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올바른 독서 지도란 없다 단지 부모가 미리 읽어보는 일이다

2012.03.28 07:30 行間/육아育兒는 육아育我


아이에게 책을 어떻게 읽게 할까가 많은 부모들의 관심사이다. 정작 자신은 어린이 책은 고사하고 자신의 책도 읽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저자는 "날마다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책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 아이들 독서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대한 독서지도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은 "독서를 '지도'하다니"라는 다른 커다란 질문과 마주한다. 그래서 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아이 곁에서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책과의 만남에 눈뜨게 해주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이들에게 "좋은 책만을 까다롭게 골라 오랜 시간에 걸쳐 채운 제 책꽂이 하나를 장만해 주는 일"로 자신만의 책꽂이에 "책에 손때를 묻히는 행복감을 알게 해주는 일"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읽기에 길들게 하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꼭 아이들의 책읽기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또한 "읽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부담을 주지 말고, 읽고 난 책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보태려 들지 말아야" 하며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라 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눈이 열리고 아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차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머잖아 곧 의문이 생겨나고, 그 의문이 또 다른 의문을 불러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한다"이다. 저자의 '독서를 지도한다'는 의구심에 답이 될 것이다. 지리한 기다림의 연속일지라도 그 기다림이 곧 실현될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동화는 직접 화법에 의존한 교훈보다도 간접 화법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지적은 소설을 읽는 성인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 대다수 성인 독자들은 자신이 읽은 소설에 대한 감상을 말할 때, 자신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행동이나 서사로부터 교훈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 까닭은 그런 식의 독후감 작성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아내는 식의 독법은 소설은 물론 영화, 보기까지 만연된 전염병이다. 그리고 그 질병 속에서는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다. 우리는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천편일룰적인 정답을 얻어야 한다. (독서일기 4)

이 책은 <독서일기 4>에서 알게되어 읽은 책이다. 장정일은 책에서 말하는 아아들에 대한 책읽기에 관한 글을 성인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말한다. 아이들에 대한 독후감 또는 감상을 바라는 것이 성인들의 그것에도 고스란이 가지고 있다. 같은 정답을 자라는 것이다.

아이들 학교 앞에서 불량 식품을 판다고 TV뉴스에서 보도 한던데 상업주의에 빠진 어린이 책 시장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이 없는지,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신경과민이다 싶을 정도로 열심인 엄마들이 아이들 책은 그저 전집으로 사다 안길 정도로 왜 편안한 것만 찾는지, 신문마다 잡지마다 서평란이 있는데, 왜 아이들 책에 대해서만은 그런 지면도 없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저자는 부모들이 정작 중요하다고 느끼는 아이들 책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고 편한 쪽으로만 생각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어느 날엔가는 부모들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책을 골라 읽어도 괜찮은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지만 과연 그 날이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다. 따라서 "책의 공해 속에서 바르지 않은 읽을 거리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아이들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의 읽을 거리를 상혼들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있어, 우리는 아주 엄격하고 단호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좋은 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은 우리 어린이 도서 유통 구조와 평론의 부재, 옥석을 가리기 힘든 출판 난립의 현실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가 읽을 책을 부모가 미리 읽어보는 일이다. 부모가 읽는 어린이 책은 아이에게 강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독서교육의 출발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저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에 큰 불안감을 느낀다.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 독서 지도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책을 읽고 난 후의 토론이나 독후감 쓰기 같은 것보다는, 좋은 책 고르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다. 좋은 책 고르기보다도 이제 더 어려워진 좋지 않은 책의 공해로 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이 책은 1997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이다. 하지만 저자가 문제점이라 말한 유통 구조, 평론의 부재 그리고 출판의 난립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절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미리 읽어 보는 것이 아직도 가장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지 않는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권하는 말도 안되는 사회가 되지 않기위해서.


덧_
여기에 말하지 못한 많은 내용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에 일독을 권한다. 특히 아동책과 관련있는 이들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덧_둘
저자가 제시한 내용을 차치하고 청靑에 대한 글은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단순하게 말의 의미만을 생각한 나이 그릇된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하였다. 앞뒤 문장을 짜르고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다시 적어본다. 靑은 영어 Blue가 의미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번역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靑, 녹색 그리고 파랑, Blue.

