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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2월 1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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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많은 작은 나라 왕자들은 골치 아플 일이 많다. 영토를 나눠 상속하면 국력이 약해지니 왕위를 계승할 왕자 외에는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웃 나라 외동 공주와 결혼해 처가의 왕국을 물려받는 것. 그래서 왕자들은 공주에게 호감을 살 현란한 말솜씨와 에티켓, 기사도를 몸에 배도록 수련해야 했다. 백마 탄 왕자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떠돌이 구혼자였던 셈이다.

신간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27편의 날조된 명작 동화들과 관련한 도발적인 질문들을 담았다.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당대 역사를 보다 깊고 넓게 파악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마녀사냥, 신분제도, 제국주의 등을 통해 철저히 소외된 약자들의 아픔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날조된 명작 동화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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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커피 머신으로 유명한 네스프레소는 오히려 주요 대도시에 고급 커피숍을 차리고 ’매장 커피’를 파는 데 공을 들였다.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는 기계를 팔면서 거꾸로 커피숍 운영에 주력한 것. 언뜻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본 이유는 뭘까.

미국 출신 마케팅 전문가인 로저 둘리는 신간 ’그들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을 읽어라’에서 이러한 비합리적인 마케팅 전략이 잘 통하는 까닭을 신경과학 이론을 토대로 분석했다. 인간의 사고와 학습, 감정 가운데 95%는 무의식 상태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마케팅도 구매자의 감정과 무의식적 욕구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

네스프레소는 자체 연구 결과 소비자가 커피를 마시는 감각 경험의 60%가 매장 환경에 기인한다는 점을 알아채고 커피 향으로 가득 찬 매장을 차리는 데 주력했다.

저자는 광고 문구에 형용사를 많이 집어넣는 것도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된다고 귀띔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식당 메뉴에 적절한 형용사를 쓴 덕택에 매상이 27% 상승했다는 것. 비즈니스 미팅에서 잡담을 먼저 나누는 게 협상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2010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정 금액의 돈을 나눠갖도록 하는 ’최후통첩’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 경우 성공률이 83%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처럼 실제 사례를 토대로 기업에 마케팅 전략을 조언해주는 책이지만 소비자에겐 감정에 휩쓸린 ’비합리적 소비’를 가려내는 데 참고가 될 만하다.

그들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을 읽어라
로저 둘리 지음, 황선영 옮김/윌컴퍼니(WILLCOMPANY)

비합리적인 마케팅이 잘 통하는 이유는
비합리적 소비심리 절묘하게 파고드는 마케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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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G, Wibro, 3G, Wifi, LTE…. 알파벳과 숫자의 알 수 없는 조화는 앞으로 또 어떤 생소한 속도의 용어를 만들어낼까. 기술과 사회는 ‘이유나 의미는 알 필요 없으니 더 빨라지라’고 강요한다. 패스트푸드와 스마트폰은 때론 우리 삶과 뇌로부터 진실을 분리시킨다.

이 책은 이러한 맹목적인 현대사회의 속도전에 반기를 든다. 순간적 직관에 몸을 맡기는 대신에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최대한 기다리라고 주장한다. 원제는 ‘기다림(Waiting)’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웰빙’이나 ‘힐링’을 위한 추상적 느림이 아니다. 철저히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느림의 가치를 역설한다. 중대한 의사결정에 있어 ‘어떻게’가 아니라 ‘언제’의 타이밍을 조언한다.

심리학, 행동경제학, 신경과학, 법, 금융, 역사에 걸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전문가 인터뷰가 ‘느림’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내세우는 책의 ‘골다공증’을 막는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워런 버핏까지 고금을 막론한 ‘늦춤의 달인’도 소개한다.

책이 전하는 예시는 구체적이다. 야구에서 타자에게는 공의 속도와 궤적을 파악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데 0.2초가 주어진다. 훌륭한 타자는 이 짧은 시간을 생리학적으로 최대한 늦추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타이밍의 예술’인 코미디에서 코미디언들은 의도적인 멈춤을 통해 관중의 시간을 왜곡하고 긴장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 뒤 목적을 달성한다. 사과는 빨리 할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 사과하는 시점을 가능한 한 늦추는 것이 관계회복에 더 좋다. 진화 과정에서 동물처럼 생물학적 반응이 즉시적이었던 인류는 도태됐고 반응을 늦춰 안정성을 유지한 인류는 살아남았다.

