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주 새로 나온 책

2013.08.20 09:00 行間/새로 나온 책

한국의 한 정유회사 이미지 광고 문구는 ‘I am your energy’다.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저자 앤드류 니키포룩이 원유 수출을 뽐내는 이 광고 문구를 본다면 ‘I am your slave’라고 고쳐야 한다고 불끈 성을 낼지 모르겠다. 니키포룩은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와 그 연료로 움직이는 기계를 ‘에너지 노예’라고 규정한다. 제2의 프로메테우스 혁명은 과거의 주요 에너지 제도였던 인간 노예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석탄과 석유가 만들어내는 힘에는 주인과 노예라는 문제적 관계가 내포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에너지를 마구 써대는 현대의 각종 체제, 제도의 문제를 과거 노예제에 빗댄다.

당신에게 힘이 되는 에너지가 노예라니? 에너지 노예는 예전 인간 노예가 엄두도 못낸 일들을 해낸다. 저자가 인용한 여러 연구 결과와 수치를 보자. 영국 BBC는 2009년 4인 가족 집에서 주인 몰래 에너지 실험을 했다. 한 무리의 자원자로 하여금 옆집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게 해 이 집에 에너지를 공급한 것이다. 오븐에 열을 내는 데 24명이 페달을 밟아야 했다. 토스트 두 장 굽는 데는 11명이 필요했다.

인류학자 알베르토 안젤라는 <고대 로마인의 24시>에서 50명의 노예가 2시간 동안 피아트 자동차를 끄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는 석유 한 컵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분석가 데이비드 휴즈는 주 5일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한 사람이 자전거나 트레이드 밀을 돌려 석유 1배럴의 에너지와 맞먹는 양의 에너지를 만들려면 7.37년을 일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 내내 일한다면 석유 1배럴 에너지의 에너지 생산기간은 3.8년이 된다. 평균적인 북미인 한 명이 매년 소비하는 석유량을 23.6배럴이라고 치면, 1인당 174명의 가상 노예를 거느리게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인류학자 조지프 태인터도 비슷한 계산을 했다. 옛 로마의 전형적인 가정은 6명의 노예를 부렸는데, 북미의 평균적인 가정은 400명의 무생물 노예를 거느리고 있다고 그는 추정했다.

현대인은 에너지 노예 덕에 과거의 웬만한 왕족, 귀족보다 더 편한 생활을 누린다. 기계 노예를 부려 공중을 날아다니며 신화속 그리스 신들의 힘도 재현해냈다.

저자가 석유에 종속된 현대를 노예제에 빗댄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온실가스, 무절제한 소비, 환경 파괴를 불러오는 에너지의 무분별한 사용은 과거 노예를 마구 부리는 일 못지않게 비도덕적이다. 무생물 노예를 부리는, 즉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도 희생이 뒤따른다. 인간 노예나 지금의 에너지 노예나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것도 닮은꼴이다. 로마의 귀족들이 노예를 기반으로 사치스러운 지배체제를 구축했듯 현대의 귀족들도 에너지 노예를 이용해 자신들을 위한 정치·경제 체제를 만들어냈다. 예나 지금이나 에너지를 통제하는 이들은 기득권층이다. 북미나 유럽, 산유국 사람들은 로마나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 노예주들처럼 화석연료 사용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이 노예 주인처럼 군림하게 된 것은 화석연료의 발견 때문이다. 인간 노예의 근력은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삼는 에너지 노예 앞에서 무력했다. 또 에너지 노예는 공상 사회주의자 푸리에가 말한 것처럼 “인내심 많고 순종적이며 고분고분해서 반란이 일어날까 우려할 필요가 없는” 존재다.

노예가 인간에서 에너지로 바뀌는 데는 극적인 전환과 운동이 필요했다. 요즘으로 치면, 전면적인 자동차 운전금지 운동에 비견될 만한 노예폐지 운동도 에너지 노예의 도래를 불러왔다. 영국의 앞서간 여성들은 차를 “피를 감미료로 사용한 음료”라고 비난하면서 노예가 기른 설탕을 보이콧했다. 저자는 “영국은 우수한 잉여 에너지를 확보한 상태였다. 그래서 노예제도 반대라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미국은 4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400억달러의 비용이 들어간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치르고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현대판 노예체제의 중심엔 석유가 있다. 저자가 책에서 줄곧 파고드는 문제도 바로 석유다. 석유와 석탄, 전기가 결합해 지금의 정치·사회 체제를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 석유회사들은 유전 개발 이후 처음 “고래를 살리는 길”이라며 등유를 팔아먹었다. 전기가 등유시장을 위축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을 때 그들을 구한 건 헨리 포드였다. 포드가 개발한 모델 T 자동차는 잘 팔리지 않던 휘발유를 위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미국인의 삶, 산업환경, 도시구조도 함께 바꾸었다. 석유회사와 정치인, 자동차 업체가 결합한 거대 석유권력은 무한정 뿜어나올 것 같던 석유를 주축으로 노예체제를 확립해갔다. 미국 곳곳의 트롤리 전차를 엑슨 휘발유를 사용하는 제너럴모터스 버스로 대체해 나간 게 한 과정이다. 석유 권력은 1970년대까지 미국 45개 도시에서 100개의 전차시스템을 없앴다.

