친구들과 식사하는 것 같은 사회적 활동이다. 반면 행복에 가장 해로운 일상활동은 출·퇴근처럼 혼자서 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관계가 깊을수록 더 행복하게 산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은 다른 인간과 소통하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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