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죽은 세상에서 황지우의 <발작>을 읽다

2012.02.06 07:30 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98년 12월 초판 발행인데 99년 3월에 8쇄다. 시詩가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詩가 죽었다. 내가 詩를 사지 않으니 詩가 죽었다고 말해도 좋다.

정희성을 좋아하고 지하를 존경하며 백석을 전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황지우를 알게된 것은 생일에 후배에게서 시집을 받고 나서였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라는 황지우의 시집이다. 시집 뒷편에는 후배의 글이 있다. "형. 생일 축하하우. 항상 태어나는 아픔을 ... 일천구백팔십육년 일월 십구일"


그 이후 황지우는 정희성에 버금가게 좋아했다. 지금은 세월과 함께 잊었지만 내 머리 속에는 황지우의 이해하지도 못하는 구절을 외우곤 했다. 이제는 다시 정희성과 황지우의 책을 손에 잡고 그의 글을 읽는다.

후배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왜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을까. 책을 보면늘 그가 그립다.

황지우의 시집 중에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는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 늘 그러하듯이 익숙한 것에 손이 간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책을 읽고 싶다. 무심코 펼친 몇 개의 시 중에 하나가 <발작>이다.


발 작
- 황지우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 이거
우주 奇蹟 아녀

- 문학과 지성사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1999년 3월 8쇄

이 초록빛 별에서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진정으로 알고 사랑한다면 '발작'해도 진정 즐거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소풍은 천상병 시인을 차용한 것이다.)

시인 김남주는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인도 필요하고 법도 필요한 세상이다. 그런대도 詩가 죽었다. 詩가 팔리지 않으니 詩를 사지 않으니 詩가 죽었다. 진정으로 詩가 죽어 시인이 필요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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