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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5월 1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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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3건의 의거가 조선반도를 뒤흔들었다. 1908년 3월 미국에서는 “한국민은 독립할 자격이 없는 무지한 민족”이라는 망언을 한 친일 외교고문 스티븐스가 전명운·장인환에 의해 사살됐다. 1909년 10월 중국에서는 조선통감부 초대 총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저격을 받고 쓰러졌다. 1909년 12월 이재명은 단도를 들고 명동성당 앞에서 친일파 이완용을 처단하려 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는 건 ‘안중근 의사’ 같은 독립운동가 개인이다. 그러나 이 사건들의 배후에 대한제국 말기 최초의 비밀결사 민족운동단체 신민회가 있었고, 그 뒤에는 공립협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주 한인자치기관에서 국권회복운동 단체로 발전한 공립협회는 한국·만주·러시아를 잇는 거대한 조직망을 갖고 있었다. 신민회는 공립협회의 한국 지부 역할을 했다. 전명운·장인환·안중근·이재명은 모두 공립협회 회원이었다. 그들은 조직적인 지원에 힘입어 거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

책은 한국 독립운동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신민회를 비롯한 대한광복회, 의열단, 조선공산당 등 7개의 비밀결사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들여다 보자고 제안한다. 이 조직 속에는 모든 걸 버리고 독립 투쟁의 대열에 뛰어든 한국의 ‘레지스탕스’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가치들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명멸했지만 조직들은 협력과 대립을 거듭하며 또 다른 조직으로 계승·발전됐다. 조직에 담겼던 생각은 살아남아 후대에 또 다른 운동가들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다. 현행 헌법까지 계승된 구절이다. 그것은 흔히 생각하듯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한순간 외래에서부터 도입된 것도” 아니었다. 구한말 소개된 민주공화 사상은 독립운동 조직 내에서도 대한제국 복원을 추구했던 복벽주의, 입헌군주제를 꿈꿨던 보황주의 같은 군주제와 끊임없이 투쟁을 벌였고, 수십 년간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 임시정부에서 비로소 구현된 것이었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시작은 한국의 레지스탕스, 그들의 투쟁에서부터 비롯됐다”고 말한다.

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건국’에 두고 그 공로를 1948년 정부 수립에 참여한 인물들로 한정하려는 이들이 있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재평가하고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대표적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은 정부 수립에 아무런 기여도 못했기에 가치가 없다. 무수히 많았던 국가 수립 계획도 깡그리 없었던 것이 되고 만다. 수많은 투쟁이 강대국들 사이에 한국의 독립을 기정사실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독립운동가들이 해방전후 만든 여러 법안들이 1948년 정부수립의 기초가 됐다는 사실은 잊혀진다.

오히려 임시정부를 지리멸렬하게 만들고 분열시킨 장본인은 다름아닌 ‘건국의 아버지’였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내 지역주의를 조장하면서까지 대통령 지위를 유지하기에 급급해 하다 탄핵을 받는다. 그 즈음 상하이에서 발행된 독립신문은 이제 “어떤 영웅의 위대한 수단도 바라지 않”게 됐다고 고백한다. “독립운동의 최후 성공은 각자의 노력에 있고 집단적 결합에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패망이 짙어진 1944~45년 즈음 김구의 임시정부와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 김두봉의 조선독립동맹, 나아가 김일성의 만주 빨치산 세력까지도 합작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그 사실을 재차 깨달았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그들이 본격적인 접촉을 이뤄 일제에 맞서기도 전에 해방은 너무나도 빨리 찾아오고 말았다. 결국 다시 권력을 탐한 몇몇 명망가들이 날뛰었고, 그들은 민족적 과제는 내던진 채 미국과 소련에 빌붙어 분단을 선택했다.

