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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10월 3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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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프리카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아프리카인의 역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질(지리)·기후·고고·생물·언어·인류학을 총동원해 아프리카의 자연사 및 그곳에서 살아온 인류의 역사를 훑고 있다. 저자가 동원하고 있는 학문 분야는 이뿐만이 아니다. 농업경제학과 심지어 기생충학까지 섭렵한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학제 간 연구 성과를 토대로 방대한 아프리카의 역사를 솜씨 좋게 엮어냈다. 책 제목 그대로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아프리카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육괴(陸塊)다. 대륙의 97%가 3억여 년 동안이나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부분의 연대는 5억5000만 년 이상이고, 36억 년이나 된 곳도 있다.(중략) 다른 대륙들은 산맥이 형성되고 대규모 지질학적 단층이 일어나면서 풍경이 크게 변했으나 아프리카는 변화의 폭이 적었다. 10억 년 전에 생겨난 바위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지평선을 장식하고 있으며, 오래된 퇴적물도 변형 과정을 거의 겪지 않았다. 지구의 구조와 역사를 처음부터 현재까지 이렇듯 명확하게 보여주는 곳은 다른 어디에도 없다.”

또 다른 대목을 보자. “언어학자들은 현존하는 가장 오랜 언어가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유되는 어휘와 언어 구조를 토대로 추산해보면, 전 세계의 수천 개 언어는 20개가량의 어족으로 분류된다. 그 가운데 네 어족은 나머지 어족들과 가장 먼 관계에 있는데, 그 네 가지가 모두 아프리카어다. 쿵산 부시맨이 사용하는 코이산어, 반투족의 언어인 니제르-콩고어, 마사이 유목민이 사용하는 나일-사하라어, 에티오피아와 북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아프리카-아시아어가 그것이다. 오늘날 가장 오랜 화석들이 발견되는 동아프리카에서 쓰는 언어들이 그 네 어족에 속한다.”

이처럼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저자는 아프리카에 대해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기술해나간다. 심지어 역사 기록과 문학작품 등을 토대로 아프리카의 20세기 현대사까지 아우르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 “넬슨 만델라와 그가 대표하는 정치권력의 이동은 경제적 실용주의가 세계무대를 지배하는 시대에 통합과 이념의 가치를 확인시켜준다. 그와 남아프리카는 전 인류에게 희망을 준다. 그것은 바로 오랫동안 절망 이외에 아무것도 낳지 못했던 대륙에서 솟아난 희망이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역사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다뤄져 왔다. 하나는 아프리카를 다른 대륙(특히 유럽)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는 ‘바깥에서 본 아프리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인의 눈으로 본 아프리카의 역사’다. 즉 아프리카 출신 지식인들이 바라보는 역사라고 하겠다. 이는 주체적이긴 하지만 근대 시기 서구의 침탈과 관련한 역사가 강조된다. 다시 말해 이념적 측면을 강하게 띠고 있다.

저자의 시각은 이 두 시선과 거리가 있다. 영국 태생이면서도 아프리카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저자는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에서도, 아프리카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도 자유롭다. 아프리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고 하겠다. 런던에서 태어나 18세 때 남아프리카로 이민을 간 저자는 20대 중반부터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10년을 살았다. 당시 사진기자로 재직한 저자는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며 숱한 분쟁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유럽인이나 아프리카인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 배경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갖기 원한다면 이처럼 방대한(900장가량) 책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대륙의 탄생과 생김새, 그 안에 공존하는 자연과 인간의 오래된 역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펼쳐보시길. 아프리카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
존 리더 지음, 남경태 옮김, 김광수 감수/휴머니스트