새로운 노예제와 기계 노예들이 만든 결과물은 인상적이다. 현재 미국인들은 5000만대의 잔디 깎기기계, 200만대의 스노 모바일, 600만대의 오토바이, 1300만척의 보트, 8000대의 여객기, 2억5000만대의 자동차·승합차·트럭을 사용한다. 중국 같은 나라들이 이 추세를 좇고 있다. 기계 덕에 살림살이는 나아졌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에너지 노예를 부려 행복한가, 삶의 질은 진짜 더 높아졌는가.

에너지 노예체제의 지배층은 수시로 고에너지가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그 결과 행복도 증진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학 연구 결과는 이들의 주장이 합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공평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석유를 가장 많이 쓰는 미국을 보자. 미국인들이 직접 쓰는 석유만 연 1인당 23배럴 정도이고 여타 에너지를 합하면 석유 50배럴에 해당하는 양을 쓴다. 가장 부유한 유럽 국가의 2배다. 그렇다면, 미국인이 스웨덴 사람보다 2배 더 오래 사는가? 네덜란드 사람보다 2배 안전한가? 독일 사람보다 교육수준이 2배 더 높은가? 실제 아동 사망이나 교육 성취도 같은 삶의 질 지표로 따지면 미국은 세계 1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비만, 살인, 자살, 수감 비율은 유럽과 일본보다 훨씬 높다. 미국인의 행복체감도는 50년 전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불평등은 늘어났고, 아메리칸드림의 지표인 사회이동성은 줄어들었다. 에너지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이 행복을 잃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소비를 삶의 질과 흔동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의 석유는 정치와 민주주의를 더럽히는 ‘악마의 배설물’이라고까지 말한다. 석유는 아이젠하워가 일찌감치 경고한 대로, 군산복합체와 연결돼 있다. 미군은 지금 매일 40만배럴의 석유를 쓴다. 개신교 복음주의도 석유체제의 한 축으로 석유권력을 옹호하고 있다.

가장 최근 모습을 드러낸 콘월연맹은 화석연료를 신이 준 자유라고 홍보하는 복음주의자, 경제학자, 우익 학자들이 모인 연합체다. 이들은 환경운동을 ‘타고난 악’이라고 묘사하고, 이산화탄소가 오염물질이 아니라는 선언문을 내기도 했다.

저자는 예전 노예를 해방시켰듯, 지금 지구촌 단위에서 에너지 노예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종 에너지는 고갈 상태고, 환경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풍력·태양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또 다른 에너지와 토지를 필요로 하는 데다 예기치 않은 환경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저자는 결국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삶의 형태, 철학,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 그가 내놓는 대안은 ‘소규모 저에너지 사회 환경’을 갖춘 공동체다. 그는 “다원주의적이고 협동지향적이며, 확장된 중앙통제가 아닌 지역 중심의 독립적 자급자족 공동체 건설이 최적의 대안”이라며 초기 베네딕토수도회를 제시한다. 6세기쯤 로마 외곽에서 시작된 이 수도회는 기도와 노동을 일치시킨 공동체였다. 11세기 무렵 이 수도회는 자급자족하며 남는 식량은 탐욕의 마음을 없애기 위해 시가보다 싼 가격에 팔았다. 농부들에게 경작과 의술을 가르쳤고, 방문객을 환대하고, 병자를 돌봤다. 이들은 하루 5시간만 밭과 과수원 등에서 일했다. 잉여 에너지는 기도, 독서, 대화, 공예를 하는 데 들였다. 하지만 이 수도회도 방앗간이라는 에너지를 만들어 돈을 벌면서 탐욕과 사치에 빠져들었다.

여름이면 출입구를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켜두고, 대정전 위기에 종종 노출되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 소규모 환경공동체는 먼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현재로선 그 어느 국가의 지배층도 에너지 노예를 동원한 ‘성장의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희한하고 무계획적인 노예해방 운동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광적인 소비를 부추기는 에너지 노예문화를 등지고 걸어나오는 가정, 집단이 세계 도처에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새로운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무분별한 에너지 소비가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프로메테우스의 오만과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인간이 프로메테우스의 선물로 요리와 난방을 위해 숲을 베어내고, 전쟁과 파괴를 일삼자 인간사회에 개입한 제우스가 헤르메스 편에 보낸 선물은 바로 ‘정의’(dike)와 ‘존중’(aidos)이었다. 니키포룩은 정의와 존중만이 기준과 균형을 잃고 파괴와 분산을 초래하는 에너지 문제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에너지 노예, 그 반란의 시작
앤드류 니키포룩 지음, 김지현 옮김/황소자리

에너지 과소비 인류, 문명의 위기 부르다
석유·석탄을 일용할 양식으로 착각하는 현대인
‘에너지 노예’ 부려먹는 당신, 행복하십니까?
'기계문명의 기둥' 석탄·석유를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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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은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 연설을 한 날로 기억된다. 그러나 히로히토의 연설에는 어디에도 항복한다는 말은 없다. 오히려 "적은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중략) 결국엔 인류의 문명까지도 깨뜨리게 될 것이다. (중략) 동아시아 해방에 노력한 여러 동맹국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펴낸 `한반도 분할의 역사`(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에서 현재의 광복절이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미주리호에서 일본이 연합국과 항복 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을 대일전승기념일로 삼았다. 러시아 중국 몽골은 9월 3일을 항전승리기념일로 하고 있으며 대만은 10월 25일, 필리핀은 9월 3일,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는 9월 12일을 기념한다. 현지 일본인이 항복한 날이거나 무장해제된 날이라고 책은 소개한다.

