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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4월 2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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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이 27명 있었고, 세자가 29명 있었다. 현왕의 적장자(嫡長子)가 세자로 책봉돼 왕위에 오르는 것이 누구나 아는 '왕위계승'의 원칙. 그러나 실제 이런 경우는 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순종 등 7명뿐이었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권력 집단 간의 갈등이 주요 변수였다.

'2인자'인 조선의 세자는 그만큼 불안한 자리였다. 다음 왕위에 오를 미래 권력은 '현재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자간은 물론 신하와의 관계에서도 늘 '외줄타기'를 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왕의 공식 후계자인 세자의 삶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속 학자 7명이 '탄생, 책봉 그리고 교육' '혼례' '대리청정' 등으로 나눠 들여다본다.

1443년(세종25) 4월 17일 세종이 교지를 내렸다. "근래에 내가 병이 심하여 정사에 부지런하지 못하니 세자에게 뭇 정무를 맡기겠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나섰다. "태자의 청정(聽政)은 말세의 일로…(중략) 지존은 둘일 수 없고, 정권도 나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는 7년 10개월간 청정(聽政)했다. 조선 최초의 대리청정이다.

대리청정은 국왕이 아프거나 늙어 국사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왕위 계승자가 왕을 돕는 제도다. 조선왕조에서 대리청정을 한 세자는 7명. 문종처럼 장성한 세자의 국정 수행 능력을 키운다는 '예비 수업' 목적이 가장 컸지만, 13년 5개월간 대리청정한 사도세자는 '정치적 국면 전환용'이었다. 노회한 정치가였던 영조는 세자를 정치 일선에 앞세우고 뒤에서는 소론을 중용해 노론을 견제하는 정책을 폈다.

세자 책봉 시기는 대개 7~10세. 살아있는 권력인 왕에게 모든 힘이 집중되는 조선의 정치 시스템에서 세자의 권한과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직접 정치에 간여할 수 없고, 거처를 함부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세자의 하루는 왕과 왕비에게 드리는 문안 인사로 시작됐다. 조석으로 왕의 수라상을 살피는 시선(視膳), 부모의 약을 먼저 맛보는 시탕(侍湯)도 세자의 역할. 나머지 시간은 공부하는 데 보냈다. 책봉 직후 성균관 입학례를 거행하고 나서,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로 구성된 세자시강원 관료들에게 아침·점심·저녁 세 차례 강의를 들었다. 유교 경전 외에 말 타기, 활쏘기 등 육예(六藝)도 연마했다. 최고의 국왕 만들기 프로젝트인 셈이다.

세자가 된다 해도, '무사히 살아'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첩첩산중이었다. 책은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세자들을 비중 있게 소개한다. 태종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은 공부에 관심 없고 여색을 탐한다는 이유로 폐세자가 됐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요절한 세자(세조 첫째 의경세자, 명종 첫째 순회세자, 순조의 첫째 효명세자)도 있다.

왕과의 불화도 잦았다.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은 것은 물론, 학질에 걸려 사망했다는 소현세자는 아들을 정적으로 여긴 인조가 죽였다는 설이 나돈다. 광해군의 아들로 세자에 책봉된 이지는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가시울타리 쳐진 집에서 가택연금)됐다. 그는 감금 생활 중 밤중에 빠져나갔다가 나졸에게 붙잡혀 사약을 받고 죽었다.

돌베개 출판사가 2011년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함께 시작한 '왕실문화총서'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팩트'는 재미있지만, 소설처럼 술술 읽기는 어려운 책이다.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심재우 외 지음/돌베개

조선시대 ‘미래권력’ 세자… 맏아들 왕위계승은 7명 불과
不安에 떠는 미래 권력, 그 이름 세자
조선의 미래 권력, 왕의 후계자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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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째회, 늘찬배달, 누리사랑방, 교감지기, 똑똑전화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원을 살피면 그 뜻이 짐작가는 것이 있기도 하고,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단어도 있다. 이 말들은 각각 세꼬시, 퀵서비스, 블로그, 솔 메이트, 스마트폰 등에 대해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순화어’다.