샌디에이고대 법학·경제학 교수인 저자는 전작 ‘대파국’ ‘전염성 탐욕’을 통해 기만적이고 탐욕적인 자본주의의 심장 월스트리트의 안팎을 날카롭게 파헤쳐왔다.

책은 종종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이야기로 빠지기도 한다. 시간을 두고 읽기 못마땅한 독자라면 책의 정수만 기억해도 좋다. ‘잘못된 결정을 내린 순간을 후회한 적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순간을 CCTV로 찍어 멀리서 바라보듯 숙고하라. 최고의 순간까지 기다려라.

속도의 배신
프랭크 파트노이 지음, 강수희 옮김/추수밭(청림출판)

과속시대… 기다려야 산다
직장에서 실수했을 때, 바로 사과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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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한 국가 혹은 한 대륙의 인터넷이 '먹통'이 된다면, 정전이 된다면, 핵폭발이 일어난다면?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 많이 봤던 소재다. 하지만 수학박사 출신으로 미국의 대표적 복잡성 이론가인 저자 존 캐스티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현대사회는 '카드로 지은 집'이다. 인류는 과학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온갖 시스템을 갖춰 왔다. 하지만 '시스템 위에 시스템을 쌓는' 식의 현재 구조는 복잡성 위에 복잡성을 얹어놨다. 언제 어느 때 작은 바람 한줄기에도 우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20세기 말 급속도로 진행된 세계화는 위험 역시 세계화시켰다. 저자는 'X(extreme)사건'을 경고한다. 'X사건'은 '매우 드물고, 놀라우면서, 사회적 파급 효과가 아주 큰 사건', 9·11, 세계금융위기 등을 말한다. 한마디로 '현대의 재앙'이다.

재앙의 징조는 곳곳에서 노출된다. 2009년 10월 스웨덴에서는 국가 도메인 '.se'가 작동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1년 1월 28일 이집트에선 인터넷이 통째로 사라졌다. 두 사건은 '인터넷 먹통'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원인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이집트는 무바라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방해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지만 스웨덴의 경우는 제대로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각국은 인터넷 보안에 엄청난 투자를 하지만 완벽한 보안이란 없는 법. 하지만 이젠 세상은 인터넷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2008년 인텔이 남녀 2000명에게 '2주 동안 섹스 없이 지낼지, 아니면 인터넷 접속을 포기할지' 물었을 때 여성 46%, 남성 30%가 잠자리를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2003년 8월 14일 미국 오하이오 발전소에서 발전기 한 대가 고장 난 사건은 단 8분 만에 미국 중서부부터 북동부 지역까지 연쇄적 전력중단 사태를 촉발해 5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암흑 속으로 몰아넣었다.

식량 문제도 눈앞에 닥쳤다. 2006~2008년 사이 미국에선 꿀벌이 3분의 1 이상 사라졌다. 아몬드 재배업자들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꿀벌 통 1개를 빌리기 위해 4년 전보다 2배인 175달러를 써야 했다. 세계화로 연결된 식량 공급 라인이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그 밖에도 '전자 기기의 파괴' '핵폭발' '석유 소진' '전염병의 창궐' '정전과 가뭄' '로봇의 재앙' '금융의 몰락' 등 11가지 X사건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이 가운데 2~3개만 동시에 연계된다면 졸지에 인류는 석기시대로 회귀한다. 악몽이다.

캐스티는 이런 X사건 가능성이 높아진 원인으로 '복잡성의 격차'를 들고 있다. 복잡성의 격차가 누적될수록 어느 한순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면서 X사건을 통해 압력을 방출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경우, 30~40년 전엔 과학 지식 없이도 간단한 자동차 수리를 할 수 있던 보통사람이 이젠 커피 메이커도 못 고치게 됐다. 국가로 범위를 넓히면 이집트의 정권 붕괴도 '복잡성 격차'에 의해 발생했다. 독재정권이라는 단순한 복잡성 수준의 정권과 인터넷과 SNS 등 첨단 기기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복잡성을 가진 국민 사이의 괴리가 민주화 혁명을 불렀다는 것. 저자는 유럽연합(EU)도 위태롭게 본다. 우선 EU는 내부적으로도 복잡성의 높낮이 다르다. 그럼에도 EU는 더 복잡성이 높은 세계 각국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역시 복잡성의 격차를 줄이는 것. 격차를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복잡성이 높은 쪽이 낮추거나, 낮은 쪽이 복잡성을 높이는 것이다. 지난 2009년 브라질 해안에 추락한 에어프랑스 항공기 사고의 경우를 보자. 2년 만에 회수한 블랙박스 기록엔 비행기의 추락 가능성을 경고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까닭인지 조종사는 정상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캐스티는 "시스템의 복잡성(비행기와 주변환경)이 통제자(조종사)가 관리할 수 있는 복잡성에 비해 너무 커지면서 비행기가 추락(X사건)했다"고 말한다. 에어프랑스 사고의 경우엔 조종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단순화가 필요하고, 이집트의 경우는 정부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의 복잡성에 맞춰 정부가 복잡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금융시장의 경우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신종 금융 상품을 없애거나 확 줄이는 것이 통제하는 규정이나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세상의 종말에 관한 것이 아니다"며 "이 책의 진짜 테마는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어떻게 위험을 규정하고 측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답은 구체적이기보다는 원론적이다. 당연하겠지만 "X사건이 발생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책 말미의 주문은 유효하다.

