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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10월 4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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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힘 모으기가 쉬웠다. 자신감이 넘쳐 신의 자리까지 넘봤다.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올리려다 결국 신의 분노를 샀다. 신은 인간들이 서로 말이 안 통하도록 언어를 뒤섞었다. 성경이 전하는 바벨탑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한 이가 있었다.

“과거에 인간들이 저지른 죗값으로 언어의 혼란이 생겼다면, 오늘날은 반대로 언어의 혼란이 범죄를 야기하는 건 아닌가.” 1887년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를 발표한 안과의사 라자루스 자멘호프 박사(1859~1917)였다.

유대인이었던 자멘호프는 여러 민족이 섞여 살았던 폴란드 비알리스토크(당시 러시아령)에서 태어났다. 서로 다른 민족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건 일상이었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에는 뿌리 깊은 반유대인 정서를 경험했다. 1881년에는 러시아 전역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경험 속에서 그는 “언어의 다름이 민족들 간의 차별과 상호 적대감을 낳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자멘호프는 9개 언어에서 공통점과 장점만을 뽑아내 에스페란토를 만들었다. 문법에 예외와 불규칙이 없고 주요 뼈대 단어에 접두·접미어를 붙여 어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습득도 쉬웠다. 모국어를 쓰되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자는 ‘국제보조어’를 표방했다. 당장 상업·여행·과학 분야에서 중립적·실용적 소통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바탕에 깔린 사상은 분명했다.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하나의 공동체가 되자”는 ‘인류인주의’였다.

“인류 공통어로 모든 사람이 형제처럼 가까워지고, 사회악도 없어질 것이다.”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이런 생각을 품었다. 1908년 ‘세계에스페란토협회’를 창립한 헥토르 호들러는 “민중들 간의 우애를 부르짖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전통적인 국제주의나 평화주의보다 에스페란토 사용이 훨씬 더 구체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너무 순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은 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에서 “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자기 모국어와 에스페란토를 동시에 배우도록 하자”고 주장했지만 자국 언어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프랑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에스페란토는 기득권 세력에게 점차 ‘위험한 언어’로 낙인찍혔다.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꿈꾸던 사회주의자들에게 유용한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랬다.

독일 나치의 탄압은 첫 번째 시련이었다. 에스페란토는 유대인이 만들어냈다는 점 때문에 시오니즘 계획의 일부라는 의심을 받았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유대인들의 종이 되자마자 모두 하나의 세계어(예를 들면 에스페란토!)를 배워야 할 것이며, 유대인들은 더 쉽게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유대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언어’로 불린 에스페란토는 무자비한 탄압과 박해에 휩쓸렸다. 그 와중에 자멘호프의 아들까지 총살당했다.

두 번째 시련은 더 뼈아팠다.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소련 역시 에스페란토를 탄압한 것이다. 핍박받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들이 동일한 언어로 소통하며 세계 혁명의 열망을 가꿔가기에 에스페란토는 좋은 도구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가 자동으로 민족적 갈등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토니오 그람시조차도 “작업대나 한 줌 땅으로부터 시선 돌릴 틈조차 없는 하층민들에게 국제적 소통이 필요한지” 의구심을 품었다.

무엇보다 스탈린 치하에서 에스페란티스토들은 간첩으로 몰렸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국제 서신을 교환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이 주인인 국가의 모순’을 서유럽에 알렸던 것이다. 한 소련인은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에 대한 당신의 좋은 생각들은 단지 아름다운 꿈이며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자유와 배부름은 단지 종이 위에 존재할 뿐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잔인하게 새로운 주인들로부터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1인 독재를 위해 대숙청을 벌이고 있던 스탈린에게 에스페란티스토들 역시 ‘반혁명분자’였고 그들에겐 나치보다 더한 박해가 가해졌다.

