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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죽음과 한국식 실종자

한방블르스 2025. 11. 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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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하는가

부고는 한 인간의 마지막 기록이다.  
그의 이름, 생전의 직업, 남겨진 가족.  
신문의 한 칸짜리 짧은 알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 사회가 누구의 죽음을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조선일보의 부고기사에서 이 태도의 방향을 드러냈다.  
박순찬 조선일보 기자와 김영욱·정재민 카이스트 교수는 《한국언론정보학보》에 실린 논문에서, 2020년 상반기 동안 조선일보에 실린 단신 부고기사 939건과 2023년 하반기 부고 의뢰 경로를 분석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조선일보의 부고는 ‘고인’보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쓰인다.

고인의 생전 직함이나 이력을 담은 경우는 전체의 24.4%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부고는 “누구누구의 부친상, 모친상”으로 시작했고, 이름보다 관계가 앞섰다.  
심지어 과거에는 고인의 이름조차 쓰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2014년이 되어서야 조선일보는 “모든 부음을 고인의 이름으로 시작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그전까지는 직함이 없는 사람의 이름은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이름이 있다는 건 사회적 ‘인정’의 문제다.  
신문에 이름이 없다는 건, 존재가 공적으로 기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공백은 곧 기억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고인의 죽음보다 ‘남은 이의 직함’

논문은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부고기사에 등장한 유가족의 직업군은 기업인과 언론인이 압도적이었다.  
기업 대표·임원이 27.2%, 언론계 종사자가 15.5%.  
반면 고인 본인이 기업 임원인 경우는 22.7%였다.  
즉, 언론사 부고는 “누가 죽었는가”보다 “누가 남았는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언론계 내부의 선후배 문화, 기업 홍보팀의 적극적인 부고 요청,  
그리고 대학병원 장례식장의 ‘신문 부고 서비스’라는 구조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일보 부고의 40%는 수도권 대형 대학병원 장례식장과 연결돼 있었다.  
논문은 “신문 부고는 대학병원을 이용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이 주로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죽음에도 진입장벽이 있었다.  
신문에 실릴 자격은, 살아 있을 때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평범한 사람의 부고는 사라진다

연합뉴스는 부고기사 게재 기준을 “직함이 있는 고인·유가족”으로 한정한다.  
조선일보 역시 연합뉴스를 주요 소스로 활용한다.  
결국 ‘평범한 시민의 부고’는 언론사의 게이트를 통과하기 어렵다.  
죽음의 보도조차 ‘선택된 사람’의 영역이 된 것이다.

실제 일반 시민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4.7%가 “신문 부고를 이용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유명인이 아니라서”, “신문에 실릴 이유가 없어서.”

부고의 문은 닫혀 있고, 독자도 그 벽을 느낀다.
 


영국의 부고는 ‘삶의 초상화’

반면 영국 가디언이나 뉴욕타임스의 부고는 다르다.  
그들은 고인을 중심에 둔다.  
“아무개의 부친상”이 아니라  
“그가 남긴 음악, 글, 혹은 작은 업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문의 부고는 한 인간의 생을 요약하는 짧은 전기(傳記)이며,  그 자체로 한 장르로 인식된다.  
신혜정 조선대 교수의 표현대로, “삶의 평가이자 기록”이다.

한국의 부고는 여전히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로 쓰인다.  
죽음의 순간에도 우리는 관계와 지위를 먼저 본다.  
누가 누구의 부모인지,  
그 아들이 어디 회사에 다니는지.  
죽은 사람의 이름은 여전히 작다.

이제는 ‘부고면’이 필요하다

논문은 제안한다.  
“보통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언론의 과제”라고.  
죽음을 제대로 기록하는 것은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일이다.  
삶을 평가하고, 남은 자들이 배울 수 있는 ‘부고면’이 신설될 때,  
우리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이름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언어를 바꾸는 것은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누구의 이름이 남고, 누구의 이름이 지워지는가.  
그 질문이 곧,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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