한국의 레지스탕스
조한성 지음/생각정원

일제의 야망과 광기에 맞선 혁명가와 비밀결사단체들
일제시대 비밀결사 독립운동가들의 삶
“강심장들의 가슴 뛰는 삶” 항일 비밀결사 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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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사진을 찍는가." 저자 장석주는 "어떤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억은 곧 그것을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종종 눈앞에 있는 실물보다 그 대상을 찍은 사진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는 소설가·평론가 수전 손택이 사용한 '심미적 소비주의'라는 용어로 이를 설명한다. 현대인은 '사진을 통해서 현실을 확인하고 사진을 통해서 경험을 고양하려는 욕망'(손택·'사진에 관하여')을 갖고 있다. 카메라의 대중화는 이미지 소비를 촉진해 우리를 '심미적 소비' 중독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시인·문학평론가 장석주는 해마다 1000권 넘는 책을 사들여 독파하는 다독(多讀)으로 유명하다. 일상적 물건의 의미를 담은 이 책은 그 독서의 산물이다. 저자는 많은 철학자·사상가가 물건을 재료 삼아 사유를 펼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 재료 중에 우리가 평소 자주 접하는 물건 30개를 골라, 신용카드-마우리치오 라자라토, 휴대전화-미셸 세르, 자동판매기-르네 데카르트, 선글라스- 프리드리히 니체 등으로 짝을 지었다. 저자는 사물의 물성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통해 물건들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우리가 사물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것은 생명의 유한함 때문이다. 그 무엇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자각이 이런 매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다 사물의 탄생 계기와 사용법, 인문학적 고찰까지 더해 물건에 대한 풍성한 사유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책' 항목에서 저자는 책의 구조적 특징부터 종이의 재료, 독서의 의미까지 종횡무진 한다. '책은 표지, 속표지, 차례, 본문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가진 형태이고, 그 자체로 시간과 공간을 품은 작은 우주'다. 그 우주가 기록되는 종이의 재료는 채륜의 발명 당시 '뽕나무 껍질, 삼, 넝마, 어망' 등이었다. 이후 제지업자들은 종이를 만드는 데 적합한 섬유질을 얻기 위해 나무 외에도 '솔방울, 개구리 침, 상아 부스러기, 먼지, 양배추 밑동' 등 별별 것들을 섞어 넣었다. 책은 후대에 자기 경험을 들려주는 농경시대 노인에도 비유된다. 수백년 살아도 배울 수 없는 지식이 독서를 통해 한 사람의 삶 속에 들어간다. 그래서 "책은 생명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연금"(움베르토 에코·'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이다.

'망치'에 대한 사유는 '이 단순한 것에 대해 더 말할 게 있을까'로 시작하지만 사유의 최종 목적지는 현대문명과 노동의 불화다. 700만년의 인류 노동사와 함께 한 망치가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쓸모를 잃어가고, 기계화된 공정은 망치를 쥔 노동자를 직장에서 내몬다. 기술문명의 발전이 실업자를 양산하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자는 '노동의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는 속도보다 노동력 사용을 줄이기 위한 수단의 발달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제러미 리프킨 저작 '노동의 종말'을 인용하면서 현재로선 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왜 알면서도 모른 척할까. 궁금하면 '담배-프로이트'를 읽어보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금지가 욕망을 자극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금연이 자극한 욕망에 굴복해 평생 담배를 입에 물고 살았다. "우리의 삶은 승리도 패배도 없이, 극복하거나 모른 척하기를 반복하며 나아가는 운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유혹에 굴복당하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 것. 이 위로, 맘에 든다.

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동녘

프로이트에게 담배란? 헤겔에게 세탁기는?
사진은 찍는다, 이미지를 향한 욕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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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에서 'Assholes'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번역돼 나왔다. 예의와 규칙 따위는 무시해 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안하무인을 'asshole'이라 부른다. 우리 말로는 개자식, 망나니, 철면피, 꼴통 같은 욕설에 해당하는데, 역자는 고민 끝에 '골칫덩이'라고 옮겼다. 한국어 제목은 주차관리원에 행패를 부린 중소기업 회장, 여승무원 폭행 사건 등으로 들끓는 요즘 시류에 맞춘 느낌이다.

습관적으로 새치기를 하거나, 남의 말을 끊는 이들은 걸핏하면 이렇게 외친다. "내가 누군지 알아?"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 무례하고 뻔뻔한 골칫덩이들에 대해 캘리포니아대 철학과 교수가 철학적 보고서를 냈다.

그는 골칫덩이를 이렇게 규정한다. ①특전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②행동의 바탕에 뿌리 깊은 특권 의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③남의 불만에는 면역되어 있는 사람. 이들의 행동은 ④타인에게 지우는 물질적 비용은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혐오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들이 뻔뻔한 이유는 '나는 사회적 관습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부도덕한 특권 의식 때문이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입에서 '멍청한 개자식'이라는 욕이 나오게 한 맥아더 장군을 비롯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등이 차례로 호명된다. 수퍼모델 나오미 캠벨은 휴대전화로 가정부를 폭행했고,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조지 패튼 장군은 야전병원을 순회하던 중 부상당한 군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며 뺨을 때렸다. '골칫덩이 유명인'을 열거하던 저자는 현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 대해선 "오히려 골칫덩이와 정반대"라고 분류했다. "너무 신중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치중한 나머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끌려다닌다."(71쪽)

