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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5월 4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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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웠다 하는 관리들이 밤새 하는 짓거리라니…. 조선 정조 11년인 1787년의 일이다. 예문관에서 숙직을 하던 김조순과 이상황은 <평산냉연>을 탐독하다가 정조에게 발각됐다. 평·산·냉·연이라는 네 명의 꽃미남과 꽃미녀들이 등장하는 청나라의 유명한 연애소설이다. 기가 막힌 정조는 그 책들을 다 불태워 버리도록 명하고 잡서를 보지 말도록 경계한다. 바로 문체를 바른 곳으로 돌린다는 ‘문체반정’의 시작이다.

정조는 계몽군주로만 알려져 있으나 완고한 주자학자이기도 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의 문장론은 ‘도본문말(道本文末)’로 요약된다. 문은 어디까지나 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정조 또한 문체에 유난히 엄격했다. 정조는 당대의 문체가 진지함과 실용성을 잃고 우울한 정서가 과도하게 표현되거나 상식을 벗어나 치우쳐 있으며 경박하다고 수차례 한탄했다.

그 모두가 명말청초의 패관잡설(항간에 떠도는 자질구레한 이야기) 때문이라며 관련 서적 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반면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라고 했던 다산 정약용의 견해야말로 정조의 생각에 부합했다.

그런 데 이옥(1760~1815)이라는 ‘한미한 유생’은 정조의 이 같은 방침에 대놓고 몇 번이나 ‘개긴다’. 1792년 10월 처음으로 정조에게 문체를 지적당한 이후 하루에 반성문으로 시 50수씩 쓰는 것도 모자라 아예 ‘충군’에 처해진다. 죄인을 군역에 복무하게 하는 제도로 유배나 다름없는 가장 엄한 형벌 중 하나다. 이후 다시 과거를 치렀으나 다시 문체 때문에 충군에 처해진다. 별시 초시에 응시해 수석을 차지했지만 정조에 의해 꼴찌로 강등당하기도 한다.

도대체 문체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지독히도 고집했을까. 문체는 단순히 형식적인 수사학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에서 읽고 쓴다는 것은 옛글에 담긴 전통과 지배적 담론을 몸으로 익히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의미했다. 고문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질구레한 것들을 멋대로 써내려간 이옥의 글은 성리학자들의 눈에 마뜩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무엇이 진리인가를 따지는 글은 어떤 진리가 있다는 건 인정하는 꼴이다. 그런데 이 담론 바깥에서 이뤄지는 진리 찾기와 무관한 담론들은 진리 자체의 존재를 의문시하고 나아가 그 담론 자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어떻게 쓰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무엇을 쓸 것이냐는 관점의 문제”이며 “새로운 사상은 언제나 새로운 글쓰기를 싣고” 온다.

만약 ‘글의 모범’이 있다면 ‘느낌의 모범’ 혹은 ‘정서의 모범’도 있어야 한다. 누구나 말이 안되는 걸 안다. 이옥의 글은 옛글을 모방하는 대신 ‘세계’를 모방했기에 생동감이 넘쳤다. 이옥의 문장을 두고 벗 강이천은 “붓 끝에 혀가 달렸다”고 했다. 이옥이 문체를 버릴 수 없었던 이유도 “보라는 대로, 봐야 하는 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보통 인간, 지식인, 남자/여자, 아이/어른 등 특정한 위치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글을 쓴다. 그렇게 조망한 세계가 유일한 세계의 모습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옥은 때론 시정잡배의 눈으로, 때론 인간의 눈을 벗어나 하찮은 벌레나 미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벌레의 세계에서 보면 인간이 움켜쥔 신념이나 가치, 탐욕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무의미한 일상을 나열해 자칫 무가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옥의 글이 빛나는 지점이다.

이옥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 고 말한다. 그의 글에는 오십대 퇴기와 이십대 청년의 로맨스가 등장하고, 시집갈 날을 받아놓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노처녀의 마음이 묘사된다. 유배 중에도 끊임없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연구했던 다산과는 달리 이옥은 그저 유배 중에 보고 듣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로드 무비처럼 써내려간다. 남편 아홉을 먼저 보내고 그들 옆에 묻힌 과부 이야기, 시장에서 돈을 훔쳐 곤장 스무 대를 맞고 나오면서도 ‘내일은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도둑의 이야기가 그렇다.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문체 때문에 정조에게 반성문을 썼다. 그러나 이옥은 회개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냉큼 회개한 자들의 글보다 이옥을 더 기억한다. “볕도 안 드는 골방에서 싸구려 커피에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열심히 곡을 만들어 부르는 인디밴드처럼, 아마 이옥도 그렇게 별일 없이 살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재미있다. 저자의 말처럼 “시대의 필연성을 믿기 위해서라면 굳이 읽고 쓸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읽고 쓰는 것은 그런 믿음을 거부하기 때문”이기에 이옥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정조의 문체’를 거역한, 글쓰기의 자유인 ‘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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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대형 투자은행 골드먼삭스가 얼마 전, 2050년엔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해 화제가 됐다. 골드먼삭스는 당연히 그때의 한국을 분단국이 아니라 남북통일국가로 상정했다.