아프리카 그 장대한 대륙의 모든 것
동물의 왕국? 편견의 왕국!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보다
다양한 연구성과를 기초로 구성한 인류의 고향인 아프리카 ‘평전’
아시나요? 11세기 南 아프리카의 찬란했던 문명을…
자연 그리고 인간… 아프리카 ‘속살’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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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은 구약 성서에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건설했다고 기록된 전설 상의 탑이다. 동일한 언어를 쓰던 인류가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하늘까지 닿을 탑을 쌓았던 것. 하지만 신은 인류의 도전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갖가지 언어를 흩뿌려 서로 간의 소통을 막았다. 혼란에 빠진 바빌로니아 인들은 결국 탑을 끝까지 쌓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런 바벨탑의 저주도 피해갈 인물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19세기 이탈리아에 실존했던 메조판티 추기경. 무려 72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메조판티가 완벽한 '언어 천재'였다고 말한다. 습득한 외국어도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개별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도 원어민 수준이었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초다언어구사자' 중 한명이다.

메조판티는 바벨탑의 저주를 비웃기라도 하듯 언어를 쉽게 습득했다. 책에는 다양한 일화가 소개된다. 1840년 러시아 학자 A V 스타쳅스키가 로마에서 메조판티를 처음 만났을 때였다. 그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해 메조판티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메조판티는 스타쳅스키에게 "그건 무슨 언어입니까"라고 물었다. "소(小) 러시아어입니다." 스타쳅스키는 당시 통용되던 명칭으로 대답했다. 메조판티는 "2주 뒤에 저를 다시 찾아 주시지요"라고 말했다. 스타쳅스키가 2주 뒤에 그를 다시 찾았을 때 메조판티는 상당히 유창한 우크라이나어를 구사했다.

저자는 메조판티를 연구하면 '언어 습득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메조판티는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인물. 저자는 살아있는 초다언어구사자들을 찾아내 그들의 언어적 천재성을 검증하기로 한다. 그 중엔 오십 가지 언어를 구사했던 대장장이 일라이후 버리트, 스둘 두 가지 언어를 습득하 유럽연합 통역관 그레이엄 캔스데일 등이 있다.

언어 천재들이 저자에게 전해준 비결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공부'하지 않으면 동시에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털어 놓았다. 언어를 습득하는 데 천부적이거나 유전적인 요인을 밝힐 길이 없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러나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다. 언어 천재들이 밝힌 최고의 언어 학습법을 전수한다. 일부를 소개하자면 첫째는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억지로'가 아닌 '기꺼이' 할 수 있는 목표가 동반되면 외국어를 더 빨리 습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학습 자체를 즐겨야 한다. 대다수의 언어 천재들은 언어 배우기를 마치 게임처럼 재미있게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국어에 정통해야 한다. 우리의 언어 감각은 모국어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유에서다. 즉 모국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외국어 또한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어의 천재들
마이클 에라드 지음, 박중서 옮김/민음사

[經-財 북리뷰] 언어의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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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구세군 자선모금함이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빨간 박스에 작은 액수나마 돈을 넣어본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뿌듯함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문화로 인식되어 있는 듯하다. 연말의 성금모금 시즌에 하는 '겨울에만 하는 연례행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돈이 아주 많은 부유층'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호화스러운 취미생활로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태까지의 기부는 그런 면이 다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기부문화도 서서히 변화하는 중이다. 새로운 버전의 기부문화를 소개하는 책 <기부 2.0>에는 그러한 변화가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기부 전문가의 '똑똑한 기부 지침서'

저 자 로라 아릴라가 안드레센은 기부와 자선활동을 해온 것은 물론, 오랫동안 그와 관련된 교육을 직업으로 삼아왔다. 미국의 거액 기부가들의 컨설팅을 해주었으며 작년인 2012년에는 워렌 버핏, 빌 게이츠와 더불어 미국의 자선왕 12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정도면 가히 '기부 전문가'라고 불릴 만하다.

