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間/부고사이트를 위한 메모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한방블르스 2025. 8. 29. 11:22

 

「뉴욕타임스」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페드라 에스틸. 100년 4개 월 26일 만에 세상을 떠난 나의 어머니.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쌌다. 그녀는 가장 멋진 엄마였으며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녀의 가슴, 영혼은 항상 나와 함께했다.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도비.”

부고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줄줄이 자식의 이름과 직업, 직함을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의 부고기사도 마치 문상을 오는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은 형식을 버리고 이처럼 고인을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신문 부고기사 ‘스타일’을 만들자

조계환, 『관훈저널』, 여름호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하 때로 ‘리즈’)가 세상을 떠난 2011년 3월 23일,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은 CNN방송보다 1시간 반 정도 전에 이 소식을 전 세계에 긴급 타전했다. 리즈의 일생을 찬찬히 되짚어 살핀 무려 4쪽 분량의 방대한 기사를 곧바로 올렸다. 이 부고기사를 쓴 필자는 멜 구소 (Mel Gussow) 「뉴욕타임스」 문화담당 기자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소는 정작 6년 전인 2005년 4월 사망했다. 당시 「뉴욕타임스」 부고 에디터 빌 맥 도널드는 “테일러에 대한 기사는 거의 4,000 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부고기사로 이미 완성돼 있었고, 이를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 언론들은 유명인이 죽을 것에 대비해 미리 부고기사를 준비해 둔다. 마르크 블로흐가 쓴, ‘역사가의 사명’이라는 부제가 붙은 『역사를 위한 변명』 (1941)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17년 볼로라는 스파이가 유죄 선고를 받았을 때 어떤 일간신문이 4월 6일 자로 볼로의 처형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사실 그 처형은 11일로 늦춰 집행되었다. 이 신문기자는 그의 원 고를 미리 작성해 두었던 것이다.”

신문에 실리는 부고는 정규 뉴스 지면에 싣는 ‘부고기사 (행장 · Obituary)’ 와 단신인 ‘부고 알림’ (궂긴 소식)이 있다. 수준 높고 신뢰도 높은 신문일수록 중요하게 챙기는 뉴스가 오비추어리다. 한겨레에 김호 씨가 쓴 칼럼 (2013년 12월 24일 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언론의 부음기사는 별 특색 이 없다.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스」의 부음기사는 매년 책으로 묶어낼 만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잘 쓴 부음기사 한 편은 자기 계발서보다 더 깊은 삶의 자극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이 한겨레 부음기사에 실리는 것을 인생 마지막 영광으로 느낄 수 있다면?” 부고기사를 잘 쓰는 신문일수록 신뢰도 역시 높아진다는 점에서 부고기사를 지면의 전략 콘텐츠로 적극 활용 할 필요가 있다. 1면 등에 비중 있게 다루는 고인이 아닌 경우 그날의 지면 사정에 따라, 또 담당기자가 자세하게 쓰면 좀 커지고 짧게 쓰면 1단이 되고 마는 부고기사는 곤란하다.

물론 최근 들어 국내 신문에서도 부고기사를 적극적으로 취급하려는 태도가 때때로 보인다. 멜 구소의 리즈 부고기사가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날(2011년 3월 24일) 국내 대다수 신문이 1면에 리즈 얼굴사진을 싣고 종합 면에 관련기사를 비중 있게 처리했다. 리즈의 삶과 영화, 그리고 남성편력 사생활 (‘그녀의 남자들’)을 도드라지게 조명했다. 정치 · 경제계의 거인 및 저명한 학자나 작가 등이 사망한 경우와 달리 연예인 부고 소식엔 인색한 경향을 보였던 관행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지면이었다. 이날 리즈의 사망을 1면과 8면에 걸쳐 대서특필한 조선일보는 ‘사랑을 사랑한 여인, 잠들다’란 제목을 뽑고 그 아래 젊은 시절 고혹적인 모습의 리즈 사진을 실었다. 1면 기사 리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아름다움이었다. 때론 하얀 순수였고, 때론 붉은 정염이었다. 그는 사랑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부고기사 중독 (Obituary Addiction)’

