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주 새로 나온 책

2014.01.14 09:00 行間/새로 나온 책

창조적 천재란 결국 평범한 사람보다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실패한 사람일 뿐이다. 켈리 형제는 이를 "누구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혁신의 수학"이라며 "더 많은 성공을 원한다면 더 많은 실패를 가볍게 넘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표현했다.

자녀를 창조적으로 키우고 싶은가. 회사를 창조적인 분위기로 이끌고 싶은가. 간단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도록 실패를 허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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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을 이리저리 찔러보면 뭔가가 팍 솟구쳐 나온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다시 주조할 수 있다. 어쩌면 그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당신이 일단 그걸 알게 되면 이후의 당신은 그전의 당신과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애플의 창시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창조적인 인물의 대명사이다. 그는 1994년도에 진행한 한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가 세상을 바꿀 능력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해서 당신의 뇌를 깨워라', '많은 경험을 하라', '남다르게 생각하라', '우주에 흔적을 남겨라' 등 그가 남긴 말은 사람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창의성을 일깨워주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창조성을 화가, 소설가, 디자이너, 카피라이터, 영화 감독 등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긴다.

신간 '유쾌한 크리에이티브'는 보통의 사람에게 '어떻게 창조적 자신감을 이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지금은 혁신의 아이콘이 된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IDEO)의 창업자 데이비드 켈리와 톰 켈리가 저자로 나섰다. 이들이 실제로 이 책을 위해 100명 이상의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이들 모두가 자신을 '창의적이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로 분류했다. 하지만 저자는 단언한다. "창조적 자신감은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더 강해진다"고 말이다.

창의성은 우리 안에 이미 내재돼있다. 티벳어에는 '창조성' 혹은 '창의적'에 해당하는 말이 없는데, 가장 가까운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 '자연적(Natural)'이라는 단어다. 즉 누군가가 더 창조적이고자 한다면 더 자연적인 상태가 되면 되는 것이다. 찰흙으로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크레파스를 거침없이 휘두르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오면서 부모님의 꾸중, 선생님의 질타, 주변의 시선 등에 의해 창조적 잠재력이 꺾였던 것이다.

어린 시절 가지고 있었던 창의성을 다시 살리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창조성을 선택하라. 일단 당신이 창조적으로 되길 원하고 있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여행자처럼 생각하라.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하자. ▲느슨하게 주의하는 능력을 키워라. 마음을 적당히 풀고 겉보기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들을 이리저리 연결시켜보라. ▲최종 사용자와 교감하라. 당신이 해법을 제공하고 싶은 대상의 욕구와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관찰하라. ▲'왜'라고 질문하라. ▲과제의 틀을 다시 짜라. ▲창조적 지원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저자들은 아이디오와 스탠퍼드 디스쿨(하소플래트너 디자인연구소)에서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창조성을 발현할 수 있는 전략을 소개한다. 아이디오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으로, 애플과 도요타, 스타벅스, 삼성 등의 제품을 디자인했다. 애플이 내놓은 최초의 컴퓨터 마우스와 폴라로이드의 즉석 카메라 작품을 탄생시킨 곳도 이 곳이다. 단순히 예쁘고 스타일이 좋은 물건을 디자인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게 아이디오의 철학이다. 소아 환자들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MRI기계를 해적선 모형으로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하기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 또한 달라진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일을 직장(Job), 직업(Career), 소명(Calling) 중 하나로 본다. 자신의 일을 '직장'에 한정짓는 다면 단지 돈 버는 행위에 불과하다. '직업'으로 보면 실적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다. 이와 반대로 '소명'을 쫓으면 일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고유한 가치를 찾게 된다. 이제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은 세 가지다. '나는 뭘 잘하지?', '뭔가를 한 대가로 난 뭘 받게 될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나?'

저자가 소개한 다양한 사례와 구체적인 해법은 '우리도 창의적으로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당신은 살아가는 법, 일하는 법을 바꿀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대가로 어느 정도의 좌절은 감내해야 한다. 시도해서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행동은 안전한 플레이를 하려는 것, 현상을 유지하고 익숙한 것에만 집착하는 것, 어떤 시도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유쾌한 크리에이티브
톰 켈리 & 데이비드 켈리 지음, 박종성 옮김/청림출판

창조적 천재는 범인보다 조금 더 많이 실패했을 뿐
쓸수록 강해진다, 창의력은 체력이다
애플마우스 만든 엉뚱한 형제가 말하는 창조
창의적이고 싶다면 천둥벌거숭이처럼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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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살아남는 것은 힘이 세거나 영리한 동물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한 동물"(찰스 다윈)이라는 말이 메아리친다. 네덜란드 경영컨설턴트로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등에서 IT 전략에 대해 강의해온 신세대 미래학자 피터 힌센은 캐나다 아이스하키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를 인용한다. "훌륭한 하키 선수는 퍽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만 위대한 하키 선수는 퍽이 '향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더 멀리 내다보라는 주문이다.

