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
영화 기자 김소미의 『불이 켜지기 전에』에 수록된 부고기사에 관한 글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 中 일부다.
부고는 역사의 한 형태이며 종종 역사의 초안이다.
객관의 세계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부음이 알리는 부재는 무색하게 필모그래피는 변함없이 건재하다. 그 목록이 얼마나 길든 짧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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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0일 토요일 故 송재호 배우가 영면했다. 주말 저녁에 습관처럼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폈다.
(송재호 배우의 부고 기사를 쓰는 과정에 관한 글이다. 부고는 단순히 부고의 알림을 말하지 않는다.)
……
월요일 아침이 되지 편집장이 이번 주에 예정된 내 기사를 한 주 미루는 대신 부고를 쓰자고 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편집장에게 재차 물었다.
"…… 제가요?"
"응, 아까 회의 때 관심 있어 보이던데?"
물론 관심이 있었다. 나는 아우성치는 양각 대신 묵묵한 음각을 새겨 넣는 일에도 부지런했던 조연 배우의 미덕을 고인의 페르소나로 구체화하고 싶었다. … 이때 영화잡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영화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재 구축하는 것이다. 죽음이 아닌 삶의 장면을 새로운 몽타주로 설득력 있게 배열하는 것이다.
(송재호가 근래 나이(?)때문에 조연을 한 것은 맞지만 조연 배우라고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나온 작품 더 많기는 하다. 그럼에도 그냥 배우라고 했으면… )
……
와중에 또렷이 기억나는 작품 속 그의 모습은 …… 「살인의 추억」. 그렇다, 「살인의 추억」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견과 감탄의 자리에서 물러나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제대로 써야 한다. 나의 기사가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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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부고는 역사의 한 형태이며 종종 역사의 초안이다." 『워싱터 포스트』의 유명한 부고 담당 기자 아담 번스타인 의 말. 추모비 웹사이트 『레거시』에도 이런 말도 적혀 있다. "부고를 쓴다는 것은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찾아서 몇 개의 짧은 단락에 효과적으로 압축해야 한다." …… '적당량'의 기사로 한 사람의 일생을 간추려내는 작업을 해낼 수만 있다면 죽은 자와 산 자를 모두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부고 기사에 관한 간명한 통찰과 사명감이 깃든 말을 읽을수록 내 손은 점점 무거워진다.
부고를 쓴다는 것은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찾아서 몇 개의 짧은 단락에 효과적으로 압축해야 한다.
……
지금도 가끔씩 열렬히 탐구해왔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누군가의 추모에 관여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뒤늦게라도 그의 유산을 열렬히 사랑해보는 것뿐이다. 붙잡을 수 있는 필모그래피와 타인의 기억을 보고 헤매면서 페르소나를 그려나간다.
가끔은 내가 한참 전에 출발한 거대한 열차에 올라타려고 달려가는 사람 같다. 오래된 탑 위로 이제 막 걸어 올라가기 시작한 사람 같기도 하다. 이 장면에서 항상 작고 역부족인 쪽은 쓰는 사람이다. 따라잡아야 할 열차와 높은 탑은 매번 바뀐다. 그래도 너무 낙담하지는 않기로 한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 대상은 우리를 도와준다. 알면 알수록 가중되는 애정의 형태로, 해야 할 일을 잠시 잊게 만드는 즐거움으로, 누군가의 낮고 다정한 음성과 편지의 몇 마디로 찾아온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은 부고 소식을 접한 뒤 “선생님은 조합 행사나 시위 때 늘 함께 자리해주셨다. 유명 배우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인데도 맨 앞줄에서 현수막을 들어주는 그런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로 오래 활동하는 등 그는 배우 생활 바깥에서도 성실함과 의협심이 탁월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
스타이기보다 대중을 위한 배우였던 사람. 온화한 열의로 평생 게으를 줄 몰랐던 한 사람이 오랜 항해를 마쳤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이 있는 한, 작별인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김소미의 부고기사는 애증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기사같은 부고기사로 보인다. 수 많은 필로그래피를 나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렇게 많은 필모가 없었다면 기사를 썼을까?
"그는 배우 생활 바깥에서도 성실함과 의협심이 탁월했던 인물"이었다고 고인을 평하고 있다. 다행이다. 부고로 끝나지 않은 부고기사이기에…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고 말했다. 또한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말했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뉴욕타임스」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페드라 에스틸. 100년 4개 월 26일 만에 세상을 떠난 나의 어머니.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쌌다. 그녀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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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켜지기 전에 | 김소미
《씨네21》 김소미 기자의 첫 산문집 『불이 켜지기 전에』가 마음산책에서 출간되었다. 극장 불이 켜지기 전까지 자리를 못 벗어나게 하는 영화의 매혹과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되는 영화기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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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①] 사나이, 아버지, 그리고 배우…
2003년 412호 특집 ‘송재호·변희봉·선우용녀·김인문, 따봉! 백전노장 전성시대’ 중에서. 쉼 없이 긴 연극 같은 삶이었다. 막간을 둘 새도 없이 배역을 달리하며 무대 위의 성실함으로 삶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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