아름다운 고유어를 널리 쓰이게 하겠다는 의도야 이해하지만, 언어는 언중에 의해 사용되어야 언어다. 순화어로 제시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주변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 걸 들은 적이 없는 걸 보면, 국립국어원의 의도는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부 누리꾼들은 ‘국립국어원’도 ‘나라세움우리말터’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농담도 던진다.

돌아보면 언어의 ‘타락’을 개탄하는 소리는 늘 있었다. 누군가는 상스러운 은어를 쓰며 낄낄대는 ‘요즘 애들’을 탓하고, 누군가는 어려운 외래어를 섞어 쓰는 ‘먹물들’을 비판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문화를 동경해 그들의 말을 빌려오는 사대주의에 가슴을 치는 분위기도 있다.

<모든 언어를 꽃피게 하라>(원제 You are what you speak)를 보면 언어의 타락에 분개하는 세력은 전 세계에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타락은 현대에 들어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고대 로마의 문인 키케로는 사람들의 라틴어 지식이 “수치스러운”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저자는 이들을 ‘잔소리꾼’이라고 묶어 버린다. 키케로나 이후 잔소리꾼들의 우려대로 고대부터 언어가 타락하고 쇠퇴했다면,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는 동물 울음과 비슷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 아닌가.

잔소리꾼들이 지금 세상에 쓰이는 말들에서 ‘무능력’을 발견한다면,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기적’을 느낀다. 잔소리꾼이 언어에서 실수를 찾기 위해 귀를 세운다면, 저자는 흥미로운 변이를 본다. 물론 한 사회는 ‘표준어’를 갖고 있으며 이를 널리 쓰도록 장려한다. 하지만 저자는 “표준어는 우리가 명료하게 생각하고 기본적 품위를 지키도록 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취업 면접이나 정치 연설, 에세이, 소설 등 우리 삶의 틀지어진 분야들에 접근하도록 해주는 규약이다. 표준어는 교육과 학식을 나타내는 징표이지 교육과 학식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라고 정리한다. 온갖 은어와 방언과 문법적 오류들은 그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런 인식이라면 표준어는 ‘표준 방언’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언어의 힘이 막강하다는 인식은 고대부터 있었다. 기독교의 신은 자신에게 도전하려 바벨탑을 세우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간단한 방법을 썼다. 성경이 이르는 대로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손가락 하나 까닥해 인간들을 모두 죽이거나 바벨탑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 테지만, 신은 그저 인간들의 말을 혼란케 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했다. 언어는 바벨탑을 쌓을 만한 인간의 힘이자 약점이다.

언어는 신에게 도전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권을 탈환할 만한 힘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다. 그는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프레임 설정’에 앞섰기에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본다. 공화당은 상속세를 ‘estate taxes’ 대신 ‘death taxes’(사망세)라고 부르기 시작함으로써,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퍼뜨리는데 성공했다. 레이코프는 민주당이 세금을 회비(membership dues) 개념으로 전환하는 등의 프레임 재구성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바벨탑을 만든 이든 레이코프든, 언어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면 언어의 돌연변이, 훼손에 민감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워프주의’는 언어의 힘에 대한 또다른 가설이다. 이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으면 그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다고 믿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 ‘정’에 해당하는 말이 영어에는 없기에, 영국인들은 정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그린은 이런 생각들에 반대한다. 물론 언어는 힘이 세지만, 언어가 없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건 과장이라고 주장한다. 언어와 생각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미묘한 상호작용을 맺는다. 어떤 정서, 생각을 나타내는 하나의 어휘가 없다면, 여러 개의 어휘로 풀어 설명하면 된다. 언어는 변화하기에, 무언가를 말할 필요가 있으면 그것을 지칭하는 언어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사실 엄격한 규칙을 세워 언어를 통제하기 시작한 건 근대 이후의 일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보면 키케로 같은 잔소리꾼은 소수에 불과했으며, 누가 어떤 말을 쓰든 개의치 않았다. 아무 문제 없던 곳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시민계급의 형성과 시기를 같이한다. 근대 서유럽 국가들은 “교육받은 시민계급이 곧 국가의 힘”이라는 믿음 아래 언어에 대한 보편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민족국가의 출현은 언어의 ‘통일’을 가속화했다. 비교적 단일한 민족으로 구성됐으며 뚜렷한 국경선을 가진 국가들은 군대와 이를 지탱할 세금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토지와 인구 정보를 담은 기록이 필요했다. 그래서 ‘표준 언어’가 권장되기 시작했다. 서유럽 국가들의 언어 표준화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진행됐지만, 이 과정을 수십 년간 압축적으로 진행한 나라도 있다. 바로 이스라엘이다. 전 세계에 산재한 유대 민족들은 엄숙한 종교 의식을 치를 때만 히브리어를 사용하곤 했는데, 몇몇 엘리트 민족주의자들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히브리어를 살아있는 언어로 되살려냈다. 유대계 러시아인 엘리에제르 페를만은 이 사라져가는 언어를 되살려 부엌, 시장, 거리에서 사용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전통 히브리어 어근에서 현대에 어울리는 단어를 파생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큰아들을 키우며 다른 언어를 일절 접하지 못하도록 할 정도였다. 이것은 “고대의 언어로 하여금 현대 민족주의에 봉사토록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언어를 통해 민족 형성을 추진하는 사업을 굳이 나쁘다고 볼 필요는 없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언어 표준화의 정치적 동기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언어 표준화는 선악의 싸움이 아니라 필요의 게임이다.

