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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2년 7월 3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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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주석서인 이 책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최대한 균형잡힌 시각에서 논어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다른 논어 책들과 차별화된다. 죽간과 백서, 금석문 분야의 권위자인 저자 리링(李零)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는 논어에 대한 기존 주석서와 죽간, 금석문, 현대의 논어 해설서 등 고증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2천여 년 전 집필된 논어의 진면목을 가감 없이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냈다.

책에는 파격적인 부분이 적지않다. 고고한 성인(聖人)의 모습으로 묘사돼온 공자에 대한 해석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논어’를 읽고 난 뒤 나에게 남은 느낌은 두 글자, 즉 고독이다. 공자는 매우 고독했다. (중략) 공자는 성자가 아니라 사람이었을 뿐이며 출신은 비천했지만 고대의 귀족으로서 입신의 표본이 된 사람이었다. (중략) 그는 ’옛날의 도’에 대한 열정으로 주공의 정치를 회복해 천하의 백성을 안정시키려고 꿈꾸던 사람이었다.”

공자는 성인이 아니고 ’논어’는 성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공자는 대단히 불안했고 또 정말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 입술이 타고 입이 마르도록 초조했으며 실패와 좌절 속에서 유랑하는 신세가 되어 마치 돌아갈 집이 없는 떠돌이 개와 같았다”고 저자는 ’인간 공자’를 묘사한다.

책 제목인 ’집 잃은 개’도 춘추전국 시대 가난과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공자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공자는 중국을 구제할 수 없고, 세계를 구제할 수도 없다. 애초부터 구세주 따위는 없었고 또 신선이나 황제에 의지하지도 않았다.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말로 결론을 맺는다.

집 잃은 개 세트 - 전2권
리링 지음, 김갑수 옮김/글항아리

공자는 '집 없는 떠돌이 개' 신세였다

더불어 이 책도

논어, 세 번 찢다
리링 지음, 황종원 옮김/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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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여년 동안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살았다. 가장 깊이 각인된 기억은 일상생활에서 겪은 수만 가지 불편함이나 지속적인 감시, 자유가 결여된 상황이 아니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모든 악이 선의 이름으로 실현되고 숭고한 목적이라며 정당화되는 역설을 뼈저리게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조국을 떠났고, 그리던 서방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감격했다. 그러나 현실 공산주의체제가 무너진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유럽은 인종차별주의와 포퓰리즘이 판치고 극우정당이 무서운 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양극화와 대외침략으로 얼룩진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악이 선의 이름으로 실현되고 숭고한 목적이라며 정당화되는” 과거의 역설이 지금 서방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다.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민주주의 내부의 적>은 제목 그대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그 내부 적의 사상적 계보를 고대부터 현재까지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줄기다. 토도로프는 인민·자유·진보를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요소로 보고 위기는 이 삼자의 균형이 깨질 때 시작된다고 얘기한다. 극단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체제와 예전 공산주의 체제도 그 균형이 깨진 상태다. 그리고 그 둘은 닮은 점이 많다고 토도로프는 주장한다. 자연과 역사의 법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주어진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바로 공산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에게 공통된 과학주의의 특징이란다.

“몇몇 특징을 보면, (신)자유주의는 전체주의의 적이 아니라 형제다. …신자유주의 기획은 우리를 한 극단주의에서 다른 극단주의로, 곧 전체주의적인 ‘국가 우선’에서 극단적인 ‘개인 우선’으로, 자유를 죽이는 체제에서 사회를 죽이는 체제로 이행시켰다.”

<민주주의 내부의 적>은 처음부터 펠라기우스라는 사람에 주목한다. 그는 4세기 초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공인된 뒤 아우구스티누스 주교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논쟁 가운데 하나를 벌인 사람이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으며, 신과 비견할 만한 능력을 행사하면서 자율적으로 자신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힘은 이성이나 의지가 아니라 신앙에서 나오며 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신의 은총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게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다. 기독교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정통으로 삼았으나 이단이 된 펠라기우스 사상도 살아남았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대두와 함께 펠라기우스 사상은 기독교 천년왕국주의, 메시아주의와 결합한다. 혁명가들은 법을 통해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선 폭력 사용도 정당화됐으며, 공포정치는 우연이 아니라 혁명적 기획에 따른 것이었다. 나폴레옹군의 대외침략도 “고등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문명화하고 도처에 계몽주의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됐다.

