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었으면 반드시 기록을 남겨라 : 《장정일의 독서일기 7》

2013.11.16 07:30 行間/술 사주는 읽고쓰기

장정일의 독서일기 마지막 편이다. 1권부터 7권까지 1993년부터 2006년의 독서일기이다. 2007년은 며칠만 있으니 연도를 생략했다. 사실 이 부분이 궁금하다. 왜 2007년 일부분만을 삽입하여 책을 내었을까? 이 책을 출간할 당시에는 이 책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인데 독서일기8에 포함하면 좋을 것을 굳이 7권 끝에 포함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독서일기는 끝이 났다. 7권이지만 중간에 6.5권이라 할 수 있는 《공부》를 포함하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시즌1은 8권이다. 시즌2로 포맷을 바꾸어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의 이름으로 1, 2가 나왔다.

1권 머리말에서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뒷장에 내 나름의 '저자 후기'를 주서하는 일, 나는 그런 '행복한 저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나는 그 단어가 가진 가장 엄밀한 의미를 좇는, 쾌락주의가 되고 싶다"며 쾌락주의자가 되길 원했다. 장정일은 쾌락주의자가 되는 꿈을 이루었을까.

1권은 1994년에 출간되었다. 장정일은 독서일기와 함께 성장했는데 독자인 나는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읽는 것보다 글 쓰는 게 더 효율적이다. 그가 읽는 책을 쫓아갈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독서일기를 모두 읽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읽었으면 반드시 기록을 남기는 일뿐이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monseiurk/80056340817

덧붙임_7권에서 관심을 둔 책이다.
장정일이 책에 대한 인용한 부분과 그것에 대한 생각이다. 장정일의 생각과 원저의 인용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 )는 내 생각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7
장정일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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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장준하

돌베개
장준하 지음/세계사

내가, 아니 우리가 조국 대신 형벌을 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이것을 감수하는 보람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 우리의 조상이 못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설원의 심야를 떨고 지새워야 하는가. 아니 조금도 조상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돌린다는 것은 나의 비겁이다. ······ 나의 조상은 또 조상을 가졌고, 그 조상은 못난 조상을 가졌다. 앞으로도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어야 하겠는가? ······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장준하의 삶에 두 가지 큰 마디를 만든다. 일본 패망 이후 김구의 비서로 서울에 환국했으면서도 해방 정국에서 김구와 결별한 게 첫 번째이고,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것을 '질서의 확립'으로 환영했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서중석의 《비극의 현대지도자》를 빌려 장준하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별도로 꼭 읽어야 할 책이기에 인용을 하지 않는다.
장준하의 변화과정을 충실히 기술한 책이다. 장준하에 대해서는 대중에게는 박정희에 의한 의문의 죽음으로만 알려졌다. 장준하를 보면 사람은 늘 변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늘 변해야 산다. 한 가지 의문점. 장준하는 과대평가 되었는가, 과소평가 되었는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열하일기》가 파격적인 문체와 구성으로 이루어진 까닭은 체제에 포섭되지 않으려는 ‘유쾌한 분열자’로서의 그의 성격에도 기인하지만, 비공식 수행원이라는 방외자적인 위치가 자유로운 관찰과 사유를 허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한 해체적인 독서를 통해, 18세기를 해체적(고미숙의 표현으로는 유목적)으로 사유했던 조선조 지식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아가 고전 읽기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일석이조의 목표가 있다.

박지원의 이 책은 조선 역사와 지성사에 커다란 영향력을 남겨 놓았다. 첫째, 청 문명의 역동성을 있는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소중화라는 도그마에 찌든 당대 지성사에 북학의 호흡을 불어넣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둘째, 정조의 문체반정의 원인이 된다. 왕이 직접 나서서 사건을 주도했던 친위혁명이다. 다시 말해 문체반정은 노론과 남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정조의 정치적 전략이기도 하다.

박지원과 정약용은 조선 후기를 빛낸 두 천재는 동시대에 살았으면서도 실재도 두 사람은 서로 모른 척했거나 경원했다. 문체반정이 일어났을 때 연암은 벼슬도 권력도 없는 50대 문장가였고 20대 초반의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연암은 중심으로부터 계속 미끄러져 나간 분열자였다면, 다산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향해 나아가 청착민이었다.

다산은 인간 주체의 자명성과 확고부동함을 주창하고, 연암은 주체의 끊임없는 변이와 탈주체화를 꿈꾼다.

(정조에 대한 평가는 논란거리이다. 연암이 뛰어난 인물임을 틀림없지만, 고미숙은 자신의 노마드를 내세우는 대표적인 인물로 연암을 강조하는 것은 의문이다. 문체반정 때 연암이 권력도 벼슬도 없는 50대라는 것은 그의 출신이 집권 노론의 중심부에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지 않더라도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었다. 반면 다산은 비집권층인 남인 출신으로 이제 막 탕평책으로 중용되었을 뿐이다. 다산이 연암과 달리 중심부를 죽을 때까지 추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리처드 솅크먼

미국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리처드 생크먼 지음, 이종인 옮김/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미국인이 기억하는 (미국사) 대부분의 역사적 지식은 상당 부분 신화적이다. 예를 들어 워싱턴과 벚나무 혹은 노예를 해방한 링컨의 업적은 모두 과장되거나 날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위인이나 개인에게 부여된 신화가 아니다.

