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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글자만 소비할 뿐 행간은 읽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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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바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평전'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일 것이다. 많이 팔린 책이 꼭 많이 읽힌 책이 아니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스테디셀러인 이 책은 많이 팔렸고 많이 읽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그저 문자로 적힌 전태일의 이야기만 소비되고 그 행간의 전태일은 남아있지 않다. 많이 팔리고 많이 읽었다면 세상이 아직도 이 모양은 아닐텐데.

《전태일 평전》을 무척 감동적으로 읽었다는 사람이 ‘박정희 시대’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기존 태도를 전혀 수정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글자로 적힌 내용은 지식으로 남았으되, 행간에 담긴 의미를 자신의 삶으로 가지고 들어와 ‘경험’으로 소화해내는 데는 실패했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지금 사회의 틀을 형성 · 유지하고 있는 (나 자신까지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탓이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른 삶에 대한 흡수력이 왕성할 성장기에, 아무도 ‘왜’를 질문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했다. 오히려 제 자식을 아무것도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바보’로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_변정수, <인문정신은 무엇으로 사는가>

유행처럼 팔린 평전이 《체 게바라 평전》이다. 대중은 쿠바와 볼리비아의 게바라를 원한 게 아니라 브랜드 ‘게바라’를 구매하고 소비했을 뿐이다. 이는 《싸우는 인문학》에서 제기한 “인문학이 사람을 바꾸는 데 무력하다면 과연 노동자에게 인문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곧 답이다. 《전태일 평전》과 《체 게바라 평전》은 글자만 소비할 뿐 그 행간은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에 관한 책에서 인문 텍스트는 자기계발 주제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 · 전술의 수단이며 인문이라는 말도 상표로 나부낄 뿐”이다. 지금은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비판하고 바로 잡는 ‘싸우는 인문학’의 정신이 필요하다."


싸우는 인문학
서동욱 기획/반비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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