지금 유추해 보더라도 통일 한반도는 양·질 모두 전혀 다른 차원의 국가로 바뀔 것이다. 우선 8000만에 가까운 인구와 시장 토대 위에 펼쳐지는 생산·소비는 지금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남북이 연결되면 그것은 곧 1300㎞에 달하는 중국 동북3성과 한반도 국경의 경제적 개방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중국 및 러시아 극동지역이 한반도와 광대한 하나의 경제권역으로 묶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가 동아시아 경제권역의 중심 지위를 확보할 경우 지역안정의 추, 경제·문화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과 북한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윤대규 경남대 서울부총장의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바로 그런 비전을 염두에 둔 남북문제 해법을 제시한다. 윤 교수가 보기에 북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중·일·러 등 주변 대국들이 한반도의 정세 급변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히 중국이 북의 붕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폐해지긴 했지만 북 자체의 생존력도 결코 약하지 않다.

지은이는 북핵과 남북교류를 분리 추진하면서 정치적 통합을 서두르지 말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통합해 가자고 제안한다.

먼저, 북 체제를 인정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제경쟁에서 이긴 자신감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펼칠 것을 주문한다. 남쪽이 먼저 북쪽의 방송과 출판물을 전면 개방해서 누구나 북한 매체들을 접할 수 있게 하고, 북쪽으로 가는 여행을 허용하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개인 차원의 대북 경제활동, 사업을 폭넓게 허용하고, 정부 차원에서 개성~신의주, 서울~평양 고속도로를 무상으로 건설해 주고, 대신 예컨대,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북의 장사정포들을 사정거리 바깥으로 후퇴하게 하는 빅딜을 하라고 권한다. 그야말로 개성공단 10개만 만들면 그게 곧 통일일 수 있다는 발상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국가연합 단계로 가면 그게 사실상 통일이며, 그렇게 될 경우 골드먼삭스의 예언은 실현되고 한반도는 역사상 전례없던 새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윤 교수는 내다본다.

그는 정치가가 아니라 이런 장기 비전을 지닌 진정한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
윤대규 지음/한울(한울아카데미)

개성공단 10개만 생기면 그게 곧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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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기계도 단순하고 명확했다. 토스터는 빵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됐고, 커피 머신은 우리가 원할 때마다 커피를 내려 주었다. 저자는 "인류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오래전에 다 발명됐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왜 신제품이 계속 쏟아질까? 그래야만 경기가 돌아가고 관련자들이 먹고살 일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45쪽)."

어느 집에나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쓸쓸하게 사라진 '시체 기계'들이 있다.

새로운 기능이 나올 때마다 신세계를 영접하듯 구매한 휴대폰이나 컴퓨터는 물론이고 가족을 생각하는 주부라면 필수적으로 구매해야 할 것 처럼 느껴지는 녹즙기, 매일 신선한 빵을 만들어준다고 호언하던 제빵기나 천연원료로 몸에 좋은 간식을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 산 아이스크림 제조기 등은 어김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나 창고나 다용도실 한 구석에 장식품처럼 자리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그 화려한 기술력을 미처 다 꽃피울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말이다.

한 차원 높은 품질, 세련된 겉모습, 세분화된 서비스로 무장한 새로운 기계들은 빠르게 현대인의 마음을 현혹시키지만 곧 그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는 기계를 원했을 뿐이지만 그와 함께 따라오는 부속 부품은 때론 기계보다 더 큰 부피를 차지하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사용설명서도 피곤할 정도로 두껍다. 어떤 기기들은 그 기기를 더 잘 사용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고급 정보'를 얻으려면 온라인을 떠돌거나 그 기계 전문가가 쓴 책을 사기도 해야 한다. 기계는 콧대가 높아지고, 사람은 그 속을 알지 못해 쩔쩔매는 것이다.

수많은 기계 속에서 허덕대던 독일 저널리스트 루츠 슈마허는 어느 날 '나만 이런 걸까?'라는 의문을 가진다.

