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주 새로 나온 책

2014.02.06 09:00 行間/새로 나온 책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자신이 갈고 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 내기 위해,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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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기준으로 판사·검사·변호사를 합친 법조인들의 수는 1만7000여명이다. 한국 인구를 5000만명으로 잡았을 때 전체 인구의 0.03%에 불과하다. 법조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전체 인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훨씬 넘어선다. 2012년 총선에서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 당선율은 14%에 달했다.

법률가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2004년 5월, 당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하고 같은해 10월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은 헌법재판소였다.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한국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옥죄는 가장 악질적인 수단인데, 파업을 기업 활동에 대한 업무방해로 볼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사법부다. 법률가들은 또 재산분쟁이나 이혼소송 등 시민들의 사적인 영역에서도 결정권을 행사한다.

법률가들의 결정이 발휘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구속력은 법과 법해석의 공정성과 정의로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법과 법해석이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법률가들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는 법률가들의 권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쟁적인 저작이다. 40년 동안 미국 예일대 로스쿨 헌법학 교수를 지낸 프레드 로델(1907~1981)이 1939년에 썼다. 저자의 비판은 호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혹독하다. 저자에게 법이란 “고등 사기술”이거나 “사이비 과학”에 불과하다. 그 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법률가들은 부족시대의 주술사와 중세의 성직자들처럼 “자신들이 갈고 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내기 위해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 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에 군림하는 무리들에 불과하다.

첫째, 법은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앞을 바라보는 대신 지나간 원칙과 선례에 집착한다. 1935년 석탄업계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역청탄보호법’이 제정됐을 때 미국 연방대법원은 ‘법률의 일부가 위헌’이라는 이유로 법률 전체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법은 속성상 ‘현장 유지’를 원하며 필연적으로 부자와 보수주의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운다. 둘째, 법률가들은 법이 특정 문제에 대해 단 하나의 올바른 답을 제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 또한 사기다. 법이 작동하는 과정은 어떤 항구불변의 원칙으로부터 올바른 답을 추출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파업에 대한 노동자 측 변호사의 견해와 사용자 측 변호사의 견해는 정반대다. 저자는 법의 원칙이란 “사실은 고상한 체하는 말들의 조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법이 이처럼 보수적이고 임의적인 데다 허공에 떠 있는 추상적인 말들의 조합임에도, 시민들이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률가들이 난해한 그들만의 전문용어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 용어의 난해함은 고등수학이나 생화학 분야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고등수학이나 생화학은 대상 자체가 전문적이다. 반면 법이 다루는 영역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평범한 사건이다. 저자는 이것이 “법률적 사고의 혼란·모호·공허함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한다.

저자의 비판은 문제의 뿌리까지 파고든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근본주의적이다. 대안 또한 그렇다. 저자는 “법률가와 그들의 법을 폐지”하고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법적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제도를 구축하자고 말한다. 미국 법학자 제롬 프랭크(1889~1957)는 이 책 개정판에 쓴 서문에서 “법률가와 법관에 대한 로델의 비난은 생각건대 확실히 극단적”이며 개혁안은 “지나치게 공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까지 염두에 둔 채 문제를 끝까지 밀어붙여 통념을 뒤엎으려는 태도야말로 이 책이 지닌 매력이다.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프레드 로델 지음, 이승훈 옮김/후마니타스

법은 해석하기 나름? 법조계 위선·이기심 고발
법이란, 법률가들만의 그들만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고등 사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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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똥찹니다. 기발합니다. 악착같습니다. 집요합니다. 과감합니다. 교활합니다. 교묘합니다. 감동적입니다. 도전적입니다. 호전적입니다. 획기적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운도 따르고 재수도 좋습니다. 그러나 위험하고 재수 없습니다.

128년의 역사, 128년의 비밀을 간직한 채 전 세계시장을 점령해 나가는 코카콜라의 시장성에 대한 단상입니다. 코카콜라는 남부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먼 족까지 마시고 있는 음료지만 128년 동안 제법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베일 속의 음료수입니다.

미국의 군사력과 함께 전 세계로 퍼진 코카콜라는 1886년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처음에 태어난 코카콜라는 지금과 같은 청량음료가 아닙니다. 두통, 위장병, 피로회복 등에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진 특허매약,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합니다.

