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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4년 4월 3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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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여성의 생활 필수품이 된 나일론 스타킹. 1940년 듀폰사에서 처음 출시된 스타킹은 올이 풀리지 않고 자동차 한 대를 끌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신는 스타킹은 틈만 나면 올이 풀리고 구멍이 나는 제품이 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저자는 코지마 단노리트세르의 영화 ‘전구 음모 이론’에서 다룬 나일론 스타킹에 관한 실화를 소개한다.

“산 업 논리가 스타킹 생산에 적용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엔지니어들은 이 기적의 섬유를 덜 질기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고의로 결함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자외선으로부터 나일론을 보호하기 위해 넣는 첨가물의 양을 조절하면서 임무가 완수됐다. 여성들은 좋든 싫든 규칙적으로 새 스타킹을 구입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는 이런 현상이 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낳은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se)’ 때문에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계획적 진부화’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제작자가 인위적으로 기계 등의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프린터를 제작하면서 인쇄 매수가 1만8000장이 넘어가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칩을 삽입하거나, 제품 보증 기간이 끝나자마자 기계가 고장나도록 설계하는 식이다.

저자는 진부화를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기술적 진보 때문에 기계 · 설비가 구식으로 전락하는 ‘기술적 진부화’, 광고 · 유행 등을 통해 혁신 없이도 제품을 구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심리적 진부화’, 제작자의 의도가 가미돼 나타나는 ‘계획적 진부화’다. 오늘날 이 세 가지 진부화는 교묘하게 결합돼 성장 중심의 사회를 이끌고, 소비자의 사고방식을 지배하지만 결국은 자연 자원의 낭비와 쓰레기의 범람이라는 문제를 불러온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계 획적 진부화는 성장 사회를 이끌어가는 소비주의의 절대적인 무기다. 우리는 광고를 거부하고 대출을 거절할 수는 있지만 제품의 기술적 결함 앞에서는 대부분 속수무책이 된다. 전기 램프부터 안경에 이르기까지 특정 부품의 의도된 결함으로 고장을 일으키는 시점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새 부품이나 수리가 가능한 곳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찾아낸다 하더라도 동남아시아의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생산된 신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들 수도 있다. 그 결과 컴퓨터, 텔레비전, 냉장고, 식기세척기, DVD 플레이어, 휴대 전화 등이 산더미 처럼 쌓여 각종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매년 제3세계 쓰레기 처리장으로 수출되는 컴퓨터가 1억5000만 대에 달한다.”

이런 관행은 성장을 추구하는 현대 경제 시스템 때문에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탈성장 이론가로 명성이 높은 저자는 인류에게 미래가 존재하기를 바란다면 계획적 진부화를 제품의 지속 가능성·수리 가능성·계획적인 재활용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촛불을 사용하던 시대로 되돌아가거나 금욕주의적인 고행을 실천하자는 말은 아니다. 검약과 자기통제를 선택해 소비주의적인 양식과 기술과학·시장이 결합된 독재 체제를 거부하면서 최소한의 자율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능한 실천 사례로는 세탁기를 들었다. 라틴 문화권 등에서는 세탁기를 대부분 각 가정 욕실에 두고 개인적으로 사용한다. 평균 3년 주기로 교체한다. 스웨덴의 경우 공동 주택 지하에 공동 소유 세탁기를 설치해 건물 관리인이 관리하는 등 내구재 공유를 실천하고 있다.

저자는 “내구재의 공유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은 물질적인 일상생활에서 더 큰 회복력(resilience)을 가질 수 있고, 미래의 도전 과제를 함께 풀어가기 위해 필요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웨덴 모델로 가야한다는 얘기다.

끊 임없이 새로운 기능을 갖춘 최신형 스마트폰이 출시돼 소비자를 유혹하는 현대 사회.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돌이켜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탈성장 이론가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저자가 풍부한 사례를 들어 계획적 진부화의 뜻과 기원, 한계를 고르게 다루고 있다.

낭비 사회를 넘어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민음사

스타킹·전구…자주 사게 하려고 수명 줄였다
‘제품 수명’은 자본주의가 만든 불필요한 낭비
[經-財 북리뷰] 낭비 사회를 넘어서
‘계획적 진부화’ 자본주의의 체계적 사기행각
스마트폰 2년이면 고장?… 행복을 위한 조작된 낭비인가
내 스마트폰·車가 죽어야 사는 자본주의
휴대전화의 수명은 왜 2~3년밖에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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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디자인 혁명을 넘어 사고ㆍ생활방식 혁명까지 일으킨 애플의 이 제품들은 모두 한 사람의 손을 거쳐 나왔다. 스티브 잡스가 '내 영혼의 파트너'라고 불렀던 애플의 디자인 총괄 수석 부사장 조너선 아이브(47)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업 디자이너지만, 그의 삶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영국 출신이고, 1997년 잡스와 의기투합하면서 둘이 함께 애플 신화를 썼다는 게 고작이다.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는 내성적 성격과 애플의 철저한 비밀주의에 가려진 탓이다.