X이벤트
존 L. 캐스티 지음, 이현주 옮김/반비

복잡한 시스템, 세상을 무너뜨릴 수도…
문명은 지속될 수 있을까 …11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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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고객으로 불리는 사회, 시민이 주권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전락한 사회, 대중민주주의가 아닌 개인민주주의로 전락한 사회. 민주주의의 축소라는 영문 제목을 그대로 따온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더 이상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을 바라지 않는 사회가 된 미국의 현재 민주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대중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원하는 정치를 펼치기 위해 애쓰던 민주주의가 이제는 관료들의 잘 짜인 시스템 하에서 시민을 소외시키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했다는 문제제기로 책은 시작한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학자로 꼽히는 두 명의 교수가 집필한 이 책은 200여 년이 넘도록 서구 정치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시민의 몰락을 증언하고 있다. 나라를 일구는데 충실하게 봉사한 대가로 사회를 움직이는 중추적 역할과 정치적 권리를 얻은 시민은 투표권 외에도 법적권리와 연금 등 다양한 보상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정부가 시민의 지지와 협력에 의존했기 때문에 대중의 정치 참여는 그 범위를 넓힐 수 있었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정치 시스템이 굳어진 사회에서 더 이상 국가는 시민의 참여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한다. 이들은 시장, 법원, 행정절차와 기타 정치관료들에게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획득한다.

9.11 테러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가라 앉히고 '위기에 직면해 자신의 본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애국적인 생각을 하고, 무엇보다 쇼핑을 하라고 조언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시민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얌전히 있는 것뿐일까. 저자는 오늘날 정치에서 시민은 이제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손에 쥔 존재일 뿐이라며 비관적으로 이야기 한다. 또한 정부로 하여금 어떤 역할을 하도록 압박하기보다는 자선단체나 시민단체 등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가 되도록 유도하며 투쟁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덧붙인다.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이 정치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면서 60년 이상 투표율이 하락했다. 그리고 평범한 미국인은 시민에서 언제가부터 '고객'으로 불리게 됐다. 실제 워싱턴 정가에서 정치인끼리 흔히 '고객'이라는 말을 쓴다. 서비스 강화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지칭어가 말해주듯 이제 정부 서비스를 받는 수혜자로서만 시민을 볼 뿐 참여의 주체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의 정책 역시 기업형 관점에서 고객에게 좀 더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을 기울일 뿐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끌어들이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시민은 변방으로 밀렸을까. 미국에서는 이제 정치자금 모집에 있어서 더 이상 대중을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몇몇 부유한 기부자에게 전화를 거는 식으로 그들끼리의 리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후원금을 통해 정치활동을 영위해 나가는 미국 정치인은 정치투쟁을 통해 평범한 시민을 동원하지 않고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미국에서 시행중인 학교 선택제도인 학교 바우처 시스템에서도 자녀 교육에 불만이 있을 경우 학교를 옮길 수 있다. 때문에 학교의 문제점이 발생해도 다른 부모들과 함께 연대해 항의할 필요성이 없다.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시스템의 경우 싸우기 전에 회피할 수 있게 만들어진 구조 속에서 시민을 더욱 민주주의의 바깥으로 몰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가 지배하는 대중 민주주의가 몰락하고 소수 엘리트의 지배인 개인 민주주의가 부상하면서 과세나 선거 환경 등의 영역에서 일어난 균열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업무를 시장으로 넘기는 민영화를 이야기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하층을 우선해야 하는 공공 프로그램의 속성 자체가 다른데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민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에다 미국 정치 사회적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이지만 꼼꼼한 각주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어렵지 않다.

