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3 01:52
[斷想]
생전에 한편도 소설을 발표한 적이 없는 시인이었지만 55년 1월 5일자 일기를 보면 그가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앉으나 서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친다. 좋은 단편이여, 나오너라."
하지만 신문의 보도는 다분히 선정적이다. 특히 보수 언론의 헤드라인은 더욱 더 그러하다. 중앙일보의 김수영의 미발표 시 ‘김일성 만세’ 발굴과 한겨레신문의 김수영 시인 “‘김일성 만세’ 말할 수 있어야 언론자유”는 내용을 보지 않는 대중들에게 그의 저항시인으로서의 모습을 왜곡시키고 있다. 차라리 조선일보의 김수영 40주기… 미발표 시 15편 공개와 문화일보의 40주기 故 김수영 시인 미발표詩 15편·일기 30편 공개는 사실보도에 충실하다.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1960년에 쓴 〈'金日成萬歲'〉다. 시는 남한 내 언론자유 신장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김일성에 대한 찬양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제목에 내포된 위험성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金日成萬歲'를 따옴표(' ')로 둘러싸 자신이 만세를 부르는 당사자가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시 내용을 확인한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이념에 대한 시라기보다는 일종의 풍자시"라고 분석했다.이번에 공개된 김수영 자료들은 20일 발간되는 계간 ‘창착과비평’ 여름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金日成萬歲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言論의 自由라고 趙芝薰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政治의 自由라고 張勉이란
官吏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言論의 自由라고 趙芝薰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政治의 自由라고 張勉이란
官吏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덧붙임_
김수영과 언론 자유: 시 「'金日成萬歲'」에 부쳐 :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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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金日成萬歲'」를 읽었다. 제목만 봐도 어지간해서는 출간을 못했겠구나 싶은 시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를테면, 텍스트가 가리키는 달이 분명 '한국의 언론 자유'라고 하더라도, 그 손가락인 텍스트가 너무 '섹시'했기 때문에 당국은 텍스트 자체를 모자이크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김수영 같은 시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아름다운데다 달을 가리키기에 더이상 효과적인 수단을 찾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시를 읽어 보자(김수영 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