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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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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 피터 페팅거<!--   : 황덕호   : 을유문화사

우연히 신문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을 보았다.
꼭 사서 읽어 보아야 겠다.
글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투영하듯 음악도 그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난 Bill Evans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지만 ...

재즈계의 쇼팽 : 재즈 피아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다

뉴 올리언스의 흑인 브라스밴드에서 처음 생겨난 재즈는 흑인의 강렬하고 펑키한 취향, 활기 넘치며 격렬한 음의 즉흥 연주를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그의 음색은 관조적이고 사색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극도로 정제된 미학의 세계를 보여주어, 재즈의 또 다른 흐름을 형성했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빌 에반스는 “재즈계의 쇼팽”, “재즈 피아노의 음유 시인”, “재즈 피아노의 인상주의자”라고도 불린다. 저자 피터 페팅거는 이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그의 음색에 담긴 음영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소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재즈였다. 순간 난 그 소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 전형적인 대전환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곧장 “빌 에반스 사운드”의 컨셉트는 내가 늘 듣기 원하는 것들을 간직하고 정화시켜 주었다. 그것은 애잔한 화음과 서정적인 음색 그리고 그만큼 매혹적인 짜임새였으며 보통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기교적 숙련성과 훌륭한 미감만으로 음악의 한 종류가 연주될 수 있다는 생각, 바로 그 자체였다. 그것은 음악이 늘 그곳에 존재했을 것만 같은, 시간을 초월한 품위와 느낌이었으며, 그것을 너머, 음들을 넘어서고 싶은 동경, 우리가 늘 도달해서 손끝으로 만지고 싶은 조용한 욕망과도 같은 것이었다.(머리말, p.5)

피아노 트리오의 전형 제시 : 진정한 의미의 ‘Interplay’구현
빌 에반스 이전의 피아노 트리오는 일정한 형태를 갖고 있었다. 즉, 사이드맨들은 리더인 피아니스트의 스타일을 파악하여 정해진 형식에 맞춰 연주해주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짜임세 속에서 스탠더드 재즈의 ‘블로윙’(즉흥연주) 형식은 단순한 무엇으로 느껴진다. 에반스는 재즈형식에 관한 이러한 관습적인 접근에서 탈피하고 싶었고 이 스테레오타입의 틀이 깨진다면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연주자는 자신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동시에 음악을 전체적으로 듣고 마치 고도의 유기체처럼 나머지 두 명과 상호작용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이자 기능하는 방식이며, 그것은 그들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얽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빌 에반스의 트리오는 비록 비극적인 종말만큼이나 단명했지만 음악 속에서 존재했던 가장 중요하며, 가장 잘 짜여져 있었고 가장 창의적인 그룹 중의 하나였다.
난 나의 트리오가 한 친구의 솔로가 끝나면 다른 한 친구의 솔로가 이어지는 방식보다는 동시적인 즉흥연주의 방향으로 움직이길 기대한다. 예를 들어 베이스 주자라면 그가 하고 싶은 대답이 있을 텐데 왜 그는 4/4박자의 리듬만을 지속해야 한단 말인가? 나와 함께 연주할 사람들은 일상적인 보통의 연주가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익힌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린 현재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고전음악 작품에서 보자면, 솔로 순서가 오기까지 제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 파트는 거의 들을 수 없다. 악절들은 계속 옮겨가며 발전한다. - 하나의 성부가 계속해서 반복되며 들려지다가 결국에는 현저히 돋보이는 것이다.(재즈로 그린 초상, p.158)