모든 언어는 평등하다. ‘다른 언어보다 더 평등한’ 언어는 없다. 프랑스어는 법에, 독일어는 철학에, 이탈리아어는 노래에, 영어는 시에 적합하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신화’다. 이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강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순전히 역사적 우연의 결과다. 이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과 그들의 민족국가가 융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휘가 상대적으로 넉넉한 언어가 있다. 다른 언어와 접촉해 외래어를 많이 받아들이거나, 기술적인 어휘가 늘어난 경우다. 물리학, 화학 등의 현대 과학은 유럽, 북미에서 주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들 나라의 언어에 관련 어휘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언어의 타락에 대한 우려는 신경과민에 불과하다. 미국에선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 인구가 늘어나면서 영어가 “위협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 “중력이 위협받고 있다거나 포크의 사용이 위협받고 있다는 얘기만큼이나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이민 1세대는 당연히 스페인어를 선호하겠지만 2세대, 3세대로 갈수록 영어가 우세를 점한다. 한 사회 내의 하층민이 쓰는 언어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층어’들이 사회적으로 낮을 따름이지 언어적으로도 낮지는 않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예컨대 미국의 흑인 영어는 무규칙하게 보이지만, 사실 정교한 문법에 의해 사용된다. “He sick”은 “그는 지금 아프다”지만 “He be sick”은 “그는 자주 아프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규칙 없는 언어는 없고, 규칙은 늘 만들어진다. 언어학자는 기존의 규칙을 언중에 강요할 것이 아니라, 언어에 내재한 규칙을 발견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저자는 언어의 타락을 걱정하는 이들이 사실은 정치적·문화적 진보를 두려워하는 것 아닌지 의심한다. 미국의 작가 린 트러스는 한국에도 번역된 <먹고, 쏘고, 튄다>에서 올바른 문장부호 사용법을 재치있게 소개한다. 자유로웠던 6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트러스는 “다른 여자아이들이…꼴사납게 목에다 사랑의 물린 자국을 얻어가지고 올 동안” 문장 부호 사용법을 공부했다고 고백한다.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프리라이팅(글쓰기 규칙을 무시하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적는 것) 교육을 비판하는데, 속셈에는 진보적 교육운동에 대한 불편함이 묻어있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언어는 구름과 같다. 구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치와 형태가 바뀐다. 여러 나라들이 경계를 접하고 사는 유럽을 떠올려보자.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접경에 사는 사람들은 때로 두 언어가 뒤섞인 말을 하곤 하는데, 그것은 잘못, 열등이 아니라 언어의 다양한 변이 과정이다. 좁은 땅에서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산맥과 강과 길로 나뉜 경계를 지나면 어휘와 어조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걸 느낀다. 방송으로 전달되는 서울 사람들의 ‘표준어’ 때문에 사투리들이 힘을 잃어가는 듯 보이지만, 사투리는 촌스러운 말이 아니라 한국어의 또다른 가능성이다. 평안도 사투리가 없는 백석의 시, 충청도 사투리가 없는 이문구의 소설, 표준어를 쓰는 4·3 영화 <지슬>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무엇보다, 정확한 문법을 지키지만 헛되거나 거짓된 말이 무슨 소용일까. 최고의 교열자들이 감수한 대통령의 연설보다, 70이 넘어 한글교실에서 배운 글로 삐뚤삐뚤 써내려간 할머니의 편지에서 우리는 더 많은 감동을 받곤 한다. 언어는 그렇게 살아 움직인다. 규범을 정한 자들의 손아귀를 미끌미끌하게 잘도 빠져나간다. 그 광경에 안타까워하지 말고 박수 치며 즐기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모든 언어를 꽃피게 하라
로버트 레인 그린 지음, 김한영 옮김/모멘토

