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주 새로 나온 책

2014.01.08 09:00 行間/새로 나온 책

자본이 사적으로 지배할 것이냐, 아니면 국가가 공적으로 통제할 것이냐? 혹은 사유화이냐, 국유화이냐? 그동안 우리가 봐 온 양자택일의 선택지 앞에서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

《공통체》. 현존하는 가장 급진적인 학자이자 투사로 불리는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함께 쓴 ‘제국 3부작’의 마지막 책이자 종합편이다.

저자는 전작 《제국》에서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전 지구적 제국 권력이 낳을 파장을 경고했고, 후속작 《다중》에서는 네트워크적인 제국화가 오히려 그에 대항하는 다중을 탄생시킨다는 통찰을 내놓았다.

2013년 터키의 게지공원 재건축 반대시위, 브라질의 버스비 인상 반대집회, 한국의 철도 민영화 저지운동 등이 보여주듯이 이미 다중은 공원, 버스, 철도와 같은 공통의 것에 대한 사유화에 반대하고 공통적인 것의 민주적 관리를 요구한다.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the common’의 번역어로서,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열려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는 15세기 인클로저 운동과 함께 ‘공유지’(the commons)를 사유화하면서 출발했다. 당시 ‘공통적 부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삶’을 뜻하던 공통체(commonwealth)를 차용하여 단순히 ‘국가’를 가리키는 말로 바꾸어버렸다. 저자는 국가와 자본이 ‘공통체’를 파괴한 장본인이므로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역사의 역설이라며, 이 단어를 사용한다.

책의 전반부에는 공통적인 것의 존재를 은폐하고 억압하는 세 가지 틀인 공화국, 근대성, 자본에 대해 탐구한다. 이 틀은 각각 소유 공화국, 자본주의적 근대성, 수탈적 금융자본의 형태로 현실에 존재하며, 공통적인 것의 발전을 방해하고, 부패시키는 도구로 작동한다.

후반부에서는 공통적인 것의 현황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분석을 담고 있다. 집단적 생산과 자치에 대한 다중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그 능력을 확대하면서 공통적인 것을 제도화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세계적인 석학 슬라예보 지젝은 이 책에 대해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파산상태다. 다음에 올 것은 무엇인가’ 네그리와 하트가 그 답을 제시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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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이 자치 기술을 배우고 영속적인 민주적 사회조직 형태들을 발명하는 과정이 바로 ‘군주 되기’(Becoming-Prince)이다. 다중의 민주주의는 오로지 우리 모두가 공통적인 것을 공유하고 공통적인 것에 참여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하다.”

자, 뭔 말인지 알아먹겠는가. 매를 먼저 맞자면, 기자는 이해는커녕 단어조차 한글인가 싶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와 미국 듀크대 교수인 마이클 하트. 두 저자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이들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여기서 편을 갈라야 한다. ‘제국’(2001년 한국 출간) ‘다중’(2008년)과 같은 전작을 접해 본 독자인가 아닌가. 전자라면 열광하겠으나, 후자라면 얼른 책을 덮으시라.

그래도 아쉬우니 위의 문장이 무슨 얘긴지나 알아보자. 저자들은 21세기 들어 새로운 세계질서가 찾아왔다고 봤다. 바로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전(全) 지구적 권력인 ‘제국(Empire)’이다. 자본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현상을 일컫는다고 보면 되겠다. 거대한 제국화는 다수의 세계시민을 이에 대항하는 ‘다중(Multitude)’이란 세력으로 변모시킨다. 이런 다중이 자본의 지배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대안적 사회를 제안하는 방식과 상태를 ‘공통체(Commonwealth)’라 정의한다. 공동체가 아니라 굳이 공통체로 번역한 것은 민영화나 국영화와 달리 자본과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함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왠지 어디서 들어봄직한 구도 아닌가. 맞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상당히 흡사하다. 실제로 이에 뿌리를 둔 저자들의 사상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공산당선언 2.0’이라 평했다. 슬라보이 지제크도 “현재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파산한 상태다. 두 학자는 새롭게 도래할 세상을 예견했다”고 극찬했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념과 상관없이, 국가도 자본도 아닌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만큼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만 너무 선언적인 데다 해외에선 2008년에 나온 책이라 다소 타이밍이 안 맞는 대목도 보인다. 이 책의 후속작인 ‘선언’은 이미 지난해 국내에 출간됐다.

