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주 새로 나온 책

2013.07.23 09:00 行間/새로 나온 책

제헌절인 17일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1인 시위가 각지에서 열렸다. 그들은 ‘헌법 제1조가 어디 갔어?’라고 물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2008년 미국산 수입쇠고기 논란 당시 시위대는 이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노래의 울림이 커질수록 한양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의 궁금증도 커졌다. 헌법 제1조는 어디서 왔을까?

책은 헌법 제1조의 기원을 찾아간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 독립임시사무소에서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선포했다. 제1조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군주국의 나라 대한제국이 무너진 지 9년 만에 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해도 헌법 1조에 국체를 민주공화국으로 천명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일찍이 1880년대 서양 정치사상을 접한 사상가와 정치가의 오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도 제헌헌법을 만들며 임시헌장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저자는 ‘공화’에 주목한다. 제헌헌법 제1장 총강 제5조의 ‘공공복리의 향상’ 구절을 찾아냈다. 공화주의(res publica)의 어원을 찾아가면 공공의 일이다. 저자는 제헌헌법에 담긴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했던 정신을 배워 오늘 정부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삼기를 주장한다. 현재 빈부격차 수준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지적이다.

저자는 전작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서 6·25전쟁 당시 이념갈등으로 학살극을 벌인 마을들의 미시사를 생생하게 풀어냈다. 전작을 기억하고 책을 고른 독자는 원래 사상사 전공인 저자가 공화주의를 다뤘음에도 개념어라는 특성상 읽기에 조금 벅찰 수 있다. 맺음말에 책의 큰 줄거리를 요약해둬서 먼저 읽으면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박찬승 지음/돌베개

민주공화국 명시 헌법 1조는 어디서 왔을까
한국에서는 지금 ‘공공의 것’을 강조한 공화주의의 ‘건국정신’ 되살리는 게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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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단순한 생명의 근원이 아니었다. 불행과 행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감자, 옥수수, 커피, 카카오, 고추, 담배는 분명 신의 선물이다. 그러나 그 씨앗이 유럽으로 건너간 후 신대륙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원주민들은 유럽 정복자의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뼈 빠지게 일하다 죽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식재료 공급기지로 변했다.

식량과 노동력을 착취당한 것도 모자라 대륙을 건너온 병원균에 희생됐다. 1620년 12월 26일 프리머스(미국 매사추세츠주 지역) 원주민들이 모두 죽은 이유이기도 하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상륙한 청교도 102명이 옮긴 유럽발 전염병이 재앙을 불러왔다. 원주민이 사라지자 집과 옥수수 경작지는 고스란히 이민자들 차지가 됐다.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주인이었다.

처음에 청교도들은 옥수수를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갖고 있던 밀과 보리 씨앗을 뿌렸지만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 배가 등에 달라붙자 옥수수를 먹기 시작했다. 가축 사료로도 좋았다. 덕분에 쇠고기를 꾸준히 먹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옥수수는 육식 문화를 지탱하는 버팀목 노릇을 해 왔다.

일본 식문화사가 사카이 노부오가 저술한 '씨앗 혁명'은 인류 역사를 바꾼 여섯 가지 씨앗의 흔적을 더듬었다. 신대륙에서 발견된 감자, 옥수수, 커피, 카카오, 고추, 담배는 유럽의 축복이었다. 식량난을 덜고 커피와 담배 향기에 세상 시름을 잊었다.

특히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재배되던 감자는 구원의 작물이 됐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유럽인들을 기아에서 해방시켜줬다. 감자를 식생활에 받아들인 나라는 짧은 기간에 국력이 강해졌다. 감자 꽃은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머리 장식으로도 활용됐다. 귀부인들이 따라 했을 만큼 예뻤다.

그러나 담배, 커피, 카카오는 불행의 씨앗이 됐다. 신대륙 원주민들이 노예로 전락하는 계기가 됐다. 17~18세기 중앙아메리카와 브라질 부근에 세운 담배와 커피 농장은 원주민의 피와 땀을 착취했다. 유럽 정복자들은 인력이 모자라자 아프리카에까지 가서 노예를 잡아온다. 무기와 일용품을 판 돈으로 사람을 사 왔다.

그렇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말이 있다. 지금 육식과 담배, 커피의 대가로 건강을 잃은 유럽인들이 정말 많다.