코카콜라의 제조 비법, 물품번호 '7X'로 분류되어 있는 비밀성분을 아는 사람은 코카콜라 사에서도 두세 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욕망의 코카콜라>(지은이 김덕호, 펴낸곳 지호출판사)는 코카콜라의 역사이자 숨은 이야기들입니다. 코카콜라의 탄생에서부터 세계시장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우여곡절을 낱낱이 밝히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의 여진이 남아있던 시기에 탄생한 코카콜라는 미국인의 음료가 됩니다.

미국에서 확산되는 소비주의와 엄청난 광고공세가 더해지면서 코카콜라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대표하게 됩니다. 책에서는 욕망을 '반드시 마시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마시고 싶다고 느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욕망을 대표하게 된 코카콜라는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전 세계로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갑니다.

미군, 미국의 군사력이 등장하는 곳마다 점령군처럼 등장하기 시작한 코카콜라는 미국화의 선봉에선 음료로 자리를 굳혀나가며 전 세계적인 음료가 됩니다. 코카콜라의 역사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미국적 자본주의의 역사입니다.
 
종군기자인 하워드 패스트(Howard Fast)의 코카콜라에 관한 증언이 그 단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어느 육군 기지에 수송기인 C46이 착륙하여 수천 병의 코카콜라 빈 병을 공수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적재중량이 초과되어 비행기가 고도를 잃고 비틀거리자 기자가 코카콜라 병을 버릴 것을 건의했으나, 조종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절대 안 됩니다. 총이나, 지프, 탄약 또는 곡사포까지도 (버릴 수 있지만)…… 코카콜라 병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목적을 완수하고 싶지 않거나 일등병이 다시 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욕망의 코카콜라> 227쪽-

따라서 이들에게 코카콜라는 목마를 때 마시는 청량음료가 아니라, 전쟁의 긴장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이 떠나온,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과 집을 추억하게 하는 소중한 표상이었다. 이처럼 병사들에게 있어 코카콜라는 언제나 고향에서의 즐거웠고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매개물이 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고향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코카콜라이건 허시 초콜릿이든, 혹은 리글리 추잉검미든 상관없었다. -<욕망의 코카콜라> 230쪽-

미국의 토템음료가 된 코카콜라가 시장을 넓혀나가는 과정이야 말로 미국적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내딛는 발자국입니다. 미국의 군사력과 동반한  미국적 생활방식의 상징입니다. 때로는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때로는 점령군처럼 등장해 토착민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현지에 정착합니다.

도전도 받고,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코카콜라가 세계 시장으로 파고드는 과정은 기똥차고, 기발하고. 악착같고, 집요하고, 과감하고, 교활하고, 교묘합니다. 때로는 감동적이지만, 도전적이고, 호전적이고, 획기적이어서 기가 막힙니다.

70년 이상을 5센트로 유지하고, 동서독이 통일 되는 순간에는 240만병을 공짜로 나눠주며 환희의 순간을 연출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합니다. 용량을 변경시키는 방법으로 가격을 조절하는 등 욕망의 제국을 공고히 합니다.

저자가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코카콜라의 역사나 숨은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코카콜라로부터 전이되고 있는 '미국적 생활방식', '개인적으로는 건강에, 공적으로는 자연 생태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오고 있는 미국적 생활방식'이 더 이상 확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역설이라 생각됩니다.

책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13년째 연속 '최고의 글로벌 브랜드' 1위였던 코카콜라가 책을 다 썼을 때는 애플과 구글에 밀려 인터브랜드 3위로 밀려났다고 합니다. 저자는 '코카콜라를 주제로 한 것은 소비자본주의라는 현대 사회의 핵심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나오는 말'에서 강조합니다.

어쩌면 저자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책을 맺으며 쓴 "21세기 삶에는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소비로부터의 자유'가 더 절실한지도 모르겠다. 잠시일지라도 욕망이 정지된, 혹은 욕망에서 벗어난 삶이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욕망의 코카콜라
김덕호 지음/지호

전쟁 수송기, 코카콜라 빈 병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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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은 1970년대 한국 독재체제의 다른 이름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 사람들은 종종 유신시대를 낭만화하기도 한다. '새마을운동', '수출위업 100억 불', '아시아의 네 마리 용' 등의 용어들은 비록 정치적으로 독재의 시대였으나 지지리 못살았던 보릿고개를 벗어던지며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던 1970년대를 표상하며, 박정희 대통령을 칭송할 때 사용되곤 한다.
우리에게 유신시대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화석화된 역사인가? 이에 한홍구 교수는 단호히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유신의 겉과 속을 샅샅이 꿰뚫는다. 여기에서 나아가 유신은 끝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지난 연말 한홍구 교수의 '돌직구'에 따르면 유신세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엘리트집단은 '바퀴벌레'요, '오뎅국'과 다름 아니다(<한겨레>(인터넷판) 2013. 12. 27.).