이완범 교수는 "일왕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일본이 오히려 피해자임을 말하는 종전조서를 방송한 날을 광복절로 정해놓고 망언과 신사참배를 거듭하는 일본이 진정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다른 뜻깊은 날을 찾는 데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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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반도 분할’ 하면 6·25전쟁을 떠올리지만 <한반도 분할의 역사>를 보면 한반도 분할은 오랜 연원과 진실을 감추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명과 일본이 조선을 분할하려 했고, 20세기 초 러일전쟁 때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지은이가 책머리에 쓴 것처럼 “(분단이) 실현되지 않아서”이거나 “그 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은 임진왜란부터 6·25전쟁까지 외세가 어떤 이유로 한반도를 점령, 분할하고자 했는지 그 기원을 추적하며 한반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분할 논의의 한 축은 중국과 러시아, 옛소련으로 대표되는 ‘대륙세력’이고, 다른 한 축은 일본과 미국 등 ‘해양세력’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과 일본은 수차례 강화회담을 통해 조선 분할을 책동했다. 지은이가 임진왜란을 천착하는 이유는 “강대국 간에 우리 영토를 가지고 한반도 분할을 흥정했던 최초의 예”이기 때문이다. 명은 여러모로 성가신 조선을 차제에 합병시키려고 했고, 일본은 “조선 영토를 탈취하기 위한 전쟁”을 벌여 새로운 땅을 얻음과 동시에 내부 분란도 잠재우려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征明)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전라도와 경상도 등 조선의 4도를 반드시 확보하겠다고 덤볐다.

임진왜란에 이어 한반도 분할 논의가 터진 것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은 날카로웠다. 이 시기 해양세력 일본은 대륙세력인 중국과 러시아를 연달아 꺾고 한반도를 손아귀에 넣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대한제국은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로부터도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중립화를 논의”했고, 고종은 밀사를 파견해 미국 등 열강의 의사를 타진했다. 한편 러시아는 1903년 일본에 ‘39도선 안’을 제기했지만 일본의 거절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한반도 분할의 역사>가 가장 지면을 많이 할애하는 부분은 역시 한국전쟁 전후로 서구 열강의 강압에 의해 자행된 38선 획정의 진실과 실질적인 한반도의 분할이다. 지은이는 38선 획정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우선 “1945년 8월15일 광복 직전의 역사적 상황을 해명하는 일”이 주요 과제라고 지적한다. “외세에 의하여 한반도 분할이 결정된 데 더하여 한국 독립운동 세력의 합작이 성공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서 한반도 분단의 대내외적 구조 원형이 이 시기에 거의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해방 전부터 ‘소련 참전 전 종전’을 추구하면서 한반도와 일본에 대한 점령작전을 전개했다. 소련은 “러시아가 1904~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뼈아픈 경험”과 “한국이 어느 한 나라의 일방적인 지배에 속하는 것을 방지하여 세력균형을 꾀한다는 정책목표”를 가진 터라 미국의 독주를 좌시할 수 없었다.

결국 1945년 7월과 8월 사이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38선 안이 획정되었고, 그 분단의 굴레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물론 38선 획정으로 사태가 완결된 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등을 통해 38선을 넘어 북진했고, 중국군은 인해전술로 38선을 재침범했다.

그렇다면 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은 끊임없이 한반도의 분할을 획책했을까. 그 해답은 과거 역사에 있겠지만, 어쩌면 한반도 내일과도 맞닿아 있다. “해양세력의 입장에서는 대륙 진출의 교두보, 대륙세력의 입장에서는 해양으로의 통로”가 바로 한반도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은 말로 한반도의 미래상을 제시한다. “대륙성과 해양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잘 이용한다면 대륙과 해양의 완충국으로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주변의 대륙국과 해양국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면 평화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분할의 역사>는 한반도 분할에 대한 역사적 조망을 통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있는 이 땅의 현실과 내일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19세기와 20세기 초 일본과 러시아의 외교문서,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기밀문서 등을 직조해 열강의 한반도 분할 야욕을 가감 없이 전해준다. 역사적 사실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에 앞서 객관적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적 판단의 기준과 사고의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반도 분할의 역사
이완범 지음/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항복` 안한 8월 15일 광복절 지정은 부적절
외세의 끊임없는 한반도 분할 획책
38線, 30분만에 그어졌다는 건 거짓
미국, 일본항복 전인 1944년초부터 38선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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