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3월 4주 새로 나온 책

반응형

"하고 싶은 일이라고 무작정 뛰어들지 마세요.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살던 집 팔고, 여기저기 돈 빌려서 새 사업 하는 사람 수두룩 봤어요. 그때마다 너무 무모하다 싶어요. 지금 하는 걸 유지한 상태에서 해 보고 싶은 걸 시험 해보세요. 그런 다음 확신이 드는 쪽으로 옮겨 가도 늦지 않아요."

뜻밖이었다. 29세에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항공학교로 떠나 바닥부터 공부, 35세에 중국 최초의 한국인 여성 파일럿이 된 그녀. 그래서 그녀라면 누구보다 확신을 갖고 '무엇이든 달려들어 시작하라'고 조언할 거라 생각했다. '반전' 있는 대답을 들려준 그녀는 중국 상하이의 지샹(吉祥)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여성 파일럿 조은정(40)씨다.

'파일럿'이란 직업을 30대 중반에 쟁취한 조씨는 20대 대학생과 30대 직장인 사이에서 특히 인기 만점인 '파워 롤모델'이다.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녀는 생애 첫 책 '스물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행성: B잎새 펴냄)과 함께였다.

미술 교사가 되겠다고 한양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조씨가 파일럿을 꿈꾸게 된 건 2001년 3월의 일이다. 서울 힐튼호텔에서 체크인 업무를 보다가 50대로 보이는 여성 기장이 두 명의 남성 부기장을 뒤에 거느리고 호텔 정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본 순간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충격과 설렘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 나이가 됐을 때 나도 그녀처럼 누군가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여성 기장이 체크인을 하는 짧은 순간을 놓칠세라 어떻게 파일럿이 됐느냐고 물었다. 미 공군 부대 안에 있는 에어로클럽에서 비행을 배웠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씨는 파일럿들을 체크인·체크아웃시킬 때마다 한 명씩 붙잡고 물어봤다. "어떤 학교를 가서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그렇게 물어본 파일럿이 100명은 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기집애가 무슨 파일럿이냐? 착실히 돈 모아 시집이나 가거라!" 파일럿이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아버지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지인들도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어이없어했다. 서른을 코앞에 둔 여성을 받아줄 조종학교도 국내에 없었다.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경기 오산 미군기지에서 경비행기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토머스 허버드 대사 부부의 비서로 일하면서 기지 출입증을 얻었다. 1년간 경비행기 조종을 배웠고, 2004년에는 미 델타항공 비행교육원으로 유학 가 전문 파일럿 교육을 받았다. 교관자격도 땄다. 마침 항공산업이 급팽창하고 있던 중국은 항상 교관이 부족했다.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네이멍구 바오터우에서 중국인들을 가르쳤다. 조씨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했다. 조씨가 최고로 많이 받아본 상은 개근상. 그때도 성실함이 빛을 발했다. 2007년 해당 학교의 고문이 그녀를 신생 항공사인 지샹항공에 추천했다.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파일럿이었다.

집안이 넉넉해서 그 나이에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땅부자'였지만 자린고비였어요.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요. 그래도 기장이 된 걸 가장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분이 아버지예요."

조씨는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꼼꼼함'을 들었다. "저는 새 직장이 정해져야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어요. 미국에 유학 갈 때도 후보 학교 세 군데를 꼽은 뒤 교수와 재학생을 인터뷰했어요. 제대로 모험을 하려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합니다."

파일럿의 일상에는 늘 하늘이 있고 비행이 있다. 하늘에서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느냐고 물으니 조씨가 답했다. "엄마 생각."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큰 병원에 검사받으러 간다고 나간 엄마는 그 길로 숨을 거뒀다.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 보면서 저 별 하나에 우리 엄마 살까, 지금 내 모습 보고 있을까…." 조씨의 눈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스물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
조은정 지음/행성B잎새

스물아홉살에 파일럿에 도전한 여성 - 조은정
서른 코앞에서 파일럿 도전… 시작은 무모했었죠
날고 싶으면 날갯짓부터

+

기자는 얼굴에 철판 한 장쯤은 깔아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경제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경제팀에 배치됐을 때, 딱 이런 생각이었다. 실제론 아무 것도 모르지만, 뭔가를 좀 아는 척 하며 취재원을 만났고 기사를 썼다. 그러나 얼굴에 깔아놓은 철판이 양심의 가책까지 잠재우지는 못했다. '내가 실제론 경제에 무지하다는 걸 언제까지 숨기고 살 거냐?'