정치에서 시민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다면 반대로 시민의 입장에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축소된 권리를 다시 확대시키는 것, 그리고 정치 구성원으로 그 역할을 다해 '고객'이 아닌 '시민'이 되야 한다는 반어법일 것이다.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해진 게 아니라 더 이상 정치 엘리트가 시민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현재의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를 보낸다. 이것은 곧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회심의 역습'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인다. 미국 현대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 현실과도 흡사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 부작용이 크긴 하지만 아직까지 정치에 열의가 높고 사안마다 투쟁적인 한국 사회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후마니타스

시민이 주인 아닌 고객으로… 길 잘못 든 민주주의
개인민주주의 여파 ‘정치의 고객’이 된 미국시민…한국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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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생물학 연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세포의 자기복제'라는 단순 원리로 단세포생물에서 포유류까지 모든 생물의 행태를 설명하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그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학자나 연구자의 길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지금 생물학계에서는 중요한 학설이다.

세포 수준의 작동 원리로는 거의 반박이 어려울 만큼 강력한 이 이론은 그러나 사회생물학적인 논리로 비약하면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는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행동, 사회의 작동 원리까지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독일의 뇌과학자이며 과학저술가인 저자 역시 이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작동을 설명하는 논리로는 훌륭하지만 그것을 인간사회를 설명하는 것으로 확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도킨스 등 진화생물학자가 어떤 이유로 유전자의 이기적인 선택을 설명했는가를, 또 그것이 어떻게 인간사회를 해명하는 논리로는 부적절한지를 다양한 연구ㆍ실험 사례를 통해 설명해간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레슬리 브라더스는 유전적으로 인간의 팔촌쯤 되는 침팬지나 보노보에 비해 인간의 뇌가 3배 정도 커진 이유를 인간의 사회성 및 사회적 환경 때문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어떤 먹이가 어디에서 자라는지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와 마주한 사람이 친구인지 적인지에 관심을 갖는 존재이다. 인간의 뇌가 지금처럼 섬세하고 복잡하게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 지능이 다른 영장류보다 우수한 게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인간은 사회성으로 인해 다른 동물과 구분된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타고난 능력으로 보며 '문화 지능'이라고 한다. 인간이 가진 이런 '우리' 지향성은 도구의 발달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일 뿐 아니라 외형적으로 사람과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인 언어를 탄생시킨 토대이다.

저자는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마이클 더글라스가 내뱉는 "이기심은 진화를 촉발시킨다"는 대사를 인용하며, 이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묘사가 아니라 이기주의자가 내세우는 전형적인 자기합리화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이기주의자의 자기합리화는 '신자유주의적, 신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이기적 유전자가 역설하는 유전자의 이기주의가 인간사회에서도 통용될 자연 현상인 것처럼, 그래서 따라야 할 진리인 것처럼 합리화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인간은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태어났고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며 '우리의 지속적인 행복은 우리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책은 이 같은 주장을 엄청나게 많은 생물학, 인류학적인 연구 내용을 인용하며 펼치고 있지만 물 흐르듯 술술 읽을 수 있다. 다분히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이런 종류의 책이라면 잔뜩 따라 붙기 마련인 각주를 하나도 달지 않은 편집의 덕도 적지 않다.

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
베르너 지퍼 지음, 안미라 옮김/소담출판사

이기심이 진화 촉발? 이기주의자들의 자기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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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학자 퍼트리샤 스테인호프는 일본의 급진 좌파 운동을 오랜 시간 연구했다. 1972년 이스라엘의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텔아비브 공항 습격사건의 주역 오카모토 고조를 면회한 데서 시작해 20여년에 걸쳐 인터뷰, 현지조사 등을 병행했다.

저자는 적군파가 관련된 사건 중 굵직한 세 가지를 다룬다. 첫 번째는 1972년 5월31일 텔아비브 공항 습격사건이다.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소속의 일본 청년 세 명이 공항에서 찾은 짐에서 소총과 수류탄을 꺼내 승객들에게 난사했다. 이로 인해 26명이 죽고 80명이 다쳤다.

두 번째 사건과 세 번째 사건은 시간적·인과적으로 연결돼 있다. 연합적군 숙청사건은 1971년 12월~1972년 2월 군마현 하루나산에 만든 비밀기지에서 군사훈련을 하던 연합적군 조직원 사이에 벌어진 폭행, 고문을 말한다. 당시 평균 나이 23세의 조직원들 31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 12명이 동료에게 맞거나 칼에 찔려 죽었다. 살아남은 조직원 중 5명은 경찰에 쫓기다가 인근 아사마 산장에서 관리인의 아내를 인질로 붙잡고 수천명의 경찰과 10일간 대치했다. 이 기간 중 민간인 1명, 경찰 2명이 사망했고, 농성하던 조직원은 전원 체포됐다.