이 책에서 '퍽'은 디지털 혁명이다. 힌센은 "디지털 시대의 유리잔은 아직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면서 "다가올 혁명은 너무 압도적이라서 지난 40년 IT 역사를 매우 보잘것없게 만들 것"이라고 썼다. 그는 디지털 혁명의 두 번째 여정에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새로 등장할 '디지털 원주민'은 아날로그를 경험한 우리 세대(디지털 이민자)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이 공기처럼 편하다. 그들을 상대하는 비즈니스에는 새로운 원칙과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날마다 정보의 산사태와 싸운다. 이메일, 첨부파일, 프레젠테이션,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 '메가트렌드'를 쓴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면서 지식에는 목말라 있다"고 했다. 사람을 겨냥한 채널과 정보량은 폭증했지만 '섭취하는' 정보는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힌센은 "문제는 정보의 과부하가 아니라 필터링 실패"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메일을 많이 받는 사람은 딱하다. 정보를 장악하게 돕겠다는 IT 혁명이 거꾸로 생산성을 억누른다. 권력자는 필터링된 정보가 담긴 극소수 이메일만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원하지 않는 과다한 정보,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는 집중력이 산만해지는 법이다.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심리학'에서 소비자가 6종의 잼을 파는 판매자와 24종의 잼을 파는 판매자를 각각 만나는 두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흥미롭게도 선택권이 단순했을 때 잼이 더 많이 팔렸다. 힌센은 "인내심의 한계와 필터링의 힘을 제대로 이해한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한다"고 결론짓는다. 아마존이 그랬다. 애플도 복잡성은 숨기면서 사용자의 능률은 최대화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 IT 전략서는 "히트 수는 바보들이 성공을 모방하는 방식"이라고 잘라 말한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이트에 들어왔고 그것을 어떻게 구매 행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무의미한 히트 수에 집착해서는 뉴 노멀 시대에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충고다.

'콘텐츠가 왕이다'는 오랫동안 온라인 공간을 지배해온 원칙이었다. 기업은 인쇄물 브로슈어를 디지털 형식으로 전환해 올린 뒤 웹사이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힌센은 "콘텐츠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콘텐츠가 나빠서가 아니다. 디지털 소비자가 콘텐츠에 압도돼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콘텐츠에 '푸시(push)'당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고전적인 푸시 매체는 TV였다. 광고인들은 TV를 통해 막대한 소비자 집단을 정조준할 수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이라면 CBS·NBC·ABC에 동시에 방송되는 광고 스팟을 확보하면 소비자의 80%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량시장(mass market)은 지난 50여년간 계속 무너져왔다. 과거의 방식이 더는 먹히지 않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고객 맞춤판으로 2만 종을 찍어낸다. 나이키는 "여러분이 디자인하면 나이키가 만들어준다"는 맞춤형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뉴 노멀 시대에는 특별한 취향을 지닌 100명, 심지어 한 명을 위한 상품이 나온다. "평균화된 '일반 소비자'는 사라진다. 기업은 이제 무력한 소비자가 아니라 신들과 거래해야 하는 셈이다." IT 강국인 한국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은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콘텐츠가 콘택트(contact·고객 접촉)에 왕좌를 물려주는 것이다. 힌센은 "디지털 원주민이 지배적 소비자가 되면 아날로그적 충성심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사상도 무덤으로 보낸다. "뉴 노멀 시대에는 반응이 메시지다. 기업이 소비자에 반응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 고객과의 대화를 처리하는 방식이 성공 열쇠가 될 것이다."

새로운 인재상은 'I자형 인간'이 아니라 'T자형 인간'이다. T자형 인간은 기능적이고 전문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지식을 다른 상황에 수평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글이 집에서도 마음껏 쓸 수 있는 G메일을 보급해 직장 내부로 침투했듯이, 뉴 노멀 시대에 경영 전략은 '외부에서 내부로, 아래에서 위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디지털 채널은 보존(유통) 기간이 짧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피라미드형 구조보다는 설치도 쉽고 신속하게 옮길 수 있는 텐트형 구조가 적합하다"는 주문에도 수긍하게 된다. 디지털 혁명의 두 번째 여정에 등장하게 될 쟁점을 꼼꼼하게 정리한 책이다. 쓸모 있는 나침반처럼 다가온다. 핵심은 이 한 문장, "디지털 원주민의 입장에서 접근하라"다.