"저, 알고 보면 경제에 대해 백지랍니다"라고 양심 선언할 용기는 없었다. '무식이 들통 나기 전에 빨리 지식을 채워넣자' 싶었다. 결국 틈틈이 경제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얄팍한 계산은 여전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일종의 요점 정리 핸드북을 찾아다녔다. '한권으로 읽는~', '쉽게 쓴~' 유의 제목을 단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는데, 영 요령부득이었다.

처음엔 내가 무식해서, 이해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꼭 그래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 자체가 부실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복잡한 경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를 위한 기초 지식을 잘 설명해주는 책은 드물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모자라는 상황. 그러니 너도 나도 책을 낸다.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경제를 보는 눈이 훤히 뚫려!'

'이 약 한번만 잡숴봐, 만병통치약이야. 무슨 병이든 싹 나아버려'라고 외치는 떠돌이 약장수와 닮았다. 그러나 이런 만병통치약 잘못 먹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찍어낸 책으로 공부하면 명료했던 지식도 흐릿해진다. 특히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런 책이 대거 쏟아졌다. 조악한 음모론을 얼기설기 엮어서 '경제 문맹의 눈을 뜨게 해준다'며 광고한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이런 음모론 서적 외에도 위험한 경제 입문서는 많다. 저자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그냥 '긁어다 붙이는(Copy & Paste)' 식으로 낸 책이 서점엔 흔하다. 사실 관계가 틀렸거나,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식이 얕은 저자가 시장 경험에만 의존해서 무리한 논지를 펴는 경제 전망서도 넘쳐난다. 또 어려운 경제 이론을 쉽게 풀어쓴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이야기는 그냥 건너 뛴 것에 불과한 책도 많다. 어려운 걸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과 쉬운 이야기만 하는 건 전혀 다르다.

스스로 경제 문외한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종류의 책은 안 읽는 게 좋다. 머릿속에 엉뚱한 개념이 들어서서 혼란만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자가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경제학과 신입생이 읽는 전공 교재였다. 조금 딱딱하지만, 기초 교재부터 차분히 읽어나가는 게 오히려 빠른 방법이다. 물론 주류 경제학 교재가 지닌 이데올로기적 편향도 있다. 그러나 이걸 경계하느라 기초 지식을 등한시 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고대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기하학을 배우는데 왕도(王道)는 없다"고 했다. 다른 모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지름길은 없다. 어려운 내용은 어렵게 공부하는 게 옳다.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려 하면 안 되듯, 어려운 걸 쉽게 배우려고 하면 안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떠오르는 기억이 많았다. 예컨대 자연과학 분야에도 '어려운 걸 쉽게 알려준다'며 꼬드기는 책이 흔하다. 그런데 이런 책을 잘못 골라서 읽은 사람들 중에는 황당한 오해를 안고 지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철학의 '상대주의'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비슷한 개념이라고 착각하는 식이다. 저명한 학자의 글에서 이런 오해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경제 분야에 대해 같은 방식의 실수를 저질렀을 수 있겠구나'라는 반성을 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어려운 물리이론을 초보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쉽게 설명하는 능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건 그가 진정한 천재, 진짜 고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이런 천재, 고수는 흔치 않다. 당신이 읽는 책의 저자가 리처드 파인만 수준의 천재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말이다. 어려운 내용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골똘히 생각하며 익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한 뒤로, 출판사에서 급히 기획해서 찍어낸 경제 교양서는 잘 읽지 않게 됐다. 물론 주변에 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예외가 생겼다. 최근 출간된 <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마이클 굿윈 지음, 댄 버 그림, 김남수 옮김, 다른 펴냄)이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이야말로 전형적인 떠돌이 약장수의 '만병통치약' 느낌이다.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을 어떻게 한 권짜리 만화로 담아낸다는 말인가. 이쯤 되면 거의 사기라는 의심도 든다. 그래서 처음엔 서평 청탁을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마음이 돌아선 건 내가 만화를 워낙 좋아한 탓이다. 만화라면 일단 덮어놓고 탐내는 버릇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는 또 한 번 생각이 바뀌었다.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한다는 책이 꼭 나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다.

거창한 제목과 달리, 불필요한 욕심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가격이론이나 IS-LM 곡선처럼 경제학 입문서라면 반드시 담아야 할 내용이 이 책에는 없다. 이런 내용을 만화책 한 권으로 공부하긴 무리다. 대신 이 책은 대학의 경제학 교재를 파고들다보면 오히려 놓치기 쉬운, 그러나 꼭 알아야 할 내용에 집중한다. "자본주의 탄생에서 세계 금융 위기까지 경제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라는 부제가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일종의 역사책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약장수 경제학' 책과 달리, 논지가 일관돼 있고 내용도 알차다.

