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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12월 1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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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그 욕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화된 필기구를 통해 충족됐을 것이다.

기원전 5000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이 나무나 금속의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사용한 스타일러스가 인류 최초의 필기구로 꼽힌다. 새의 깃털을 이용해 만든 깃펜은 서기 500년께 나왔다.

먹물을 찍어 쓰는 깃펜은 유럽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았지만, 펜촉을 바꿔 끼워야 하는 건 꽤 성가신 일이었다. 펜촉을 금속으로 대체한 딥펜은 그래서 등장했다. 그렇다면 현대의 만년필은 언제 나왔을까. 1883년 미국 뉴욕 보험업자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만든 만년필이 1호다. 워터맨은 이로써 '만년필의 아버지'가 됐다.

올해로 창립 125주년이 된 파커는 역사상 인간이 원하는 만큼의 완전한 내구를 가진 펜을 처음 등장시킨 만년필 브랜드다. 세계 각국 정상들은 중요 문서에 서명할 때 몽블랑의 간판 만년필 '마이스터스튁 149'를 사용한다. 펠리칸의 'M800'은 1990년대 한 만년필 잡지사의 '가장 갖고 싶은 펜'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만년필입니다!'는 만년필의 시작과 끝을 다룬 만년필 종합보고서다. 만년필에 추억이 있는 사람, 만년필을 꼭 한번 갖고 싶었던 사람에게 권한다. 국내 최대 만년필 동호회 펜우드의 회장인 저자는 필기구에 대한 욕망을 만년필이 어떻게 따라갔는지 연대기 형식으로 찬찬히 풀었다.

만년필입니다! 
박종진 지음/엘빅미디어

만년필입니다! ,‘너’가 있어 기록하고 너로 인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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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방법이라니…. 의사가 살인자라는 얘기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저자는 의사다. 그는 일본에서 40년 동안 방사선치료학과 전문의로 살면서 "병원에 자주 갈수록 불필요한 약이나 과도한 의료행위로 수명이 단축되기 쉽다"고 털어놓는다.

책장을 넘기는 곳곳마다 정통 의료에 저항하는 '반항의(反抗醫)' 거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흔히들 암을 일찍 찾아내어 조기에 치료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암 조기 발견이 행운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동안 암 검진은 늘었지만, 정작 암 사망률은 줄지 않고 있다는 이유다. 그러면서 암 검진을 그만둔 마을에서 암 사망률이 되레 격감한 사례를 내놨다. 1989년 나가노 현 야스오카 마을이 위암 검진을 그만두었는데, 그전의 6년 동안 위암 사망률은 전체 사망자 수의 6%였다. 하지만 검진 중단 이후 6년 동안 위암 사망률은 2.2%로 뚝 떨어졌다. 암 검진을 받으면 불필요한 치료를 받고 수술 후유증이나 항암제 부작용 등으로 빨리 죽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진짜 암이라면 이미 몸의 여기저기로 전이됐을 것이기 때문에 암 검진에서 찾아낸 그것은 진짜 암이 아니라 암처럼 보이는 '유사 암'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다짜고짜 메스부터 들이댄다고 꼬집는다. 이 밖에도 놀랄 것들은 많다. 암은 건드리지 말고 방치하는 편이 낫고, 우리가 매년 맞는 독감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각각의 주장마다 나름의 통계적 근거나 학술적 주장을 덧붙였다. 이를 반박하는 과학적 근거는 더 많이 있겠지만….

요즘 들어 이처럼 병원에 가지 말라느니 의사를 믿지 말라는 등의 의학 비판서들이 자주 등장한다. 과잉 진료와 수술·약물 남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혹세무민도 많다. 과잉 의료를 없애는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생명에 악영향을 주는 과한 주장도 걸러져야 한다. 어째 됐건 이 책이 일본에 100만권이나 팔렸다니, 일본도 의료 불신이 심각한 모양이다.