그녀가 쓴 책 <기부 2.0>은 기부의 편견을 깨려는 시도와 함께 다양한 기부의 방법을 수집하여 엮어낸 노력이 함께 담겨있다. 기부는 부유한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며, 어렵고 까다롭거나 거액의 돈을 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당신이 100달러를 가지고 전 세계 기아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아마 당장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한 소녀의 삶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고자 마음먹는다면 당신은 이미 큰 진전을 이룬 셈이죠."(본문 78쪽 중에서)

작은 액수의 돈이라도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기부자가 낸 40달러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어느 소녀의 10개월치 학비로 쓰이거나, 200달러의 기부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방글라데시의 한 노동자의 의족 구입비로 사용된다. 수십만 달러의 거액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좋은 일에 충분히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한 기부를 시작하기 전에 꼼꼼히 알아보라고도 충고한다. 기부를 비정기적으로 할지 아니면 일정한 기간 동안 특정 금액을 낼 것인지, 해당 자선단체가 어떤 사람을 후원하는지 스스로 성향과 방식을 잘 알아보고 정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다양한 정보와 기부를 하기 전에 알아야 할 상식까지 담은 <기부 2.0>은 기부를 위한 지침서와 같은 느낌이다.

슈퍼스타K와 닮은 온라인 투표? 다양하고 투명해진 기부

2000 년대를 넘어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기부의 방식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기부 2.0>에서 언급된 사례 중에는 'SNS를 이용한 기부'도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어플리케이션인 '포스퀘어(Foursquare)'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자신이 방문한 지역을 '체크인(Check-in)'하여 지인들이 볼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는 방식인데, 방문지역이 늘어날수록 포인트를 모을 수 있다. 이런 방식에서 착안하여 마이크로소프트가 페이팔(Paypal)과 공동으로 '아이티 어린이를 위한 성금 모금'을 진행했는데, 총 15만5천 건의 체크인 포인트를 사용자들로부터 전달받아 1만5천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최근 수천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사업으로 성장한 온라인 게임이 기부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게임의 사용자가 가상의 농장에서 과일과 야채를 기르는 게임인 팜빌(Farm Ville)은 게이머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이 게임 상에서 재배한 채소를 (실제 채소로 환산하여) 일본대지진 희생자들에게 기부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가상의 온라인 공간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사용자가 아바타를 통해 희귀종 식물을 구입하면, 실제로 같은 종의 식물을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의 숲에 심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케이블방 송의 인기프로그램 '슈퍼스타K(아래 슈스케)'를 연상시키는 기부방식도 있다. 미국의 케이스 재단이 인터넷을 활용하여 벌였던 자선모금행사는 네티즌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하여 경쟁방식을 도입했다. 오디션의 최종후보를 시청자의 투표로 선정했던 슈스케처럼, 케이스 재단은 전 세계 네티즌들의 공개 기부와 온라인 투표를 거쳐서 최종 기부 대상 4명을 선정하여 각각 3만5천 달러를 지원했던 것이다. 이 캠페인이 종료된 이후 케이스 재단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같은 방식으로 2500만 달러를 모금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앞서 언급된 독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글에 이어서 이미 새롭게 달라진 기부문화가 소개된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욜코나 재단' 등의 자선단체가 보여준 '기부금의 사용처를 모두 공개'하는 방식은 "내가 기부한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는 않는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린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과 접목된 기부문화가 '투명성'과 '높은 참여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것이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기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 부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92%)은 그렇지 않은 사람(76%)보다 자신의 건강과 삶에 더욱 만족한다는 설문조사가 있다. 설문조사의 신빙성을 묻지 않더라도, 어려운 처지의 누군가를 작게나마 도움으로써 뿌듯함을 얻는 일은 분명 자신의 삶을 따스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저자는 기부하는 행위가 기부를 한 사람 뿐만 아니라 세상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리자'는 취지의 비영리 재단은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아서 다른 사람을 더 효과적으로 돕기도 한다. 비영리단체 '킥스타트(KickStart)'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부들에게 무작정 원조를 하는 대신 저렴한 물 펌프를 개발하여 판매한다.