스테인호프는 196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20세기 미국에서 진보적인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였다. 당시 청년들이 들썩인 것은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서유럽, 남미, 중국, 일본의 젊은이가 구체제를 뒤엎고 새 세상을 열기 위해 일어났다. 베트남전쟁, 관료제, 식민주의, 인종차별, 여성해방 등 온갖 것들이 이슈였다. 스테인호프는 열정적인 참여자는 아니었지만 호의적인 관찰자로서 그 시기를 보냈다.

연구자의 길을 걸은 스테인호프는 미국 바깥의 상황이 궁금했다. 특히 일본과 미국의 진보운동은 비슷해 보였지만 달랐다. 미국에선 아무리 뜨거운 운동이었다 해도 국가 체제 자체에 맞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규모 가두시위는 드물었고 대개 비폭력주의를 천명했다. 그러나 일본의 젊은이는 달랐다. 일본의 일부 좌파 진영에선 국가를 전복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선 무장투쟁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오카모토 고조는 화목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중산층 청년이었다. 미국에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가 있으면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한다거나 나쁜 성장 환경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오카모토는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텔아비브 공항에서 무고한 승객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았을 때도 그의 정신은 멀쩡했다. 이는 어제의 동지를 오늘 고문해 죽인 연합적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굳건한 신념으로 벌인 범죄들이었다.

범행 당시 24세였던 오카모토는 면회온 스테인호프에게 적군파 이론의 개요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견고한 부르주아 권력을 분쇄하길 원하며, 이를 위해선 무장투쟁을 통한 전 세계 동시혁명이 필수적이다. 난민 구제나 평화 행진 같은 것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일종의 ‘마스터베이션’이다. 혁명은 역사의 필연이며 그 와중에 폭력은 불가피하다. 적군파는 혁명에 대비해 병사를 훈련시켜왔고 자신은 그 병사 중 하나라는 논지였다.

그러나 공항에서 죽은 것은 이스라엘 관료도, 미국의 무기상도 아니다. 성지순례 여행을 온 외국인 참배객이 대다수였다. 오카모토는 이스라엘이 ‘교전 지대’이기 때문에, 그곳에 온 사람은 자신의 목숨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혁명은 ‘전체적인 것’이다. 적, 죄없는 자, 방관자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은 채 모두 혁명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오카모토에게 사람은 저마다의 삶, 감정, 생각을 가진 개체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거대한 목적에 필요한 희생자였다.

텔아비브 공항 습격사건은 당시 전 세계 텔레비전을 통해 알려졌다. 테러의 목적이 폭력 자체보다는 폭력을 널리 알리는 데 있다고 한다면 오카모토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살피면 시각이 달라진다. 적군파는 세계혁명을 위해 일본과는 아무 상관 없는 팔레스타인의 편에 섰지만, 정작 PFLP는 세계혁명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카모토는 13년간의 독방 수감생활 끝에 PFLP에 포로로 잡힌 이스라엘 군인과 교환되는 조건으로 석방됐다. 함께 해방된 팔레스타인 포로에 의해 무등 태워진 오카모토는 멍한 표정으로 리비아에 도착했다.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오카모토가 속한 일본적군 리더 시게노부 후사코는 귀국한 뒤 체포됐다. 시게노부는 옥중에서 일본적군 해산을 공식 선언한 뒤 무장투쟁 노선이 오류였음을 인정했다.

텔아비브 공항 습격사건이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사의 이채로운 에피소드였다면, 연합적군 숙청사건은 일본의 학생운동, 급진좌파 운동에 궤멸적 타격을 입힌 계기가 됐다. 사실 아사마 산장 농성 때만 해도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농성은 텔레비전을 통해 시시각각 알려졌고, 마지막날 공방전은 95%에 달하는 시청률을 보였다. 그리고 화면을 지켜보던 청년들은 오랜 도피로 지친 5명의 청년이 수천명의 경찰에 맞서는 모습을 내심 응원했다. 아무런 사적 이득도 없이, 오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청년들의 모습은 체 게바라 같은 반체제적 영웅상과 겹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사마 산장 사건이 벌어진 일주일 후, 경찰이 비밀기지 근처에 묻힌 연합적군 멤버들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여론은 급반전했다. 동상이 걸리고 심하게 맞고 칼에 찔리고 목이 졸린 시신이 하나둘씩 나오자, 적군파를 지지하던 청년들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후 일본에서 좌파운동을 지지하는 분위기는 완연히 수그러들었다.