위키피디아 인물 검색을 하다 보면 고인에 대한 추가 정보를 볼 수 있는 ‘References’ 란에 흔히 「뉴욕타임스」 관련 부고기사가 링크돼 있다. 그만큼 「뉴욕타임스」 부고기사는 정평이 나 있다. 「뉴욕타임스」에는 한 해 1,000여 명의 부고기사가 실리는데, 부고기사만 모아 책으로 발간하기도 한다. 주간지 〈타임〉에도 매주 유명인의 부고를 전하는 ‘Milestones’ 지면이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 부고섹션 (‘Paid Death Notices’ 코너 포함)은 저명한 사람뿐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부고 소식도 충실히 담고 있다. 대체로 정치 · 경제 · 사회·문화 분야에서 화려하게 살다 간 사람들인 국내 신문 부고란의 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르다. 「뉴욕타임스」 부고섹션은 뭔가 깨달음을 주는, 인생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독자들이 열심 히 읽어 ‘부고기사 중독 (Obituary Addiction)’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화제성 인물의 부고기사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좋은 창이다. 「뉴욕타임스」 2014년 1월 18일 자에 실린, 2차 대전 당시 일본 ‘최후의 황군’으로 전쟁 이 끝난 뒤에도 무려 30여 년간 필리핀 정글 속에 숨어 지냈던 히루 오노다 가 91살의 나이로 죽었다는 기사에는 150여 개의 코멘트가 달려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일본인의 죽음을 1월 17일 자 인터넷판 머리기사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물론 부고기사는, 눈에 띄게 얼마나 크게 배치하느냐는 ‘대접’ 못지않게 역사의 기록으로서 엄정해야 하고 진실에 입각한 공정한 평가와 균형이 요구된다. 마르크 블로흐의 『역사를 위한 변명』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허위와 오류를 말하는 대목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신문사의 가장 신중한 탐방기자마저, 설령 진실이 희생된다 하더라도 그 등장인물의 매력 이 아직은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것이 아닌 한은 인습적인 수사학에 따라 그의 등장인물을 좋게 묘사한다. 신문사 편집국 안에는 의외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쿠인틸리아누스 (고대 로마 최고의 변론가)가 있다.”

고인을 추모하는 조사 성격을 넘어 고인의 발자취와 공과를 제대로 짚어내는 부고기사가 늘어날 때 신문의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오비추어리는 죽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짧은 일대기이자 훗날 사관 (史官)들의 역사 편찬 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신문들이 표방하는 이념 및 가치 지향의 잣대에 기반해 고인에 대해 온전한 평가를 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신문의 중요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셈이다.

‘부고기사 스타일’… 작가 최인호와 리즈 부고기사

인상적이고 잘 잊히지 않는 스타일의 부고기사는 어떤 것일까? 2013년 9월 26일, ‘작가 최인호 씨 별세’ 부고기사를 보자. 뽑은 제목은 “68세 청년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다” (동아일보), “‘별들의 고향’ 찾으러 간 예순여덟 청년작가” (조선일보), “대중과 문학을 넘나든 ‘영원한 청년작가’” (한겨레), “머 리말만 남겨놓은 채… 책 쓰다 떠난 ‘영원한 문청’” (중앙일보) 등으로 엇비슷하다.

이 부고기사의 스타일과 관련해선 중앙일보가 좀 더 눈에 띈다. 「별들의 고향」이 당대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당대의 분방한 성 풍조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문제 삼았다. 한때 경아는 술집 여급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라고 짚고, “어느새 그는… 70년대 저항적인 청년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돼 있었다”는 장석주의 책에 나오는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고인이 처음부터 대중작가로 분류된 건 아니었다. 신춘문예 응모 때 당선 소감을 원고와 함께 미리 보낼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순수문학 진영이 그를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로 낙인찍자 평론가 김현에게 ‘내가 못마땅하면 내 이름을 평론에서 빼시오’라고 한 뒤 평단과 인연을 끊은” 일화를 제시하면서 문단과의 불화 등 그의 인간적 내면을 드러내 고 있다.