오뎅국에 대해서는 한 교수와 한 차례 논쟁 아닌 논쟁을 벌였다. 내 주장에 따르면 오뎅국은 500원이면 허기진 누구라도 달래줄 수 있는 민중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자 귀한 기호품이기 때문에, 엘리트집단이자 유신세력으로 비유될 수 없다. 반면 '온갖 환경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3억2천만 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지구의 터줏대감'인 위대한 바퀴벌레에 대해서는 거의 공감한다. 우리는 2000년대 초 잠시 민주주의라는 다소 위생(?)적인 집에서 살게 되자, 바퀴벌레가 거대한 지하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잊었다.

한국과 일본의 다르지만 다르지만도 않은 망각의 역사

최근에도 뉴스에서 "역사 잊는 자 미래 보지 못해?"라는 이야기를 접했다. 이 이야기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여 1월 28일 한국 외교부가 발표한 성명문의 한 구절이다.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역사 왜곡, 독도에 대한 거짓 주장은 너무 심각해서 일일이 대응하기조차 한심할 지경이다. 이는 한일관계만이 아니라 중일관계를 넘어 아시아 전체 국가와 시민에 대한 도전이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에게 날강도 짓을 하는 격이다.

일본의 극우들은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이후에도,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구상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을 서구 열강의 식민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이라고 호도해왔다. 또한 한국 병합 역시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구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변해왔다.

2011년 일본 NHK의 아침드라마 <오히사마(おひさま: お日? 해님)>를 비롯해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일본의 드라마 등에서는 전시 일본서민들의 고통과 생활상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춰, 고난 중에도 해처럼 밝게 살자고 강조할 뿐이었다. 전쟁의 발발원인이나 일본의 침략 문제에 대한 어떤 비판도 발견하기 어렵고, 은연중에 원자탄 투하 사건을 통해 일본이 전쟁의 피해국임을 내세워왔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일본 시민이나 청소년, 대학생 대다수에게 내면화되어,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식민지 한국인이나 아시아인들에게 저지른 범죄행위를 잊어가고 있거나 잊고 싶어 했다.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인정을 회피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이나 "위안부 문제는 어느 나라나 다 있었다"고 한 모미이 가츠토(?井勝人) NHK 회장 같은 이들의 파렴치한 발언과 행위는 이러한 일본인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며 그러한 세력이 바퀴벌레처럼 활개를 치도록 만들고 있다. 우리가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간단하다. "잊으면 반복된다."

역사를 잊으면 역사는 반복되고 비극은 다시 온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기억해야 한다. 또 잘못된 역사에 대해서는 진실규명과 사과, 화해, 역사 기록 등과 같은 노력을 해야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그러한 입장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과거청산 노력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2008년 이래로 급작스럽게 과거청산운동의 막이 내려졌다. 그 막이 내려지고 나자 마당에는 다시 '바퀴벌레들'이 올라와 과거보다 더 세찬 힘으로 날갯짓을 하며 과거청산운동과 기록을 갉아먹고 번식하고 있지 않은가, 종 치며, 북 치며.

잊지 않기 위해 쓰는 한홍구의 <유신>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한홍구 교수의 <유신>(한겨레출판사, 2014)은 1970년대사이다. 1970년대 역사서 가운데에는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1, 2, 3권, 인물과사상사, 2002),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1970년대 전반기의 정치사회변동>(백산서당, 1999)과 <1970년대 후반기의 정치사회변동>(백산서당, 1999) 등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대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책이 1970년대 역사를 동태적으로 고찰한 학술서이므로, 대중적 호흡을 하고 있는 한홍구의 이 책은 강준만의 책과 가깝다. 2000년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주류 정서를 설명하는 입장에서 1970년대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강준만의 책과 한홍구의 책은 출발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강준만의 정치적 입장과 한홍구의 입장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강준만은 1970년대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하지 않는 입장에서 접근했다. 그러나 한홍구는 진정한 과거청산을 통하여 새 역사를 여는 길이 우리 모두의 삶의 길임을 강조하는 절박한 입장에서 유신을 현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홍구의 <유신>이 갖는 특징을 짚어 보도록 하자. 우선 이 책은 집합지성의 산물이다. 물론 집필자는 한홍구 개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책의 추천사에서 이만열 선생이 기록하듯, 이만열, 서중석, 안병욱, 정해구, 서해성, 이부영 등과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들의 절박한 고민과 기획의 산물이다.