그 들은 무료기부가 아니라 판매하는 이유는 투자와 헌신이 요구될 경우에 가난한 사람의 자발적인 삶의 개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킥스타트의 조사에 따르면 무료배포 시에는 30%만이 펌프를 사용한 반면, 저렴한 값에 판매했을 경우에는 80%가 농사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구입한 장비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올해 보도된 뉴스에 따르면 2012년 국내 대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늘어났으나 기부금 지출은 줄어들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CEO스코어 조사결과에서 작년 시가총액 상위 20위 기업(공기업 금융지주 제외) 가운데 기부내역을 공개한 17개 기업의 작년 기부금이 고작 매출대비 0.1%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부가 낯선 개인이나 매출에만 열올리는 대기업에게, <기부 2.0>은 기부에 대한 생각이 한단계 나아가게끔 이끌어줄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더 이상 기부는 '돈을 내야하는 행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경우 지식과 재능의 나눔이 되기도 한다. 적은 돈으로도 어려운 이웃은 행복한 삶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시린 추위가 다가오는 계절,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부는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었으면 한다.

기부 2.0
로라 아릴라가 안드레센 지음, 최성환 외 옮김/W미디어

기부도 슈퍼스타K처럼... 이게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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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직진하면 선로에서 작업 중인 인부 다섯 명이 죽는다. 레버를 당겨 선로를 바꾸면 그쪽 선로에서 혼자 일하는 인부가 죽는다. 당신이 열차 운전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2. 이번에는 당신이 철길 위 육교에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선로에서 일하는 다섯 명에게 돌진하는 것을 봤다. 마침 당신 앞에 덩치가 엄청난 사람이 있다. 당신이 이 사람을 선로로 밀면 한 사람이 희생되는 대신 다섯 명이 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치철학자는 여기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한 벤담의 공리주의, 우리는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한 각자의 도덕률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칸트의 자유주의 등을 말할 것이다.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같은 예를 들어 강의했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뇌 어디가 작동하는지를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로 측정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이 책 3부 '뇌와 윤리' 편이다.

선로 변경 레버를 당기면 '이성적 추론' 영역이 작동했다. 덩치 큰 사람을 밀지 말지 고민할 때는 '감정' 반응과 관련된 뇌 영역이 작동했다. 전자가 벤담의 뇌라면, 후자는 칸트의 뇌인 셈이다. 레버를 당길 때와 달리 사람을 미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뇌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진화했기 때문이다.

책은 작년 봄 한국심리학회에서 열린 '뇌와 통하다'란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비롯됐다. 부제를 '뇌과학의 A에서 Z까지'로 붙여도 좋을 만큼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다. 심리학자와 과학철학자, 정신과 의사, 교육학자 등 다양한 배경의 저자들이 최신 뇌 연구 성과를 들어 일상의 소소한 것까지 설명한다. 왜 뷔페에서는 과식하는지, 눈 가리고 마시면 똑같은데 왜 펩시콜라는 코카콜라를 이기지 못하는지. 사랑에 빠지면 왜 키스를 하는지 등등 질문 분야는 제각각이지만, 시작과 끝은 늘 '나'이다.

거침없이 달리는 세상에서 개인은 늘 힘없이 휩쓸린다. 뇌과학은 내 판단이 옳고 그른지 말해줄 수는 없다. 그래도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해명해줌으로써 더 좋은 길을 찾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열차가 아무리 엄청난 속도로 달려도 그 안에 들어가면 조용히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법이다.

책 말미나 아니면 별책 부록으로 뇌의 각 부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픽을 담았다면 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래도 순서를 무시하고 궁금한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돼 좋은 백과사전 하나를 옆에 둔 듯한 든든함을 준다.

뇌로 通하다
김성일 외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뷔페만 가면 과식하는 이유, 腦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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