여기서 다시 리즈 부고기사로 돌아가 보자. 대다수 우리 신문들은 ‘세기의 연인’, ‘미의 여신’, ‘8차례 결혼’ 등 빼어난 미모와 숱하게 뿌린 화제 중심으로 리즈의 삶을 기록했다. 배우로 데뷔해 거침없는 성공 가도를 달렸고 오스카상을 거머쥐었으며 잦은 결혼과 이혼으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반면 「뉴욕타임스」에 멜 구소가 쓴 장문의 리즈 부고기사는 오스카상 수상 등은 한두 줄로 짤막하게 언급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인생 역정의 순간마 다 그의 깊숙한 내면을 보여주는 리즈 본인과 주변인물의 코멘트를 곳곳에 풍성하게 담아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는 ‘인물기사 (human interest story)’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구소는 이 기사 초반부에서부터 ‘연기자로서의 리즈의 재능’을 집중적으로 묻고 있다. 그저 그런 아역배우에서 은막의 관능적인 여왕으로 믿을 수 없는 전환을 하게 된 과정을 간단히 짚은 뒤, “평론가들이 배우로서 리즈의 재능을 흔히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처음엔 빼어난 외모로 데뷔했을지라도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진 배우가 재능까지 갖추긴 매우 드물지만, 그는 일천한 배우 수업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갖췄다’”고 평가한다. “테일러는 언론에 종종 희화화된 캐리커처로 등장했다. 마고 제퍼슨은 1999년에 「더 타임스」에 쓴 리즈 관련 기사에서 ‘그는 나이가 들든 어떤 옷을 입든 놀랍게도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에 대한 기존의 원칙을 깨부수었다. 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빈틈없는 뻔뻔함과 도도함으로 가득 찬 그녀였다’고 표현했다.”

이 글이 국내 신문들의 부고기사 ‘스타일’ 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약간 길어지더라도 구소의 리즈 부고기사 스타일을 좀 더 들여다보자. 구소는 기사 중반부터 ‘미의 화신’이라는 주제로 방향을 튼 뒤 왜 수차례에 걸쳐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리즈가 한 말을 인용해 붙이고 있다. “모르겠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나도 알고 싶다.” 또 놀랍게도 남편 리처드 버튼은 리즈의 외모를 그다지 대단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 리즈가 태어났을 때 그 어머니는 정작 얼굴이 아주 좁아 미운 오리처럼 여겼다는 기이한 사실도 덧붙여 흥미를 더하고 있다.

물론 구소의 부고기사가 보여주는 스타일은 이러한 몇 가지 새로운 팩트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고인의 인간적 내면에 대한 차분한 조명, 성공 이면의 인간적 모습이나 체취를 드러내는 그 방식에 있다. 구소는 “리즈의 삶은 수마일에 이를 정도의 신문과 잡지 기사, 별무리처럼 많은 사진들과 서랍에 가득할 정도의 일대기 기록을 남겼다. 각각은 저마다 리즈의 초상을 달리 그려내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리즈의 초상을 묘사했다.

