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진실을 알고 있다면 어떻까? 아마도 말을 하고 싶어 못 견딜 것이다.
영화는 반대다. 모두가 싫든 좋든 진실만을 말한다. 하지만 주인공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게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상관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발명한다. 주인공을 말을 빌리면 거짓말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발명이라 말한다.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으니 거짓말이라는 단어도 없다.

주인공이 처음 거짓말을 하고 희열에 차 독백한다."인류역사상 최초로 엄청난걸 발명했다. 역사책에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인류에게 엄청난 일이다."

이런 위대한 발명이 영화속에서만 존재하는 코메디일까?
영화는 코메디를 빗대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종교, 기독교를 비꼬고 있다. 기독교의 대부분을 조롱하고 있다. 모세의 십계명을 피자헛 상자를 들고 따라하고 있다. 실연의 상처로 식음전폐하고 있을떄의 모습은 영락없는 예수의 모습이다.



영화의 재미를 떠나 기발한 발상이 좋다. 다들 진실만을 말한다. 짐 케리의 <라이어>와는 정 반대의 설정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라이어를 보고 이 시나리오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자위를 하고 있다던가, 재수없다던가 하는 평소에는 하긴 힘든 대부분의 말들을 한다. 세상의 모든 위선을 맘껏 비꼬고 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니 간호사가 누굴를 버리러 왔냐고 말한다.


사람들의 위선을 조롱하지만 그보다는 기독교의 위선을 더욱 조롱하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모세의 십계명을 주인공은 피자헛 배달상자에 붙여 사람들 앞에 선다. 자비로운 '하늘에 계신 그분'의 복음이라며 세상 사람들에게 말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복음은 급조되었으며 세상 사람들을 속인다. 물론 십계명을 빗대어 세상 사람들을 속인다. 또한 주인공의 위대한(?) 발명후의 독백에서도 "역사책에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는 부분도 역사책, 즉 성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불어 "나뿐만이 아니라 인류에게 엄청난 일"이라는 그의 독백이 지금의 엄청난 모든 것의 중심에 있음을 조롱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그러한 능력, 다른 이를 속일 수 있는 능력을 자기를 위하여 사용한다. '하늘에 계신 그분'의 말씀이라는 미명하에.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진실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그가 위대한 발명을 하기전까지는 모든 것이 진실이었다. 그가 '하늘에 계신 그분'의 빗대어 사람을 속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든 것을 '하늘에 계신 그분'의 뜻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잇속을 챙긴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그의 행동이 세상 사람들을 거짓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다. 주인공이 말하듯이 영회 속에서는 '하늘에 계신 그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만들어 낸 인물이다. 사람들에게 믿게하고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게 바로 '하늘에 계신 그분'이다.

현실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늘에 계신 그분'의 존재는 누군가가 만들어 낸 허구일 것이다. 누군가가 어떠한 이유로 그것이 필요했기에 만들어 낸 인물이다.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들 예수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말하는 거짓말과 현실속의 기독교가 말하는 진실은 어느것이 진실일까?

이 영화는 영화로서의 재미는 떨어진다. 밋밋한 전개과정, 예정된 결론 (그렇게 끝내지 않으면 상영이 되었을까?) 모든 것이 지루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상업성을 엿보면 놀라울 정도이다. 주인공이 들고 나오는 피자판, 버스 광고에 나오는 펩시, 모든 것이 시나리오에 묻어있다. 불쑥 튀어나온 PPL이 아니라 시나리오에 묻어 있다. 그 장면들이 급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업적인 면에 보는 우리는 그들의 물건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러한 PPL은 정말 부러운 대목이다.