여기까지가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첫번째 흐름이다. 두번째 흐름은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생시몽·푸리에·프루동·바쿠닌 등을 거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 이르는, 더욱 급진화한 정치적 메시아주의, 곧 공산주의의 등장이다. 그리고 세번째 흐름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과 함께 등장하는 신자유주의다.

메시아주의·신자유주의·포퓰리즘 등은 모두 “민주주의의 탈선”이다. 토도로프는 그 치유책을 ‘정치적 다원성’에서 찾는다. 그는 확실한 해결책이 있다고 보진 않지만, 절망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 내부의 적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김지현 옮김/반비

신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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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금횡령은 비난하면서 회사 물품은 쉽게 갖다 쓰는 사람, 아이의 거짓말은 나무라면서 사고보험금은 실제 피해보다 높게 청구하는 사람, 수임료나 치료비에 불필요한 비용을 얹는 사람…. 많은 이들이 '사소한' 부정의 파도 속에 헤엄치며 살아간다. 저자는 우리 안의 부정직이 일상 속에서 어떤 식으로 꿈틀대는지, 그 '이무기'를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우리 내면엔 늘 두 동기가 싸운다. 남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회적 욕구와 속여서라도 이득을 얻으려는 이기적 욕심. 이 둘 사이에서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은 균형을 잡느라 애쓴다. 자신의 도덕적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부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준선은 무엇인지 파악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일종의 '모럴 다이어트'다. 점심·저녁에 적게 먹었으니 간식은 잘 먹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전반적으로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어느 정도의 부정과는 타협한다.

부정행위에는 심리적 거리도 한몫한다. 자신과 부정행위 사이에 단계가 많을수록 타협이 쉬워진다. MIT 기숙사에서 실험을 해봤다. 냉장고에 절반은 콜라 6개들이 팩을, 다른 절반은 현금을 접시에 담아두었다. 콜라는 72시간 안에 모두 없어진 반면, 지폐는 그대로였다. 복도에는 콜라 자판기가 있었다. 콜라가 목적이라면 지폐로 빼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돈은 꺼리고 만만한 콜라만 쉽게 집어갔다.

오늘날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융 비리가 쉽게 일어나는 것도 실물과의 연관성이 멀어져 양심에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정의 대상이 심리적으로 멀고 추상적이며, 규정이 모호할수록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로마제국에는 '메멘토 모리' 관행이 있었다. '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개선장군이 거리 행진을 할 때 노예 한 명이 이 말을 반복해서 귓가에 속삭였다.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였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그 비슷한 도덕적 각성 기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MIT와 예일대에 '명예수칙' 준수 서명을 시켰더니 부정행위가 없었다. 무신론자도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게 하면 거짓말 확률이 떨어진다. 심지어 무인판매대 앞에 사람 눈 이미지 사진만 둬도 결손액이 줄었다. 유혹의 순간에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정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참회나 기도, 고해성사 같은 종교적 장치들이 사회의 부패를 막는 기능을 해왔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유혹의 순간에 개입하는 작은 각성 장치 하나가 장황하고 거창한 설교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상식 밖의 경제학' '경제 심리학' 등의 저서로 경제 생활 속의 '비이성'을 헤쳐보였던 저자의 최신작. 이번엔 경제 분야를 넘어 일상 속의 도덕적 가식과 허세를 들춰냈다. 무겁고 심각할 수도 있을 주제를 고치 삼아 경쾌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거짓말'처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청림출판

정직을 자부하는 당신, 언제든 '슬쩍' 할 수 있다
난 착한 사람이니까… 소소한 거짓말은 괜찮다?
도덕적 인간도 한번 무너지면 와르르…
정치인만 거짓말 ? 야근시간 부풀리는 당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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