“리즈는 감성적인 좌절과 육체적인 좌절, 심각한 질병과 사고를 겪으며 살아남았다. 그는 60살 무렵 ‘나는 평생 운이 좋은 사람이다. 외모, 명성, 부, 사랑 등 모든 것이 주어졌다. 얻으려 분투하지 않았음에도 운 좋게 얻었다. 그 행운을 지금 이런 불운으로 갚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비행기와 기차 등 모든 것이 그녀를 보려고 멈췄으나 대중매체들은 리즈가 진정으로 누군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리즈에 대한 대중의 오직 한 가지 일치된 동 의는 외모뿐이었다. 그러나 리즈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그녀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결혼시절이든 싱글이든, 병들었을 때든 건강할 때든, 스크린에서든 그 밖에서든 테일러는 더 많은 삶의 경험을 위한 진취적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말년에 수많은 회고록 출간 제안이 들어오자 그녀는 이를 거절하면 서 특유의 당당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회고록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지금 나는 여전히 회고록을 완성하려고 열심히 살고 있어요.’”

「뉴욕타임스」의 부고기사 스타일 집중분석

지금부터 사례로 드는 「뉴욕타임스」 부고기사들은 10 문단 이상으로 구성된 비교적 긴 글이다. 종이신문에 분량 제약이 있다면 온라인닷컴에서라도 얼마든지 시도해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글도 흥미로운 기사가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 부고기사들은 대체로 고인이 생전에 한 인상 깊은 말들을 효과적으로 곧잘 인용하면서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여준다. 고인의 삶에서 극적인 어떤 순간을 포착해 자세히 묘사하고, 주변인물들이 그에게 붙인 별명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한 개인의 삶의 특징을 드러 낸다. 자칫 이력서나 경력 나열 중심이 되기 쉬운 밋밋한 부고기사 형식을 탈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부고기사의 패턴을 나름대로 뽑아 간추려 본다.

① 기사 첫 문단에 고인이 인생에서 남긴 업적을 간명하고 인상 깊게 묘사한다.
—1995년 3월 12일 자, 도먼 치즈회사의 빅터 도먼 (Dorman) 회장 부고기사는 첫 문단이 “‘치즈 조각 사이에 종이를 끼워 넣은 슬라이스 치즈’를 발매해 미국 치즈시장을 바꾸어놓은 도먼 치즈회사의 빅터 도먼 회장이 별세했다”라고 돼 있다. 치즈 패키징 역사에서 종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미국인의 치즈 구매 방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평생의 업적으로 꼽아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기리고 있다.

② 고인이 이름을 얻은 분야 그 뒤편에 숨겨진 시대적, 사회적 의미를 짚어낸다.
—2014년 1월 17일 자, 1940~50 년대 미국 인기 여배우이자 가수였던 실리아 가이스 (Guyse) 부고기사는 흑인 여배우로서 인종차별 장벽을 깬 점이 그의 인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란 사실을 흥미롭게 제시하고 있다. “1952년 제트 (Zet) 매거진에 실린 그녀에 대한 기사의 헤드라인은 ‘백인 남편을 둔 흑인 여성’이었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같은 결혼이 성공하려면 지성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건 사랑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스스로의 생각에 의지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건 무시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2014년 1월 21일 자, 세계적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Abbado) 부고기사는 음악과 정치에 대한 소신을 밝힌 어느 인터뷰를 인용하고 있다. “살다 보면 사람들은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당신은 음악가인데 왜 정치 이야기를 하느냐?’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이탈리아 라스칼라에서 파시즘 반대 콘서트도 했다.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으나 파시즘에 반대해 공산당 지지 투표를 한 적도 있다. 난 단지 자유를 추구할 뿐이며, 자유를 부정하는 모든 것에 나는 저항한다.”

③ 삶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순간이나 열정을 쏟은 대상을 포착해 자세히 묘사한다.
—2014년 1월 15일 자, 캔자스 범죄탐정 켄 랜드훠 (Landwehr) 부고기사는 600여 건의 살인사건 조사를 담당한 그의 활약상 중 가장 이목을 끈 연쇄 살인범 레이더 (Mr. Rader) 체포 · 신문 대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레이 더의 첫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랜드훠는 아직 20살도 안 됐다. 살인범이 자기도취에 빠지도록 전략을 짠 인물이 바로 그다. (중략) ‘나와 그가 서로를 쳐다본 첫 만남에서 레이더의 첫마디는 ‘헬로, 미스터 랜드훠’였다. 레이더는 플로피디스크 추적과 관련한 합법성의 경계를 자신한테 잘못 알려줬다고 벌컥 화를 냈다. ‘당신이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하고 그가 물었다. 그러자 랜드훠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단지 당신을 꼭 잡고 싶었을 뿐이다.’”