TELL THE TRUTH - Eric Clap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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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거짓말의 발명 (The Invention Of Lying, 2009)

    Tracked from Different Tastes™ Ltd. 2010/08/14 14:39  삭제

    인벤션 오브 라잉 감독 릭키 제바이스, 매튜 로빈슨 (2009 / 미국) 출연 조나 힐, 제니퍼 가너, 티나 페이, 제이슨 베이트먼 상세보기 ★★☆☆☆ 국내 미개봉, 미출시 영화입니다만 오직 '실컷 한번 웃어볼까' 하는 기대로 감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앞으로도 국내에 정식 소개될 일은 없을 영화인 것 같네요. 짐 캐리와 톰 새디악 감독 콤비의 히트작 <라이어 라이어>(1997)와 정반대의 설정의 영화입니다. <라이어 라이어>가 아들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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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무법자들인가? 라는 포스팅을 보았다. 내용을 차지하고 제목이 말이 안되어 좀 웃다가 글을 보게되었다. 글쓴이는 무슨 이유에선지 상당히 감정이 상해 있어 보인다. 물론 나중에 글을 다 읽어 보니 그 이유는 있었다. 그 이유를 여기에 표현하기도 싫다.

글은 북멘토를 자처하는 박안석씨의 블로그에서 보았다. 이 포스트를 보고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불교를 믿어서가 아니다. 나는 종교와는 무관한 자칭 꼬뮤니스트라고 늘 말하였다.

코칭, 멘토를 말하는 사람이 불교가 전 불교도를 칭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어떤 것이 사람(人)을 칭하는지 구분을 하지 못한다. '불교'가 그러는 것이 아니고 '불교도'가 그러한 것이다. 또 '기독교'는 아니고 '기독교도'는 이라 말하여야 한다. 대상이 무엇인지 한정짓지 않고 무법자라느니 불법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른 이를 반박 또는 평하려면 그 평하는 대상을 명확하게 하여야 한다. 두리뭉실 하나의 사례를 전체인양 평하는 것은 논쟁의 기본이 없이 '동네 개싸움'을 하자는 것이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그르다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근거있는 이야기도 있다. 한때 명동성당이 해방구(?)의 역할을 한적이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성당 내부에 농성자들을 검거한 일은 있지만 정권과 종교계와의 서로의 존중(?)으로 피신처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것이 꼭 서로를 인정해서는 아니다. 서로의 이익에 따름이었다.

과거의 일은 접어두고 종교 편향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옳지않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대통령을 옹호하는 것은 좋으나 그 방법과 순리를 따라야 한다.

이래저래 이놈의 세상은 왜 이리 잘 난 X도 많고 누구를 가르치려 하는 X도 많은지 옥석을 가리기가 힘들다.

세이공청 (洗耳恭聽) 아니 세목공청을 해야 겠다.

덧붙임_

북멘토나 북코칭이 무엇을 하는 일인지 잘모르겠다. 논술고사를 치르기위하여 책을 읽고 주제에 대하여 작성한 논술을 빨간 싸인펜으로 고쳐주고 또 다시 책을 정해주는 일인지 아니면 ... ???

인생의 멘토는 존재한다. 하지만 책에 있어 아니 '책읽음'에 있어 멘토라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책읽음이란 같이 더불어 가는 것이지 누구를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먼저 알았을 뿐이다. 그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한걸음 먼저 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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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로처 2008/09/22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분의 글을 봤습니다.
    아침부터 예전의 반공독후감을 읽은 기분입니다.
    환절기 감기조심 하세요~ ^^

  2. 북멘토 2009/03/13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고에 가치도 없는 글이다. 내용을 충분히 검토해 보아라 불교에 부패성을 알면 놀랄것이다. 그러면 목사로서 바른말 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내용을 충분히 보고서 내용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불교가 고려시대에 불교가 아님을 만천하가 다 알고 있다. 자본주의에 병폐는 은페성이라는 것이다. 내용을 그저 폄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님들 보다는 나이 먹어도 더 먹은 사람으로서 말이다.

    나는 불교인들에게 긍휼함을 안고 있을 뿐이고, 종교는 타협이 없는 것이다. 순수함은 결코 물리력으로 덤비지 안는다. 해인사 주변에 토지와 이나라에 문화재 수입까지 챙기는 불교도에 모습을 알고 있는가 말이다.
    일고에 가치도 없다고 여깁니다.

    • BlogIcon 한방블르스 2009/03/13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교를 두둔하거나 옹호하고자하는 맘은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자칭) 북멘토로서 불교를 탓하는 것인지 불교도를 탓하는 것인지 구별을 하라는 말입니다.