이만열 선생은 1970년대 진보적 관점의 기독교사를 연구하며, 보수화되고 유신을 찬양하던 분위기에 저항했다. 그의 활동은 당시 싹트던 민중신학 연구의 촉진제가 되었다. 그러한 활동으로 인해 그는 1980년대 신군부 등장과 함께 해직되어 고난의 길을 갔다. 그리고 2000년대엔 국사편찬위원장으로서 과거 권위주의시대에 은폐되고 억압된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대표적인 역사학자이다. 그가 발굴한 사료를 통해 과거청산운동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 사학계를 이끌고 있으며 2000년대 과거청산운동을 선두에서 실천한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서중석 선생과 안병욱 선생은 모두 유신체제를 반대하며 투쟁한,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의 피해자들이 아닌가. 이부영 전 국회의원 역시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동아투쟁위원회의 리더 격 기자였다. 이들은 1970년대 유신의 잔혹함을 생체험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유신에 평화적으로 저항했던 지성들이었다. 이들의 경험과 지성이 어우러져 2012년 한홍구는 격무 중에도 <한겨레>에 격주, 또는 매주 연재할 수 있었다.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명제를 충실히 이행한 책

둘째, <유신>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카(E. H. Carr)의 명제를 가장 충실하게 이행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12월 18일 영화 <변호인>이 개봉되고 나자, 카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 판매율이 한 인터넷서점에서만 4.1배 높아졌다고 한다. 한홍구는 유신을 1970년대를 설명하는 주요 개념이자 틀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늘 누구에 의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실사구시적 사료 수집과 독서,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써가고 있다.

한 예로 유신체제의 다른 이름이자 아바타 격이라 할 수 있는 새마을운동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홍구는 새마을운동과 정경유착, 시멘트산업과 농업진흥운동의 결합, 일본의 '새마을만들기운동(新村作り運動)'과의 연관성, 새마을운동과 1970년대 탈농문제와 실패한 식량증산정책과 문제점 등을 파헤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유신을 언급하지 않는 채 유신을 계승하려는 작전으로서 가져온 것이 새마을운동임을 간취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을 통해 유신과 아버지를 칭송하게 하고, 또한 국민들로 하여금 현 대통령에 정당성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셋째, <유신>은 유신시대가 만들고 억압했던 국민과 비국민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언급할 때 수출주도형 산업정책을 든다. 1977년 '수출위업 100억 불'을 가져온 주역은 아무래도 10대 말~20대 초반의 여공들이다. 하루에 16시간도 부족하여 수출납기일 즈음에 가면 3일간 단 4시간을 자면서 온종일 재봉틀을 돌려야 했던 고사리손 여공의 피와 땀이 없이는 100억 불 수출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 외에, 헌법으로 보장된 근로기준법은 그림의 떡이었다. 자신도 기계가 아닌 인간이라는 낮은 목소리는 민주노조운동으로 응집되었으나 그것에 관련된 노동자들이나 산업선교회 일꾼들, 크리스천 아카데미 일꾼들은 '불온 용공분자', '빨갱이', '비국민'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1980년대까지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되어, 노동3권으로 보장되어 있는 준법 파업조차도 불온한 행위로 간주됐다. 노동운동가들은 요즘 말로 '종북좌파'로 찍히게 되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을 유지시키는 데 안전핀이 된 것이 주한미군이라면, 주한미군을 붙잡아두는 중요한 유인책 중 하나는 바로 미군위안부였다. 정부는 미군위안부, 소위 미군기지촌여성들을 앞에서는 그들을 '산업전사', '외화벌이역군'이라고 치켜세웠으나 실제로는 일본군위안부에 버금가는 기민정책을 취하며 비국민화 했다. 그 외에도 '조국 군대화'를 위하여 군기피율 '0'을 목표로 하는 강력한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그러한 시책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징병거부-집총거부를 하자,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마녀사냥'을 당하며 비국민화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역사를 잊으면 역사는 반복되고 비극은 다시 온다