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곤도 마코토 지음, 이근아 옮김/더난출판사

[논란의 책] 癌 조기 발견은 행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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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벽은 돌무더기였다. 굶주린 짐승과 침입자를 막으려면 동굴 입구에 돌덩이를 쌓아야 했다. 방패는 '휴대용 벽'과 같았다. 문명을 따라 벽도 진화하면서 길고 복잡해졌다. 중국 만리장성, 18세기 프랑스의 페스트 방역 장벽, 냉전을 상징하는 '철의 장막', 한반도 DMZ…. 최근에는 방화벽, '수신 거부' 같은 온라인 장벽도 엄존한다.

이 책은 온갖 정치적 벽을 그러모았다. 권위를 상징하고 경계를 긋고 금지하는 벽들이다. 고대의 벽은 타인, 즉 야만인을 방어하는 문명의 성벽이었다. 야만인을 뜻하는 그리스어 'barbaros'는 횡설수설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성어다. 최근 홍콩에서 만난 중국 기자는 자국의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통제 때문에 괴롭다고 했다. '인터넷 만리장성'이라 부르는 벽이다. 서해 NLL, 중국이 하늘에 그은 방공식별구역도 장벽의 다른 이름이다.

전국시대 제후국들은 유목하는 야만족을 북쪽으로 내몰며 영토를 확장했다. 황허강을 기준으로 남쪽은 '문명인', 북쪽은 '야만인'으로 나뉘었다. 기원전 3세기 진시황은 공간과 시간을 분리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자신만의 제국을 짓느라 만리장성을 쌓아올렸고, 과거와 단절하고자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저질렀다.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볼 수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 장성도 칭기즈칸 같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지 못했다. 또 명나라는 '내부의 침략'으로 무너졌다.

로마제국의 리메스(Limes)도 만리장성과 기능은 같았지만 고정돼 있지 않았다. 로마 군대는 행군하면서 야영지 바깥에 일정 간격을 두고 보루 역할을 하는 감시 망루를 세웠다. 원주민의 침입을 막고 가축을 가두는 울타리에서 출발한 뉴욕 월 스트리트(Wall Street), 20세기 초 전쟁을 통해 유명해진 프랑스의 마지노선, 히틀러의 대서양 방벽도 방어선인 동시에 국경선이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발표부터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까지 200년이 걸렸다. 1961년부터 올라간 베를린장벽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폴란드·헝가리 등 공산주의 정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지자 이 벽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굿바이 레닌'(2003)은 그 격변기 풍경을 담은 영화다. 동독 공산당원인 어머니는 베를린장벽 철거를 외치는 시위대에서 아들을 발견하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통일 직전 깨어나지만 심장이 약해 절대안정이 필요한 상황. 아들은 동독 멸망 전의 상태로 집 안을 되돌려 놓는다. 품절된 동독 통조림을 긁어모으고, 가짜 TV 프로그램까지 만들며 어머니 눈을 가리려고 애쓴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클로드 케텔은 이 책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금지의 벽은 되레 늘었다"고 썼다. 국경 분쟁, 불법 이민, 테러를 막는 장벽들이다. 가장 길고 폐쇄적인 국경은 한반도에 있다. "철조망 위 확성기로 비방 전쟁이 펼쳐진다. 북한의 모습은 공산주의의 '쥐라기 공원'쯤 된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주의 왕조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북한과 비교하면 동독은 천국에 가까웠다."

케텔은 불법 이민을 막겠다고 세운 장벽과 부자 동네를 에워싼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출입이 통제되는 거주 단지)가 더 번성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올린 불법 이민 방지 장벽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홍콩에도 있다. 부유층이 빈곤층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가장 위험한 장벽'으로 서술된다. 서울에도 사생활 보호와 안전을 책임진다는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장벽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나약함의 고백"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국가가 법과 규범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음을 과장해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화는 심각한 빈부 격차를 낳았다. 부유한 북반구는 가난한 남반구를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민 방지 장벽은 '새로운 야만인'을 저지하려는 북반구의 만리장성"이라는 지적이 통렬하다. 장벽의 역사와 맥락은 물론 감춰진 공포까지 내시경처럼 살핀 책이다. 원제 'MURS: Une autre histoire des hommes'.

