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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미각味覺은 미학美學이다 : 《미각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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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있어야 빛의 황홀도 있다. 미식美食이란, 음식에서 어둠의 맛까지 느끼는 일이다." 책에는 한자가 없지만, 내용상 좋은 음식 또는 그런 음식을 먹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미각은 모든 감각과 통한다. 섬세하게 다듬으면 세상이 보이고 들린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미각味覺은 미학美學이다."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눈으로만 보지 말고, 혀로만 느끼지 말고,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음미해야 한다.

: 물은 눈으로 봐 맑아야 하며 냄새가 없어야 한다. 혀에서 가벼워야 하며 목구멍으로 넘길 때 부드러워야 한다. 좋은 물은 마지막으로 '정신적' 조건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물은 음식맛,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한다.

소금 : 소금은 달지 않다. 소금의 노릇은 음식 재료에 숨어 있는 맛을 끌어내는 것이 그 핵심이다. 잡다한 맛이 없으면서 짠맛이 부드러운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이라 할 수 있다.

식초 : 우리가 바라는 맛은 신맛뿐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취하는 데에만 그 목적이 있지 않은 것과 같다.

고추 : 맵다고 느끼는 감각은 맛이 아니다 맵다는 감각은 아픔의 감각인 통각이다. 한국 음식에서 매운 음식이란 그 음식 자체가 매운 성분으로 처발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 민족의 무데뽀 고추 사랑을 일종의 집단적 정신질환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설탕 : 미성숙한 미각의 소유자일수록 이 단맛에 쉽게 자극받고 중독된다. 설탕중독자들을 위해서는 좋은 식재료와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기술이 필요 없다. 중독인 줄 모르는 중독자에게 굳이 비싼 해독제를 투여할 이유가 없으며, 또 자칫하면 돈 들이고도 '맛없다'라는 욕만 들을 수도 있으니. 단맛의 음식을 두고 맛있다 찬사를 보내는 것은 미식가로서 자질이 없다는 증거이다.

참기름 : 단 한방울로 모든 맛을 평정하는 한국음식의 독재자. 그 강력한 고소함은 음식 맛을 죽이기도 한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독재자이다. 참기름이 한국 음식 맛의 다양성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화학조미료 : 싸구려 식재료를 숨기는 악덕 마법사이다. 가장 큰 해악은 식재료의 질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다. 화학조미료 한 방이면 맛을 다 비슷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한국 음식에서 화학조미료를 버리자면 짜고 맵고 강한 양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심심하고 순하게 먹으면 화학조미료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 음식 맛의 대부분은 향으로 느끼는데 이를 담당하는 것은 코이다. 혀에서 느끼는 맛이 음식물 맛에서 극히 일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음식 맛은 오롯이 혀로 느끼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편한대로 의도적 왜곡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입으로 음식을 넘기면서 음식 맛은 코로 느낀다고 설명하기는 부적절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코로 음식을 쑤셔 넣지 않으니까 생기는 의도적 왜곡이다.

: 밥은 한국 음식의중심에 있다. 지역, 품종, 재배 방법과는 관련 없이 갓 도정한 쌀이란 조건이 밥맛에서 가장 중요하다. 벼는 생명체이고, 이를 도정한 쌀은 주검이다.

추어탕 : 추어탕이 옛 맛이 아닌 것은 재료의 변화 탓만은 아니다. 미꾸리든 미꾸라지든 주재료는 조금만 넣고 여기에 구수한 맛을 더하기 위해 콩가루며 들깨가루를 잔뜩 넣기 때문이다. 콩탕이라 부르는 것이 더 나은 추어탕도 흔히 보지만 이를 구별하는 손님은 적다. 그래서 여기저기 대규모 추어탕 식당들이 차려지는 것이다.

삼겹살구이 : 1970년대 중반에 외식업계에 등장했다. 삼겹살구이는 돼지고기 그 자체의 맛을 즐기는 음식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삼겹살구이는 훨씬 다양한 방식의 양념법과 굽는 방법이 개발되었을 것이다. 삼겹살구이는 된장 쌈의 한 재료에 불과할 수도 있다.

돼지갈비 : 돼지갈비는 돼지의 갈비로만 조리되지 않는다. 넙데데하게 펼 수 있는 돼지고기의 거의 모든 부위가 돼지갈비로 구어진다. 음식이름을 바로잡자면 돼지양념구이가 맞다. 과다한 양념한 돼지갈비에서는 돼지고기 맛을 느낄 수 없다. 결국 돼지강정 수준의 돼지갈비를 먹게 된다.