연합적군은 적군파와 혁명좌파의 연합조직이었다. 적군파는 세계 동시혁명을 주창했고, 혁명좌파는 일본 국내 정치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적군파는 몇 차례의 은행 습격으로 얻은 돈이 있었고, 혁명좌파는 총포 가게 습격으로 총기와 탄약을 보유했다. 두 조직의 공통점은 혁명적 변혁을 위해선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 동양 사회에서 두 조직이 통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극좌 무장조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적군파와 혁명좌파는 무장투쟁이라는 대의를 위해 통합했지만, 외부의 ‘적’과 싸우기 앞서 내부의 사상투쟁에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두 조직의 수장은 자신의 휘하 조직원이 사상적으로 더욱 강하게 무장된 것처럼 비춰지기를 원했다. 혁명좌파의 리더인 나가타 히로코는 적군파의 도야마 미에코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회합을 하면서 머리를 빗었다거나, 산에 들어오면서 이름도 머리 모양도 바꾸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혁명가가 아닌 여자로 비춰지기를 원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적군파 리더 모리 쓰네오는 나가타의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론가였던 그는 혁명을 위한 ‘내면적 준비’가 필요하다며 이를 ‘공산주의화’ 혹은 ‘총괄’이라는 말로 불렀다. 자신이 보기에 문제가 있는 조직원에게는 “총괄하라”거나 “공산주의화가 덜 됐다”는 식으로 지적을 했다. 그러나 조직원은 ‘공산주의화’와 ‘총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고행, 신체 단련을 정신적 성숙과 동일시하는 문화는 일본을 비롯한 동양에 널리 퍼져있다. 모리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예전에 경찰에 체포됐을 때 신문 도중 잡담을 한 조직원, 이 사실을 바로 지도부에 보고하지 않은 조직원 등이 ‘총괄’을 명령받았다. 둘은 처음엔 책상에 마주앉아 죄과를 기록해야 했고 이후엔 구타당했다. 모리는 구타가 잘못된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과 대결함으로써 약점을 극복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구타당해 실신한 조직원은 기둥에 묶인 채 방치됐고, 이후엔 눈이 내리는 바깥으로 내쫓겼다. 구타에 가담한 조직원은 꺼림칙함을 느끼면서도 만약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총괄’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범행에 가담했다. 트럭을 진창에 빠트렸다, 조직 활동 도중 공중목욕탕에 갔다, 관료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조직원은 하나둘씩 ‘총괄’ 대상이 됐고 그렇게 죽어갔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은 ‘패배사’(敗北死)로 규정됐다. 동료에 의한 타살이 아니라 공산주의화를 이룩할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죽었다고 합리화된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나 산속으로 쫓긴 연합적군 조직원은 두려움과 독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그토록 열망했던 혁명은 이룰 수 없다. 총을 잘 쏘는 것만큼 정신적으로 단련돼 있지 않으면 안된다. 소규모 조직원 개개인의 이데올로기와 외부 현실이 불일치할 때, 조직원은 외부 현실에 새로운 해석을 가해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막는다.

적군파 탄생에는 시대적 맥락이 있다. 1960년대의 일본 청년들은 뭉쳐서 항의했으나 현실은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청년들은 헬멧과 죽창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혁명‘당’이 아니라 혁명‘군’이 됨으로써 무장봉기를 꿈꾸었다. 군사 훈련, 총기 탈취, 부르주아 은행 습격을 통한 혁명자금 모금 등에는 어딘가 낭만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시민은 이들에게 차츰 부정적 인상을 갖기 시작했으나 적군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 관념 속의 혁명은 장삼이사의 삶보다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힘겹게 투쟁한 약자의 패배는 대체로 고결한 인상을 준다. 이상과 몽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을 사회는 격려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연합적군 숙청사건을 본 뒤에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꿈 많고 열정적이고 순수했던 젊은이가 어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 했는데 왜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는가.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내가 그곳에 있었더라면’이라는 상상이다. 연합적군을 ‘나’와 다른 일부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는 것은 안일한 해석이다. 쉬운 해석을 거부할 때에만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적군파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교양인

일본 경악시킨 적군파, 그들은 왜 동지를 죽였나
열정적이고 순수했던 젊은이들의 ‘엇나간 투쟁’
일본 진보를 수렁에 빠뜨린 그 연쇄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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