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行間

시인 김지하의 회고록 - 조동일

반응형
시인 김지하의 회고록    
- 조동일

[출 처 : 조동일을 만납시다. ]

 김지하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출판 기념회가 2003년 7월 11일에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렸다. 그 때 내가 한 축사의 몇 구절도 여러 신문에 보도되어 관심거리가 되었다. 시인뿐만 아니라 논평자도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정리해 알리는 것이 마땅하다.

 1960년 4ㆍ19 이후 몇 년 동안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은 별난 곳이었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진원지였다. 김지하와 거기서 만나 격동과 열정을 함께 겪었다. 지금은 공원이 된 그 자리를 드나들며 노는 젊은이들은 과거를 얼마나 아는지 의문이다.

 세상을 온통 쥐고 흔들고 역사를 이끌어가겠다는 이상주의자와 몽상가, 과격분자 와 모험주의자, 혁명가와 투사들이 목청을 높였다. 모두 관심을 정치에 두고, 정치노선, 정치이론, 정치투쟁의 전략과 전술에 관해 많은 말을 했다. 깊은 탐구는 생략한 채 이미 있는 주장을 현실에 무리하게 적용해 통일을 이룩하는 데까지 나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면서 실망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김영일, 김지하라는 필명을 사용하면서 시인으로 등장하게 될 친구는 달랐다. 거대한 꿈을 예술에서, 문학에서 이루려고 고심하고 있었다. 모더니스트나 다다이스트의 성향이 있어 거슬리기는 하면서도, 깊은 호감을 주었다.

 현실참여 예술운동을 민족미학의 발견과 재창조에서 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해 동지가 되었다. 시를 같이 쓰고, 연극도 함께 했다. 그 전후의 일이 회고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때 이루어진 두 사람의 깊은 유대는 변함없이 지속되면서, 예술과 학문의 길이 갈라졌다.

 김지하는 <오적> 같은 시를 써서 군사정권과 정면에서 투쟁하다가 감옥에 가서 모진 고초 겪고 건강이 많이 상했으니,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이름이 나라 밖에서까지도 너무 높아져 착심하기 어렵게 한 것이 또 하나의 심각한 피해였다. 나는 교수 노릇을 하기로 하고 서울을 떠나 대구로 갔다. 시달리는 일이 있으면서도 교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죄책감 때문에 더 많은 연구 작업을 해야 했다.

 김지하가 석방되고 다시 활동한 다음에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어느 잡지에서 대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사상을 열겠다고 하면서, 시를 쓰는 본업에서 너무 멀리 이탈하지 말아라. 어수룩하게 살면서 못난 시도 버리지 않고 거두는 것이 슬기로운 자세이다. 이런 충고를 했다.

 그 뒤에 바로 김지하는 시집을 내서 많은 사람이 읽게 하고, 널리 공감을 얻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착심하고 시인의 길을 갈 것을 기대했는데, 회고록을 써서 잡지에 연재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세 권의 분량으로 출간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고록을 벌써 쓰는가? 이런 의문을 가지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다. 이제 할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되었으므로 더 기다리지 않고 붓을 든 것이 마땅하다. 기억이 정확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내게 관련된 사실도 과연 그랬던지 나는 자신이 없는데, 잘도 알고 있다. 또한 필력이 살아 있을 때 써야 한다. 전권의 문장이 생동해, 산문이 온통 시와 같다. 지금 쓰기를 잘 했다.

 이 회고록은 자기 혼자 위안도 얻고 변명도 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겪어온 역사의 내밀한 진통을 응축해서 담은 작품이다. 상상해서 허구를 만들어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진실성을 밀도 짙게 간직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이룬 가장 갚진 창조물의 대열에 들어간다고 평가할 수 있다.

 큰일을 했다. 높은 이름이 헛되지 않게 하는 작업을 이룩했다. 오랫동안 힘들게 했던 부담과 긴장에서 벗어나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기 바란다. 도사 같은 소리 그만두고, 할 말을 시로 나타내라. 주석에는 신경 쓰지 말고 본문만 써라. 비평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할 일을 남겨두어라.

 인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 새로운 사상을 일거에 깨달아 선포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지나친 기대는 버리자. 나 같은 교수는 논문으로 말하고, 시인은 시를 쓰면서 그 과업의 일부를 힘 자라는 대로 감당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따름이다. 축사라는 이름의 참견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관련글
깊이 잠든 이끼의 샘 - 『꽃과 그늘』- 김지하
애린 간행에 붙여
김지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