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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오만의 극치' - 이재오의원이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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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가능여부가 오늘 오후면 판가름이 나온다. 기정사실화가 되어있는 상태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평상심을 잃고 있다. 그가 '대통령병'이라고 말하던 DJ와 변절자라고 욕하고 자신에게 실패를 안겨준 이인제와 같은 행보를 가려고 한다.

먼저 MB캠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들어나오고 있다. 경선에서 승리하였을때 MB는 박근혜측에 모든 것을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높은 여론지지도에 의하여 2월 청와대 입성만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본 컬럼에서는 2인자의 태도에 관한 태도를 이야기 하고 있다. '적장(敵將)으로부터도 존경받아라' 그리고 '주군(主君)을 위해서라면 적장한테도 굴복하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오의원이 MB와 주군과의 관계였는지 의문이다. 주군은 동지적 관계가 아니다. 주군에게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의원측이 '오만의 극치'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말이다. MB와 이재오의원은 모든 것을 버리고 박근혜의원측을 안아야 한다. 지난 10년동안 이회창후보의 '오만'으로 두번이나 기회를 놓쳤다. 지금은 향후의 주도권을 누가 갖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2번의 실패를 또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오의원은 백의종군을 하여 박의원측을 껴안아야 한다. 나의 모든 것을 버려야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의원이 모든 것을 던진다고 2인자가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멀리 바라보자. 난 이재오의원을 좋아한다. 오늘만 정치를 하고 말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재야시절도 있었고 민중당시절도 있었다. 지금이 마지막이 아니다. 앞으로 더욱 많을 날이 있다.

그의 결단을 바란다.


적장(敵將)으로부터도 존경받아라. 정치 파벌 내 제2인자의 처신에 관한 고전(古典)이다. 김영삼(YS)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좌동영·우형우라고 불린 김동영과 최형우라는 뚝심 참모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김동영은 1990년 노태우·YS·김종필 간 3당합당 직후 전립선암 선고를 받았다. 6,7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 기저귀를 차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사투하는 김동영. 그러나 YS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동영이 대통령 노태우를 만난 자리였다. “각하, YS를 대통령으로만 만들어주시면 제가 각하의 부하가 되겠습니다.” 주군(主君)을 위해서라면 적장한테도 굴복하는 것이다. 노태우가 탄복했다. 왜 나한테는 저런 충신이 없는가. 김동영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YS와 서울대 병원에서 작별한다. “총재님! 대통령이 되시는 것을 못 보고 갈 것 같아 죄송합니다.” YS는 “나는 김동영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힌다.

이춘구, 그는 민정당의 뿌리인 군인 출신 정치인이었다.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한 YS는 그를 사무총장에 전격 발탁했다. 민정계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기 때문. 이춘구는 YS를 적극 도왔다. 주군인 전두환·노태우를 위해서였다. YS는 “나에겐 왜 이춘구같은 사람이 없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춘구는 YS가 대선후보로 확정되자마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낙향했다. YS 대통령 밑에서 ‘한 감투’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제2인자에겐 의리의 처신, 멋과 향기가 있었다.

이명박의 오른팔 이재오는 박근혜로부터 “오만의 극치”라는 비판을 샀다. 박근혜는 최상의 그악스러운 표현을 쓰지 않는 어법. 휴전선은요? 대전은요? 이재오는 386식 직설화법이다. “아직도 경선하는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 이재오가 박근혜를 찾아가 “이명박 대통령만 만들어주면 내가 충성하겠다”고 했다면? 이재오가 박근혜를 공격하면 이명박에게 불리할 것임을 이재오가 모를 리 없다. 그러면 왜 공격? ‘대통령 이명박’은 따논 당상이다보니 다른 사심(私心)이 생긴 것. 당권이다. 박근혜가 들어오면 당권을 놓치니. 이재오는 중앙대로부터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려다가 무산됐다. 이런 제2인자는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 [출처 : 오만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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