진실은 여기 있었다. 탄압의 강약은 다양했고 적들의 유형도 달랐지만 에스페란토 억압자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민족·종교·언어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직접 만나 대화하고 의사소통하는 행위를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정보 독점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그만큼 두려운 건 없었다. 나치 치하 독일 실상을 고발하는 데 앞장선 것도 바로 에스페란티스토였다. 1932년 소련 에스페란티스토동맹 의장을 지낸 에르네스트 드레젠은 “시민들이 에스페란토로 계몽되고 고정된 충성심의 틀을 버리기 때문에 에스페란토 반대 입장으로 바뀌는 정부들이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불과 5년 뒤 가장 신뢰했던 정부가 같은 결론을 내리라곤 예상치 못했지만.

오늘날 에스페란토 박해의 역사를 읽는 의미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맹비난했다가 이젠 자신들의 목소리로 도배하려고 드는 이들 또한 에스페란토 박해자들과 같은 목적을 지녔을 테다. 신이 ‘사람들의 힘’을 두려워해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처럼. 대문호 톨스토이는 에스페란토를 지지하며 말했다. “하느님의 뜻은 예외적인 기적이나 석판 위에 하느님의 손으로 기록한 율법 등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들 상호 간의 행동과 발언을 통해 진실을 전달하면서 전파되는 것이다.”

위험한 언어
울리히 린스 지음, 최만원 옮김/갈무리

에스페란토 박해의 역사… SNS를 통제하려는 이유와 다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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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선생은 서른 명씩 두 팀으로 나누고는 축구공 두 개를 던져 주었다. 오프사이드? 있을 리 없다. 파울? 그런 거 모른다. 모두 공을 쫓아 열심히 뛰어다녔다. 골을 넣으려고? 아니. 한 번이라도 공을 차보려고. 스코어는? 몰라. 우리 팀이 이겼던가? 상관없어. 그저 수업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늦게 울리기만을 바랐다."

박현욱 장편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축구공은 '행복'의 동의어다. 사내들은 공만 던져 주면 정신줄을 놓는다. 한국과 미국은 지금 '가을 야구'로 들떠 있다. 환호와 한숨이 엇갈린다.

인류학자이자 스포츠광인 저자는 아들과 야구공을 던지고 받다가 실존적 질문에 맞닥뜨린다. "아빠, 그런데 우리는 왜 공놀이를 하는 거예요?" 저자는 대체 인간에게 '공'이 무엇인지 추적에 나선다.

◇축구공은 어디서 굴러왔을까

고대 마야인들이 공을 치고받던 돌벽과 진흙 마당이 온두라스에서 발굴됐다. 그 시절 운동경기는 오락이 아니었다. 의식 행위였고 패하면 목을 자르는 형벌도 있었다. 축구는 이웃 마을 사람들과 편을 갈라 펼치던 잔인한 공놀이에서 비롯됐다. 그 과거가 오늘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숙적 리버풀과 맞붙을 때 위험천만하게 재현되는 셈이다.

저자는 축구의 가장 원시적인 흔적을 찾아 스코틀랜드 오크니로 간다. 항구 쪽 사내들과 내륙 쪽 사내들이 수백 년 전부터 해마다 두 번씩 거리에 모여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바'라는 가죽공을 차는 민속놀이다. 항구 패거리가 이기면 청어가 풍년, 내륙 패거리가 이기면 감자가 풍작이라는 미신도 얽혀 있다. 프랑스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에 있었던 '라 술'도 소속감을 다지는 군중 축구다. 선수 수 제한도, 규정도 없는 마구잡이 난투였다.

어쩌면 역사가 존재하기 전부터 공이 있었다. 사냥할 때 던지던 돌에서 진화했다는 견해와 사냥감을 상징하는 대체물로 나타났다는 견해가 공존한다. 1만년 전쯤 농업이 시작된 뒤에도 그 전투의 본질은 살아남았다. "스포츠에서 '사냥에 나섰다' '승리에 굶주려 있다' 같은 묘사는 승패가 생사와 직결됐던 기억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역사보다 신화에 끌린다

미국에는 대통령이나 헌법보다 먼저 야구가 있었다. 뉴욕 주 쿠퍼스타운에 있는 야구 명예의 전당은 박물관이 아니라 예배당에 가깝다. 방문객은 '열혈 야구 신도'다. 그렇다면 누가 최초의 야구공을 던졌을까. 방망이와 공을 사용하는 경기는 1300년대 프랑스에도 있었다. 저자는 남북전쟁 시대의 장비와 유니폼, 19세기 규칙을 쓰는 복고(復古) 야구클럽을 취재하며 뿌리를 캐나간다. 공을 치기 좋게 던져야 한다는 점, 타구가 염소를 맞히면 홈런으로 간주했다는 점, 한 번 바운드된 공을 잡아도 아웃이었다는 점, 유격수라는 포지션의 탄생 등이 흥미롭다.