장벽
클로드 케텔 지음, 권지현 옮김/명랑한지성

만리장성서 DMZ까지… 장벽의 모든 것
우리가 쌓은 '벽'이 우리를 지켜줄까
짐승과 침입자를 막기 위한 장벽,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장벽 건설의 이유
`철의 장막` 무너졌지만 장벽 쌓기는 영원하다
이념·인종분쟁·불평등… 장벽에 갇힌 인류
경계짓기는 인간본능?…역사는 벽을 쌓으며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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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대표적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를 아나키스트의 측면에서 재조명한 책이다. 같은 시대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신채호만큼 조명을 받은 인물도 드물다. 비평가들 사이에선 ‘과대포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의 신채호 연구는 대부분 역사가와 민족주의자의 측면에 집중된 반면 사회주의자 또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측면에선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저자는 신채호에게서 민족주의자의 이미지를 벗겨 내고 신채호의 진면목에 집중하려 했다. 저자의 노력은 일제강점기 국내 지식인들의 사상적 흐름을 살펴 전환기 지식인들의 고민과 흔적을 보다 깊이있게 조명하려는 것이다.

신채호를 민족주의자로 고정시키려는 시각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일제강점기가 본격화하는 1910년대까지 신채호는 한국의 대표적 민족주의자였다. 1900년대에 누구보다 먼저 민족주의를 제창했고, 1910년대에는 민족주의에 기초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했다.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1923)을 통해 민중직접혁명론을 제창하는 등 아나키즘의 선구자가 됐다. 저자는 “신채호는 당시 조선독립 민족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아나키즘을 수용했으며, 나아가 아나키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론을 체계화했다”고 말한다.

뤼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조선혁명선언’에서 신채호는 “민중의 직접 혁명이야말로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후 신채호는 죽을 때까지 아나키즘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면 신채호는 언제부터 민족주의자로서 부각되기 시작했을까. 이는 1960, 70년대의 시대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풀이한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일본 관동군 장교였던 자신의 이력을 가려줄 도구로 민족주의를 내걸었다. 그러한 가운데 (일본의) 강권에 반대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실천에 옮긴 저항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신채호를 대표적 민족주의자로 부각시켰다.

신채호는 일제의 강압적인 질곡 상황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아나키즘에서 찾으려 했다. 당시 한국인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제국주의 식민통치였고, 따라서 모든 사회변혁운동은 식민통치 권력을 뒤엎는 것에서 출발했다. 사회변혁을 추구하던 지식인들은 모두 민족해방운동가를 자처했다. 일제가 붕괴하지 않고는 민족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나 아나키스트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신채호가 일제강점기에 민족해방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를 오로지 민족주의자로만 단정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자 일부가 당시 마르크시즘에 심취했던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한다. 하지만 신채호는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는 국제공산주의운동에는 단호히 반대했다.

몰락한 양반 집안 자제로 태어나 실학과 서구의 근대 학문을 접한 신채호는 봉건 유학자에서 자강운동가로, 자강운동가에서 민족주의자로, 다시 아나키스트로 사상적 변신을 거듭했다. 신채호가 조선 독립의 방안으로 주창한 민중의 직접 혁명은 당시 의열단 등 청년 독립운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독립운동 단원들은 조선혁명선언을 가슴에 품고 다니며 무장 봉기를 기도했다. 신채호는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할 때 판결문 1통, 인장 1개, 수첩 2권, 서한 10여 통, 중국 돈 얼마, 그리고 서적 몇 권을 남겼다. 서적 중에는 러시아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이 쓴 ‘세계 대사상 전집’이 있었다.

신채호 다시 읽기 
이호룡 지음/돌베개

단재의 민족운동은 민중해방과 아나키스트 운동이었다
‘아나키스트’ 신채호… 그의 고민과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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