공통체
안토니오 네그리 외 지음, 정남영 외 옮김/사월의책

‘소유공화국’을 넘어 공통체의 세계로 VS 개별적 특이성 무시한 공통체론 ‘공허’
자본과 국가의 통제 벗어난 대안사회
1부서 ‘제국’의 범주 확장…2부선 ‘다중의 군주되기’ 역설
공통적인 것에 대한 수탈과 사유화 막을 대안 사회는?
대중과 시장에 모든걸 맡겨라
사회주의는 실패, 자본주의는 파산…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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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 2만3,000 달러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빠른 속도로 빈곤 인구가 늘고 있다는 말에 수긍할 수 있는가. 절대적 의미의 빈곤 기준에 비춰본다면 우리의 경제수준에서 배를 곯거나 옷을 못 입는 사람은 분명 극소수다. 박노해 시인마저 지난 2009년 "69억 인구에 비춰보면 국내엔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이 없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을 정도다.

현재보다 크게 경제수준이 낮았던 지난 1989년 서울에서 '아시아 도시빈민대회'가 열렸을 당시 일화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전두환 정권은 공항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변 판잣집들을 철거하거나 보이지 않도록 가림막을 설치하며 이른바 '88서울올림픽 도시미화'를 진행했다. 이때 빈민대회에 참석해 우리의 봉천동 산동네를 지켜본 개발도상국 출신 참가자들은 "여기가 무슨 가난한 동네냐"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들의 기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돼 있고 다양한 전기제품을 사용하는 이들의 주거지가 빈민촌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처럼 이미 수십 년 전에 객관적인 의미의 '빈곤'을 벗어난 것일까.

철거민 정착촌에서 12년을 보내며 고 제정구 선생 등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도시빈민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낸 저자는 빈곤에 관한 개론서와 같은 이 책에서 빈곤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빈곤의 굴레에서 탈출하고 있는지에 대해 세밀하게 따져본다. 저자가 내린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빈곤'하다. 아니 과거보다 빈곤의 정도가 달라졌을 뿐이지 그 범위에 들어가는 숫자는 오히려 늘었다.

빈곤선(중위소득의 50~60%선)이하의 인구를 의미하는 빈곤율은 2000년대 후반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5%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1.1%보다 높은 수준으로 우리는 '가난'이라는 사회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빈곤율의 상승추세는 외환위기 때 과거 대비 최고점을 찍은 이후로 계속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100명 가운데 15명의 빈곤층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객관적 의미에서도 여전히 가난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말이다.

빈곤은 항상 동시대 같은 사회의 구성원을 기준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가난의 문제를 더 넓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게 아닌데 빈곤선 이하의 인구가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수준 이상이라는 이유로 '가난'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단지 소득이 부족한 것이 빈곤의 전부가 아니라 주거, 고용, 교육, 건강, 시민권 및 정치참여 기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 결핍하다면 빈곤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이유로 유럽국가들은 '빈곤(Poverty)'이라는 말 대신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는 용어로 가난을 설명한다"고 덧붙인다.

가난을 심화시키는 것은 빈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뿌리 깊은 시각과 많은 편견이다. 저자는 '빈민은 그림의 음영과도 같다. 그림의 대비 효과를 위해 필요한 존재다'는 필리프 에케의 말 같은 잘못된 생각이 현대 우리 사회에도 다양하게 변주된다고 지적한다. 빈민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습관 및 가치체계를 뜻하는 '빈곤문화론'에 대한 논쟁 또한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일각을 보여준다고 책은 강조한다. 저소득층 가운데 알코올 중독자들이 많은데 이를 두고 마치 '빈곤은 빈민들 자신의 책임'이라는 식의 편견이 굳어지는 점도 꼬집는다.

빈곤을 벗어나고 퇴치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많은 방안이 사실은 거짓이거나 미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난이 공부의 자극제가 되어 이른바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믿음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학력과 학벌은 철저히 대물림되고 있으며 학력은 자본이 된 지 오래다"며 "가난한 집 부모는 아이들을 학업에 매달리게 할 힘과 자원, 시간, 정보, 돈이 없다"고 말한다. 이른바 '하면 된다'는 식의 희망의 이데올로기는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북돋아 주기는커녕 빈곤층에 머문 사람을 단죄하는 낙인이 된다는 것이다. 책은 "자본주의 아래 빈곤은 당연하다"고 믿는 기득권층이 가난의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 강조한다.

빈곤을 보는 눈
신명호 지음/개마고원

빈곤, 단순히 소득 부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참여와 기회의 결핍 느낀다면 당신은 '빈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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