④ 고인의 생애를 언급한 관련 책이나 언론매체 인터뷰 내용을 곧잘 인용한다.
—2014년 1월 15일 자, 금융 폰지 사기범 매도프 사태 해결을 주도했던 연방파산법원 법관 버튼 리프랜드 (Lifland) 부고기사는 어느 금융학자가 2006 년에 쓴 책에서 리프랜드를 ‘파산분야의 유명인사’로 묘사했다는 대목을 언급하고 있다. 파산법관이 ‘유명인사 (celebrity)’로 불린다는 점을 통해 그의 명성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다.

—2010년 11월 28일 자, 「총알탄 사나이」의 코믹 배우 레슬리 닐슨 (Nielsen) 부고기사는 “1993년에 펴낸 자서전 ‘Naked Truth’에서도 그의 코믹한 개성을 살렸다. 자신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거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염문을 뿌렸다거나 한때 농담중독 때문에 재활치료를 받았다는 둥 코믹한 허구를 채워 넣었다”는 책의 한 대목을 따 와 닐슨의 캐릭터를 간명하게 드러낸다.

⑤ 고인의 별명이나 종사한 직업과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를 언급한다.
—2014년 1월 10일 자, 레이건 시절 백악관 대변인 래리 스피크스 (Larry Speakes) 부고기사는 “그는 백악관 사무실에서 조용한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 그는 당시 점점 적대적인 질문 공세를 퍼붓는 출입기자들의 공세를 교묘히 비켜나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거칠게 다루면 가시로 쏘아대는 ‘미시시피강의 메기’로 불렸다”라고 쓰고 있다.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나온다. “언젠가 그는 인터뷰에서 ‘1만 가지의 말하는 방식이 있는데 ‘노코멘트’를 제외하고 나는 9,999가지 방식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⑥ 기사 끝은 ‘유족으로 누가 있다’가 아니라 고인의 평생 직업과 관련된 내면의 코멘트로 마무리한다.
—2004년 1월 20일 자, 세계적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부고기사는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아바도는 객석의 커튼콜을 받고 무대를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매너에 어색해했다. 1973년 인터뷰에서 그는 ‘예전엔 그렀어 나 요즘은 관객들에게 정중하려 애쓰고 있다. 나는 청중의 호응을 좋아한다. 청중의 반응에 무관심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내 진심이 아니다. 하지만 고개 숙여 청중한테 답례하는 게 여전히 쑥스럽다. 나는 쇼맨 (showman)이 아니다.”

—2010년 11월 28일 자, 코믹 배우 레슬리 닐슨 부고기사는 낭만적 영웅 역할에서 코믹배우로 전환한 그의 배우인생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1988 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닐슨은 ‘연기자 생활 35년간 나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는 연기를 해온 게 아닌가 조금씩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역을 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부고기사를 고인이 별세한 다음 날짜에 반드시 실어야 하는 건 아니다. 꼼꼼히 더 취재해 며칠 시간이 지난 뒤에도 좋은 부고기사를 생산해 게재할 수 있다. 올해 88세로 타계한 가수이자 배우인 가이즈 (Guyse) 부고기사는 2014년 1월 17일 자 「뉴욕타임스」 종이신문 (A23면)에 실렸다. 사 망한 날은 2013년 12월 28일이다.