언어의 우열은 없다… 문법보다 소통이 중요
아랍어에는 ‘낙타’를 표현하는 단어만 6000개라는데…
표준어는 근대국가를 위한 언어 통제의 결과… 언어는 방임해도 타락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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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의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는 공동체에 대한 통념을 전복하는 책이다. 대개 하나의 공동체는 언어·신화·역사 등을 공유하며,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유지하고 통합을 다진다. 또한 공통의 정치질서와 경제질서 등 누구나 수긍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이른바 ‘합리적 공동체’를 추구한다. 하지만 알폰소 링기스가 보기에, 공동체를 통합하는 ‘합리성’ 자체가 폭력적일 때가 많다.

공동체의 합리적 측면이 강조될수록 개개인 고유의 개인성은 상실된다. 이런 합리화 과정에 저항하는 사람들, 즉 고유의 개인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광신도, 정신질환자, 위험인물, 야생인간’ 등으로 낙인찍히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동체에 굴복할 것을 강요당한다. 때론 교육과 문화, 언론 등 온건한 방법이 쓰일 수도 있고, 때론 폭력과 고문 등 무자비하고 잔인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처럼 공동체는 과학과 기술로 대표되는 합리주의를 통해 타자를 희생시키고, 그 기반 위에 공동체를 세운다.

알폰소 링기스는 합리적 공동체의 대안으로 ‘타자 공동체’, ‘죽음 공동체’를 제안한다. 모든 사람이 고유의 개인성을 지녔고, 이로 인해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합리적 공동체의 공통 과업을 위해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홀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당황한다. 하지만 바로 이때 죽음 공동체의 단초가 시작된다. “오직 나만의 것인 생명의 열기와 맥박을 느끼는 감각”을 되찾기 때문이다. 링기스는 이 감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을 견뎌야 하는 타자”를 보게 할 뿐만 아니라 “타자를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는 죽음의 장소에 자신을 완전히 이입하는 개인은 타자의 형제가 된다”고 강조한다.

링기스가 죽음 공동체를 철학적 화두로 삼은 것은 인도 남동부 해안도시 마하발리푸람을 여행하는 도중 풍토병에 걸린 자신을 도와준 이름 모를 네팔인 때문이다. 그 네팔인은 알몸에 누더기 같은 허리감개 하나만 걸친, ‘일반’ 세상의 눈으로 보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혼미한 정신으로 별 하나 없는 해변을 걷던 링기스를 돕고자 동네 어부를 수소문했고, 파도가 심한 바다를 건너 해변에서 100㎞나 떨어진 도시의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고는 이름도 밝히지 않고 이내 떠났다. 링기스는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도와준 그 네팔인을 떠올리며 낯선 사람과 형제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평생 천착하게 되었다.