푸를 靑자는 우리말 습관에 따르면 푸른 신호등, 푸른 소나무, 독야청청하리라, 청춘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녹색인 경우가 많고 그 이미지도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최윤정 지음/문학과지성사

그림책 육아
정진영 지음/예문당


덧붙임_
책 읽은 아이에게 느낀점을 묻지마라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덧붙임_둘
책을 읽고 검색하였더니 2006년 1월에 쓴 이 글을 보았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자녀교육 길잡이 20선의 일부이다.

[자녀교육 길잡이 20선]<6>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읽을거리가 제대로 없던 1960, 70년대의 사정과는 달리 하루에도 수십 종씩 쏟아져 나오는 책의 공해 속에서 바르지 않은 읽을거리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아이들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의 읽을거리를 상혼들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있어, 우리는 아주 엄격하고 단호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3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무엇인가 자꾸 입에 넣어주려 한다. 엄마는 그 아이에게 너무 먹는다고 야단친다. 먹을 것이 모자라 한이 맺힌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넘치는 음식에서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마음의 양식도 마찬가지다. 책이 귀해서 친척이나 친구 집에서 책을 빌려 읽는 일이 흔했던 시절에는 닥치는 대로 읽는 이른바 난독(亂讀)의 경험은 은근한 자랑거리였다. 그것은 배고픔이 일상이던 사람이 어느 날 배 터지게 먹어 보았다는 말과 같았다. 영혼의 그릇이 크다 보면 왕성한 식욕에 시달리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 욕망을 채우다 보면 어떤 선을 넘는 아련한 쾌락을 맛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른의 경우라면 요즘도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아무 책이나 읽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시절, 책이 많아서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환기시켜 유명해진 책이다. 이 책을 쓸 때 저자는 아직 아동문학 평론가도, 아동출판 전문가도 아니었다. 다만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막연한 신앙에 따라 아이를 키우던 억척스러운 엄마였다. 이 엄마는 아이에게 책을 가까이 하는 버릇을 심어 주고자 발품을 팔아 책을 골랐다. 아이에게는 직접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달라진 독서환경을 감지했고 많은 책이 ‘구멍가게에서 아이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형형색색의 노리개 같은 사탕이나 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불량도서는 불량식품보다 더 해로울 수 있지 않은가. 이런 확신은 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태만과 무지에 대한 노여움으로,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질박하면서도 예리함을 잃지 않는 글들이 엮여 나왔다.

이 책의 질박함은 내용에서 온다. 아이의 책에 관심을 두면서 엄마로서 몸소 겪었던 경험들이 여기 실린 작은 이야기들의 출발점이다. 이 책의 예리함은 오랜 인문학적 훈련을 거친 저자의 분별력과 글쓰기 능력에서 온다. 짧고 쉬운 글들이 모여 있지만 어린이 책의 창작, 번역, 제작, 유통, 독서 등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건드리면서 부모로서 아이의 책을 고르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깊이는 동심에 대한 존중에서 온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시여, 이것을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에게 감추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율법주의자들의 트집을 꾸짖으며 예수가 올리는 기도인데, 우리의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편견들 사이로 난 길을 어렵게 따라가도 어른들로서는 가닿기 어려운 진실을 아이들이 의외로 수월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아이 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몇 번씩 경험한다.” 동화책은 어른의 고정관념을 주입하는 교육서가 아니라 아이의 시심(詩心)을 자극하는 상상의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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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아이가 책을 읽을 때는 함께 읽는 것도 중요하지요. ㅎㅎㅎ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ㅎㅎㅎ
    • 함께 읽기는 하지만 같은 책을 읽는 것은 힘들더군요.
      먼저 읽는 것은 더 힘들구요...
    • 빈배
    • 2012.04.06 19:30 신고
    저는 아이들과 하루에 5권 정도를 매일 읽어오고 있습니다.(잘난 척인가?ㅎㅎ)
    간혹 제가 더 재미있어하는 책들도 있더라구요.
    동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입니다.
    같은 책을 읽고 그래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고대합니다^^
    •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이들 책도 마찬가지로 결코 만만하게 보아선 안되더라구요.. 중간에 포기한 책도 많구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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