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김수영을 읽는 장정일

한방블르스 2025. 8. 26. 16:59

『김수영 평전』은 김수영의 삶을 추적한 평전이고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은 김수영 시에 관한 평론이다. 김수영은 ① 일제시대 때 누구나 다 가담한 사회주의 운동이나 항일 운동 자체에 대해 무관심했다. ② 해방 후, 뒤늦게 사회주의(좌익)월북 인사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③ 6.25라는 참상과 직면하자, 모든 이데올로기적 판단이 중지되고 생존의 방법으로 남한을 택한다. ④ 휴전선이 고착되고 냉전이 시작되자 사회주의에 대한 콤플렉스에 다시 시달린다.

김수영은 ① 또는 ③과 같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도피와 생존을 택하고, ② 또는 ④와 같이 상대적으로 유화적이고 과도기적인 공간에서는 과격한 자유주의자 내지 회의주의자가 된다. 김수영이 4.19에 왜 그토록 열광했는지의 비밀은 여기 있다. 4.19는 그가 온몸을 던진 최초의 투신이었다. 하지만 혁명은 진창으로 빠져들고 5.16이 일어나자 김수영은 내부에서 붕괴된다. 현실에 대한 무관심이나 생존을 위한 판단 중지로 되돌아가기에는 난생 처음 맛본 4.19에 대한 열정이 너무 컸다. 그래서 나름의 타계책으로 택하게 된 것이 하이데거의 시론이며 언어와 우주에 대한 투항이다.

(콤플렉스는 다른 이가 씌어준 굴레가 아니다. 자신이 만든 굴레이기에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이도 자신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굴레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그 굴레에 얽매인다. 그래서 출구를 반대편으로 더 빨리 많이 가게 된다. 박정희가 남로당 콤플펙스로 다 우경화되었다.)

김수영이 쓴 “비참의 계수가 다른 데로 옮겨갔다.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대립으로, 남과 북의 대립으로, 미,소의 우주 로케트의 회전 수 대립으로 대치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골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다.”(1964) “우리의 시의 과거는 성서와 불경과 그 이전까지도 곧잘 소급되지만, 미래는 기껏해야 남북통일에서 그치고 있다. 그 후에 무엇이 올 것이냐를 모른다. 그러니까 편협한 민족주의의 물레바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미래에도 과학을 놓아야 한다”(1968)는 구절은 현대 세계에 대한 시인의 지관을 보여주는 성찰적 잠언으로도 읽히지만, 김명인에게 그의 “지나친 앞서감”은 오히려 근대(현대)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비쳐진다. “부르조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보다 중요한 대립이 등장했다는 것, 이제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하는 것, 그리고 남북통일의 전망은 근시안적이라는 것 등은 그의 현실인식이 억압적 현실에 의해 굴절된 결과이거나 아니며 그의 현대에 대한 집착이 주관적인 비약을 낳았거나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의 너무 앞서감에 비과학적이라는 인장을 찍을 사람이 김명인 말고 누가 있겠는가.


(책과 상관없는 김수영에 대한 글이다.) 일제 시대에 도코로 유학을 간 김수영은 특이하게도 연극을 공부했고, 뒤에 가족과 함께 중국 길림으로 이주했을 때 그 곳에서 연극활동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했던 연극 작품은 물론 연극론(관)마저 변변히 남아 있지 않다. (김수영이 연극을 했다는 것은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김수영에 대한 나의 무지 때문이겠지만 어디서도 읽은 바가 없다.)

(책과는 상관없는 장정일의 연극에 대한 짤막한 덧붙임은 주레사 비평을 하는 평론가가 꼭 보았으면 좋겠다.) 서구의 비평가가 연극과 희곡에 대해 열렬히 쓰는 것과 대조적으로, 만물상에 가까운 우리나라 문학 평론가가 1년 동안 쏟아내는 무수한 평론집 속에 희곡에 관한 글은 하나도 없다. 우리 작가가 쓴 희곡이 천대 받아도 좋을 만큼 우리나라의 시와 썰이 모조리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평론가의 장르적 편견이나 권력화된 장르 그 자체 때문일까?

—『장정일의 독서일기 6』, 장정일
—『김수영 평전』, 최하림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

 

김수영 평전 | 최하림

시인 최하림이 쓴 시인 김수영 평전. 1981년 처음 출간되었던 것을 20년이 지난 지금 보충하고 다듬어 새로 내놓았다. 모더니스트로, 참여시의 선두주자로, 민중시의 지평을 연 의 저자로 기억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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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 | 김명인

김수영은 난해한 모더니스트/과격한 참여주의자, 소시민적 한계를 못 벗은 자유주의자/민중적 전망을 획득한 민족시인 등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다. 이 책은 그의 삶의 전과정과 작품들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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