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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성경은 모두에게 은혜롭다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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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노예는 제도적으로는 소멸하였다 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착취와 압제를 제도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은 시대를 초월해서 끈질기게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던 불우한 인간에 대한 착취는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기독교 교리가 노예제도를 수호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히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19세기 전반, 즉 서양의 많은 곳에서 여전히 노예제도가 존재했을 당시 성서는 노예제도 폐지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쓰여 왔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제도를 두둔하려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기독교가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인간에게 자비로운 것인지, 하나님 자체가 불쌍한 인간에게 자애를 베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있다고 믿지 않지만 많은 이가 있다고 믿는) 하나님을 앞세워 자기 입맛에 맞게 적당히 재단해 자신의 논리를 세우는 것일까? 여하튼 성서는 만능의 권위를 자랑하지만, 문제는 양쪽 모두에게 제공한다는 점이다.

성서는 남부인에게 노예제도를 용인하는 확실한 예증과 근거를 끊임없이 제공하며, 노예제도 지지론의 근간을 마련해 주었다. 노예제도로 가부장적 온정주의를 실천하며,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박애 사상을 나타내 보이는 첩경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노예제도를 북부 양키의 비정한 자유노동제도보다 여러모로 훨씬 우수한 사회경제체제라고 확신했다. 남부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예제도는 미개한 흑인을 보다 우수한 기독교 문명으로 이끌어가는 훌륭한 '교육제도'라고 여기며, 이러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그들의 곁에 하나님이 서 계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노예제 반대론자는 성서에는 노예제도를 비난하는 구체적 예증이 적다는 것을 잘 알았다. 성서의 자구에 얽매이기 보다는 성서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그 문제에 대처하였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근본정신에 따라 성서를 광의로 해석하면서, 하나님은 노예제도를 폐지하여는 편에 굳게 서 계시다고 믿었다. 이렇게 성서에 배어 있는 인류 평등의 사상은 북부인의 반노예제 신념을 강화해 갔다.

1860년 링컨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남캐롤라이나를 선두로 남부의 주가 연방을 탈퇴하였다. 비록 링컨이 대통령 유세 때에 이미 노예제도가 뿌리내린 곳에서는 노예제도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남부인은 그가 일리노이 주 하원의원 시절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갈라진 집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하므로 노예제도가 하나의 연방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면 그것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하나님을 서로 자기편이라고 굳게 믿고 전쟁에 돌입한다.

남부인이 그토록 완강하게 노예제도를 고수한 것은, 노예제도는 단지 경제적 제도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체제 전체를 떠받쳐 주고 있는 생활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예제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생활양식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국, 남부인과 북부인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은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세우는 일에 성경을 이용했을 뿐이다. 지금도 지구 상에 종교의 이름으로 많은 인종주의가 존재한다. 하나님이나 그들이 믿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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