그의 삶과 경력, 디자인 철학을 자세히 밝힌 것은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조너선 아이브>가 유일하다.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닷컴의 뉴스 편집자였고, 현재 애플 관련 최고의 인기 블로그인 컬트오브맥닷컴을 운영하는 리앤더 카니가 애플의 전ㆍ현직 직원을 중심으로 약 200명을 취재해 썼다. 원서는 지난해 나왔다.

아이브는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일해 왔는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그려 보인다. 상냥한 말씨의 영국 신사라는 이미지 뒤로 일에는 철저하고 집요한 전문가, 뛰어난 리더로서 그의 초상화가 보인다. 디자이너이자 영국 디자인 교육정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을 심어준 뉴캐슬 과학기술대의 교육, 로버츠 위버 그룹과 탠저린 등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 등 애플 입사 전의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도 전달한다.

이런 전기적 사실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디자인 철학이다.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을 디자인한다"는 게 핵심이다. 애플 제품이 디자인 혁명을 넘어 우리 삶에 근본적 혁신을 일으킨 비결이 여기에 있다. 이음매나 나사못 하나 보이지 않는 애플 제품의 지독한 미니멀리즘은 군더더기 없이 본질만 남을 때까지 줄이고 줄인 끝에 나온다. 그의 궁극 목표는 디자인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내 면전에 대고 자신의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것 같은 제품을 접하면 정말 짜증난다"며 "우리 목표는 단순한 제품"이라고 말한다.

잡스는 201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이브는 애플에 남았다. 현 CEO 팀 쿡조차 그를 위해 일한다고 할 만큼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후계자" "조니(조너선의 애칭)가 애플을 떠난다면 잡스 사망보다 더 큰 악재가 될 것"이라는 평가는 과언이 아니다. 잡스 없는 애플은 어디로 갈까. 애플 최고의 혁신가 아이브를 소개한 이 책에서 그 실마리를 구할 수 있다.

조너선 아이브
리앤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민음사

사용자의 인식을 디자인한다… 애플의 또 다른 천재 '조니'
“사용자 인식을 디자인”… 애플의 또다른 천재
조너선 아이브,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經-財 북리뷰] 조너선 아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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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발명자는 중국 후한 때 환관인 채륜(50~121)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식과는 달리 고고학자들은 고분에서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종이들을 발견했다. 그중 몇몇은 기원전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진 석면은 긴 섬유만 뽑아내면 인체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석면으로 만든 종이는 불에 매우 강해 화재를 두려워하는 공증인이나 기록보관자들의 애용품이다.

‘종이가 만든 길(작은씨앗)’은 오랜 세월 중국 대륙 안에 머물러 있던 종이가 어떻게 아랍을 거쳐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는지 흥미롭게 서술한다. 저자인 에릭 오르세나는 세계 5대륙 6도시를 다니며 ‘목화’를 주제로 세계화의 규칙과 이면을 풀어낸 ‘코튼로드’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작가다.

저자는 중국의 우름키에서 시작해 이탈리아의 파브리아노, 일본의 에치젠, 인도의 볼리우드, 캐나다의 트루아리비에르, 스웨덴의 예블레,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브라질의 아라크루즈로 이어지는 5대륙 15여 국의 대장정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종이와 관련된 전문가들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만나 종이의 전파 과정의 정치적ㆍ사회적 배경과 맥락을 명확히 짚어나간다. 이를 통해 저자는 중국에 머물러 있던 종이가 8세기께 아랍으로 전파된 이유가 전쟁과 정직성 때문이고, 아랍에서 유럽으로 전파되기까지 500여 년이나 소요된 이유가 유럽인들이 종이를 이교도들의 불경한 물건으로 간주했기 때문임을 밝힌다.

“사마르칸트를 정복함으로써 아랍인들은 중국의 장인들이 그곳에서 제작하던 경이로운 소재인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로 아랍인들은 더 이상 종이가 아닌 다른 곳에 글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762년에 압바스 왕조는 바그다드를 자신의 수도로 정했다. 압바스 왕조는 종이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단지 종이가 우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종이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종이는 사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직할 것을 요구했다. 그때까지 사용하던 다른 소재는 그 뒷면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잘못 쓴 글자를 긁어낼 수 있었다. 이름이나 숫자, 심지어 서명까지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고칠 수 있었던 것이다. 틀린 것을 이렇게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은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는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조는 자신이 발송하거나 전달한 문서에 신뢰를 담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아랍의 시대’ 중)

이밖에도 저자는 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종이 속에 영원히 고정시키는 기술, 전자출판, 종이를 위한 위생과 온도와 관련된 최신 기술 등을 소개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루이 파스퇴르 등의 세계적인 문학가 및 과학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그들의 원고를 둘러싼 이야기, 프랑스 ‘위조지폐 제조왕’ 보자르스키의 이야기 등도 읽을거리다.

종이가 만든 길
에릭 오르세나 지음, 강현주 옮김/작은씨앗

종이의 발명자는 채륜이 아니다?…종이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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