단지 커피 한 잔을 원했을 뿐인데 커피 머신이 요구하는, '청소해 달라' '이런 부품을 갈아 달라' '온도를 맞춰 달라' 등 주문사항을 보다가 지쳐버린 것. 그가 펴낸 '난 단지 토스터를 원했을 뿐'은 기계가 발달하면서 이상하게 피곤해져 버린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본 책이다. 최첨단 욕조 온도를 맞추지 못해 오히려 2도 화상을 입은 이야기, 노트북이 있어도 그에 맞는 충전기가 없어서 애를 먹은 사건 등 저자가 직접 일상생활에서 겪은 다양한 사례를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써내려갔다. 책은 다소 냉소적인 웃음을 유발하면서 현대화된 기계들 때문에 오히려 불편해진 현재를 꼬집는다.

책은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커피 머신, 스마트폰 앱 등 다양한 현대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그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 삶도 함께 되돌아본다.

아무리 편하게 쓰던 기기라도 일을 하지 않겠다고 파업선언을 하는 순간 애물단지가 되어버리고,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한 신제품은 이전 제품과 아예 사용방법이 달라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나 공감이 갈 만한 이야기라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씁쓸하기만 하다.

특히 비밀번호를 잊어서 쩔쩔맸던 사건을 소개하며 사이버 범죄가 난무하는 시대에 이름이나 생년월일 등 자신과 관련된 비밀번호를 하면 안 되고 'fhjskfM45+##sjurz<' 정도는 써줘야 안전한 비밀번호가 된다고 비꼬는 부분 등은 누구를 위한 기술의 발전인지를 되묻는다.

그는 인류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오래전에 모두 발명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신제품이 공급과잉인 상태로 나오는 이유는 그래야만 경기가 돌아가고 관련자들이 먹고살 일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석기시대가 차라리 더 살기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석기시대인들은 하루에 네 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았고 나머지 시간은 그저 쉬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용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석기시대인들보다 평균수명은 길어졌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자신만의 여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셈이다.

마지막 장을 덮기 직전까지 저자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는 지치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는 책을 대신 읽어주는 앱이 개발될지도 모른다'며 '책도 저자들이 몇 마디 소재만 던져주면 나머지는 PC가 알아서 써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이런 가정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가 충분히 섬뜩하다.

난 단지 토스터를 원했을 뿐
루츠 슈마허 지음, 김태정 옮김/을유문화사

우리가 커피 한잔의 여유를 빼앗긴 건… 그 잘난 커피 메이커 때문
편리함 뒤에 숨어있는 불편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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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20대 미국 청년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하나가 세계를 흔들었다. 권총을 만들어 쏴 보이는 실험 동영상이었다. 문제는 청년이 손에 쥔 권총의 출처가 ‘프린터’였기 때문. 모든 부품을 3차원 프린터로 ‘찍어낸’ 그는 권총을 조립해 격발하는 장면까지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고, 뒤이어 설계도까지 인터넷에 올렸다.

어떤 물건이든 이제 공장을 찾지 않고 스스로 ‘제작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의 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발명가는 거대 기업에 기대지 않아도 제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잉크 대신 플라스틱을 분사해 물건을 찍어내는 3차원 프린터가 나왔고, 재료를 설계도대로 깎아주는 레이저 커터도 있다. 물체를 현실과 최대한 가까운 이미지로 컴퓨터에 옮겨주는 3차원 스캐너도 나와 있다.

저자는 “오늘날 초기 산업혁명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롱테일 법칙’의 창시자로 유명한 저자는 특히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제조의 디지털화’에 주목한다. 그동안 거대 제조업은 전문 지식과 설비, 투자가 모두 필요한 대기업과 전문 인력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3차원 프린터 같은 여러 디지털 도구의 발달로 상황은 변했다. 디자이너가 책상에 앉아 직접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판매까지 할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내공업’ 시대다.

‘메이커스(Makers)’라는 책 제목도 새로운 산업혁명을 주도할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메이커스’는 말 그대로 제조자,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의 제조자는 이전까지의 여느 제조자와는 차원을 달리 한다. 기본 도구부터 다르다. 바로 인터넷이라는 아이디어 공유 수단이다. 개인은 아이디어 공유를 통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한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끌어낼 제조 수단도 훨씬 다양해졌다.

저자는 현 세대의 ‘제조자 운동(maker movement·다양한 분야의 제조업 활동)’이 지닌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데스크톱 디지털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제품과 디자인을 구상하고 시제품을 만든다. 둘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과 디자인을 공유하고 공동 작업하는 문화 규범을 갖는다. 셋째, 누구라도 제조업체에 몇 개든 생산할 수 있도록 디자인 파일을 공유한다. 아이디어가 제품화되는 경로가 대폭 단축된다.