미국인 대부분은 건국의 아버지가 신앙에 충실하고 청렴결백하다고 믿지만, 사실과 전혀 딴판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생존 당시 “만약 미국 국민이 언젠가 한 사람 때문에 타락한다면 그는 바로 워싱턴일 것이다.”라고 비난받기 일쑤였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은 “모든 사람의 가슴은 자유와 행복을 누리면서 환희 속에 고동치게 될 것이다. 워싱턴이라는 이름은 오늘부터 정치적 부정을 눈감아 주거나 부정부패를 합법화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쓸 정도였다. ······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아무도 보통선거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건국의 아버지 역시 일반적인 정치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건국의 아버지를 험담하는 역사가를 백안시한다. 건국의 아버지가 신화로 채색되기 시작한 것은 고작 1920년대부터라고 지적한다. (아마도) 1차 세계대전을 통해 고립주의를 털어낸 미국이 자신의 선조를 ‘자유와 민주’라는 미국식 가치로 채색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인 미국 혁명(미국독립전쟁)을 설명하는 방식이야말로 미국사 최대의 거짓말이다. 미국인은 미국 혁명은 프랑스 · 러시아 · 중국 · 혁명처럼 피비린내 나고 무시무시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자신의 독립 전쟁을 설명하면서 혁명은 통상적으로 정부를 붕괴시키거나 타도하고 또 국가의 기존 제도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하지만 미국 혁명에는 이런 파괴 행위가 없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 혁명에도 ‘공포정치의 흔적’은 있다. ······ (피를 동반하지 않은 혁명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믿는 이가 이상한 것이지.)

(하워드 진은 “미국의 민주주의는 ‘효과적인 통제수단’일 뿐”이라 했다. 거짓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좀 더 쉽게 보고 싶다면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를 읽어보라. 추악한 정치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비주류 역사》, 마이클 파렌티

비주류 역사
마이클 파렌티 지음, 김혜선 옮김/도서출판 녹두

수 세기 동안 역사 편찬은 주로 법률가, 성직자, 사업가와 재산가의 부업이었다. (군주는) 회장, 협회, 학술지와 전문 학회를 지원했고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유산계급으로 충원되도록 신경을 썼다.

(수 세기 전의 상황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오늘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논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는 전반적으로 (아니 전부) 승자에 의해 만들어진 일방적인 기록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배워 온 조작된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며, 참된 역사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건설적으로 파괴하여 새로운 역사를 시도하고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역사가의 책이 독자를 접할 기회가 대동소이하리라고 생각할 뿐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상업성과 이데올로기에 따라 역사물의 유통도 결정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


《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돌베개

역사가에게 중요한 것은 사관이다. 첫째, 오래된 중국 사서는 성공과 실패로만 영웅을 평가하는데 그것은 잘못으로, 개국 군주는 영웅이요 망국 군주는 개라는 논리 역시 그렇다. 둘째, 역사책은 정부이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 기록은 공은 기록하고 잘못은 넘어가며, 이익은 챙겨 주면서 손해에 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셋째, 역사 사건을 탐구하고 역사 인물을 평가할 때 특정한 시간 · 공간 · 사람 · 사건에 한정되어 작은 역사만 연구해서는 안 된다. 시공을 초월하여 거시적 ‘큰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중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 이 땅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앞사람이 쳐 놓은 그물을 뚫고 지뢰밭을 과감하게 뛰어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느린 걸음으로 우리 자신을 묶어 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서를 읽을 때 마음의 눈을 열어 놓아야만 속지 않는다. 책을 다 믿느니 차라리 책이 없는 게 낫다.

(사불동이리동(事不同而理同)이란 말이 있다. 일은 다르지만, 이치는 같다는 뜻인데 역사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현재의 우리 모습과 다를 수 있으나 도리는 같아 역사를 통해 철학 · 이치를 깨달으면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역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전태일 평전》, 조영래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전태일이 평화시장 재단사를 규합해서 만들었던 모임의 이름이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에 여덟 시간만 노동하게 되어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몰랐으니 바보가 아니었느냐면서 모임을 바보회로 정한다.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평생 런던의 왕립 도서관을 출입하며 벼리었던 노동의 원리와 변증법을 혼자서 깨달았다. 바보인 줄 알아야 비로소 지혜로워질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죽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동시에 깨달았던 것이다.

(한국어로 쓰인 평전 중 딱 하나만을 고르라고 하면 이 책을 택할 것이다. 한동안 조영래라는 이름을 같이 볼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덧붙임_
행복한 책읽기와 독서일기
[읽을책]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
인민人民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6
가장 엄밀한 의미를 좇는 쾌락주의자가 되고 싶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5
독서에도 습관의 때가 묻는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4
책을 만드는 모든 분들께 절을 올리고 싶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3
책을 파고들수록 현실로 돌아온다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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