신문사 온라인닷컴을 부고기사 공간으로 활용하자

종이신문 지면에 부음기사를 충분히 할애하기 어렵다면 신문사마다 운용, 서비스하고 있는 온라인 닷컴에 부음 관련 카테고리를 만들어 서비스할 수도 있겠다.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오비추어리 목록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각 분야에서 주목받은 인물들의 부고기사와 사진 컷, 연설 등 멀티미디어 자료 서비스 —고인과 가까운 주변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며 관련 사진과 이야기를 올리는 코너 —온라인 부고 아카이브 (빅토리아 여왕, 간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등 세기의 인물들의 자료 구축 서비스) 등이다. 덧붙여 「뉴욕타임스」는 유족들이 돈을 내고 싣는 ‘Paid Death Notices’ 코너를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온라인 부고란은 ‘고인을 둘러싼 논쟁’ 코너를 제공해 독자를 더 많이 끌어들이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리즈가 사망한 2011년 3월 23일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은 “요즘엔 대중스타 (셀러브리티)가 되기 점점 더 어려워지 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논쟁 코너를 선보였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옛 스 타와 지금 대중스타의 차이를 묻는 토론공간이다. 이 온라인판은 지난 1월 11일 사망한 이스라엘 전 총리 샤론 (Sharon)의 부고기사 제목을 ‘재임 기간에 평화를 추구한 매파’라고 뽑은 뒤 샤론에 대한 독자들의 비판과 지지 참여 코너를 별도로 배치했다.

온라인 부고란은 부고기사에 종종 발생하는 연도나 인물이름 표기의 오류를 바로잡아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부고기사 맨 끝에는 종종 이런 수정 (Correction Appended) 이 달려 있다.

부고 알림란, 저명인사와 보통사람

뉴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언론사 조직이나 기자는 사회적 엘리트와 비 공식적인 연결망을 구축해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으며, 파워 엘리트들과의 연결이나 관계를 뉴스 선택의 중요한 변수로 삼고 있다고 언론 연구자들 은 흔히 지적한다. 박성희 교수 (이화여대)는 2002년 《관훈저널》 여름호에 실은 「일간지 ‘사람들’ 면 이대로 좋은가」에서 “언론에 비추어진 세상은 여전히 가진 사람과 성취한 사람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중략) 선별 보도의 극치는 ‘부음’ 란에서 찾을 수 있다. (부음란의) 면면을 훑어보면 성취한 자녀를 둔 사람, 혹은 언론사 관련업 종사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또 평범한 사람의 부음은 자녀들이 주체가 되어 작성된다”라고 했다.

시인 김승희는 2000년에 ‘한국식 죽음’이라는 시에서 정작 고인 (의 이름) 은 없고 ‘부친상’, ‘장인상’ 식으로 처리하는 국내 신문의 부고 소식란에 대해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라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2002년 12월 부고란 을 ‘궂긴 소식’으로 바꾸면서 국내 신문 중 처음으로 부고란에 고인 본인의 이름을 모두 넣고 있다. 경향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도 뒤따라 고인 이름을 넣고 있는 반면, 국민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 국일보의 부고란은 대체로 고인의 이름을 쓰지 않고 정치인, 대학교수, 기업체 임원 등 특별한 경우엔 이름을 넣고 있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고인의 이름을 넣기도 빼기도 하면서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에 대한 정보 위주로 작성되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페드라 에스틸. 100년 4개 월 26일 만에 세상을 떠난 나의 어머니.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쌌다. 그녀는 가장 멋진 엄마였으며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녀의 가슴, 영혼은 항상 나와 함께했다.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도비.”(라이코스 CEO 출신 임정욱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 ‘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에 실린 「뉴욕타임스」 부고란 글 중에서) 

임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부고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줄줄이 자식의 이름과 직업, 직함을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의 부고기사도 마치 문상을 오는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은 형식을 버리고 이처럼 고인을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독자들이 즐길 수 있고 또 어떤 깨달음을 주는, 세상에 퍼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훌륭한 인생 교과서가 되기도 하는 그런 부고기사는 어쩌면 위기에 처한 신문산업의 조그마한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