마블링 : 마블링 고기에 대한 강한 기호도는 일본인들의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음식을 이로 씹는 행위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 귿르이 음식 먹는 것을 보면 씹는다기보다 오물거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이다. 그에 반해 우리 민족은 치아 사이에 음식물을 두고 강하게 오래 씹는 버릇이 있다. "입에 살살 녹는" 고기가 맛있다는 생각은 일본인의 쇠고기 기호를 무턱대고 좇아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마블링이란 단어가 일반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마블링 쇠고기에 대한 잘못된 신화가 한우고기의 진정한 매력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설렁탕 : 설렁탕에 담겨 나오는 국수는 없애야 한다. 국수의 밀가루 냄새로 국물 맛이 다치기 때문이다.설렁탕에 국수가 들어가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구호물자로 물가루가 흔해지면서부터이다. 못 먹고 살 때 양을 늘이기 위한 것이었지 맛을 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비빔밥 : 비빔밥이 식당에서 팔리면서 고추장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나물 각각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니 고추장으로 맛을 얼버무리기 위한 술책으로 밖에 안 보인다. 비빔밥의 나물을 제데로 조리해 내자면 보통의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 공력을 고추장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잔치국수 : 국수는 제조 후 묵힌 것이 좋다. 그래야 생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싼 가격의 잔치국수라고 함부로 맛을 내는 경향이 있다. 맛있는 잔치국수는, 제대로 된 국물과 국수를 만들어 내자면 돈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칼국수 : 국물 종류가 다르면 면의 굵기도 달라야 한다.

냉면 : 냉면이라 하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아울러 말한다. 하지만 맛의 중심이 던혀 다른 음식이기 때문이다.
메밀국수 -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
감자국수 - 함흥냉면
밀국수 - 부산밀면
매사에 분별력이 없으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분류를 엉터리로 하면 그 음식 맛의 중심을 찾을 수 없다.

떡복이 : 가래떡 맛은 중요하지 않다. 쫄깃한 식감만 제공하면 그 기능은 끝난다. 그래서 떡볶이는 떡을 이용한 음식이라기 보다 고추장과 설탕을 이용한 음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배추김치 : 식당에서 보면 제일 많이 남기는 반찬이 김치이다. 흔해서? 아니다. 맛없어서 안 먹는 것이다.

사과 : 보기 좋은 것, 단맛 강한 것 좇다가 진정한 사과 맛을 잊고 사는 것이다.

막걸리 : 공장 마걸리는 상온에 하루 정도 둬서 병이 부풀어 올랐을 때 냉장했다가 마시면 탄가스 맛을 얻을 수 있다.

희석식 소주 : 좋은 술은 깨끗하게 넘어가고 뒷맛이 깔끔해야 한다. 도수 낮은 희석식 소주가 그렇기는 한데, 이는 첨가제를 넣어 얻어 낸 맛일 뿐이다. 좋은 술은 술기운이 단전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좀처럼 머리까지 치지는 않아야 한다. 희석식 소주는 머리부터 친다. 첨가물로 인해 이게 더 심할 수도 있다.

생선회 : 일본식이 낫다 우리식이 낫다가 아니라 회를 치는 압법에 따라 먹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무엇이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음식은 "기본이 없으면 사이비일 뿐이다". "음식을 해서 먹인다는 것은 곧 생명을 유지해 주는 일이다. 이것은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의 행위이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 굳이 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은 삶의 활력이 된다." "인간은 지구 상에서 가장 다양한 음식을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우리의 미각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음식은 문화이다. 문화를 바꾸고 인식을 바꾸는 가장 편한 방법의 하나가 입맛을 바꾸는 것이다. 그들이 정해주는 대로 먹고 그들의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는 우리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기본이 없으면 사이비"가 될 수밖에 없다. 포장되고 조작된 미각에서 벗어나 우리의 미각을 찾는 것이 곧 우리의 미학을 갖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모든 편견은 무지에서 나온다.

영향력 확장의 본능이 집단화하고 정치화한 것이 제국주의이다. 제국주의자는 그 영향력 확장을 무력으로 이루었으나 이제는 경제와 문화 등 속의 것으로 그 도구를 바꾸었다. 미각도 그 도구의 하나이다. 제국주의자는 미각 기준을 그들의 것과 같아지게끔 조작하고 있다. 제국주의자의 미각 조작은 그럴싸한 포장을 하고 있어 피식민자는 그것을 하나의 멋 정도로 여길 뿐이다. 마침내 피식민자는 제국주의자가 제안하는 음식이어야 맛있고 건강하며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제국주의자에 대항하는 어설픈 피식민자는 자신의 음식을 제국주의자의 미각 기준에 합치시키려 할 뿐이다.

먹고 쓰는 동안 제국주의자의 미각 기준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들의 논리는 달콤하고 대중적(보편적이 아닌)이기 때문이다.


미각의 제국
황교익 지음/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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