취재를 하면서 경제이론과 실물경제에 두루 정통한 전문가라고 소개받아 만났는데, 의외로 과거 역사에서 여러 차례 발생한 금융 공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또 다른 공황의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높을 때였다. 그런데 과거 공황의 역사에 대해 관심 없는 경제 전문가라니, 기자 입장에선 당황스러웠다. 수리모델에 치중하느라 경제의 역사, 경제사상의 역사에 대해선 소홀한 경제학 교육의 폐해다. 지금이 위기가 아니라면, 경제가 마치 정교한 기계처럼 움직이는 때라면, 경제사나 경제 사상에 대한 지식은 그저 장식품일 수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경제가 기계장치처럼 움직인 적은 없다. 늘 위기였거나, 아니면 위기를 잉태한 상황이었다. 경제학 커리큘럼이 기계공학 커리큘럼과 달라야 하는 이유다.

경제학 입문자에게 경제사, 경제 사상 공부를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사에 대한 입문서로서 이 책이 지닌 미덕은 '균형 감각'이다. 예컨대 저자는 (흔히 '경제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애덤 스미스에 대해 소개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국부론>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잊은 교훈이 이것이다. '자본가를 경계하라'. 이 내용은 애덤 스미스의 말 그대로 읽어보는 게 좋겠다. '자본가가 내놓은 새로운 법률이나 상업 규제안을 항상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고 실험한 후에 자본가의 법률이나 상업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공공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본가들에게 농락당하고 지배될 것이다.'"

시장만능주의를 옹호하는 경제 전문가가 애덤 스미스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그들은 도덕철학 교수였던 애덤 스미스가 "상인과 제조업자의 비열한 약탈과 독점정신"에 대해 얼마나 분개했는지에 대해선 침묵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전문가가 종종 저지르는 이런 왜곡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차분히 일깨워준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저자가 이 책의 결론에서 "핵심은 민주주의"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는 결국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이며, 따라서 소수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 중요한 문제라는 것. 저자는 "경제는 잘 작동되고 있을 때에도 심각한 결함이 나타났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시장에서 흔히 보는 환경 파괴, 무리한 노동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저자는 "이 결함을 고치려면 경제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라고 이야기 한다. 저자가 준비한 답변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라는 것. 경제정책 당국자나 금융 실무자가 아닌 보통 시민이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경제학 비전공자인 저자가 경제사 입문서를 쓴 이유 역시 그래서다.

앞서 소개한 애덤 스미스의 경우처럼, 경제 전문가가 자신의 이해관계 또는 편견 때문에 종종 왜곡해서 전하는 경제 상식은 지금처럼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전염병 바이러스만큼이나 위험하다. 이에 대한 항체가 없는 경제학 입문자라면, 이 책은 효과 좋은 '백신' 주사가 될 수 있다.

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
마이클 굿윈 지음, 김남수 옮김, 댄 E. 버 그림/다른

한 권으로 마스터? '약장수' 경제학은 가라!

+

나는 책을 읽을 때 인정사정없이 책장을 접는다. 나중에 다시 볼 부분을 표시하기 위해서이다. 단, 언젠가 어느 선배에게 배웠던 요령이 있다. 책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위 귀퉁이를 접고, 그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곱씹고 싶은 부분은 아래 귀퉁이를 접는다. 나중에 서평을 쓰거나 할 때는 위 귀퉁이가 접힌 쪽을 펼친다. 그게 아니라 심심해서, 혹은 다른 곳에 인용할 멋진 문장을 찾을 때는 아래 귀퉁이가 접힌 쪽을 펼친다.

<인간 이력서>(볼프 슈나이더 지음, 이정모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를 읽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서평을 쓰려고 책을 다시 집었을 때, 조금 당황했다. 아래 귀퉁이만 잔뜩 접혀 있었기 때문이다. 400쪽 남짓한 본문에서 35군데나. 몇 군데만 인용해 보겠다.

"로마의 특권층, 러시아 귀족, 영국의 상류층 같은 일부 소수파가 사치에 빠져 흥청거리는 동안 지구는 흠집이 나지 않았다. 문제가 된 것은 사치가 민주화된 다음의 일이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안락함과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멋진 성취였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누리는 사치는 평온함을 깨뜨리고, 도로를 막고, 공기를 더럽히고, 아름다운 풍경을 짓밟도록 만들었다." (239쪽)

"1994년 르완다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투치족과 후투족이 살해당했을 때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매년 120만 명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통계 때문에 유엔 회의가 소집된 적은 아직 없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인간과 자동차의 관계는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에서 자동차가 대규모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상 소음과 공해, 사망자와 장애인은 늘어나게 되어 있다." (243, 244쪽)