      목사라면 더 더욱 타 종교를 인정해야지요. 그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종교라는 것이 인간에게 무슨 도움이 될런지 의문입니다.

      어떤 살인자가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는 나쁜 종교라 말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답변을 할지 궁금하네요..

      덧_
      링크를 걸지않고 자신을 숨기는 것은 옳지않다고 봅니다. 자신을 숨기고 말하려면 하지 않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아프간 인질 문제를 다룬 안보정책조정회의에 빠지고 '2007 한국교회대부흥 100주년 기념 한반도평화통일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오늘 안보정책조정회의에 아프간 사태는 안건에 없었다”면서 “청와대에 (불참에 대한) 양해를 구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안보정책조정회의 의제는 아프간 인질 문제였다”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참 조 : 이재정, 통일장관 ? 성직자 ?[문화일보]]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이니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3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있었던 철야예배에서 한 행동을 보면 참으로 가식적이다.
이재정 장관의 설교 뒤에는 남북관계와 평화 통일을 위한 기도가 이어졌으며, 이날 예배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피랍된 봉사자들의 석방 기도도 진행됐다.
웃긴다. 석방기도는 하면서 대책회의에는 참여 하지 않았다. 뭔 생각인지 참으로 웃긴다.



대북지원, 주는 사람 마음이 중요

이재정 장관은 대북지원과 관련 지난 30년 동안 남북관계에 엄청난 변화가 있음을 수치로 들어 설명하면서, 그동안 대화와 신뢰로 평화가 이루어져 왔음을 설명했다.

이 장관은 “남북 왕래 인원이 지난 10년에 비해 697배 늘어 지난해에는 10만 명이 북한을 오고 갔다”며 “또 지난 15년간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당시 진행된 남북회담의 수도 각각 28번, 88번, 135번으로 증가되는 등 남북의 대화 협력을 통해 개성공단과 같은 평화의 결실들이 맺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참여정부의 대북지원과 관련 ‘퍼주기식’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에 대해 예수그리스도의 나눔의 마음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 장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대북지원 금액은 문민정부 2천4억, 국민정부 8천5백57억, 참여정부 1조5천억원으로 점점 증가했다.

이 장관은 “그 동안 퍼주기 한다고 욕을 많이 먹었다”면서도 “하지만 주는 것은 주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듯이 진심으로 평화를 위해 예수가 하셨던 것처럼 나누는 마음으로 준다면 더 큰 축복과 은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 처 : 이재정 장관 “평화의 사도가 되자” ]

대북 지원 정책이 종교적인 것인가? '퍼주기식'인 지원으로 그는 더 많은 은총과 축북을 받으려 하나 보다.
요즈음 이래 저래 종교가 문제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대립은 본처와 후처간의 다툼과 같다.

만일 종교가 없었다면 이같은 불신과 대림은 없었을텐데. 남은 인정하지 않는 종교는 XXXX. 그만하자 내 입만 더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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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대한민국은 기독교인들만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Tracked from 아지라엘과 가가멜의 반찬거리: You turn gagamell into documentalist..! 2007/08/11 16:19  삭제

    요즘 아프칸 피랍 사태를 보면서 정말 말들이 많고 그간 나도 몇마디 하고 싶었지만... 워낙 비슷한 류의 말들이많았고, 이미 내가 할말들을 이미 모두들 다 한 듯 해서 잠잠히 있었는데... 우연히 어떤 블로그 에서 이번 피랍사건에 관하여 신해철씨가 한 방송을 듣게 되었다... 신해철씨가 읽어 나가는 사연 중에 나름 공감이 가는 말이 있어서 타이틀에 붙여 보았다. 어떤가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기독교인들은 대한민국이 기독교인들만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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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시험 문제로 여러군데 다니며 댓글을 썻다.

음.. 안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든다. 이외수님의 플레이톡에서 오늘과 같은 상황에 맞는 글을 읽었다.

어떤 사내 하나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전철을 누비고 있을 때였다.
홀연히 예수님이 나타나서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그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지금 뭐 하세요?


이것은 댓글에 달린 내용이다.
 