넷째, <유신>은 1970년대사를 유신이라는 키워드로 총체적으로 꿰뚫고 있다. 유신은 정치체제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유신의 물적 토대는 가발로 대표되는 의류가공제조업과 같은 공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부동산으로서의 강남의 등장이었다. 한강 이남인 강남은 박정희의 안보 민감증에 대한 대책이자, 새로운 정치자금과 새로운 계층,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강남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광화문, 명동의 서울 유흥가가 강남으로 이동하고, 4대문 안의 소위 명문 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래서 생긴 게 8학군과 강남불패 신화가 아니던가. 이런 과정을 거쳐 유신체제를 지지하고 그리워하는 강력한 수구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 힘은 오늘까지도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신>은 1970년대와 오늘의 신유신적 징후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로 나가자고 때로는 강변하고 때로는 눈물 어린 하소연을 하고 있다. 그 목소리는 2013년 겨울 분노하기보다는 '안녕들 하시냐'며 울먹이던 젊은 세대들을 향하고 있다. 그는 '역사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소극으로 두 번 되풀이'됨을 지적하면서, 더 이상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새 세대들에 대한 미안함과 결연함을 담아 한 편 한 편을 공들여 써나가고 있다.

나아가 한홍구는 역설적으로 집권자에게 아버지의 잘못된 역사를 고발하고 역사적 범죄를 더 이상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것도 안 된다면 '그 입 다물라!'라고 하여 더 이상 유신이 할퀸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않도록 하는 서언을 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역사를 지우려는 집권자와 그 추종 세력들에 의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 책의 예언이 오늘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이 책에서 담지 못한 유신에 얽힌 주제들이 많다. ▲ 유신체제와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사나 관계사 ▲ 유신과 남북관계사 ▲ 유신체제가 싫어서 이민을 갔거나 유학을 나갔다가 귀국하지 않았던 해외동포들과 아직도 불귀의 망명객으로 남은 사람들(그중 한 사람이 송두율일 것이다) 문제 ▲ 주한미군의 음지인 혼혈아동과 해외입양아 문제 ▲ 성장하는 가부장적 도시에서 음지로 밀려났던 성매매 여성이나 식모살이?버스안내양들의 슬픈 운명 ▲ 지금도 계속되는 여성 감정노동자들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문제 등은 한홍구 교수의 계속되는 현대역사 쓰기에서 더 심도 있게 규명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홍구의 역사 쓰기는 한홍구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이 있다. 제2, 제3의 한홍구가 생길 때 우리의 역사 연구는 더 심화·발전되어 역사 교과서가 이념 대결의 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유신의 어둠이 깊어가고 있다. 이럴 때 역사를 잊으면 역사는 반복되고 비극은 다시 오리라.

유신
한홍구 지음/한겨레출판

"그 입 다물라!"...박근혜 향한 역사학자의 돌직구
전쟁 때보다 더 많은 군인이 죽은 유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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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겨울, 북풍이 사납게 불던 날이다. 중국 베이징의 거리에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인력거에 탄 채 꼼짝도 않고 있다. 인력거를 끌어야 할 인력거꾼은 없다. 멈춰 선 인력거에서 남자는 굳어버린 듯하다. 화면 가득 칠해진 왁스를 긁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왁스 페인팅 그림은 이 남자의 굳어버린 표정을 더 부각한다.

남자의 이름은 저우수런이다. 훗날의 필명은 루쉰이다. 그는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 <아큐(Q)정전>의 작가다. 인력거에 앉아 있던 당시에는 정부의 교육부 관리였다. 출근하던 중 한 할머니가 그가 타고 가던 인력거에 치인 듯 넘어졌다. 그는 할머니가 인력거 앞으로 달려든데다, 천천히 넘어져 결코 다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인력거꾼이 달려가 할머니를 챙길 때는 “가던 길이나 어서 가자!”고 소리를 쳤다.

하 지만 인력거꾼은 할머니를 부축해서 앞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파출소가 있었다. 길에는 사람 하나 없었다. 온통 먼지투성이인 인력거꾼의 뒷모습이 점점 커 보이기 시작했다. “인력거꾼은 그 모습이 바뀌면서 나를 점점 억누르는 듯했고 마침내는 내 가죽 외투 속에 감추어진 나의 ‘왜소함’마저 들추어내려 했습니다.” 이 사건 뒤, 루쉰은 언제나 고통을 참고 견디며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한다.

어느 작은 사건
루쉰 글, 전형준 옮김, 이담 그림/두레아이들

루쉰 일깨운 인력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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