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주 새로 나온 책

2014.12.08 09:00 行間/새로 나온 책

1967년 영국 철학자 필리파 풋이 고안해 낸 ‘트롤리(trolley · 전차) 문제’라는 게 있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 첫머리에 소개해 익숙해진 일종의 ‘윤리 퍼즐’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달린다. 선로에 다섯 명의 인부가 있고, 갈라진 다른 선로 위엔 한 명이 있다. 당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열차를 그대로 둬 다섯 명을 죽게 하겠는가, 아니면 선로를 틀어 한 명만 희생시킬 것인가.

“당연히 선로를 틀어야지”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공리주의적 판단을 한 거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기준 하에 한 명보다 다섯 명의 목숨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떤가. 당신은 철로 위 육교에 있고,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리려면 무거운 물체를 떨어뜨려 전차의 진행을 막아야 한다. 마침 당신 앞에 몸집이 큰 남자가 서 있다. 당신은 그를 육교에서 밀어 떨어뜨려 전차를 멈추게 하겠는가.

비슷한 문제 같지만, 두 상황에 대한 사람의 반응은 확연히 갈린다. 약 5000명이 참여한 인터넷 설문에서 첫 번째 상황에서는 89%가 선로를 지선으로 돌리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육교 위 사람을 떠미는 두 번째 상황에 대해서는 11%만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한 사람을 죽여 다섯을 구하는 결과는 같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른 결정을 했을까.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이 문제를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가정한다. 그리고 변호인과 검찰, 배심원, 종교인 등이 차례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선로를 바꾼 여성을 2급 살인죄로 기소한 검찰은 ‘사람을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단지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는 칸트의 주장을 빌려 온다. 다른 선로에 있다 죽은 남자는 목숨을 빼앗기기 않을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타인의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윤리 직관주의’를 내세운다. 선로를 바꾸는 것(간접적 행위)과 앞에 있는 남자를 떠밀어 죽이는것(직접적 행위)은 사람들에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며, 이런 느낌에 의거해 판단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칸트 · 니체 · 벤담 · 아퀴나스 · 피터 싱어 등 쟁쟁한 철학자의 복잡한 사고실험이 등장하지만 유쾌한 문체와 드라마틱한 구성 덕에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게 장점이다. 올 봄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내가 선장 혹은 승무원의 위치에 있었다면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렸을까 고민해 본 이라면 이 논의가 더 절실히 와 닿을 지 모른다. 물론 저자는 무엇이 옳다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노예 제도가 폐지된 한 가지 이유는 어떤 직관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이 다른 편의 사람들보다 논리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라며 논리적 추론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서운’ 결론을 던진다. “여러분이 탄 전차가 갈림길에 서면 주저하지 말고 선택하라. 아울러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말할 수 있길.

누구를 구할 것인가?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노승영 옮김/문학동네

극단적 상황서 맞닥뜨린 ‘도덕적 딜레마’
5명과 1명, 누굴 구하고 누굴 죽일까?
‘사람의 가치’ 숫자로 잴 수 있나 … 철학자들 괴롭혀온 윤리 퍼즐
철학자들, 법정에서 ‘도덕적 딜레마’를 풀다
누구를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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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산 예술가의 이야기는 듣기 즐겁다. 어른이 될 권리를 뺏긴 것이 분명한 이들은 꾸짖는 대신 투덜대고, 위대한 이념보다 잘 무친 나물에 전율하고, 자서전을 쓸 힘으로 여인의 벗은 몸을 그린다.

원로 소설가 이제하씨의 산문집 ‘모란, 동백’(이야기가있는집)이 나왔다. 2011년부터 최근까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을 삽입했다. 1957년 ‘신태양’에 소설 ‘황색 강아지’로 등단한 작가는 문학, 미술, 영화, 음악 등 예술의 전방위에서 활동했으나 늘 변방을 고집했다. 당대의 상식에 흠뻑 젖지 않은 그의 글은 편가르기를 그만 두고 잠깐 쉬어가기에 제격이다. 작가는 인권 대신 정이 지배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추억하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심정을 떠올린다. 그림과 여자, 음식에 대한 줄기찬 애착을 드러내는가 하면 정치적 이유로 한 문예지에 소설 연재를 거부 당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한다.