저자는 힘있는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골칫덩이가 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한다. 골칫덩이 상사는 '내가 상사야'라는 확고한 인식에 사로잡혀 회사 밖에서도 무례한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 골칫덩이 '갑'의 힘은 지위와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

골칫덩이는 사이코패스와는 다르다. 사이코패스는 악의를 품고 행동하며 '도덕 개념 없이' 태연하게 타인을 해친다. 반면 골칫덩이는 '자기 일이 아니라면' 규범 안에서 흠 잡을 데 없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분명 '도덕 개념'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신과 관련된 일에만 도덕적 추론이 왜곡된다. 다른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자신이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

"많은 사람이 그가 만든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은 장애인 구역에 주차하고 동료에게 악담을 퍼부어도 된다고 믿은" 스티브 잡스를 저자는 이런 유형으로 분류한다. 잡스의 친한 친구였던 조너선 아이브의 말.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 그가 카타르시스에 도달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은 그래도 되는 자유와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77쪽)

왜 남자가 더 무례하고 뻔뻔한가(남자는 거침없어야 하고, 여자는 조용해야 미덕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 미디어가 양산한 독설가들(미 케이블채널 '폭스 뉴스'의 닐 카부토, 빌 오라일리 등) 등 솔깃한 소제목이 많다. 그러나 중언부언이 너무 많다. 이들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회는 세상의 협력자들이 단결해야만 더 공정해지고 덜 부정해질 수 있다"는 교과서적 대안에선 더욱 허무해진다.

그들은 왜 뻔뻔한가
아론 제임스 지음, 박인균 옮김/추수밭(청림출판)

부장으로 승진한 당신, '골칫덩이(asshole)' 후보가 되셨군요
라면상무'의 특권의식은 어디서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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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좀 하십니까’는 공간디자이너 노성진 교수의 디자인 이야기다. 어느 날 한 지인이 노 교수에게 “디자인 좀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머뭇거렸던 노 교수는 “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서 단답형 답변을 내놓지 못해 수필식으로 건어 엮듯 이 말 저 말 모아 긴 답변을 내놓게 되었다”며 집필의 계기를 밝힌다. 그러나 노 교수의 글쓰기는 단순히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초월한다. 디자이너의 삶과 철학으로 이어진다.

“디자이너는 연필로만 마법을 부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행위도 그리고 눈빛도 마법의 도구이기 때문이죠.”

책을 읽다 보면 재능기부운동을 펼치는 저자의 철학이 엿보인다. 그는 저소득층을 위해 무료로 공간 건축을 제공했던 건축가 사무엘 막비의 삶을 본받았다. 1980년대 초 부인의 고향인 경기 여주군 용담마을로 거처를 옮긴 이후 마을회관을 설계하고 장수마을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겼다. 건축쟁이로서의 적극적 행동은 이에 머물지 않는다.

용담마을 주민들 얼굴을 하나 둘 크로키 하여 마을 사람들을 위한 개인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노 교수의 재능기부운동은 10명의 전문가, 교수 등과 함께 ‘팀10그룹’을 결성하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팀10그룹’은 나주·익산·하동·순천 등 현지 방문조사를 통해 재능기부보고서를 만들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 보냈다. 재능기부보고서를 본 하동군과 익산시는 유용한 도시디자인 자료로 채택하기도 했다.

노 교수의 재능기부운동은 초·중·고교의 학교 환경 바꿔 나가기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틈틈이 지자체에 디자인 관련 무료 컨설팅도 해준다.

노 교수는 “공무원 한 사람의 의식이 일본 요코하마를 세계 최고의 공공디자인 도시로 바꾸었다. 개개 지자체 특성에 맞는 디자인, 인간을 위한 디자인, 인문학적 시각을 고려한 디자인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책 내용은 독특하다. 도시 건축물의 획일적 창문을 바라보며 타인을 위한 도시공간 철학을 유도해 낸다. 찍어낸 듯한 아파트 디자인이나 교회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디자인 철학의 빈곤을 지적한다. 거리 디자인에 관한 노 교수의 견해도 흥미롭다.

“거리를 한번 나가보세요. 현란한 간판들이 얼마나 어지럽습니까. 간판 문화는 그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디자인 좀 하십니까
노성진 지음/멘토프레스

‘재능 기부’ 실천 공간디자이너의 삶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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