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文烈'은 우리 근대소설문학의 한 독특한 체험이다 :《사색》

2014.11.14 07:30 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사색》은 그동안 쓴 책의 내용 가운데 골라서 따로 한 권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도 일부러 사색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적었다기 보다는 비슷한 유의 명상록을 수집해놓고 그것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을 제 나름대로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_<UGN경북뉴스> 인터뷰 中

흔한 저자의 머릿말도 없다. 출판사 편집실의 "<살림>의 독자에게"만 있을 뿐이다. 저자의 인터뷰와 편집부의 서문을 보면 알 수 있다.

'李文烈'은 우리 근대소설문학의 한 독특한 체험이다. 그리 길지 않은 그의 문단의 연륜을 염두에 둘 때, 그가 보여준 성과는 그것만으로도 경탄을 넘어설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문학의 미래에 대한 순정한 두려움으로 우리를 기대케 한다.

흔히 '낭만주의'라고 불리는 그의 문학에 대한 단언은 그러므로 우리가 '李文烈'에게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작은 찬사에 불과하다.

이 책은 그의 방대한 문학세계의 핵심적인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싶은 욕구에서 의도적으로 만들게 된 첫 번째 책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의 문학을 이루게 된 배경과 주변적 관심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1991년 7월 초판이니 강산이 두 번 바뀌고 몇 년이 지났다. 그때의 이문열과 지금 이문열은 많은 차이가 난다. 극우 보수주의, 가부장적 사고 등등 그를 벼랑 끝에 서게 한 것은 이문열도 독자도 아닌 '시대'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보수주의자였고,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글을 써왔다. 그가 바뀐 것이 아니라 그의 위치가 바뀌었기에 분노했다. 이문열도 알 것이다. 문청시절 그가 "나의 것은 오직 그 말에 따른 책임뿐이다. 모든 예측 불가능한 결과까지 포함한."이라고 했기에.

여럿을 향해 뱉어지는 말은 그 순간 이미 내 것이 아니다. 그 말의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이 온전히 듣는 이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지는 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내 마음속의 진실까지도 그들의 해석에 영향받고 강제된다. 나의 것은 오직 그 말에 따른 책임뿐이다. 모든 예측 불가능한 결과까지 포함한. 오오오, 말하기의 어려움이여.

책의 뒷면에 적은 글을 보면 1991년의 이문열과 2014년의 이문열은 같지 않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바라보는 이의 위치가 바뀌어 그가 달리 보이는 것은 아닐는지.

이제 우리는 이문열을 '한 뛰어나 소설가'라고만 부르기에는 많은 미흡함을 느낀다. 그는 우리 시대의 거대한 장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색》 속에는 인생의 험난한 구비 마다에서 깨달은 사유의 금언, 그리고 지적 모험이 생동하는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변경》을 다시 펴냈다. 다시 문단으로 돌아왔다. 한국 현대문학에서 이문열을 빼고 논할 수 있을까? 뺄 수 없다면······.

내가 천부의 재능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내가 위대하게 되지 못하리란 단정으로 불안해하거나 기죽을 필요도 없다. 다만 신앙하는 것이다. 경건하게 예배하는 것이다. 설령 내가 찬란한 우주를 짓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한 송이 향기로운 꽃쯤이야 피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게 내 모든 걸 바쳐 얻은 것이라면 한 우주에 갈음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색
이문열 지음/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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