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으로… :『신의 역사』 - 주책(이주의 책)
『신의 역사』 - 주책(이週의 冊)
『신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교양인
같은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신의 탄생 배경부터 오늘에 이른 과정을 추적한다. 1993년 출간될 당시 38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국내에는 1999년 처음 소개됐는데, 이번에 기존 번역본의 오역을 손보고 누락된 내용을 추가해 전면개역판으로 출간했다.
태초에 인간은 만물의 제일원인이자 하늘과 땅의 통치자인 신을 창조했다. 신은 이미지로 표현할 수 없었고 그를 섬기기 위한 신전이나 사제도 없었다. 그는 부족한 인간의 숭배를 받기에는 너무나 존귀했다. 점차 신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신이 너무 멀어졌기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는 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게 되었다. 결국 신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인간은 ‘언제나’ 시대마다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어왔다. 신의 존재 유무를 캐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신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역사적 전개과정을 살피겠다는 도발일 뿐이다.
신을 추구했던 인간의 고뇌와 고독, 환상과 환희를 섬세하게 그리면서 궁극에는 오늘의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고 싶어 한다.
신이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인간들 사이에 정착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인간 삶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개념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암스트롱의 결론은 ‘신이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는 인간적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 신의 개념은 구체적 실효성이 없으면 당장 개념이 변하고 때로는 아주 급진적으로 달라지기도 했다.
오늘날 종교가 극단적 근본주의 행태를 보인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이렇다. 유대교는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을 내쫓았고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에 테러를 자행했다. 미국 기독교는 낙태 금지 운동 등으로 ‘뉴라이트’와 결합해 정치세력화했다.
이런 모습조차 신의 뜻일까. 그 내막을 알기 위해 신의 ‘족보’를 파고든다. 먼저 불가해한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천신(天神)이 만들어졌다. 신은 더 매력적인 존재로 대체됐다. 농작물의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지모신(地母神), 자연 만물에 내적 동일시를 부여한 다신(多神) 숭배 등이 그랬다.
‘야훼’라는 유일신을 공통 뿌리로 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차례로 등장했다.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은 민족을 하나로 묶어줄 ‘공통의 언어’로서 유일신 유대교를 만들었다.
얼마 뒤 예수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기독교가 등장했다. 처음엔 유대교의 이단 분파로 경멸받았지만 제국으로 성장하던 로마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며 세를 불렸다. 신비주의 종교의 번잡함과 비타협적인 금욕주의를 멀리하는 ‘도시풍의 세련된 종교’란 인식이 매력을 끌었다.
가장 늦게 출발한 이슬람교는 영적 열등감에서 비롯됐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최고신 ‘알라’가 유대인 및 기독교인이 섬기는 신과 동일하다고 믿었지만 다른 종교와 달리 예언자와 경전을 보내주지 않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610년 신의 말씀이 뒤늦게 아랍어로 전해지며 ‘쿠란’이 완성됐다.
신의 이름으로…
암스트롱은 세 종교의 근원인 야훼가 잔인하고 편파적인 신앙을 정당화한 점을 문제 삼는다. 성경에 묘사된 야훼는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자기 아이를 인신 공양하게 하고, 모세와 이스라엘인을 해방한다는 명목으로 이집트인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린다. 이런 사상은 각 종교에 ‘신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선택 신학’으로 이어졌다.
신앙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특히 번성했다. 멸망의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궁지에 몰린 자아를 떠받치기 위한 수단으로 신을 활용했다. 암스트롱은 “전염병과 전쟁, 기후 위기 등 윗세대가 종말이라고 불렀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믿음이 오늘날 근본주의 형태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라고 경고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박해와 학살은 종교와 종교라는 자유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스피노자의 선악 관점은 이 작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늑대가 양을 잡아먹었다고 해서 늑대가 악하거나 양이 선한 것은 아니다. 사건이나 행동 자체에 절대적인 선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시각과 문맥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늑대가 악하고 양이 선한 것은 오직 양치기 눈에만 그런 것이다. 선악 관념은 인간이 양치기와 같은 시각으로 세계를 보기 때문에 생겨났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신이 정한 목적에 따라 판단하는 습관이 있다. 세계 자체가 누군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 착각하기도 한다. 인간이 능력 있고 자유롭게 태어났다면 어떤 선악 관념도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암스트롱이 종교의 역사를 다루면서 강조하는 다양성과 복잡성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스피노자는 또한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 종교적 신념과도 연결될 수 있다. 종교는 종종 인간의 고뇌와 고독, 희망과 불안을 반영하는 데 사용되며, 종교의 역사는 종교적 신념이 인간의 삶과 가치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언제나’ 인간은 시대마다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어왔다. 《신의 역사》이다.
오!
신이여.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소서.
그럼, 저도 당신의 큰 잘못을 용서해 드리겠나이다.
—로버트 프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