1839년 쿠퍼스타운에서 애브너 더블데이가 최초로 경기 방식을 고안했다는 야구 기원설은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를 인용한다. "사람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면 대체로 역사보다 신화를 선호한다." 창조 신화는 영웅과 신성한 장소를 찾아내 보여주는 반면, 진화해온 이야기들은 존경하고 숭배할 만한 구체적이고 특정한 무엇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약물 스캔들, 수백만달러 계약 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야구의 신화와 의식을 깊이 믿고 있다. 저자는 "인간을 규정하는 오락의 중요한 부분이 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공놀이는 협동·경쟁 촉발하는 도구"

공놀이의 역사와 그것이 어떻게 50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산업이 됐는지 추적한 책이다. 중세 수도원과 프랑스 왕궁 안뜰에서 발원한 테니스, 경기장 구획부터 규칙까지 우연을 배제하려고 한 미식축구, 골문을 수평으로 놓은 '복숭아 바스켓'에서 출발한 농구의 비사(秘史)도 들려준다.

돌고래는 관람객이 자리를 뜨고 청어가 바닥나도 놀이를 멈추지 않는다. 고양이도 실 뭉치를 가지고 놀며, 공을 던지면 개가 뛰어가 물어온다. 어린 포유류는 섭취한 열량 중 15%를 놀이에 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는 왜 에너지를 낭비하고 적의 공격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무익해 보이는 이 행동양식(놀이)을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진화시켜온 것일까. 생쥐들은 놀이를 할 때 신경 성장 단백질의 분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이를 하는 동물은 그렇지 않은 동물보다 영리하고 사회적 지능도 높았다. 공은 동역학적으로도 흥미롭지만 협동이나 경쟁을 촉발하는 사회적인 도구다. 저자는 "공놀이의 진화도 건강과 사회화,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공놀이는 직립보행을 시작한 인류가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사냥감에 돌멩이를 던진 행동이 진화 과정을 통해 보상되고 증식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공놀이들을 낯설게 보여주면서 원초적인 연대를 회복하게 해주는 책이다. 이미지가 박한 게 아쉽지만 화법이며 템포는 쾌활하다. 아들의 물음에 대한 답은 "재미있으니까(F-U-N)"다.

더 볼 The Ball
존 폭스 지음, 김재성 옮김/황소자리

최초의 공놀이는 사냥이었다
사람들은 왜 공놀이에 미치는 걸까
축구·야구·농구… 공놀이는 어떻게 5000억불 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을까
축구·야구·골프… 공은 ‘고열량 에너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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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가 잘 다져진 믿음의 토대에는 토대가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 (비트겐슈타인)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의 역작 <온도계의 철학>의 말미에 "다리 거리 다리"(Bridge St. Bridge)라는 재미있는 다리가 하나 소개된다.