"관광 산업의 시작은 여행을 즐기는 영국인들의 습성과 영국적 '스포츠' 정신의 산물이었다. 동시에 저 황막하고 수천 년 전부터 악명 높은 알프스 산맥을 아름답게 느낄 수도 있고 그곳에서 휴가를 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알프스 산맥은 오늘날 전 세계 관광 산업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알프스가 '아름답다'는 해괴한 주장을 펴면서 이목을 끈 것은 루소였다." (본문 246쪽)

"인간은 정말 대단한 존재다. 농사를 짓기 위해 숲을 태우고, 자원을 채취하려고 지각을 긁어내는가 하면 도시와 도로, 공항과 공장으로 땅을 덮어 버리고 쓰레기는 도시 변두리 지역으로 내다 버린다. 잿빛 갈색 하늘이 머리 위를 둘러도 개의치 않는다. 비닐봉지들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인간의 부지런함을 말해주는 기념비로 남을 것이다." (296쪽)

"인터넷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인터넷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광고와 포르노 산업이고, 가장 집요하게 사용하는 부류는 테러리스트와 조직범죄 집단이다. 이런 실정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357쪽)

책에는 저자의 이런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자료가 제법 성실하게 나와 있다. 그러니 그런 구체적인 일화, 숫자, 연표를 언급하면서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동의하는 의미로 웃음을 짓거나, 동의할 수 없어 쀼루퉁하거나, 다른 자료를 더 찾아보아야겠다고 호기심을 느낀 부분은, 대체로 위와 같이 저자의 개인적인 편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대목들이었다. 어쩌면 이런 대목들이 오히려 책의 핵심이 아닐까? <인간 이력서>는 얌전하고 건조한 책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 이력서>는 180만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연대기로 정리했다. 그런데 문명의 역사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세계사가 아니다. 사회사, 문화사, 경제사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생존사(史)'다. 인류가 어떻게 생겨났고, 불어났고, 사방팔방 퍼졌고, 마침내 지구의 주인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온 인류를 한 인간으로 보고, 그의 생에서 중요한 사건들만 골라 전기를 쓴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인류의 장편 소설'이라고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저자가 고른 인류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무엇일까? 문명의 흥망성쇠? 전쟁? 진보? 아니다. 저자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서 발전시킨 기술들이다. 인류가 그 기술들을 써서 자연(자원)을 어떻게 착취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는 세계 대전을 다룬 장(章)이 없다. 철학과 이데올로기를 다룬 장도 없다. 왕조와 사회 체제를 다룬 장도 없다. 대신, 제국주의적 팽창을 다룬 장이 있다. 인간이 땅을 차지하려고 다른 인간(원주민)을 몰살한 사건이나 농사를 지으려고 동식물을 멸종시킨 사건이야말로 생존의 고비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구 정복을 다룬 장이 있다. 인류는 채굴로 물질을 정복했고, 철도로 거리를, 증기선으로 바다를, 비행기로 하늘을, 통신으로 시간을 정복했다. 여기까지는 좋다. 생물은 모름지기 생존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 별짓을 다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에 윤리적 잣대를 댈 수 없다.

문제는 인간이 여느 동물과 다른 수준으로 도약하면서 생겼다. 인간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생존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생존을 꾀하면서부터였다. 저자는 자동차 문화, 세계적 관광 문화, 육식 문화를 대표적인 사치로 규정하고 맹렬하게 비난한다. 그리고 인류가 그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몇 징후를 살펴본다. 자원 고갈, 도시 집중, 지구 온난화, 쓰레기, 생태계 파괴 등이다.

이 대목부터 저자는 시니컬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불쑥불쑥 드러낸다. 가끔은 저자도 인류의 문제 해결 능력에 감탄하고, 인류가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한 것도 있다고 말하지만(예술이 대표적이다), 속마음은 '지상의 악마는 인간'이라고 했던 쇼펜하우어의 말을 믿는 듯하다.

저자가 보기에, 인간은 지구의 기생충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기생하는 생물을 나무랄 수 없듯이, 지구가 인류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80만 년 전에 도구를 쓸 줄 아는 최초의 인간, 호모 에렉투스가 생겨났던 것은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탐욕과 허영에 휘둘려 자신의 생존 근간을 파괴하는 것도 뉘라서 막겠는가. 더구나 인류는 어차피 멸종할 텐데, 뭘. 인류가 실러캔스처럼 4억 년 넘게 생존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세상에 있단 말이야? 그래서 저자는 눈앞의 현실에만 관심이 있다. 가령 '2018년에 지구에서 90억 명 이상의 인구가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닐까' 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인류가 몇 십 년, 아니 몇 년이라도 더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작금의 위험 요인을 하나씩 따져본다. 물 부족, 에너지 부족, 무분별한 세계화로 인한 지역 농업 붕괴, 용병을 동원한 전쟁, 테러 등이다. 희망도 하나씩 점검한다. 평화주의 이상, 계몽된 인간의 자기통제, 인구 집단들의 형제애, 성공적인 인구 조절 등등. 그러나 결국 저자의 결론은 '모르겠다'이다. 독설을 있는 대로 쏟아낸 주제에 너무 무책임하다 싶지만,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저자는 모든 전망이 결국에는 자기 부정적 예측이나 자기 실현적 예측일 뿐이라고 말하며, 증명할 수 없는 전망에 몰두하느니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고 권한다.

