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한다. 소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류성룡의 징비》

2015.01.31 07:30 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시경》에 이르기를 "내가 그것을 징계하여 후환을 삼간다."라고 하였으니 이 《징비록》을 지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난리를 겪을 수도 있고 전쟁을 치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란 후에 모든 사사건건 시시비비를 가려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후손이 이를 경계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은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위대한 업적이다. 류성룡이 후세를 위해 《징비록》을 남겨 후일을 경계하도록 했다. 하지만 류성룡의 염려는 후손인 조선보다 전쟁 당사자인 일본에서 더 인기를 얻었다. 꼭 그 이유는 아니지만, 경술국치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는 반복한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늘 안 좋은 역사는 반복되고 무지한 지도자에 의해 인민만이 고생한다. 조일전쟁(임진왜란이라 불리기도 하는)이 발발하고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몽진한다. 종국에는 신의주로 도망간다. 명나라의 군사 요청에 나라의 운을 걸었다. 360여 년 이후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버리고 피신한다. 한강대교를 폭파하기까지 한다. 미국에 군사 요청에 나라의 운을 걸었다. 이 모두가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교훈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나라는 조선 분할과 군주 교체가 논의되었다. "조선이 이미 제대로 왜적을 막지 못하여 중국에 걱정을 끼쳤으니, 마땅히 그 나라를 나누어 둘이나 셋으로 나누고, 왜적을 막아내는 실적을 보아 나라를 맡게 함으로써, 중국의 울타리를 삼게하자."는 명나라 위주의 발상을 공론화하고 있었다. 이에 선조는 1593년 8월 30일 치졸하고 조잡한 '양위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조는 이 글에서 자신이 젊어서부터 병이 많아 반생을 약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난리를 만나고부터는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지금까지 죽지 않은 것 자체가 이치 밖의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픈데도 말하지 않은 것은 원수인 적을 토벌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의리상 말할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시대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조일전쟁 이후 무능하고 치졸하고 몽니를 부리는 선조를 어르고 달래는 류성룡을 비롯한 당시 사대부의 한계를 보여준다. 무능한 군주를 섬기는 것이 신하의 도리일까? 400여 년 전 비록 실패했지만 만적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다."라고 외쳤다. 무능한 군주를 몰아내고 100여 년 전 정도전은 역성혁명에 성공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조일전쟁 이후 역성혁명이 일어났다면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가 쓰였음이 틀림없다.


류성룡의 징비
박기현 지음/시루



덧붙임_오탈자
현명한 군주는 소인이나 간신배의 말에 남아가서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본 것이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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