씨앗 혁명
사카이 노부오 지음, 노희운 옮김/형설라이프

감자·카카오 등 인류 문명 바꾼 6가지 씨앗들
원주민에겐 `씨앗`이 불행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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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관점, 그중에서도 트로츠키주의 관점에서 아나키즘을 비판한다. 지은이 존 몰리뉴(65·사진)는 트로츠키주의에 뿌리를 둔 국제 사회주의자 그룹인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ST)의 일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 사회주의 운동가·이론가로 활동해왔다. 국내에도 번역·출간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레닌에 대해 말하지 않기>(공저), <마르크스주의와 정당>의 저자이기도 하다.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은 2010~ 2011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스페인, 시리아 등에서 대규모 반정부 투쟁이 번지고 그중 몇 나라에선 정부가 전복되던 때에 집필됐다. 지은이는 특히 2011년 5~6월 스페인 100여개 도시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분노한 사람들’의 광장 점거 운동을 지켜보면서 아나키즘 비판이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힌다. 이들은 실업, 주택난, 부패한 정치체제에 항의하며 주류 정치인과 정당을 거부했다. “저들은 우리를 대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진정한 민주주의를”이라고 외쳤다. 시위대는 총회를 열어 광장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한편으로, 정당과 정당 깃발, 신문 등은 일절 들어올 수 없게 막았다.

지은이는 ‘분노한 사람들’의 투쟁은 물론, 미국 뉴욕 오큐파이(점거) 시위 역시 다양한 형태의 아나키즘과 자율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된 반자본주의 운동이 그랬듯이, 좌파의 정치적 공백 속에서, 아나키즘이 지닌 특징, 곧 ‘국가와 권위, 부패한 의회 정치와 정당을 전면 거부하는 태도’는 새롭게 급진화한 청년들의 열정 속에서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나키즘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쟁취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 다시 말해 정치조직의 건설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2011년 ‘이집트 혁명’과 스페인 광장 점거 운동의 차이를 정치조직의 유무로 본다. (올해 결국 군부 쿠데타로 혁명이 ‘원점’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2011년 이집트에선 자발적 거리시위대의 안팎에 단단한 정치조직이 있었으며 20여개의 정당들이 그 ‘혁명적 에너지’를 결집했던 데 반해 스페인 광장 점거운동은 모든 정당과 노동조합 깃발을 완전히 거부하여 고립을 자초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연속혁명(영구혁명)론에 입각해서 역사 속 아나키즘과 오늘날의 여러 아나키즘 조류를 비판적으로 개괄한다. 그가 보기에,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꿈꾼다는 점에서 목표가 같지만, 아나키즘은 국가·지도부·정치조직을 거부한다는 데에 근본 약점이 있다. 또한 그는 ‘아나르코생디칼리슴’, ‘공산주의적 아나키즘’ 같은 극히 일부 경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나키즘은 노동계급 개념을 부정함으로써 실제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세력(노동계급)과 단절하거나 ‘다중’, ‘프레카리아트’(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 같은 개념으로 노동계급을 대체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1999년 이래 세계 반자본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쳐온, 이탈리아 마리오 트론티, 안토니오 네그리가 태동·발전시킨 자율주의 역시 아나키즘의 한 형태로 본다. 그는 네그리의 사상 가운데 ‘임금노동을 거부하는 것이 혁명적 행동’이라는 생각은 틀렸을 뿐 아니라 좌파와 반자본주의 운동에 해롭다고 주장한다. 네그리는 “일부 노동계급 부문은 높은 임금 수준에 매여 있다. … 그러는 한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잉여가치를 훔치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노동이라는 부정한 거래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고 비판하면서 “그런 태도에 맞서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실업자들이) 싸워야 한다”고 했다. 지은이는 네그리가 실업자에 초점을 맞추어 임금노동자를 체제 협력자로 몰아붙였다고 비판한다.

네그리의 ‘다중’ 개념에 대해서도 “사실상 지배계급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모호한 용어”라며 세계 자본주의의 피해자 중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계급, 곧 국제 노동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책은 또한 가이 스탠딩의 ‘프레카리아트’ 개념도 비슷한 맥락에서 공박한다. 노동계급의 일원인 프레카리아트만을 사회변혁 운동의 전략적 기반으로 삼는 것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운동을 소수의 것으로 국한시켜 노동계급 다수와 단절시킨다는 주장이다. 한 트로츠키주의 이론가의 이런 주장에 자율주의 진영, 아나키즘 진영은 어떤 반론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아나키즘 :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존 몰리뉴 지음, 이승민 옮김/책갈피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왜 마르크스주의가 필요한가
아나키즘의 숭고한 열정에 깔린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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