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부고에 묻힌 삶, 언론은 어떻게 기록할까

한 줄 부고에 묻힌 삶, 언론은 어떻게 기록할까
신문이나 온라인에서 흔히 보는 부고 알림은 대개 이렇게 한 줄로 끝난다.
“○씨 별세, ○씨 부친상=○일, ○장례식장, 발인 ○일 ○시. ☎️ ○○-○○-○○”
전직 대통령, 정치인, 연예인처럼 널리 알려진 사람의 죽음은 긴 기사나 영상으로 남지만, 일반인의 죽음은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이 조명할 대상은 의미 있는 삶을 남긴 이들이겠지만, 현실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형식도 단조롭다.
그럼에도 최근 몇몇 기자들은 덜 조명된 죽음을 발굴하고 기록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가만한 당신, 못다한 말
“(길게 읽고 오래 생각할) 긴 부고가 필요한 까닭”어떤 이의 죽음을 맞아 그의 삶을 알리고 기억하려 쓰는 글을 부고라 한다. 죽음은 모두 같지만 그곳에 이르는 삶은 각기 다르기에, 남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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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에서 시작해, 삶을 기록하다
김태훈 세계일보 오피니언담당부장은 지난 1월 발령 이후, 약 60명의 부고 기사를 온라인에 썼다. 대상은 참전용사, 예술가, 교수, 관료, 정치인, 법조인 등 다양하며, ‘유명인 중 덜 알려진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간단히 처리된 부고 속에도 중요한 사연과 업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다 건질 순 없지만, 소개할 수 있는 선에서는 찾아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대표 사례로는
• 박건승 기자 별세 (5월 27일)
단순 알림이던 부음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 기사로 재탄생. 산업부 근무 경력, 재계 인맥 전문기자로 자리매김한 점까지 상세 기록.
• 안진수 단국대 명예교수 별세 (6월 24일)
성실한 강의와 자상한 지도 등을 담아, 주변 기억을 기록한 유일한 기사.
김 부장은 “외국은 부고를 중시하고, 지역사회 기여자까지 다뤄 기사화한다. 국내에서도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카이브 활용과 차별화
KBS 이진성 기자는 무용가, 작가, 산악인 등 20여 명의 부고를 다뤘다. 특히 송해·이어령 선생의 경우, 과거 인터뷰 영상과 사진을 활용해 생전 모습을 상세히 전했다.
그는 “엠바고 인터뷰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 제약이 있다. 이미 남아 있는 기록을 활용하면 타사와 차별화된 부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자하 하디드 별세 기사는 네이버에서 30만 뷰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비유명인 부고, 새로운 지평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는 2014년부터 외국인 장문의 부음 시리즈 ‘가만한 당신’을 연재 중이다. 책, 기사, 방송클립, 판결문 등 꼼꼼한 취재를 통해 문학적 성취와 맞닿는 글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이충원 DB센터부장은 비유명인의 죽음도 기사화했다.
• ‘아이스크림 메로나 개발자’, ‘장충동 족발골목 1세대 뚱뚱이 할머니’ 등
•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1930~40년대생 280여 명 부고를 미리 준비
또한 장애인언론 비마이너는 2019년부터 ‘무연고 사망자’의 부고를 알리며 사회적 기록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부고, 언론의 지향을 보여주는 창
누구의 죽음을, 어떻게 기록할지는 언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보여준다. 현재 국내에서는 전문적·체계적 부고 전담 부서는 없고, 대부분 기자 개인의 노력에 의존한다.
이진성 기자는 “부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체계적으로 기록하면 좋겠다. 누군가의 생을 정밀히 아는 데 재미를 느껴 ‘덕질’을 하는 것처럼, 경험 있는 이들이 관심을 갖고 기록해주면 좋다”고 말했다.
한 줄에 묻히던 삶도, 관심과 기록이 더해지면 풍성하게 살아난다. 언론의 시선이 바뀌는 만큼, 잊히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많아질 수 있다.
한 줄 '부고 단신' 아닌… 사연·업적 남긴 이들 발자취 조명 - 한국기자협회
“○씨 별세, ○씨 부친상=○일, ○장례식장, 발인 ○일 ○시. ☎○○-○○-○○” 언론사 기사 등을 통해 흔히 접하는 부고 알림이다. 전직 대통령,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하고 잘 알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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