저자 볼프 슈나이더의 이런 시각은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에서 인류를 '약탈하는 인간'(호모 라피엔스)이라고 정의했던 영국 철학자 존 그레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레이는 반인간주의의 기수라고 불릴 만큼 인간 중심주의를 혐오하고 인간의 지성과 능력에 냉소적인데, 슈나이더도 더하면 더했지 뒤지는 것 같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그레이는 어느 정도 초월하는 차원으로 '넘어가' 버린 데 비해, 슈나이더는 끝끝내 억척스럽게 현실에 발붙인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비관하는 와중에도, 슈나이더는 눈앞의 작은 희망을 따져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슈나이더의 견해는 이른바 이상적인 진보주의자들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이를테면 그는 지구 온난화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다고 본다.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가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여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것은 '누구나 품는 정상적인 두려움을 독점한' 짓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지구 온난화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의 한정된 자원은 대기 오염, 식수 부족 등 더 시급한 문제에 쏟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또한 그는 재생 에너지가 이른 기간에 바통을 넘겨받을 가능성은 없으므로, 원자력을 무작정 포기하는 것은 멍청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주장들 앞에서 여러 번 갸웃거렸다. 저자가 가진 정보(책은 2008년에 씌어졌다)가 최신의 정확한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올해 88세인 슈나이더는 독일 최고의 독일어 전문가로 꼽히는 저널리스트이자 수십 권의 논픽션을 쓴 작가이지만, 어쨌거나 과학자는 아니니까.

아무려나 이 책의 미덕은 간단하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이상주의는 필요하다. 그것을 조롱하지 마라. 하지만 우리는 이상주의를 비관주의로 단련시켜야 한다.' 사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서도 이상주의를 견지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비관주의만큼은 다른 곳에서 더 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얻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인류를 대단치 않은 것으로 보는 슈나이더의 시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후련하다고 느낀 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서른 몇 군데나 책장을 접은 것은 그 때문이다.

인간 이력서
볼프 슈나이더 지음, 이정모 옮김/을유문화사

지구의 기생충 '인간'! 언제까지 그리 살래?

+

대한제국 황제 고종(1852~1919)과 일본제국 천황 메이지(1852~1912). 두 사람은 태어난 해가 같다. 왕위에 오른 해도 비슷하다. 고종은 1863년, 메이지는 1867년이다. 권좌에 오른 때 그리고 죽은 해도 엇비슷한 두 사람, 하지만 통치행위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고종은 재위 기간 동안 나라가 망했고, 메이지는 그 망한 나라를 차지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만약 역사가 거꾸로 진행돼 고종이 일본을 차지하고, 메이지가 쓸쓸하게 권좌에서 내려왔다면 2013년 한반도는 적어도 허리가 잘린 나라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역사는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왜 고종은 메이지처럼 되지 못했을까

궁 금하다. 왜 고종은 메이지처럼 되지 못했을까.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에게 강제 개항했다. 일본은 23년 후인 1876년 미국이 자신들에게 했던 것처럼 조선에 개항(강화도조약)을 요구한다. 일본이 미국과 강제조항을 맺었지만, 메이지를 중심으로 유신을 단행해 아시아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조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강제개항 후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할 때까지 34년 동안 제대로 된 개혁과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34년 동안 조선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서울신문> 문화부 학술담당 문소영 기자가 쓴 <조선의 못난 개항>(역사의아침)은 그 작은 답을 제시하고 있다.
책 제목에 쓰인 단어 '못난 개항'은 독자의 입장에서 불편하다. 하지만, 저자 문소영이 이 책을 통해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을 시작했지만, 하급무사와 지식인이 결합해 구체제를 해체하고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했다"며 역사자료와 문서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그 주장 앞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 지만 조선은 개항 이후 34년간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 중심에는 고종이 있다. 사람들은 을사늑약 당시 '옥쇄'를 숨기고. 이준 열사 등을 헤이그에 보낸 것 등을 예로 들면서 고종이 나름대로 대한제국(조선)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문소영은 이렇게 묻는다.