링기스가 말하는 죽음 공동체는 단지 타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공감하는 것만은 아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타자의 삶과 그가 평생 끌어안고 살았던 삶의 과업을 내 것으로 인식하는 과정이다. 링기스는 이를 “타자들이 세계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했으되 시간 부족이나 역량 부족으로 실현하지 못한 기획들의 윤곽 속에서 내가 짊어질 운명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표현한다. 링기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타인이 비우고 떠난 자리에서 태어나고 타자들이 걸었던 길들로 내몰린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타자들을 파악하고 이해한 가능성들의 현장이요 타자들을 위한 가능성들의 현장이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나의 온 삶이 타자와 모든 것을 공유해야만 가능한 공동체가 바로 죽음 공동체인 셈이다.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공동체>는 개인이 사라진 오늘 우리 시대를 향해, 또한 합리적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개인을 억압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향해 던지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인류가 풀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인 ‘죽음’을 통해 공동체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일독의 가치가 있다.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
알폰소 링기스 지음, 김성균 옮김/바다출판사

"타자를 외면하는 사회는 자멸할 것이다" 링기스의 공동체론
공동체는 과연 합리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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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를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스토어가 있다. 그런데 이 온라인 스토어는 일반적인 정보인 이름과 주소 그리고 이메일 뿐 아니라, 생년월일에 월수입까지 적어달라고 요구한다. 대신 이 정보를 제공하면 1유로(약 1500원)를 할인해준다.

사람들은 과연 할인을 받기 위해 개인정보인 자신의 월수입까지도 제공할까. 독일 베를린의 사회과학 연구센터에서 진행한 이 실험에서 온라인 스토어에서 DVD를 구매한 42명 중 무려 39명이 단 1유로의 할인을 받기 위해 이 업체가 요구하는 개인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추가 정보 제공에 대한 할인 혜택이 끝난 다음에도 개인정보를 제공했다. 더구나 이 실험이 끝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상자의 95%가 개인정보 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75%는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연구는 사람들이 프라이버시가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책 '공개하고 공유하라'는 이 실험에서처럼 이성적으로는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고 말하면서도 무의식과 행동에선 자신의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대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프 자비스 뉴욕대 교수는 다보스 세계경제 포럼이 2007년과 2008년 '글로벌 미디어 리더 100인'으로 선정한 인물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선입견을 바꿔 공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개인의 판단에 따라 숨길 것은 숨기고 내놓을 것은 내놓아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지훈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이 책에 대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의 공개 및 공유에 관한 여러 의문점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 들어가 균형점을 제시한다"며 일독을 권했다.

유투브를 통해 세계적 인기를 얻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무바라크 정권 퇴진을 이뤄낸 이집트의 사례에서 보듯,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서 정보의 공유는 기득권층이 가진 특권과 권력을 분산시켜 새로운 세상을 여는 단초가 됐다. 정보공유는 또 돈이나 무형의 자산이 없이도 새로운 산업을 창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개인정보 공개로 인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자비스 교수는 이에 대해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공유라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가 안착되기까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며, 그렇다고 해서 최고의 미디어이자 자원인 인터넷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사생활 침해 논란의 핵심은 정보 공개 자체가 아니라, 정보를 어떤 의도로 쓰고 정보와 관련된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사회 윤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인터넷을 지키기 위한 자정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책에는 정보를 공개하는 생활을 위한 몇 가지 지침도 담고 있는데, 한 마디로 '바보짓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술을 마시고 블로그에 트위터에 경솔하거나 공격적이고 다른 이를 비난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온라인에서 한 번 내뱉은 말은 영구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더 크고 빠를 뿐 인터넷 역시 생활이며, 이 세상처럼 사람들로 가득한 곳일 뿐이다.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어릴 때 얻은 교훈과 우리가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모두 인터넷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책은 인터넷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각자의 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더 멋진 일을 창조할 가능성을 찾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이와 함께 IT기업들이 촉진시킨 변화를 바탕으로 도래한 공유 시대에 경제가 어떻게 바뀔지를 전망하고, 기업들이 어떻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해법도 함께 제시한다.

공개하고 공유하라
제프 자비스 지음, 위선주 옮김/청림출판

'음주 운전'보다 '음주 인터넷'이 더 위험하다
소통의 시대 `기회` 를 만드는 정보공유 전략
업로드하라…맘껏 나눠라…디지털사회의 풍요는 공유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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