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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낀 한마디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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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자신을 놓을 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영생을 얻는 길은 자살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듣는 수많은 자살 소식, 하지만 그 많은 자살 중 진정한 자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살을 가장한 사회적 타살이다. 자신을 놓으려는 행위가 아닌 타인이나 다른 이유가 나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었다. 수많은 자살은 진정한 의미의 자살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살생존자이다.



(조금 늦었지만) 오늘 또 자살이라 불리는 소식을 들었다.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의 죽음이다. 자살의 원인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다시 들었다. “우울증”을 죽음의 원인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모든 죽음을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증’으로 치부한다.

오늘날 만연한 자살은 ‘자아’들이 덮어쓴 양면 가면의 어두운 뒷면이며, 그 앞면은 경쟁의 전쟁터를 그야말로 홀로 ‘각개약진’하는 ‘자기계발’ 전사의 ‘쿨하고’ 잔인한 얼굴이다. 이 야누스는 심약하고 허약하다. 각도를 조금만 틀면 가려진 그의 뒷면이 보인다. 쓰러지도록 지치고, 더 외로운. _《자살론》, 천정환

‘쓰러지도록 지치고, 더 외로운’ 그녀의 모습보다 그녀의 주검을 발견한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떠오른다. 부디 그에게 엄마를 보낸 기억이 오래 남지 않기를. 박은지에게는 김훈이 기형도에게 했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래, 그곳에도 누런 해가 뜨더냐.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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