‘아현동’은 아현동 고가도로 철거 소식을 들은 작가의 추억담이다. “아현동 고가도로가 헐린다. 버스를 타면 열린 차창 틈새로 지팡이를 쑤시며 ‘돈 내! 돈 내!’ 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초여름 졸음에 겨웠던 승객은 불의에 어깨와 허리를 찔리고 화들짝 놀라 그 호방한 막가파식 구걸에 도리 없이 웃었다. 그렇게 벌어 애들 대학까지 보낸다고 했다. 서촌 터줏대감 15년, 그 이력 중에 ‘돈’이란 단어가 이처럼 유쾌하게 와 닿은 적이 없었다.”

작가가 졸지에 가수로 ‘데뷔’하게 된 노래 ‘모란 동백’의 탄생 배경도 나온다. 조영남씨가 리메이크해 유명해진 이 노래의 원제는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이다. 1998년 환갑을 맞은 작가를 위해 지인들이 CD를 제작한다고 하자 그는 부랴부랴 곡을 쓰고 열 편의 시를 골라 가사를 붙였다. 리듬감 때문에 미당의 시 ‘노을’의 ‘붉은 두 볼’을 ‘붉은 두 뺨’으로 고칠 수 밖에 없었던 것,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조두남의 곡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이 너무 좋아 제목에 몽땅 밀어 넣은 사연 등이다.

책은 작가가 등단 57년 만에 처음 내는 산문집이다. 작가의 말에선 대중을 향한 점잖고도 수줍은 소통의 제안이 느껴진다. “사람끼리 만나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나는 잘 모른다.(…)공원이든 광장이든 혹은 외롭게 홀로 읊조리는 독백의 장소든 어쨌든 타인과 한치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그럴 것이다. 여기 모은 글과 그림은, 물론 그 갈망의 소산일 것이다.”

모란, 동백 
이제하 지음/이야기가있는집

철들지 않는 老작가 이제하의 첫 산문집
담배는 손의 습관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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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램버트는 18세기 영국의 유명 인사였다. 335㎏에 달하는 몸무게 덕분이었다. 램버트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었다. 통통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portly’와 ‘stout’에는 경멸의 뉘앙스가 담겨 있지만 예전에는 칭찬의 의미로 쓰였다. 뚱뚱한 것을 부와 지위의 상징으로 여겼다. 뚱뚱해지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제 마른 체형이 명성과 부의 상징이 된 것은 살을 빼기가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은 칼로리 섭취량이 칼로리 소비량보다 많으면 살이 찌는 것 아니냐며 비만을 단순한 산술 문제로 치부한다. 하지만 우리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비만의 진화>에서는 비만이 적응의 부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비만 그 자체는 적응에 유리한 전략이 아니지만 우리를 비만에 취약하게 하는 대사적 특징은 적응에 유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만은 지방조직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지방이 많은 상태인데, 지방 자체는 우리 몸에 필수적이며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물은 몸집이 클수록 ‘기아 시간’, 즉 안 먹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환경 변화로 식량이 부족해져도 굶어죽지 않고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지방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효율이 매우 뛰어난 성분이다.

문제는 귀한 에너지원이던 지방이 이제는 너무 흔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이런 음식을 멀리하기도 힘들다. 고지방, 고설탕 음식은 이른바 ‘위안 음식’으로, 우리 뇌의 쾌락 영역을 자극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런 음식을 찾는 것은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치유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게다가 하루에 세 끼씩 꼬박꼬박 음식을 먹으면서 식사는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선 사회적 행위가 되었다. 끼니는 인류가 협력하고 대뇌피질의 크기를 증가시킨 비결이었다.

