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2/08 지금도 유효한가? : 이코노파워
  2. 2007/10/12 "신자유주의" 과연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가? (2)

미국발 금융위기가 나오기전에 출간된 시카고학파 마크 스쿠젠박사의 책이다.

노벨 평화상을 경제학자이면서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학과장을 역임한 바 있는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민간 은행을 설립해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한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것을 비롯하여 경제학자들이 세상을 구한(?) 여러 사례를 말하고 있다. 즉 부제로 나와있는 '나와 세상을 구하는 경제학의 힘'처럼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공로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발생된 지금 이 책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그렇지만 100% 실패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책이 오바마 정권에서 실행될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MB정권에서는 책의 사례를 연구하여 정책에 반영할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당이 집권한 오바마정권과는 역행을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기침을 하면 감기가 걸리고 미국이 감기가 걸리면 우리는 독감으로 드러눕는 열악한 경제환경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한계(?)가 미국에서는 금융위기로 나오고 있고 한국에서는 노무현정권에서 시행한 어정쩡한 좌파정책(? 사실 좌파정책이나 정권이 아니다. 좌파를 흉내낸 우파다.)으로 혼란을 겪고있다.

지금껏 경제학자에 대하여서는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그 불신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홍보(?)를 가미한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이 정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은 하게되었다. 하지만 의아심이 많이 가는 정책이 많이 보인다. 사교육문제를 보면 지금의 MB정정권의 그것과 유사하다.

또 신자유주의의 개방화에 대하여 말한 내용은 이 책에 대한 신뢰도에 의문을 들게 하는 부분이다.

개방화를 통해 외국 자본이 국내로 유입되면 자본의 한계수익률은 낮아지고 노동의 한계수익률은 커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장기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소득 격차가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스쿠젠이 말하는 행복경제학에 관하여도 관념적이다. 부유한 사람과 행복감에 차이가 없으니 심지어 더 불행하다고 느끼니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행복과 소득은 서로 양의 관계에 있다. 돈에 기인하는 행복감이 수확체감의 법칙에 부합한다. 즉 부유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수확체감의 법칙을 경험하고 있으며 행복 수준이 중산층에 비해 별로 나을게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부유한 사람들은 오히려 불행하다는 것이다. 행복경제학에 대한 논리에서 스쿠젠교수는 행복의 4요소는 첫째 정직한 직업활동, 둘째 휴식과 여가활동, 셋째 사랑과 우정, 넷째 종교적 신앙을 꼽고 있다.(김인철교수의 해제 中)

왜 이 시점에 책이 출간되었는지가 의문이다.우파 MB정권을 이해하기 위하여 아니면 오바마정권 출범이전에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부다 나쁘지는 않지만 대부분 실패한 사례라는 것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증명되고 있는데 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 중이고 '레닌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좌파정책이 우월강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새의 날개는 좌우가있다. 좌만 혼자 날 수는 없는 것이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임_

[저자인터뷰] "이코노파워" 마크 스쿠젠 박사

덧붙임_둘

알라딘서평단에서 받은 책이다. 서평단의 좋은 점은 결코 내가 구매하지 못할 다양한 책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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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장하준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컬럼을 보았다.

"착한 경제학자는 있을지 몰라도 착한 경제학은 없다."라고 하면서 장하준교수에게는 문제가 없고 집행하는 무능한(?) 정부와 정치꾼들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시장과 세계화를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계의 시각에서 장 교수가 비주류인 건 사실이다. 빈부격차 등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주류는 교육과 직업훈련 일자리를 통한 해결을 찾는 반면, 비주류는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반대를 주장한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에선 시장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학자가 많아야 15%여서 ‘이단(heterodox)’으로 불린다.
장하준교수가 주장하는 것들이 주류가 아니다. 주류의 흐름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내세우고 비주류는 이에 반대한다.

포퓰리즘의 큰 특징은 정권이 선거에 의해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데 있다. 경제에선 시장은 물론 재정적자를 무시한 분배정책으로 나타나고, 정치에선 헌법과 사법제도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무시한 비자유적 민주주의로 군림한다. 민주주의가 자유의 제도화를 뜻한다면 그 제도를 박살내고 정권의 자유만 추구하는 게 포퓰리즘이다.

시장이 경제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재정건전성 정책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의 요구이니 ‘세입을 초과한 지출’도 해야 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지난날 남미를 말아먹은 포퓰리즘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손에서 중요한 결정을 빼앗아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들의 손에 넘기는 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다.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좋을까? 아직 참여정부의 임기가 몇 개월 남아있지만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 할 것이다. 장하준교수의 주장을 참여정부의 일관된 내용과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같은 칼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도구가 될 수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칼이 아니라 그것을 휘둘러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정부 개입을 강조한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죄가 없다. 그러나 무능한 정부를 모신 죄 없는 국민은 피해가 막심하다. 만일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이 당선돼 장 교수 주장대로 보호주의를 채택한다면 당장 우리나라가 피해를 볼 판이다. 착한 경제학자는 있을지 몰라도 착한 경제학은 없다. 되는 경제학(주류)과 안 되는 경제학(비주류),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정치꾼이 있을 뿐이다.
글을 쓴 김순덕 부국장은 '되는 경제학(주류)와 안 되는 경제학(비주류)'라고 평하였지만 고한 평가라고 보인다. 신자유주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를 비판한 장하준교수의 보호주의도 어떤 면에서는 타당한 논리가 된다. 장하준교수의 이론을 참여정부에서 적용하고 실패(?)하였기 때문에 이런 논조가 나온지 모르지만 무리가 잇어 보인다.

어찌되었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출처 : 장하준과 ‘착한 경제학자들’(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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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올해 노벨상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고?

    Tracked from foog.com 2007/10/17 13:59  삭제

    에릭 매스킨 교수언제부터인가 경제학에 복잡한 수학공식과 물리학공식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용어는 철지난 좌파 경제학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용어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된 연구는 그 이후 정치와 경제의 상호관계를 파헤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 시장가설에 맞는 시장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자기들만이 아는 암호를 동원하여 이론으로 구현해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온 듯하다. 이런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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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foog 2007/10/17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하준 교수는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 전체를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 여하튼 명쾌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점잔빼지 않고 솔직한 그의 화법이 맘에 듭니다.

    • BlogIcon 한방블르스 2007/10/17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책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여 말을 할 수 없지만 비주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를 인정하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