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미친 그리움》

2014.06.19 07:30 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그리움, 그저 그 단어만으로도 설렌다. 누군가를 그리워한 것이 언제였던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그리워도 하지 못하면 삶이 너무 팍팍할 것이다. 림태주는 "그냥 그리워서 흘러가는 거라고, 그리워하며 흘러가는 동안이 일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고 한다. 누군가, 아니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일 거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이란성 쌍둥이다.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고 그리워서 외로운 게 아니다. 그렇지만 외로움과 그리움은 다르지 않다. "아무리 사랑해도 채워지지 않고, 사랑을 하지 않을 때도 외롭고 사랑을 해도 외롭다."

외롭다
이 말 한 마디
하기도 퍽은 어렵더라만
이제는 하마
크게
허공에 하마
외롭다

지하의 연작시 <애린>중 일부이다. 외롭다는 말이 하기 어렵지만 허공에라도 외쳐야 한다. 외롭다를 그립다로 바꿔보면 림태주의 '미친 그리움'과 같다. 그리움을 그립다만 하지말고 그립다고 말하자. 그리움은 사랑이다.

머뭇거리지 마라. 손가락 마디마디의 힘이 빠져나가 버튼조차 누를 수 없게 되는 가련의 날이 들이닥칠 것이다. 지금 전화를 걸지 않는 자, 가슴을 칠 것이다. 지옥에도 천국에도 로밍 서비스가 안 된다.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자,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머뭇거리지 마라.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자,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사랑하라.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후회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이기적으로 사랑을 택하는 것이 거짓말보다 낫고 어차피 상대 역시 거짓말이 거짓말임을 아는 한, 이기적인 선택이 가장 이타적인 선택이다. 지금 말하고 사랑하라. 림태주가 나에게 잊고있던 것을 일깨워 주었다.

"나의 이 미친 그리움이 당신이 키우는 당신이 키우는 식물적인 그리움에 가서 비가 되고 햇살이 되고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바람에 나부낄 때, 당신의 쓸쓸함을 어루만지는 우묵한 우정이었으면 좋겠다." 그저 림태주의 바람이 아니다. 나에게 벌써 다가와 지금 사랑하게 했다.

모르는 사람, 알 것 같은 사람, 알게 된 사람, 좋아하게 된 사람.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머리를 때리는 한 구절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도 림태주를 모른다. 그저 글을 읽었을 뿐이고 사진으로 얼굴을 아니 스치듯 지나가도 나는 그를 알아볼 것이다. 그는 나를 모른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었을 뿐이니.

페북에 올라오는 림태주의 글을 살포시 보고만 있었다. 꼭 '좋아요'나 댓글을 남겨야만 글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읽으면 그뿐이다. 조금 미안할 뿐이다. 그 미안함을 책에 '좋아요'를 수도 없이 눌렀다.

이 미친 그리움
림태주 지음/예담




덧_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오탈자를 찾아서 출판사에 연락할까 말까 하는 것이다.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저자나 편집인이 놓친 것을 찾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독자의 즐거움을 빼앗았다. 저자가 책바치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몰인정한 편집자 때문인지 몰라도 소소한 즐거움이 없다. 이런 말은 우습지만 몇 군데 어투가 이상한 문장이 있다. 이는 저자의 권한이다. 하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밑줄 치고 바꿔 적는다.

이렇게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제목과 소제목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 편집했을까. 왜일까. 아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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