재즈 언어의 마술사 : 자신만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을 창조하다
에반스의 음악이 오늘날에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데는 이 음들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재즈는 이론이 아닌, 영혼의 숨결인 것이다.
그 는 종종 자신의 예술에 대해 전망, 구성, 색채를 언급하면서 화가의 그것에 비유하곤 했다. “하지만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게 되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측면이다. 그 점은 내게도 정확하게 동일하다. 난 기술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연주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원칙과 자유는 섬세하고 창조적으로 섞여야 하며 정말로 훌륭한 결과를 낳아야 한다. 난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감상주의에 빠지면 낭만성은 방해받게 된다. 반면에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낭만성은 가장 아름다운 미적 상태다.”(빌리지 뱅가드에서의 일요일, p197~198)
더 나아가 노래하는 듯한 성격의 음은 에반스가 깊은 사색에 빠져들 때 그의 왼손이 차분히 움직인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러한 표현상의 기교는 고전음악 레퍼토리에 대한 그의 공부에서 직접 도출된 것이며, 건반 앞에서 신체적으로 편안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모든 느낌의 터치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고 음색의 넓은 팔레트 안에서 이들을 섞을 수 있었다. 그는 최고의 고전음악 연주자들이 했던 것과 같이 발라드에 풍부한 빛과 그림자를 부여함으로써 피아노 재즈에서 이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한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결국 빌 에반스가 생각하는 스타일의 개성이란, 그가 재즈 연주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래로 해왔던 것처럼, 기초적인 원칙들을 응용해 나감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악곡의 본질을 엄격하게 연주하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스타일상의 독특함은 이뤄졌던 것이다.

위대한 예술 뒤에 드리워진 고독하고 비극적인 삶
빌 에반스는 수줍음이 많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소박한 가정생활을 꿈꿨고, 형의 가족을 방문하고 조카와 시간을 보내는 데 큰 기쁨을 느꼈다.
빌 은 종종 데비를 해변으로 데려갔는데 조카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데비를 위한 왈츠Waltz for Debby'를 쓰도록 만들었다. 당시까지 재즈에서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던 세 박자에 대한 그의 호감은 사랑스럽고도 경쾌한 선율의 자연스런 흐름을 만들어 냈고 그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긴 서정적인 이야기를 별다른 노력 없이 따라오도록 만든다. 구성은 흠잡을 데 없고 음계의 도식 역시 본보기라 할 만하며 이러한 요소들은 즉흥연주의 튼튼한 초석을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Very Early'가 그랬던 것처럼 이 곡의 기술적인 측면들은 우리의 주의를 끌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단순히 이 곡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뿐이다.(스윙 피아니스트, p.47)
그는 외적 활동보다는 내면으로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면서 음악에 자신을 투영시켰던,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성향은 상대적으로 마약에 쉽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는 사실 ‘시장’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상업적 성공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곧바로 마약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빚을 져야 했다. 이것은 후반기의 다양한 앨범 기획과 투어 활동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마약은 몸과 마음을 파괴하고 종국에는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독이었지만, 그로 인해 숭고한 미학적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하다.
내성적이고 너무나도 여린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치명적이었다. 1961년 교통사고로 인한 스콧 라파로의 급작스런 죽음은 라파로라는 한 개인의 상실일 뿐 아니라 베이스 주자를 자기의 분신으로 여겼던 에반스의 이상적인 삼두체제의 종말이었다. 그 충격으로 그룹의 창의성이 일으켰던 불꽃은 무참히 꺼졌고, 에반스는 여러 달 동안 연주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빌 에반스가 두 번째로 받아들여야 했던 죽음은 12년간 동거동락해 온 연인 엘레인의 자살(1973)이었으며, 그에게 가장 컸던 죽음의 충격은 바로 자신의 형 해리의 권총 자살(1969)이었다. 이러한 삶의 비극들은 1980년 9월 15일,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공식적인 사인은 폐출혈과 급성 기관지, 폐렴이었고 마지막에는 여러 합병증세가 일어났다. 그를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형의 죽음이 살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꺾었으며 마지막 파멸로 몰고 갔다고 믿고 있다. 그의 아내는 말했다. “그는 실재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천천히 진행된 그의 자살은 그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 갔다. 오히려 그의 예술적 희열만이 끝까지 그 고통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출 처 : 인터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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