뉴 노멀
피터 힌센 지음, 이영진 옮김/흐름출판

두번째 디지털 세상… 콘택트(contact·고객 접촉)가 王, 소비자는 神
성공 비즈니스, 디지털 원주민 공략에 달렸다
2차 디지털 혁명기, 앞으로 40년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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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발상지가 이탈리아라는 건 세계사의 상식이다. 하지만 르네상스(Renaissance)란 말은 프랑스어다. 이탈리아인도 14~16세기 본국에서 일어난 문예부흥 운동을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르네상스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개념이기 때문이다. 중세와 대비되는 근대정신의 태동으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고, 그것을 시대 개념으로 정착시킨 역사가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다.

과연 당시 이탈리아인이 최초의 근대인이었는가. 하위징아는 그 시대를 근대의 신기원이 아니라 ‘중세의 가을’이라 명명했다. 가을이 가진 ‘수확’과 ‘몰락’의 이중적 이미지처럼, 중세라는 잘 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창조적 붕괴’가 일어났던 시기라는 것이다.

모든 종말은 새로운 시작이다. 그럼 누가 새 시대를 열었는가. 개설서에는 단테·페트라르카 같은 인문주의자가 르네상스의 연출자이고, 주역은 조토·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이들 활동을 메디치가(家)와 같은 대상인들이 후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어느 시대에 그런 이상사회가 있었는가. 이 같은 역사이야기는 르네상스라는 개념이 만든 허구임을 밝히는 책이 번역서가 아닌 한국인이, 그것도 역사학자가 아닌 경제학 교수가 쓴 책으로 출간됐다.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의 저자 성제환 교수는 상인들이 황금보다 예술작품과 인문학 책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문제 의식으로 인문학과 예술의 융합으로 중세적 사물의 질서를 개편한 르네상스에 대한 연구를 했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를 연 주인공은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 상인이었고, 그 대표적인 가문이 메디치가였다고 주장한다. 메디치가가 이 같은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조건은 당시 피렌체 상황이었다.

이탈리아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대 로마,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의 무솔리니 파시즘이다. 고대와 현대에서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르네상스에서는 모든 길이 피렌체로 통했다. 당시 피렌체는 밀라노와 베네치아보다 부유하지 않았다. 단지 피렌체가 두 도시와 달랐던 점은 근대의 특징인 종교 영역과 세속 권력이 분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피렌체는 외세의 침입으로 끊임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서방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중재는커녕 피렌체를 자신의 세력권에 두려는 야욕을 가졌다. 피렌체의 시민은 신앙이 아니라 용병이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병을 고용하는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저자는 그들이 가장 부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공동체를 중시하는 시민적 휴머니즘을 구현하는 정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문 정치의 수단이 예술이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이 문화였다. 메디치 가문을 고리대금업자에서 피렌체의 주인으로 등극시키는 초석을 만든 사람은 국부로 추앙받던 코시모 데 메디치였다. 그는 폐허인 성 마르코 수도원을 시민들의 신앙생활 중심지로 재건하고, 부유한 상인과 고위 성직자만이 참여하는 ‘성 삼위일체 축제’ 대신에 동방박사경배 축제를 연출하여 피렌체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심어주는 시민종교의 장으로 활용했다.

메디치가의 권력이 ‘위대한 로렌초’ 시대에 최고에 도달했다가 이후 날개 없는 추락을 함으로써 한때 창조의 공간이던 피렌체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오늘날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은 당대에는 외설 시비로 몸살을 앓던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예술작품들이다. 역사의 교훈은 권력을 위해 예술을 활용했지만 결국 “권력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것이다. 예술은 종교보다도 생명력이 강인하다. 예컨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바티칸성당에 가는 이유는 신앙 때문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기 위해서다.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성제환 지음/문학동네

세상 지배하려는 욕망, 르네상스 名畵를 만들었다
르네상스 주역 ? 예술가인가 상인인가
`천국`을 판 교황, 르네상스 시대 열다
피렌체의 상인들이 예술을 후원한 진짜 이유
메디치家의 예술가 후원은 정치적 계산
르네상스 이면의 주인공이었던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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