고종에 대한 우호적 평가 있을 수 없는 일

"대한민국의 어떤 대통령이 만약 일본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독도를 포기하고 일본에 넘겨준다고 선언했다고 가정해보자.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그리해야 한다는 결정을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 5000만 명은 그 '어떤' 대통령의 결정을 따를 수 있을까? 아마도 탄핵과 같은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결사대를 구성해서 극단적이 행동을 할지로 모를 일이다."(본문 20쪽)

그런데 고종은 아예 '삼천리금수강산'을 송두리째 일본에 넘겨줬다. 35년 일제식민지배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깊고도 넓다. 아직도 상처는 낫지 않고 있다. 일본 극우만 아니라 역사교과서에서 이제는 당당하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극우 성향의 총리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부정한다. 심지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직업여성'에 비유하고, 말뚝을 우리 사법부에 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이 모든 책임 근원은 고종에게 있는 것 아닐까.

문소영은 "최근 고종의 일가나 조선 말기에 대한 대단히 우호적인 시선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 있다"며 "정책적인 결정이었기에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는데, 책임을 물을 일은 묻고 단죄할 일은 단죄를 하는 것이 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고종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시도를 강하게 반박한다.

일본 '교유개혁'할 때, 조선은 망한 명나라 숭배

고 종은 부친 흥선대원군 섭정기간 10년(1863~1873)을 빼고, 1907년까지 34년을 권좌에 있었다. 34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한 세대다. 충분히 한 나라를 개혁하고 근대화시킬 수 있는 시기였다. 고종이 통치한 대한제국을 삼킨 메이지는 달랐다. 메이지는 아버지 고메이 천황이 급사하는 바람에 1867년 1월 열다섯 살 나이로 즉위한다. 새 천황은 "죠수 출신 이토 히로부미와 사쓰마와 조슈·도사·에치젠 번 등이 연합해 막부를 제치고, 신지 개혁세력"과 함께 개혁을 단행했다. 무엇보다 메이지는 교육제도 개혁을 통해 유신을 성공적 안착시킨다.

"근대화 정신과 서양문화·제도 등 서양문명의 전국민적인 확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교육 제대의 개편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1872년 프랑스 교육제도를 모방해 학제를 공포했다. '학제명령서'는 신분에 의한 취학의 차별을 철폐했다. 신분이 세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문은 입신 출세할 수 있는 자산으로 떠올랐다."(본문 174쪽)

하지만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1871년 '서원철폐'를 단행하자 최익현은 1873년 서원철폐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다. 또 명나라 신종을 위해 세운 '만동묘' 폐지를 결정하자 "유생들은 통문을 내 사람들을 모았고 검은 두건과 가죽 허리띠를 한 사람들이 한성에 1만 명이 모여들어" 원상 복구를 주장한다. 흥선대원군이 1873년 하야하자 다음해 고종은 만동묘를 부활시킨다.

일본 메이지와 신진개혁세력들이 프랑스식 교육개혁을 통해 개혁과 근대화를 통해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을 때 조선 고종과 지도자들은 400년 전 망한 명나라와 죽은 황제를 숭배하는 데 급급했다. 조선과 일본의 미래는 이미 결정난 것 아니었을까.

물론 조선도 서양 문물을 처음으로 접한 유길준, 1905년 '을사오적'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지만 처음이는 반일파였던 이완용처럼 미국을 다녀온 이도 있다. 그리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같은 개혁파가 있었다.

하 지만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냈다. 왜 실패했을까? 문소영은 "김옥균의 실패는 고종만 바라보고, 고종의 결단으로 대부분이 결정되는 왕조국가의 한계 때문이"이라며 "고종이 변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계산에 넣지 못했고, 힘으로 밀어붙일 만한 독자적인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조선을 선도해야 할 지식인인 선비들이 주자학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 같은 정치인이 조선에 있었다면

무 엇보다 조선에는 우리에게는 민족원흉이지만 "영국 유학을 다녀와 '근대화론자'가 돼 메이지 천황 신정부가 들어선 뒤 유럽에서 배은 의회제도와 헌법제정 등 각종 제도를 일본에 이식시키며 급속하게 발전시킨 이토 히로부미"같은 이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독자적으로 '조선의 길'을 제시해줄 만한 조선의 사상가가 부재했다. 개화의 필요성을 지식층인 양반과 선비들이 받아들이고, 선비와 양반들의 각성이 백성들에게 스며들어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흥선대원군이 만약 후쿠자와 유키치처럼 유럽과 미국을 주유했더라면, 최소한 1847년에 예정대로 중국에 사신으로라도 다녀왔더라면, 그의 대외정책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본문 113쪽)