새로운 제조자 운동의 목적은 “거대자본이나 권력이 없는 일반인도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거대 공장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요약한다. 신세대 제조자는 대중 취향의 획일적인 기성품 대신, 대중과 다른 관심사를 가진 소비자를 위해 맞춤형 상품생산에 주력한다.

세계 최초의 오픈소스 자동차 공장인 ‘로컬모터스(local motors)’가 21세기형 제조업체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있는 이 공장은 연간 2000대 이내, 한 대에 평균 7만달러(약 7800만원)짜리 자동차만 생산한다. 그런데도 직원 수는 40명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이 회사는 자동차 소비자와 전문가가 모인 커뮤니티에서 자동차를 설계한다. 외부 전문가와 일반 대중이 머리를 맞대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방식이다. 각종 부품은 세계 각지에서 조달하고, 조립에도 차를 사는 고객이 직접 참여한다.

이 회사의 ‘커뮤니티’가 일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2008년 이 회사는 첫 차의 디자인을 결정하기 위한 콘테스트를 열었다. 우승자는 예술대학의 디자인 전공 학생이었다. 하지만 전체 디자인을 정한 뒤에도 각종 보조 디자인을 결정하기 위한 콘테스트가 계속됐다. 최종 디자인에 참여한 사람 수는 160명이 넘었다.

2만 명에 이르는 커뮤니티 회원은 아마추어와 전문가가 섞여 있다.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도 있고, 일부는 다른 회사 디자이너다. 그저 자동차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아마추어도 있다. 저자는 “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재능의 ‘롱테일’이 나타난다”고 쓴다. 학위를 받은 전문가의 수와 학위는 없지만 도움이 될 만한 기술·아이디어를 가진 사람 수를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많다.

정작 커뮤니티를 움직이는 것은 자신과 취향이 같은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이다. 자동차 디자인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회를 제공해, 잠재 공급(해당 분야에서 쓰이지 못한 재능)과 잠재 수요(기존 생산 방식에선 경제성이 없어 생산되지 못한 상품)를 맞추는 식이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잠재력이 개방형 혁신 커뮤니티를 움직인다.

저자 역시 오픈소스 기업 최고경영자(CEO)다. 현재 무선항공기 자동조종장치를 개발 중인 그는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적는다. “블로그나 토론 그룹이 아닌 소셜네트워크에 커뮤니티를 만들어라.” 뉴스피드와 사진·비디오 공유, 공개 제작 과정 자체가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런 기업에서는 지적 재산권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복제 판매하는 기업이 나와도, 복제에 참여한 사람도 결국 제품의 혁신에 기여하게 될 거란 믿음 때문이다. “중국 개발팀이 우리 회사 개발팀보다 나은 디자인을 내놓으면, 우리 회사는 다시 중국 개발팀의 디자인을 받아들일 것이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상생한다”고 말한다.

21세기 정보과학기술(IT)의 기세에 밀려 제조업에 대한 관심이 다소 떨어지는 듯싶은 요즘, 이 책은 강력한 반론이자 새로운 진단으로 읽힌다. 이미 이런 추세에 맞춰 행동에 나선 국가와 기업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작년 초 앞으로 4년 동안 미국 학교 1000곳에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터 같은 디지털 제작도구를 갖춘 ‘메이커 스페이스(생산설비를 공유하는 곳)’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중국만 해도 상하이에 건설 중인 메이커스페이스가 100곳이다.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도 작년 디트로이트에 메이커스페이스를 지어 직원들의 발명을 장려하고 있다. 이처럼 숨가쁘게 진행되는 세계 산업 지도의 변화를 따라잡고 싶다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책이다.

메이커스
크리스 앤더슨 지음, 윤태경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기업가 ‘갑’ 앞에 ‘을’이던 발명가를 해방시킨 ‘3차 산업혁명’의 힘
"디지털과 제조업의 결합이 가져올 미래"..'메이커스'

[經-財 북리뷰] 메이커스
새로운 산업혁명, 누구나 생산하는 시대
자동차도 총기도 척척… 맞춤형 제조업 시대
창의적인 사람들을 위한 수억개의 미래 기업
기업 위협하는 개인… 새로운 산업혁명 시작된다
발명가가 곧 기업가요 소비자가 곧 생산자다
아이디어·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하는 3차 산업혁명 온다
발명가가 곧 기업가인 시대가 열렸다
창의적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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