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4주 새로 나온 책

2014.12.29 09:00 行間/새로 나온 책
미국연방법전은 약 4만7000쪽이나 된다. 미국연방규정집은 무려 16만 쪽이 넘는다. 미국 대도시의 경찰관 지침서는 보통 1000쪽 이상이다. 미국의 삼림감시원은 1960년대만 해도 간단한 규칙일람표를 셔츠 윗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래도 업무 수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깨알만 한 글자의 책 서너 권 분량을 일일이 들여다봐야 한다.

온통 법과 규정의 세상이다. 법과 규정은 한번 만들어지면 십계명처럼 떠받들어진다. 문제는 그런 것이 10개가 아니라 수백만 개나 된다는 것이다. 의회는 법을 만들기만 하지 거의 없애지는 않는다.

관료도 못지않다. 그들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규정 제정을 그들의 사명으로 생각한다. 규정집 어디를 펴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다. 사사건건 간섭한다. 그들은 그렇게 사회를 관리해야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다고 여긴다.

도 대체 아웃도어 의류업체인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 그건 미국 정부의 비합리적 방한복 품질규격기준 때문이다. 거기에 맞춰 제작하려다 보니 지퍼를 길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옷감의 조각이 서로 맞지 않아 재봉실밥이 터지기도 했다. 그렇다. 정부의 규정이란 이렇게 헛갈리거나 종종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일반 상식에 맞지 않는 것도 수두룩하다.

이 책은 뉴욕 변호사인 저자가 공무원과 일하면서 겪은 규제 만능주의의 생생한 사례를 전한다. 예컨대 한 수녀회가 화재로 버려진 건물에 노숙자 보호시설을 조성하려고 후원금도 모으고 인력도 마련하는 등 모든 준비를 마쳤으나 별 필요도 없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가가 나지 않자 결국 포기한 사례 등이 나온다.

이 때문에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법과 규정의 지뢰밭을 어떻게 피해 갈 것인가부터 살핀다. 합법인가, 불법인가. 적절한 절차인가, 부적절한 절차인가. 우리는 머뭇거리고, 말을 얼버무리면서 눈치를 본다. 법과 규정은 사람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법 만능주의, 규제 지상주의는 사람들의 창의성과 활력 그리고 건전한 상식까지 죽게 한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도 파괴되기 쉽다.

저자는 결국 인간의 자율적이고 상식적 판단과 세세한 법 규정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법은 인간의 탐욕과 오판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지만 너무 많은 법과 규정은 재앙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한쪽에선 규제 철폐가 선이라고 하다가 안전사고가 터지면 왜 규제가 없느냐고 갈팡질팡하는 우리 사회는 어느 쪽을 따를 것인가.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
필립 K 하워드 지음, 김영지 옮김/인물과사상사

고비용 저효율 불량규제가 자유·책임의 가치 파괴
규제 vs 상식…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
'관료적 동맥 경화증'‥국민 세금으로 때워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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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200여년 전 프랑스 사드 후작이 쓴 소설 <소돔의 120일>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한국어 번역본의 배포 중지와 수거·폐기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당시 책을 낸 출판사는 “1784년 탄생해 세계문학사에서 고전으로 평가받는 예술작품을 세계 어느 나라도 성적 표현 목적의 본질을 모르고 최고 극형에 처하지는 않는다. 이는 세계 문명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문화독재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신문 ‘뉴욕데일리’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놀랍다”고 보도했다. 간행물윤리위는 국제적 논란이 되자 그제야 재심의를 했다. 그리고 청소년유해간행물로 규제를 한 단계 낮춰 비닐로 포장을 하고 ‘19세 미만 구독 불가’ 표시를 붙여 판매하도록 했다.

저자는 “자유로운 성을 누릴 권리는 한 사회의 자유의 정도를 재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고 주장한다. 제도권 학계 밖에서 인문학을 탐구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성적 욕망의 기원과 억압의 실체를 탐구했다. 디오니소스, 보카치오, 사드, 푸코 등 서양의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대표하는 신화 속 인물이나 작가, 지식인을 통해 성적 욕망의 논리를 소개하고 의미를 검토했다.

사랑과 욕망의 신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의식을 통해 모든 금기와 차별, 억압에서 벗어나는 축제를 벌였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이 축제를 ‘성적인 방종’이라고 묘사했지만 저자는 그 성적 욕망을 국가 권력과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에너지로 해석한다.

소설 <데카메론>에서 보카치오는 인간의 육체와 욕망을 죄의 근원으로 규정한 중세 교회의 의식을 벗어나 인간을 욕망을 가진 주체로 등장시킨다. 혼외정사, 동성애, 다자간의 사랑 등 10편의 이야기에서 보카치오는 인간이 육체적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고 역설한다.

상대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 가학적 성애인 사디즘의 어원이 된 인물인 사드는 기존 성도덕에 도발적으로 도전함으로써 현대 욕망이론의 문을 열었다. <소돔의 120일>을 비롯해 <미덕의 불행> <악덕의 번영> <규방철학> 등 그가 쓴 책들은 죄악과 금지의 상징이었다. 사드는 종교와 도덕의 이름으로 덧씌워진 위선의 껍질을 벗고 성적 욕망을 제한 없이 드러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정욕을 정치·사회적 문제와 연결시켰다. “정욕과 법률 가운데 어느 것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했는지 생각해봐요.”(<악덕의 번영>) 사드는 근친상간 등 문명에 의해 터부시된 원초적 행동 방식을 되살림으로써 도덕률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저자는 사드의 시도 전체를 수용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사드에게 욕망이란 법의 언어가 금지하는 몸의 언어, 즉 난교를 통해 국가체제에 의한 규제와 강제에 반발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지적한다.

푸코는 현대 자본주의가 성을 어떻게 억압하고 상품화하는지 설명한다. 근대 국가가 법을 동원해 성적 욕망을 직접 통제하고 억압했다면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주위의 시선, 섹스에 대한 담론을 통해 성을 통제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넘어 욕망과 쾌락 자체로서 성을 인정해야 하며 진짜 욕망과 자본이 만들어낸 가짜 욕망 사이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세기는 성에 대해 자유로운 세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에 대해 솔직하고 자유로운 것과 성을 남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은 상품일 뿐”이고 “성의 상업화는 역설적으로 성이 일상적으로 억압되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욕망이 자연스럽지 못할 때 성은 상품으로서 소비된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파리에서는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을 하고 싶어진다’는 구호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저자는 “욕망에 충실하다는 것은 자신을 존귀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식과 행위의 주체로서 인간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간다. 육체적 욕망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은 자신을 찾고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길이다”라고 말한다.

욕망할 자유
박홍순 지음/사우

난 소중하니까 욕망에 충실하다
피타고라스는 ‘성관계 공식’도 남겼다?
욕망에 충실하라, 타인 권리를 해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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