조선 지식인 사회는 그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파였다가 친청파가 되고, 친청파였다가 친러파가 됐다. 그리고 친러파였다가 친일파가 됐다. 주류기득권이 자리만 바꿨을 뿐 조선사회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일본은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에서 천황제로 권력체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섰"고 "인재를 등용하는 방식도 신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발탁"함으로써 정치지형만 아니라 일본사회 전체가 거대한 변화를 겪게 됐다.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한 일본... 무능한 주류가 존속한 조선

그 럼 조선에서는 언제쯤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섰을까. 1862년 진주농민전쟁과 1894년 동학항쟁은 비주류가 주류에 저항한 사건이다. 하지만 조선 기득권은 이를 강경진압했다. "조선 고급관리 사교모임 같았던 독립협회"는 동학농민전쟁과 의병활동을 폄훼했고 자주의식은 없었다. 강만길은 <고쳐 쓴 한국근현대사>(창비·2006)에서 이렇게 적었다.

"조선은 세계 만국이 오늘날 독립국으로 승인하여 주어 조선 사람이 어떤 나라에 조선을 차지하라고 빌지만 않으면 차지할 나라가 없을지라. 그런 고로 조선에서는 해육군을 많이 길러 외국이 침범하는 것을 막을 까닭도 없고 다만 나라에 해육군이 조금만 있어 동학이나 의병 같은 토비나 진정시킬 만하면 넉넉할지라."(본문 207쪽에서 재인용)

자신들 동학과 의병들에게 자신들 기득권만 보호해주는 군대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조선 관리들이었다. 일본과 대결에서 승리한다는 자체가 허망할 수밖에 없다. 무능한 주류 때문에 나라를 잃고 많다. 문제는 이후에도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 "한반도에서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선 경험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김대중 대통령이 호남을 바탕으로 정권을 잡은 것이나, 2002년 민주당 내에서 소수이자 비주류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처럼 비주류가 주류를 이기고 권력을 잡은 적은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1년 12월 10일 대선후보 출마 연설을 통해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며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고 패가망신했다"고 꼬집었다.

일본 극우 비난보다 조선 개항 실패를 직시해야

주류는 이런 노무현을 가만두지 않았다. 비주류 중 비주류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지만, 기득권은 5년 내내 노무현을 비난했고, 심지어 1년 만에 탄핵을 시도했다. <조선의 못난 개항>을 읽으면서 노무현이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고, 한편으로 불편했다. 이른바 '자학사관'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종과 메이지가 같은 시기에 태어나고, 권좌에 오르고, 죽었다. 결과는 고종은 메이지에게 폐위당하고 자신의 나라는 망했다는 점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직업여성이라 모독할 때 우리가 일본대사관에서 일장기만 불태운다면 어떻게 될까. 113년 전 대한제국 멸망의 교훈을 체득하지 못했다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불편하지만 냉정하게 그 시대를 평가하고 분석해 다시는 나라가 망하는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조선의 못난 개항
문소영 지음/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개항기 조선·일본의 엇갈린 운명
고종과 메이지의 '결정적' 차이는 이것

+

조선 건국은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지만, 이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연구서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던컨(John B. Duncan) 교수의 <조선왕조의 기원(The Origin of Choson Dynasty)>은 그 저서들 중 하나이다.

조선 건국에 관한 기존의 견해는 다소 단순하거나 기계적인 것이었다. 일제의 식민사학에서는 단순한 궁중 반란으로 보았다. 한국 역사를 정체성과 분열의 역사로 보는 것이다. 식민사학에 반대하는 민족사학은 친명 사대주의 세력의 집권으로, 실증사학에서는 토지 소유를 둘러싼 지배 세력간 투쟁의 결과로, 마르크스사학에서는 봉건사회가 강화된 사건으로 이해했다. 보는 눈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정체나 퇴보, 일종의 해프닝으로 보았다.

내재적 발전론은 이런 해석을 전면 부정하고, 조선 건국을 구세적 열정에 불타는 신흥사대부들의 혁명이라고 본다. 신흥사대부는 신분으로는 지방향리 출신이고, 경제적으로는 중소지주이다. 이념적으로는 신흥 학문인 성리학을 수용하고, 대외정책에서는 친명파들이다. 개경을 중심으로 한 대토지 소유자들이자 불교 신봉자들이고, 친원파인 전통 귀족들과 정확히 역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이 해석은 이후 조선 건국을 설명하는 주류로 자리 잡았다. 던컨 교수 저술의 뛰어난 독창성은 바로 이 해석에 정면 도전했다는 점에 있다. 첫 번째 반론은, 조선 전기의 중요 가문들을 살펴보았더니 압도적 다수가 고려의 저명한 중앙 양반들 후손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신흥사대부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길게 보면 주요 양반 가문들은 11세기 고려부터 15세기 조선까지 연속되어 있다. 두 번째 반론은, 이들이 노비와 소작농이 경작한 대토지를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토지제도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다. 요컨대 조선 건국은 ‘혁명’이 아니라 ‘수구’라는 것이다.

