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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인혁당 판결을 보며 김지하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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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판결 기사를 보는데 왜 김지하가 떠오르는 것일까?
김지하로 인하여 인혁당의 참(?) 모습을 알게되었다.

"고행 ... 1974"를 다시 읽어보려 인터넷을 검색하였지만 나오질 않는다..
집에 책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김지하 시인은 광고탄압을 받고 있던 동아일보에 1975년 2월 "고행…1974"라는 수기를 3회에 나누어 연재했다. 김지하 시인은 인혁당 피고인 하재완과 통방(通房)으로 나눈 대화를 통해 인혁당 관련자들이 받은 고문의 실상을 폭로했다.

―인혁당 그거 진짜입니까.

"물론 가짜입니더."

―그런데 왜 거기 갇혀 계슈.

"고문 때문이지러."

―고문을 많이 당했습니까.

"말 마이소! 창자가 다 빠져나와버리고 부서져버리고 엉망진창입니더."

김지하는 경북대학생 이강철씨가 "나는 인혁당의 '인'자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것을 잘 아는 것으로 시인하지 않는다고 검사 입회하에 전기고문을 수차례나 받았다"고 법정에서 또렷하게 진술했다고 썼다. 김시인은 "고행…1974"를 쓰는 바람에 형집행정지가 취소돼 다시 교도소로 들어갔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 녹두꽃

1974년 1월
- 김지하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그 시간
다시 쳐 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에 남긴 채
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
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의
겁먹은 얼굴
그 지친 주름살을 죽음이라 부르자
그토록 어렵게
사랑을 시작했던 날
찬바람 속에 너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던 날
두려움을 넘어
너의 얼굴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바라보던 날 그 날
그 날 너와의 헤어짐을 죽음이라 부르자
바람 찬 저 거리에도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의 하늬 꽃샘을 뚫고
나올 꽃들의 잎새들의
언젠가는 터져 나올 그 함성을
못 믿는 이 마음을 죽음이라 부르자
아니면 믿어 의심치 않기에
두려워하는 두려워하는
저 모든 눈빛들을 죽음이라 부르자
아아 1974년 1월의 죽음을 두고
우리 그것을 배신이라 부르자
온몸을 흔들어
온몸을 흔들어
거절하자
네 손과
내 손에 남은 마지막
따뜻한 땀방울의 기억이
식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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