사람의 신생아는 지금까지 알려진 포유류의 아기 중에서 가장 뚱뚱하다. 아기는 뇌 대사에 쓰이는 에너지가 50%에 이른다. 골반 크기의 한계 때문에 작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만큼, 빠른 시간 안에 부피와 시냅스 연결을 증가시키려면 지방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비만의 요인, 즉 에너지 함량이 높은 음식을 좋아하고 고된 노동을 싫어하고 지방을 몸에 저장하는 성향은 인류가 환경 변화에 적응해 지구의 지배자가 된 원동력이었다.

여성은 주로 다리와 엉덩이에 지방을 저장하고(피하지방) 남성은 배에 저장한다(내장지방). 여성의 지방은 출산과 수유를 위한 귀한 자원이다. 빌렌도르프의 풍만한 비너스를 찬미하던 선조들은 현명했다. 이에 반해 내장지방은 건강에 해롭다. 미용이 아니라 건강을 생각한다면 정작 살을 빼야 할 쪽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특히 아시아인은 체중이 같더라도 비만으로 인한 위험이 더 크다. 그러니까 배 나온 한국 남자는 누구보다 경각심을 가져야…, 이거 나잖아!

몸은 하나의 유기체여서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로서 접근해야 한다. 몇 가지 수치만 정상으로 돌린다고 해서 몸 전체가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비만 유전자는―이런 것이 있다면―기후변화로 춥고 배고픈 시절이 다가올 때를 대비해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할 보물인지도 모르겠다.

비만의 진화 
마이클 L. 파워 & 제이 슐킨 지음, 김성훈 옮김/컬처룩

비만 유전자’가 인류를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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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엑소더스’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모세 출애굽기를 다룬 영화다. 유대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과연 사실일까. 아직 성경 외에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적 기록도, 고고학적 유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집트에서 벗어난 유대인이 60만가구나 된다고 했지만 당시 이집트 전체 인구는 300만명 이하였다. 자신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시시콜콜하게 기록으로 남겼던 이집트인들이 이 같은 대규모 인구 이동을 적지 않은 것도 의아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종교사학자 프레데릭 르누와르는 ‘신의 탄생’에서 모세가 실존 인물이고 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었을지라도 고작 몇 백 가구에 한정되며 슬그머니 이집트를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성벽을 무너뜨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한 것도 허구였다. 발굴조사 결과 이스라엘이 정복에 나섰다고 하는 기간인 기원전 13세기 후반 문제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책은 신과 종교에 대한 도발적이고 불손한 의심으로 가득 찼지만 철학과 역사, 종교를 넘나드는 해박한 논리가 빈틈없다. 성경이 문자를 통해 집필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 초 요시야왕 통치 기간이다. 이 시기에 유대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역사를 과장하거나 가공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성경에는 메소포타미아 등 주변에서 전해 내려오는 각종 신화가 집결돼 있다. 강물에 버려졌다가 구출되는 모세의 전설은 아카드 사르곤왕과 복사판이다. 노아의 방주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똑같다.

위대한 왕 다윗은 실존하기는 했지만 아주 작은 부족의 우두머리였으며, 솔로몬이 지었다는 화려한 성전도 신화에 불과하다.

저자는 예수가 그리스도교를 창시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편다. 예수는 촌구석에서 활동한 보잘것없는 유대인 예언자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예수는 단 한번도 모세 5경을 파기하려 하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유대인의 신앙과 제례의식에 애착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가 유대교와 구분되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보편적인 구원의 신학 체계를 전개해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와 분리시킨 사람은 바오로이며 결국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성직자 공의회를 통해 예수를 신격화하는 삼위일체설을 채택하게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물론 여기에서 파생된 이슬람교, 다신교인 힌두교, 무신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까지 망라해 종교 탄생의 비밀을 다룬다.

신의 탄생 
프레데릭 르누아르 외 지음, 양영란 옮김/김영사

“그리스도교 진짜 창시자는…” 종교탄생 비밀의 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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