내재적 발전론에 반대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내적으로 민족주의 정서가 깔려 있고, 긍정의 역사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던컨 교수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한다. 그의 힘은 꼼꼼한 자료 읽기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데서 나온다. 그만큼 반박이 쉽지 않다.

문제는 그러면 한국사는 역시 정체의 역사일 뿐인가 하는 점이다. 왕조 교체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던컨 교수 역시 그것이 자신의 고민이었음을 밝힌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던컨 교수는 고려와 조선의 제도를 연구했다. 그 결과 “고려부터 조선 전기까지 한국사의 중심적 주제의 하나는 중앙집권적 관료제도를 창출하려는 노력이었다”는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이 조선 건국의 시대적 과제이자, 긍정적 결과라고 평가한 것이다.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만들어낸 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던컨 교수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고려는 중앙과 지방의 느슨한 연합으로 이루어진 국가체제로 인해, 국가의 안정을 기하기 힘들었다. 권력, 부, 신분을 둘러싼 중앙과 지방, 왕과 귀족의 투쟁은 고려말 지방의 몰락, 권력과 부의 중앙귀족에의 집중을 가져오면서 전반적인 국가해체 현상이 발생했다. 조선 건국은 개혁적 양반과 이성계 세력이 연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고, 그 시스템이 중앙집권적 관료제인 것이다.

하지만, 던컨 교수는 조선 건국이 새로운 사회정치적 질서를 수립한 것이 아니라, 세력상 중앙 귀족층과 신흥 이성계 집단의 타협이며, 국가체계상 관료층과 왕 사이의 권력 균형이라고 본다. 그가 제시한 여러 자료를 볼 때 균형 잡힌 해석이다.

존 던컨 교수는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흥사대부들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주류 학계의 해석에 반발, 이성계 세력이 고려 귀족들과 타협해 개국했다고 말한다. 사진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국보 제317호).

이 저서의 또 다른 장점은 ‘비교’에 있다. 비교의 틀은 아이젠슈타트(N. Eisenstadt)의 <제국의 정치제도(The political system of Empires)>에서 원용하고 있다. 오스만 투르크, 사산조 페르시아, 전통 중국의 제도를 비교한 명저이다. 조선 건국에 따른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화를 다룬 도이힐러(M. Deuchler) 교수의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역시 문화인류학의 틀을 통해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그만큼 해석의 폭이 넓다. 우리 역사학 연구는 대체로 비교 없이 한국사 자체만 다루기 때문에 보편적 지평을 확보하지 못하고 좁은 지역적 관점에 머무는 단점이 있다.

저자는 또한 제도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깊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현실 정치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학자로서는 갖기 어려운 센스이다. 하지만, 조선 건국의 정치과정과 사상적 전환에 내포된 역동성을 드러내는 데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분석은 성공적이나, 역사를 성찰의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사색의 깊이는 그만큼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호이징가처럼 역사 연구에서 둘을 동시에 성취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역사 연구의 꿈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의 기원
존 B. 던컨 지음, 김범 옮김/너머북스

조선의 건국으로 지배층 교체는 없어, 신흥사대부란 허구…혁명이 아니었다

+

LP 레코드를 연상하게 하는 검은 원과 작은 구멍, <비틀스의 작은 역사>는 표지부터 저자의 전작 <록의 작은 역사>와 닮았다. 고전적인 흑백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영미권 록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줬던 전작처럼 이 책도 개성 넘치는 붓 터치로 서구의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불리는 비틀스의 복잡한 역사를 명쾌하게 정리한다.

책은 1940년 존 레넌과 링고 스타의 출생을 시작으로 비틀스의 결성과 비틀마니아의 출현, 밴드의 갈등과 해체, 솔로 활동,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의 사망을 지나 2010년 1월 링고 스타의 신보 발표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카메라를 들고 60년 역사를 내달리듯 다큐멘터리 같은 생생함을 전한다. 해적판을 포함해 비틀스와 각 멤버들이 남긴 수많은 앨범과 싱글에 대한 설명ㆍ평가도 읽을 만하다. 비틀스에 관한 서적이 무수히 많지만 이처럼 쉽게 읽히는 책도 흔치 않을 것이다.

비틀스의 작은 역사
에르베 부르이 지음, 이주향 옮김/서해문집

비틀스의 복잡한 역사, 쉽고 명쾌하게 정리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