상황1
사내: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제가 예수입니다.
사내:(인상을 찌푸리고는그 자리를 피했다.)


상황2
사내:앗! 예수님이시군요.
예수님:(날 알아보다니)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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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가 같다는 말은 예전에 들었다. 워낙 교회 근처에 가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

성서와 코란은 같은 믿음의 뿌리로 시작하고 있다. 천지창조부터 아담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수 등 성서 인물들은 코란에도 등장한다. 하느님과 알라는 모두 절대적 존재로 유일신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을 신앙의 근원으로 의지한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아브라함은 현 이라크 메소포타미아 지역 우르 사람으로 인류의 조상 아담의 19대손이며 대홍수의 심판에 살아남은 노아의 10대손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종교는 아브라함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해 예수에 가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스라엘과 아랍 종족도 이때부터 갈라지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 가운데 본처 사라에게서 낳은 이삭과 그의 아들 야콥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 야콥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아랍은 아브라함이 본처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의 후손이다.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은 7세기 들어 코란이 출현하면서 이슬람에서 그들만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계기를 갖는다. 이때부터 유일신의 언약백성으로서 정통성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아랍, 기독교와 이슬람 간 갈등은 불거지기 시작했다.

같은 기원에서 나온 두 종교가 단지 한사람 때문에 이렇게 박 터지게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마호메드의 말이 맞아 보인다. 자기는 구세주가 아니고 '선지자'라는 말이다. 여러명의 선지자 중 한명이다. 단 한 사람만이 구원을 하는 사람이란 말보다는 단지 '먼저 안 사람'이기 때문에 가르침을 주려고 한다. 이것은 부처의 사상과도 같다. '석가모니는 모든 부처들 중에서 단지 한 명일 뿐이다. 누구나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옳다고 본다.

웃기는 이야기는 석가모니불이 생존해 있을때도 세상이 혼탁하니 미륵불을 기대했다고 한다. 지금도 미륵불이 오기를 기다리고 깨친 선지자는 미륵불이라 말한다. 당대 또는 후세에 인정을 받으면 그는 부처로 인정을 받을 것이며 아니면 사이비교주로 매도 당할 것이다.

불변의 진리는 없다. 한데 왜 한권의 책으로 인하여 이렇게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서와 코란은 무엇이 다른가. 두 경전은 예수를 놓고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존재에 그 정수가 있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성서의 핵심이며 코란과는 이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코란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인들은 예수를 하느님이 보낸 여러 선지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여긴다.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며 알라께서는 아이를 갖지 않으신다`(코란 19:34)고 주장한다.

이슬람인들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믿는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믿지 않는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아담이 아버지 없이 태어난 것처럼 여길 뿐이다.

그 들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도 믿지 않는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것은 죽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실제로는 죽지 않았고 대신 다른 사람이 십자가에 죽었다고 주장한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부활도 인정하지 않는다.

코란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고 말하고 성경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가르친다. 둘 다 옳을 순 없다. 어느 한쪽은 분명 가짜다. 두 종교가 갈등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독교ㆍ이슬람교 충돌의 뿌리는?[매일경제]


덧붙임_ 2010.05.19
댓글에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바꾸라는 글이 있어 그 내용을 좀 더 추가한다.

하나님과 하느님에 대한 정확한 규명은 논란이 많다. 일반적으로 유일신을 뜻하는 하나님이 기독교에서 통용된다. 하지만 번역상에서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별성이 명확하지않다.

위키를 참조하면 그 내용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초기 개신교에서는 상제, 천주, 하느님, 하나님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현재 개역한글판의 뿌리인 개역성서를 펴내는 과정에서 아래아가 홀소리 ㅏ로 일괄적으로 변경되면서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했다. 한편 천주교회에서는 원 뜻과 맞춤법을 참고해 야훼를 '하느님'이라는 단어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1977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번역한 현대어 성서인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신의 호칭으로 '하느님'이라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개신교 교파 다수는 이를 '하나님' 표기를 고수하여, 현재 천주교와 개신교가 현재 서로 다른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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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쿠우곰 2010/05/18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의 둘째줄에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수정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