마을에 다리가 하나 밖에 없어서 '다리'라고 하면 그게 무엇을 지칭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시절, 그 다리로 이어지는 길이 '다리 거리'(Bridge St.)라고 불렸다. 그런데 마을이 발전하면서 다리가 여럿 더 생겼고, 이제는 그냥 '다리'라고 하면 그게 어느 다리를 말하는지 알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리 거리'는 누구나 다 아는 거리였기 때문에, 이제 그 첫 번째 다리에는 '다리 거리'에 붙어 있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다리 거리 다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다리가 거리를 정하고, 그렇게 정해진 거리가 다시 다리를 만들었다. 장 교수는 과학의 발전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우리는 과학이 아주 튼튼한 반석 위에 잘 지어진 집이라고 생각한다. <온도계의 철학>은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진다. 이 책은 시작부터 논쟁적이다. 우리는 온도를 온도계로 잰다. 그렇다면 온도계가 정확하다는 사실, 혹은 온도를 재는 물질이 일정하게 팽창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른 말로 하자면, 온도계의 온도는 어떻게 잴 수 있는가? 아마 독자들은 어디엔가 표준 온도계가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온도계는 이 표준 온도계에 맞춰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 표준 온도계가 온도를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물의 끓는점을 100도로 정의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 19세기 프랑스 과학자 게이-뤼삭은 금속의 용기에서 물이 100.000도에서 끓는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공기를 뺀 물이 137도에서 끓는다고 보고한 경우도 있었다. 물의 끓는점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많은 실험을 했던 장-앙드레 드 뤽은 물이 끓는다는 현상을 일반 끓음, 치익 소리, 요동 끓음, 폭발, 빠른 증발, 부글거림으로 분류했는데, 이 각각의 온도가 다름은 물론이었다. 결국 이 논쟁과 이견들은 물이 끓으면서 발생하는 증기의 온도를 기준점으로 정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이런 방식에 대해서 모든 과학자들이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고정점이 정해진 뒤에 과학은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사실로 기술하기 시작했다.

물의 끓는점에 대한 논쟁을 1장에서 다룬 뒤에, 온도계의 표준의 문제가 2장에서 나온다. 18세기 과학자들은 많은 실험 끝에 수은 온도계가 가장 일정하게 팽창하며, 따라서 믿을만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칼로릭(caloric)이란 가상적인 입자가 열을 만든다는 칼로릭 이론이 등장하고, 이 이론가들은 수은의 정확성을 공격하면서 액체가 아니라 기체를 사용한 온도계만이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쟁 속에서 프랑스 과학자 빅토르 르뇨는 실험 장치들이 "동일한 조건에서는 언제나 동일한 기록을 보여줘야 한다"는 '비교동등성 원칙'에 입각해서 수은 온도계와 공기 온도계를 비교하는 정교한 실험을 수행했고, 이 둘 중에 공기 온도계가 더 정확하고 믿을만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르뇨의 실험은 온도계의 표준과 관련해서 확고한 토대를 제공한 실험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르뇨의 비교동등성 원칙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르뇨의 원리는 물리적 속성이 특정 상황에서 단 하나의 값만을 가진다는 원리에 근거한 것인데, 장하석 교수는 이런 원리가 검증되지 않았고 검증될 수도 없는 것이지만 과학자들에게 세상에 대한 기본 인식을 제공하는 존재론적 원리의 하나의 사례라고 해석한다. 이런 의미에서 르뇨의 비교동등성은 '인식적 덕목'인 것이다.

이런 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는 과학의 역사와 철학이 높은 수준에서 융합되어 있다. 역사적 논의는 매우 상세한데, 여기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처럼 우리가 잘 아는 과학자가 아니라, 드 뤽, 르뇨, 캐븐디쉬, 허친스, 웨지우드, 픽테, 윌리엄 톰슨처럼 과학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과학자들이다. 철학적 논의도 만만치 않다. 존중의 원리, 인식적 반복, 중간단계 규칙의 강건함, 존재론적 원리, 중첩결정, 조작주의, 서로 받쳐주기, 조작화, 진보적 정합론 같은 개념들은 장하석 교수가 새롭게 창안하거나 해석한 것들이고, 과학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없이는 그 의미와 의의를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다. 물론 과학, 역사,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세심하고 끈기 있게 책을 읽어야 한다.

과학자들도 기억을 못하는 과거의 과학에 대한 이런 상세한 역사적, 철학적 분석이 힉스 입자와 포스트 게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냉(冷, cold)이 복사열처럼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픽테의 실험은 당시에도 이해가 안 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실험을 재연한 두 물리학자의 1985년 논문은 장 교수를 포함해서 딱 두 번 인용이 되었을 뿐이다.

장하석 교수는 현재의 과학이 과거의 과학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온도에 대한 연구에서 보였듯이, 온도에 대한 과거의 연구의 대부분은 그냥 잊혀지고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는 이런 지식을 복원하는 과학사ㆍ과학철학적 연구를 '상보적 과학'이라고 부른다. 첨단을 달리는 과학 연구와 상보적 관계에 있다는 의미인데, 이런 일종의 대안 과학은 세상에 대한 비판적 지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보적 과학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이 가능할 것인가?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데에도 인색한 대학과 연구재단이 상보적 과학을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을 하는 대신에, 장하석 교수는 벌써 이에 대한 다른 프로젝트를 열심히 진행 중이다. 책의 마지막에 썼듯이 "그것은 아주 멀리 나아가는 발걸음이며, 그 덕분에 교육받은 대중은 우리 우주에 대한 지식을 세우는 일에 다시 한 번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확신을 하기에.

온도계의 철학
장하석 지음, 오철우 옮김, 이상욱 감수/동아시아

장하석 교수,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다
온도계의 온도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온도의 탄생 그속에 담긴 역사와 철학
"현재 온도는 26도 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은 사실 엄청난 성취물이다
상식을 의심하라, 온도계라도
온도계의 눈금 하나, 그 안의 과학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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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마약 밀거래 사이트 ‘실크로드’를 폐쇄 조치했다. 이 사이트에서 사용된 주요 결제 통화 중 하나는 실물이 없는 가상 화폐 ‘비트코인(bitcoin)’이었다. FBI는 지난 2년9개월 동안 실크로드에서 950만비트코인어치가 거래됐다고 밝혔다. 약 1조4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실크로드 폐쇄 소식에 달러 대비 비트코인 가치는 128달러로 8.6% 떨어졌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는 지난 14일부터 자체 보안서비스 ‘자이술’에서 비트코인 결제를 허용했다. 이 소식에 비트코인 가치는 156달러까지 올랐고,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비트코인이 또 다른 실크로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넥스트 머니 비트코인》은 유럽중앙은행이 “지금까지 나온 가상화폐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비트코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지난 4월 비트코인을 원화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거래소인 코빗을 공동 설립해 이사로 활동 중인 저자는 비트코인의 탄생 과정, 발행 및 유통 시스템과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또 자생력을 획득하고 저변을 넓혀온 배경과 과정 등을 화폐의 본질과 역사,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 등과 함께 이야기한다.

비트코인은 2009년부터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개인 혹은 집단이 개발해 인터넷으로 보급한 글로벌 디지털 가상화폐 시스템이다. 개인 간 정보 공유(P2P) 네트워크 기반의 암호화 프로토콜을 사용해 중앙의 관리나 개입 없이 분권화된 화폐 발행과 안정적인 거래 환경을 제공한다. 현재 1100만비트코인(약 13억달러)이 유통 중이고 최대 2100만개까지 발행된다.

저자는 1세대 화폐가 상품 기반의 금, 2세대 화폐가 정치 기반의 달러라면 3세대 화폐는 수학 기반의 비트코인이라고 설명한다. 비트코인을 새로운 시대를 여는 화폐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로 △쉽게 작은 단위로 나누고 다시 결합할 수 있고 △사기성 거래가 불가능하며 △희소할 뿐 아니라 공급량과 시기가 공개돼 있고 △민주적이고 평등하다는 점 등을 든다.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화폐로서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비판했고, 지난 18일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박원식 한은 부총재는 “발행 한도가 정해져 있고 수요 증가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며 가격의 급등락 위험성도 크다”며 “국내에서는 적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저자도 비트코인이 “여전히 미완성이고 실험적”이라고 말한다. 풀어야 할 숙제로 “이용자 친화적이고 안정적이어야 하며, 보다 완결된 순환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트코인이 돈에 대한 고정 관념과 기존 발행·유통 구조를 뒤집는 새로운 차원의 화폐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비트코인, 화폐 300년 史 디지털 쿠데타 꿈꾼다
"가상화폐 비트코인 활용해라" 유명 헤지펀드 CIO의 깜짝 조언
싸이 '도토리' 좀 모아본 당신…'비트코인'은 써봤나요?
비트코인, 이게 머니?
기존 화폐관념 뒤엎는 디지털 머니 비트코인 너 대체 정체가 뭐니
디지털 화폐, 돈의 본질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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